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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추천도서(25.3~)/2025-07

7월의 추천도서 (4522) 서른 번의 힌트

 

 

1. 책소개

 

한국문학의 활력과 미래, 한겨레문학상 30주년
역대 수상 작가 20인의 첨예하고 새뜻한 신작 소설 앤솔러지
시대를 가로지르며 연결되는 문학의 힘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들이 당선작을 모티프로 써 내려간
어제와 오늘을 아우르는 내일의 이야기들


1996년 한국문학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제정된 한겨레문학상이 올해 30주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한겨레문학상은 심윤경, 박민규, 윤고은, 최진영, 장강명, 이혁진, 강화길, 박서련 등 탁월한 역량과 개성을 지닌 작가들을 발굴하며 국내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장편소설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문단의 지지와 독자들의 성원으로 이뤄낸 값진 성취이기에 이를 기억하고자 한겨레문학상 30주년 앤솔러지《서른 번의 힌트》를 내놓는다.

 

《서른 번의 힌트》는 역대 수상 작가들이 본인의 당선작을 모티프로 쓴 신작 소설 앤솔러지이다. 당선작의 프롤로그 혹은 에필로그를 다루거나 등장인물, 사건, 소재에 관하여 당시에는 미처 풀어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한층 새로워진 관점과 형식으로 담아냈다. 한겨레문학상 30주년을 기념하고 수록작들을 느슨하게나마 연결하기 위해 작품마다 ‘30’이라는 키워드를 심어 이를 찾아 읽는 재미를 더했다.

 

《서른 번의 힌트》는 그동안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읽어온 독자들에겐 친숙한 이야기를 반추하는 동시에 그 서사가 확장되며 새로워지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고, 앞으로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접할 독자들에겐 흥미로운 이야기들의 물꼬를 터주는 긴요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서른 번의 힌트》를 통해 한겨레문학상은 지난 30년간의 문학적 성취를 작가, 독자와 함께 기억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고자 한다.

 

출처: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하승민

 

장편소설《멜라닌》으로 제29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콘크리트》《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당신의 신은 얼마》 《발끝이 바다에 닿으면》등이 있다.

 

저자: 김희재

 

장편소설《탱크》로 제2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단편소설《화성과 창의의 시도》가 있다.

 

출처:본문중에서

 

 

 

 

 

3. 목차

 

유전자_하승민
잠도 가는 길_김희재
진홍: 박수 외전_강성봉
힌트_김유원
정말 괜찮으세요?_서수진
옥이_박서련
종이탈_강화길
빵과 우유_한은형
모든 고릴라에게_강태식
서강대교를 걷다_장강명
무명_최진영
외계인_주원규
웰컴 투 더 로스트앤드파운드_서진
말레이곰이 우리 집에 왔다_조영아
표범_조두진
어나니_권리
너를 응원해_심윤경
불의 말_박정애
홍합, 이시죠?_한창훈
길 위의 에트랑제_김연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알파와 베타는 아이가 걱정이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아플까 봐 걱정이었다. 언젠가 유치원에 갈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이었다. 학교에 갈 아이가, 친구를 사귈 아이가, 맹인 아빠를 둔 아이가, 파란 몸에서 태어날 아이가, 세상에 무방비로 던져질 아이가, 둘은 걱정이었다. _하승민,〈유전자〉

사람들은 아들의 죽음에 대한 대가가 성대하게 치러졌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아이의 죽음은 사회적인 이슈나 책임자에 대한 단죄로 보상받을 수 있는 종류의 상실이 아니었다. 그 상실은 또 다른 시작이 뒤따르지 않는 영원한 끝이었다. _김희재,〈잠도 가는 길〉

주지와 자주색 재킷이 천도해달라며 가져온, 인간도 아닌 그것, 살지도 죽지도 않은 그 깊은 구멍을 들여다본 지금, 박수는 다시 벼랑 끝에 섰다. 그랬구나, 그리 오래 잊고 잘도 살아왔구나. 박수는 부푼 소매를 접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벽에 걸린 진홍검을 내려 단단히 쥐고는 스르렁, 어둠 속 자줏빛을 향해 겨누었다. _강성봉,〈진홍: 박수 외전〉

진호는 혼란스러웠다. 잘못 본 건가 싶어 다시 고개를 돌렸는데 확실히 웃고 있었다. 그것도 재밌다는 듯이 활짝. 홈런 맞은 게 재밌어? 역전당한 게 재밌어? 진호는 어처구니없어하며 1루 베이스를 밟았다. 투수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여자라서 승리욕이 없나?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웃을 수 있지? _김유원,〈힌트〉

남자 강사는 소수여서 눈에 띄고 입방아에 오르기 쉽다고 일러줄 걸 그랬나. 그러니 복장부터 말과 행동을 다 조심해야 한다고. 여자 강사들이 청바지 입고 다닐 때 남자 강사들이 정장만 입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고. 편한 옷을 입고 편하게 말하고 행동하기 시작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문제가 될 수 있다고. _서수진,〈정말 괜찮으세요?〉

어느 날은 남편이 숨을 식식 몰아쉬며 신문을 쥐고 달려옵데다. 피양에 히로인이 났다, 아조 대단한 인물이 났다구 하며요. 기래 신문을 보니 ‘강주룡’이라는 이름 석 자가 꽝꽝 찍혀 있지 않갔어요. 강주룡이라는 여장부가 을밀대 지붕 우에 올라 평원고무공장 공장주의 횡포를 목청껏 외쳤다구요. _박서련,〈옥이〉

생각해보면 다 그런 식이었다. 대야의 물을 들여다본 것도, 분신사바를 하며 끈질기게 질문한 것도, 그냥 한번 해본 것이 아니었다. 나는 믿었다. 그래, 미래를 볼 수 있으리라고. 죽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으리라고. _강화길,〈종이탈〉

병원에서 간호사가 하라는 대로 어쩔 수 없이 젖을 물리던 순간 미구는 이 일만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포유동물로서 기능하고 있는 자신을 부정할 도리가 없어서 그랬지만 혹시라도 이러다 모성이라는 게 생겨버리면 어쩌나 하는 공포가 있었다. _한은형, 〈빵과 우유〉

영수는 벤치의 등받이 위로 섬처럼 떠 있는 두 개의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지금보다 훨씬 긴밀했던 때를, 의존적이고 밀접했던 때를 떠올렸다. 불필요하거나 사소한 말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주말 계획을 같이 짜고, 항상 손을 맞잡은 채 길을 걷고, 저녁 메뉴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금화처럼 귀한 것들이 자갈처럼 흔했던 때를. _강태식,〈모든 고릴라에게〉


아치를 향해 걸으며 나는 기묘한 생각을 했다. 사실은 그녀가 5년 전에 서강대교에서 떨어져 자살에 성공했고, 지금 내 옆에 있는 존재는 귀신이라는 생각이었다. 잠시 뒤에는 그 생각이 더욱 발전했다. 나 역시 한강 다리에서 떨어져 죽었으며, 자기가 죽은 사람인 줄 모르는 귀신이라는 망상이었다. _장강명,〈서강대교를 걷다〉

X를 죽이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매번 가볍게 제압당했다. 그리고 죽을 만큼 맞았다. 사건 관련 기사를 읽으며 나의 패착을 깨달았다. 나는 살고 싶어서 X를 죽이려고 했다. 그래서 실패한 것이다. 여자는 나와 다른 것을 원했음이 분명했다. 여자가 원한 것을 알아야 했다. _최진영,〈무명〉

과연 저 아이를 본 적이 있었을까. 처음 본 모습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저 아이를 외계인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마도 처음 봤든, 언젠가 계속 보았든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이 치솟았기 때문이 아닌가. _주원규,〈외계인〉

고해성사를 다시 써야겠다. 볼펜을 들고 적어야 하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손이 부들부들 떨릴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짓을 당할 만큼 잘못한 게 없다. 역시, 반성문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최소한 자기가 무얼 잘못했는지 아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이다. _서진,〈웰컴 투 더 로스트앤드파운드〉

나는 더 들어가지 못하고 주춤 물러났다. 좀 더 지켜보기로 하고 문을 닫았다. 신고하라, 마라는 말도 없이 아버지는 나가버렸다. 텔레비전을 틀었다. 사람들이 여전히 말레이곰을 수색 중이었다. _조영아,〈말레이곰이 우리 집에 왔다〉

그날 나는 밤새 뒤척였다. 표범을 동물원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 말씀처럼 언제까지 집에서 기를 수도 없었다. 내게는 좋은 친구였고, 강아지처럼 구는 녀석이지만 동네 사람들에게는 맹수인 것이다. _조두진,〈표범〉

내 몸은 마치 감옥에 갇힌 것처럼 꿈쩍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뭘까? 나는 광물일까? 어쩌면 그것에 가까울지 모른다. 내 몸에는 생물이라고 여길 수 있는 근거가 남아 있지 않다. _권리,〈어나니〉

서로 욕하고 탓하고 때리지 않는 식구들, 순하게 웃는 얼굴로 밥 먹는 사람들. 두려울 때 함께 걸을 수 있는 가족들. 세상에는 흔한 일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매일매일 새로운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_심윤경,〈너를 응원해〉

찬미는 학부 때 영문학과에서 문화인류학과로 전과하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지속하면서 여자의 정절에 대한 가부장제의 오랜 병적 집착을 신의 뜻으로 포장한 제의 따위를 진저리 나도록 보아왔다. 그런 와중에도 찬미가 궁금했던 것은 불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마저 이기는 격정이었다. _박정애,〈불의 말〉

마지막엔 나만 남았다. 조금 전, 세월 잘 갔다고, 나이 든 것을 옹호하는 풍으로 말했지만, 딱 한 번만, 딱 한 시간만이라도 그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공장 시멘트 바닥이나 항도 길바닥에서 퍼질러 앉아 막걸리 마시며 노래 부르던 그 시절로. _한창훈,〈홍합, 이시죠?〉

엄마만이 유일한 하늘인 어린 딸에게, 반항의 특권을 가진 사춘기 소녀에게, 공부하느라 힘든 대학생에게 넌 나의 유일한 말동무이자 친구라며 온갖 말, 말, 말들을 쏟아놓았다. 물론 말하고 속으로 후회한 적은 있었지만 내 딸이니까, 내 딸만은 날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네가 없었으면 난 이미 죽었을 거야, 라는 말도 서슴지 않으면서. _김연,〈길 위의 에트랑제〉

 

출처:본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