본문 바로가기

2026년 추천도서(26.1-)/2026-08

8월의 추천도서 (4909) 죄와 책

 

 

1. 책소개

 

《어떤 양형 이유》 《법정의 얼굴들》 등의 저자 박주영 판사는, 차가워야 할 법의 언어에 문학적 온기를 더하며 판결문을 쓴다. 그의 판결문과 당부사항을 듣는 재판 당사자들과 방청객들은 냉정한 법정에서 돌출한 따스함에 영문 모를 표정을 짓거나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린다. 인간 쟁투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긴 그 판결문이 곧 문학이어서다.
《죄와 책》은 주로 형사재판을 했던 저자가 직간접적으로 겪은 재판 사례와 연관된 책을 소개하는 책이다. 쇼츠와 릴스, 도파민과 과시로 점철된 세상에서 그가 칩거하며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무지 읽지 않는 우리에게 책은 왜 필요한 것일까? 빌어먹지 않고 벌어먹기 위해 독서를 택한 판사의 죄와 책 이야기.

 

 

출처: 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박주영

 

지방법원 부장판사.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7년간 변호사로 일하다 경력법관제도로 판사가 됐다. 지금은 지역법관제도가 폐지되어 지역법관이 아니지만 자의로 부산고등법원 관내에서 근무하고 있다. 20년 남짓 되는 기간 동안 부산지방법원, 울산지방법원, 대전지방법원 등에서 주로 형사재판을 했지만 부산가정법원에서 소년재판을 한 적도 있다. 언론을 상대하고 행정기획업무를 하는 공보기획판사도 세 번이나 했다.
공보기획판사로 일하며 인터뷰와 대외행사를 많이 했지만 실제로는 낯을 많이 가리고 소심하다. 읽고 보고 듣는 것을 좋아해 시간이 나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유일하게 부리는 사치는 오디오 기기다. 소박한 진공관 앰프에 LP로 음악, 특히 재즈를 자주 듣는다. 빌리 할리데이와 쳇 베이커를 좋아한다.
2022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다.
지은 책으로 《어떤 양형 이유》 《법정의 얼굴들》 《괄호 치고》 등이 있다.

 

출처: 본문중에서

 

 

 

 

3. 목차

 

프롤로그

1 송달불능 인간들
송달불능 인간들
아버지의 월급 시절
살아간다는 것

2 이방인
부모와 다른 아이들
언더그라운드
이방인
물고기와 고양이, 도롱뇽과 산양 그리고 인간

3 불타는 수레
불타는 수레
스위트 홈
죽거나 죽이거나
수준 미달 세상에서 보내는 위로

4 나 아닌 다른 삶
나 아닌 다른 삶
중쇄를 찍자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5 생각에 관한 생각에 관한 생각
칠드런 액트
어떤 소송
생각에 관한 생각에 관한 생각

에필로그

 

출처: 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문학은 나를 전업 작가로 이끌지는 못했지만, 나와 재판과 판결문에 미세한 온기를 더했다. 어쩌면 이것이 나만의 문학 하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 사실 한 꼬집도 안 되는 재주를 가진 전업 작가보다, 책 많이 읽고 문학적 상상력을 가진 전업 판사가, 직업 정치인이, 경제 관료가, 과학자가, 교사가, 프로 야구 선수가 훨씬 더 세상에 필요하지 않을까, 자위해본다. 모두가 다양한 책을 읽고, 자신의 일에 문학적 향취를 불어넣을 수만 있다면, 세계는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_11쪽

L과 전 세입자와 바틀비가 우편물이듯, 우리는 모두 일종의 우편물이다. 인생은 서로에게 가닿으려는 행위가 무수히 반복되는 여정이다. 송달불능 우편물이 폐기되듯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는 인간은 삶을 지속할 수 없다. L과 바틀비를 보며 스스로 되묻곤 한다. 나는 지금 가야 할 곳으로 제대로 송달되고 있는가. 우리는 서로의 우편물로서 누군가를 제대로 수령하고 있는가. _26~27쪽

언젠가 말년의 아버지가 자주 쉬던 아파트 벤치에 앉았을 때 아버지의 기억이, 아니 자연으로 돌아간 아버지의 원자들이 담배 연기처럼 훅하고 폐 속으로 들어오는 것만 같은 날이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를 흡입한 그날 그 벤치 앞에, 말쑥한 정장을 입고 기린처럼 큰 사내가 내 앞에 섰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아버지, 오셨어요? 이제 다 알아요. 미안해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꾸벅 인사했다. 박민규의 《카스테라》를 읽고, 또 내가 아버지의 마지막 기쁨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부터 나는 가끔, 대왕 카스테라를 먹다가, 대왕 목이 막혀, 대왕 크게 울곤 했다. _35쪽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어떤 말들은 이제 통역조차 불가능하다. 나는 우리를 완전한 타자로 구분해버리는 이 낯선 말과 불길한 기운에 몸서리친다. 몰이해는 이해할 수 있어도, 몰애(沒愛)는 견딜 수 없다. 나는 요즘 불안하다. 사랑도 통역이 될까? 통역되지 않는다. 아니, 통역이 필요치 않다. 변환장치 없이 통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 앞에 이방인은 없다. _106쪽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희미한 신음이나 하소연일지라도, 무지막지한 힘에 맞서 함께 소리 내고 저항한 순간만큼은 찬란하게 빛난다. 우리가 할 일은, 오욕으로 점철된 그 하찮은 사람들의 삐걱거리는 소리와 실존의 희미한 광휘를, 절대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지 않는 것이다. _126~127쪽

도착지가 비록 둘뿐이어도 거기로 이르는 길은 무수히 많다. 길이 보이는 한 모두 가봐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패자도 죽는 자도 납득할 수 있다. 유죄와 무죄, 승소와 패소 외에 다른 결론을 창조할 수 없다 하더라도, 지름길이 아니라 수많은 에움길을 가본 다음 내린 결론이라야 그 결과를 이해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법률가에게 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이자, 인간 판사가 존재하는 이유다. _142~143쪽

진정한 위로란 무엇인가. “당신 잘못이 아니다. 자책하지 말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넌 결코 홀로 걷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그 고통의 정당성을 인정하며 고통을 함께 짊어질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변화의 희망과 연대의 의지가 담기지 않은 위로는 공허하다. 내 재판에 그것이 담겼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간절히 욕망했고, 변함없이 욕망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내 욕망의 수준은 미달이 아니다. _209쪽

아픔이 없는 사람은 사람 사이에 놓인 심연을 건널 수 없다. 고통은 타인으로 가는 통행권이다. 타인의 불행을 보면서 내 불행을 경계하고 내 삶에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타인의 불행은 부조리한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값비싼 가르침이므로 이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호의와 사랑이 이어져 세상이 좋아지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불행과 고통이 퍼져나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_227쪽

절판되는 책 중에 좋은 책이 많듯, 교도소나 길거리에서 끝장나는 인생 중에도 좋은 사람이 많다. 누가 책을 살리는가. 눈 밝고 선한 독자다. 누가 전과자와 노숙인과 중독자를 살리는가. 인간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는 시민이다. 사람을 중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독자는 몇일까. 한 명이다. 단 한 사람만 애정 어린 시선을 보여줘도 사람은 나쁜 길로 빠질 수 없다. _256쪽

문학은 인간을 통시적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성과 의미를 가르쳐준다. 법이 평균을 취급한다면, 문학은 개별값을 다룬다. 평균과 개별의 괴리는 사실 법과 문학의 간극이다. 법이 인간 삶의 한 국면만 다룬다면, 문학은 인간이라는 조각의 시작과 끝을 다룬다. 문학은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정답에서 비껴간 존재들이 내지르는 비명과 몸짓을 기록하는 예술이다. _280쪽

 

출처: 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어떤 양형 이유》 《법정의 얼굴들》 박주영 판사 신작
읽고 쓰는 삶에 충실한 법률가의 문학적 시선과 감각에 관하여

빌어먹지 않고 벌어먹기 위한 독서
“멋진 양형 이유 문구 고민할 시간 있으면 무고한 피고인 집어넣는 게 아닌지 더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지요.”
“이상한 글 좀 그만 쓰고 기록이나 열심히 봅시다.”

20년 남짓 되는 기간 동안 판사로 살아온 저자의 전작들에 달린 코멘트 일부다. “장차 칼 같아야 할 판결문에 소설이나 쓰고 자빠진 판사”(12쪽)는 ‘멋진 양형 이유’와 ‘이상한 글’로 화제가 됐지만, 바로 그 때문에 여기서 욕먹고 저기서 얻어터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가 감정을 담아 글을 써내는 이유는 그것이 마사 누스바움이 주창했던 ‘법과 문학 운동’이기 때문이다.

《시적 정의》로 잘 알려진 마사 누스바움은, 법적 판단에 있어 감정은 결코 장애물이 아니며, 재판관은 분별 있는 관찰자로서 문학적 상상력과 공감을 통해 합리적 감정을 추려내고, 이를 공적 추론에 활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8쪽)

피고인과 피해자, 원고와 피고 등 인간이 어느 하나의 타이틀로만 규정되는 건 법정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법정에 선 한 인간에겐 무수한 삶의 레이어가 켜켜이 쌓여 있다. 그들을 기록 속 글자가 아닌, 개별성과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 보려면 ‘문학적 상상력과 공감’을 기르고 벼려야 한다.
가장 확실한 수단은 온갖 종류의 문학이다. 사람은 없고 죄만 남은 듯한 법정을 지키던 저자는 빌어먹지 않고 벌어먹기 위해 읽기 시작했다. 《이방인》의 뫼르소는 외국인들을 위한 형사재판 절차 안내서를 만들게 했고, 타국 청년들의 좌절이 담긴 이야기는 전세사기로 스러진 청년들의 영혼을 위무하는 판결문을 낳았다. 그의 재판과 판결문에 담긴 미세한 온기는 모두 책에서 온 셈이다.

“박주영의 인간 연구는
우리에게 도착한 새로운 문학”


“좋은 법률가는 좋은 독자여야 한다”(8쪽)는 ‘법과 문학 운동’의 핵심을 실천하는 그에게 책은, “규범과 문장의 행간에 갇힌 인간”(9쪽)을 감각할 수 있는 필수 장치다. 판사로서 잘하기 위해 독자로서 살아온 세월은 합리적 판단과 논리적인 판결문뿐만 아니라 책을 고르고 읽고 해석하는 데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이번 《죄와 책》은 그가 20년 남짓 되는 법관 생활을 하며 직간접적으로 겪은 재판 사례들과 그와 연관된 책을 골라 소개하는 책이다. 수십 년간 읽은 책 중 좋은 것만 골라 소개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판사의 가장 주된 업무는 글쓰기다. 한 달에 책 한 권 정도 분량의 판결문을 써야 하는 법관의 글은 정성 들여 묵혀둔 술처럼 깊고 묵직한 맛을 뿜어낸다. 이 책을 먼저 읽고 추천사를 쓴 편집자이자 문학평론가 박혜진이 “그가 지금 자신의 문학을 하고 있다”고, “박주영의 인간 연구는 우리에게 도착한 새로운 문학일지 모른다”고 쓴 이유이기도 하다.

로봇이 제한된 단어만으로 풍부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면, 승소, 패소, 기각, 인용, 징역, 벌금, 양형, 구속, 석방 따위 핏기 없는 단어라 하더라도, 인간인 내가 다루는 한 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단어들이 시가 되고, 수필이 되어야, 영구 미제로 남아 내 법정을 배회하는 저 유령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지 않을까. (12쪽)

내일도 모레도 아마 수십 년 뒤에도 법정에는 온갖 유령이 떠돌 것이다. 누구를 잃어서, 목돈을 앗겨서, 내 것을 쟁취하려고, 네 것을 빼앗으려고, 갖가지 이유로 탄식하고, 악을 쓰고, 핏대를 세운다. 뜨겁기에 차갑기만 한 법정 한복판, 핏기 없는 단어 사이에서도 한 인간의 삶을 보려 애썼던 저자의 노력은 이 책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오해와 몰애(沒愛)가 아닌 이해와 사랑의 독서
비로소 ‘너’를 정독하는 시간


〈2025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4년 접수된 전체 소송 건수는 총 6,915,400건이었다. 그중 온갖 분쟁이 몰려드는 민사소송은 4,709,506건(약 68.1퍼센트)으로, 1980년부터 연평균 약 12퍼센트씩 늘어나며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다. “송사 좋아하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은 정말로 옛말이 돼서 대한민국은 인구 대비 소송 건수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법 관련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분쟁을 소송으로 처리하는 성향이 매우 높은 ‘소송과잉사회’로 전환되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다투는 걸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즘 사람들은 책을 너무 안 읽는다. 경제는 발전하고, 법과 기술은 눈부시게 진보하는데, 세상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지는 가장 큰 이유가 ‘책을 읽지 않아서’에 있다는 데, 내 재산의 절반 정도는 걸 수 있다. 이토록 문해력이 떨어지는데 사람을 이해하는 인해력(人解力)이 어떻게 생길 수 있겠는가. 이해조차 어려운 타인들과 사는 세상에서 어찌 공감과 행동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9~10쪽)

쉬지 않는 스크롤, 휙휙 지나가는 릴스와 쇼츠. 쉽게 짓는 웃음, 더 쉽게 쏟아내는 비난, 더욱더 쉽게 퍼붓는 저주. 고작 두 시간짜리 영화조차 몇 분짜리 축약본으로 소화하는 요즘, 책 같은 걸 읽는 이들은 한 자밤도 안 된다. 영화와 책에도 이럴진대 한 인간의 생을 들여다보려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갈수록 단면만 보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러나 “CT 사진 한 장을 앞에 놓고, 한 인간을 평가하고 규정짓는 것은 얼마나 엉터리인가.”(279쪽)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계속 다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정상이고 너는 비정상이야. 나는 이성적인데 너는 몰상식해. 나는 말했는데 네가 듣지 않았어. ‘나’와 ‘너’는 좀처럼 같은 페이지에 적히지 못한다. 저자에게도 불화한 장(章)이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였다. 그러다 박민규의 소설 속 기린이 된 아버지를 조우했다. 저자는 비독(飛讀)해왔던 자신의 아버지를, 추레하고 마른 몸으로 법정에 선 누군가의 아버지를 비로소 정독(精讀)할 수 있었다.

사실 한 꼬집도 안 되는 재주를 가진 전업 작가보다, 책 많이 읽고 문학적 상상력을 가진 전업 판사가, 직업 정치인이, 경제 관료가, 과학자가, 교사가, 프로 야구 선수가 훨씬 더 세상에 필요하지 않을까, 자위해본다. 모두가 다양한 책을 읽고, 자신의 일에 문학적 향취를 불어넣을 수만 있다면, 세계는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11쪽)

다양한 책을 많이 읽고 문학적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자신의 자리에서 각자의 문학을 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세상이 더 좋은 곳이 된다는 건, 이상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헌법학자이자 법철학자인 로널드 드워킨은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고 이상을 항상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295쪽)라고 했다.
《죄와 책》은 묻는다. 현실에 짓눌려 지레 이상을 포기한 건 아니었는가. 조금도 헤아리지 않고 으레 비난한 건 아니었는가. 이제, ‘너’를 정독할 시간이다.

 

출처: 「죄와 책 」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