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6년 추천도서(26.1-)/2026-06

6월의 추천도서 (4866) 권력과 복종

 

 

 

1. 책소개

 

★ 전한길의 ‘평화’를 위해
★ 누가 보수를 학살하는가?
★ 김건희는 ‘스캔들의 여왕’
★ 국민의힘을 망친 ‘인간적 도리’
★ 이준석의 정치는 ‘치킨 게임 정치’
★ 홍준표의 ‘한동훈 비판’은 정당한가?
★ 장동혁은 ‘윤 어게인 공약’을 지켜라
★ 도대체 특별감찰관은 어디로 갔을까?
★ 한동훈을 향한 지긋지긋한 ‘배신 타령’
★ ‘진영주의 내로남불’이 민주당의 DNA인가?

윤석열은 12·3 계엄을 선포해 역사의 시곗바늘을 44년 전으로 되돌리는 시대착오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왜 비상계엄이라는 미친 짓을 저질렀을까? 그는 김건희를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모셔놓고 김건희가 위험한 ‘대통령 놀이’를 하도록 보호해주었다. 그에게는 국정 운영보다 김건희의 심기 보호가 우선이었다. 결국 그의 병적인 ‘김건희 숭배’는 자멸과 자폭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탄 셈이었다. 국민의힘은 ‘권력을 태양처럼 숭배하는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다. 이 ‘윤 어게인 세력’은 성찰과 반성은 없을뿐더러 오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윤석열에게 복종하고 있다. 윤석열이 비상계엄 선포로 보수를 죽였고, ‘윤 어게인’을 부추기는 행태를 보이며 보수를 확인 사살했는데도 말이다. 윤석열은 ‘권력의 패망 공식’을 너무나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마거릿 헤퍼넌은 “권력은 타락한다. 그러나 그 타락은 권력자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다”고 말했다.


한국은 오랜 세월 권력을 태양처럼 숭배한 사회였다. 여전히 권력자에게 아첨하는 체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또 사적 의리를 앞세우는 ‘부족주의 정서’에 감염되어 있다. 부족주의는 부정부패와 ‘정치의 이권화’를 초래한다. 윤석열이 파멸의 길로 가고 있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와 지지자들은 그를 무조건 숭배했다. 정의를 적에 대한 증오와 혐오와 맞바꾼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기 진영 내부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수가 지지하는 우두머리는 적과의 싸움을 위해 신성시되어야 하며, 우두머리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내부 총질’로 간주된다. 우리는 언제까지 권력을 맹종할 것인가? ‘제왕적 대통령’을 비롯한 ‘제왕적 우두머리’의 저주를 넘어서야 한다. 이제 정의롭지 못한 ‘복종’과 ‘순응’을 강요하는 오랜 습속에서 탈출해야 한다.


『권력과 복종』은 그 어떤 진영 논리도 거부하고 비평의 단독자로 활동해온 강준만의 통렬한 정치 비평서다. 강준만은 “국민의힘이 잘되기를 간절히 바란 이유는 국민의힘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나는 민주당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한국 정치가 잘되기를 바랄 뿐이다”라며 좌우 진영을 넘나드는 날카로운 비평을 통해 한국 정치의 복원을 주창해왔다. 윤석열의 12ㆍ3 계엄도 결국은 ‘지도자 숭배’에서 비롯되었다. 여전히 정당의 우두머리와 그를 따르는 실세들에 의해 특정 계파나 개인을 죽이기 위한 공천 비리가 광범위하게 저질러지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우두머리를 배신하면 ‘춥고 배고픈’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집단 사기극’을 지켜보아야 하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진영 논리의 독선에 빠져 있을 것인가?

 

출처: 본문중에서

 

 

 

 

2. 저자

 

머리말 : ‘제왕적 우두머리’의 저주 · 5

제1장 김건희의 위험한 ‘대통령 놀이’
도대체 특별감찰관은 어디로 갔는가? · 19 | 윤석열·김건희, 왜 직언을 탄압하는가? · 24 | 윤석열의 ‘순애보’를 어찌할 것인가? · 30 | 스스로 실패하려고 애쓰는 대통령 · 37 | 윤석열이 사는 길 · 41 | 윤석열 부부가 모르는 것 한 가지 · 45 | 윤석열은 왜 자신을 비하했을까? · 49

제2장 윤석열은 왜 이렇게 둔감하고 오만한가?
바보야, 문제는 스타일이야 · 59 | “나라 팔아먹는 일본 1호 영업 사원!” · 66 | 윤석열을 죽이는 휴브리스 · 69 | 윤석열은 왜 협치를 하지 않을까? · 72 |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윤석열 · 77 | 왜 ‘윤석열 타도’를 외치는가? · 82 | 뚝심의 저주 · 88 | 사람에게 충성하는 나라 · 92 | 보수가 윤석열을 만든 게 아니다 · 96

제3장 윤석열은 왜 12·3 계엄을 선포했을까?
‘맹종과 아첨’, 이젠 정말 안녕 · 101 | 윤석열은 왜 그랬을까? · 107 | ‘경호 의전’ 보호막에 유폐된 윤석열 · 113 | 윤석열, 이젠 제발 포기하세요 · 119 | 윤석열, ‘보수’를 죽이고 ‘중도’마저 죽이는가? · 122 | 윤석열이 역사에서 살아남는 법 · 128 | 권력자의 ‘갑질’은 중범죄다 · 133

제4장 한동훈을 향한 지긋지긋한 ‘배신 타령’
한동훈은 왜 그랬을까? · 145 | 배신의 내로남불 · 151 | 눈치도 없는데 귀마저 닫으면 어떡하는가? · 157 | 윤석열은 국민의힘의 수준인가? · 164 | 한동훈을 위하여 · 169 | ‘배신 타령’, 이젠 역겹지 않는가? · 172 | 안에서 싸우지 말고 창업하라 · 179

제5장 누가 보수를 학살하는가?
누가 이재명 ‘만독불침’의 수호신인가? · 187 | 국민의힘을 망친 ‘인간적 도리’ · 191 | 국민의힘이 자멸하지 않는 법 · 197 | ‘윤 어게인’이라는 슬픈 노래 · 201 | 증오를 팔아 정치하는 사람들 · 206 | 장동혁, ‘윤 어게인’ 공약을 지켜라 · 212 | 전한길의 ‘평화’를 위해 · 218 | ‘대장동 수호천사’는 누구인가? · 222 | 윤석열·장동혁의 ‘보수 죽이기’ · 229 | 윤석열 망친 고성국, 이젠 장동혁인가? · 235 | 장동혁과 민주당의 ‘적대적 공생’ · 240

제6장 이준석의 편견과 홍준표의 증오
이준석은 왜 그런 오판을 했을까? · 247 | 정치는 쇼 비즈니스다 · 253 | 이준석의 기회비용 · 256 | 이준석의 ‘윤석열 죽이기’ · 259 | 홍준표의 ‘강 같은 평화’를 위해 · 266 | 홍준표, 증오는 판단력을 망가뜨린다 · 270 | 정의를 말살하는 ‘배신자 프레임’ · 276

제7장 우리는 왜 서로 증오하면서 싸우는가?
당파성이 타고난 운명이라도 되는가? · 283 | ‘너 죽어라’ 비판과 ‘너 잘돼라’ 비판 · 287 | “박용진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민주당”을 위해 · 291 | ‘제왕적 정당 대표’의 귀환인가? · 297 | 국민의힘엔 ‘악바리’ 근성이 없다 · 302 | 현직 의원 물갈이는 혁신인가? · 306 | 윤석열·이재명의 ‘적대적 공생’ · 311 | 아부의 저주 · 316 | 나는 하늘이 낸 사람이다 · 322 | 두 명의 ‘유튜브 대통령’ · 327 | ‘도덕적 우월감’은 독약이다 · 330

제8장 진영 논리와 선악 이분법에 중독된 사람들
유튜브가 집어삼킨 한국 정치 · 337 | 이재명 ‘굿캅’ 전략의 함정 · 344 | 탁현민을 내장한 이재명 · 349 | ‘전광석화’ 좋아하면 골병든다 · 352 | 이재명의 황당한 ‘권력 서열론’ · 357 | ‘이재명 정치’의 본질이 된 ‘사법 리스크 투쟁’ · 360 | ‘이재명 달변’의 명암 · 367

주 · 372

 

출처: 본문중에서

 

 

 

 

3. 목차

 

윤석열이 “나를 안 만났으면 편안하게 살 수 있었는데 나를 만나서 굉장히 고생했다”며 김건희를 향한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고 그걸 가끔 표현한다는 건 좋거니와 아름다운 일이다. 단, 사인(私人)일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그가 사인의 그런 정과 의리에만 충실하고자 했다면 아예 처음부터 대통령 출마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런 사적인 정과 의리를 앞세워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김건희를 ‘암묵적 금기어’로 만들어 성역시하던 관행을 계속 유지하겠다면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건가? 애주가인 윤석열이 술에 흔들릴 수 있듯이, 명품 애호가인 김건희가 명품에 흔들릴 수 있다. 측근은 두었다 무엇에 쓰는가? 김건희·윤석열은 “그러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옆에 두고 있는가? 그간 보여준 걸로 봐선 그들의 곁엔 그런 사람이 없다. 이게 바로 윤석열 정권의 본질일 수 있다.
- 제1장 「김건희의 위험한 ‘대통령 놀이’」(본문 28쪽)

“성격의 노예가 되지 말고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윤석열은 노예가 된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윤석열은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을 넘어서, 현 체제는 대통령의 성격이나 기질에 의해 국가와 국민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도 있는 가능성에 대해 무방비 상태라는 점이다. 이에 대한 성찰을 건너뛰면서 윤석열 개인에게 아무리 비난과 저주와 조롱을 퍼부어보아야 달라질 건 없다. 그 성찰은 역사적 임시변통에 의해 만들어진 한국형 대통령제라고 하는 제도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고, 권력에 대한 맹종과 아첨에 길들여진 습속이나 관행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다. 그간 이런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늘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수준에만 머물렀다. 바로 이런 안이함이나 게으름도 “윤석열은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 제3장 「윤석열은 왜 12ㆍ3 계엄을 선포했을까?」(본문 111~112쪽)

위기에 빠진 정권과 당을 구해야 하는 사명을 짊어진 비상대책위원장은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한 답은 갖고 있었어야 했다. 오랜 친분과 신뢰 관계를 밑천으로 자신이 간곡히 설득하거나 호소하면 윤석열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기대 정도는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동훈에겐 그게 없었다. 한동훈은 왜 그랬을까? 왜 아무런 자신감도 비전도 없는, 망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를 자신이 책임지고 해보겠다고 나섰느냐 이 말이다. 한동훈은 윤석열의 김건희에 대한 집착은 그 어떤 인간의 언어로도 설득할 수 없다는 걸 오랜 세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에 비상한 상황의 압력이 가져다줄 수 있는 변화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기대는 어긋났다. 김건희 문제에서 사실상 패배한 셈이었으니 다른 문제들은 볼 것도 없었다.
- 제4장 「한동훈을 향한 지긋지긋한 ‘배신 타령’」(본문 147쪽)

홍준표는 오직 정의를 향해 돌진해 얻은 ‘모래시계 검사’라는 영예가 부끄러운가? 그럴 리 없다. 나를 포함해, 배신자라는 낙인에도 정의를 위해 싸운 그의 용기와 활약에 경의를 표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당시 그의 정의로운 행동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검찰 간부들이 “얼마나 널 아꼈는데, 네가 우리를 이렇게 배신할 수 있느냐”며 ‘인간 말종’이라고 비난한다면 동의할 수 있겠는가?……특정 정치인을 지지했던 일반 유권자들이 그런 비난을 하는 건 얼마든지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누구 못지않게 배신과 관련된 아픔과 상처가 있는 홍준표가 어느 기자의 말처럼 ‘배신자 박멸 전도사’로 나서서 정의를 말살하는 ‘배신자 프레임’을 강화하고 유포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젊은이들과의 소통을 즐길 정도로 열려 있는 홍준표가 ‘배신자 프레임’을 오남용하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 제6장 「이준석의 편견과 홍준표의 증오」(본문 278쪽)

양쪽이 특정인의 사적 이익이나 일시적인 정파적 이익을 위해 벌이는 ‘서로 못하기 경쟁’은 ‘적대적 공생’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적대적 공생은 적대적 관계에 있는 쌍방이 사실상 서로 돕는 관계라는 뜻인데, 이는 의도하지 않은 구조적 결과일 뿐 양쪽 모두 그 어떤 의도를 갖고 그러는 건 아니다. 그래서 서로 증오하면서 원수처럼 싸우는 관계에서도 서로 도우면서 각자의 기득권을 지키거나 강화하는 역설이 가능해진다. 자폐적인 진영 논리와 선악 이분법에 중독된 사람들은 오직 상대편에 대해서만 비난을 퍼부을 뿐, 자기편의 문제에 대해선 눈을 감고 침묵한다. 이들을 선동하는 강성 정치군수업자들은 유튜브 등을 매개로 산업적 규모의 번영을 누리면서 이 파괴적인 질서를 지속시킨다. 그래서 싸우는 양쪽 모두 상대편에 대한 증오만 선동하면 무슨 짓을 저지르더라도 자기편의 안전이 보장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다.
- 제7장 「우리는 왜 서로 증오하면서 싸우는가?」(본문 313~314쪽)

2025년 9월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재명이 이른바 ‘권력 서열론’을 내세우면서 삼권분립에 정면 도전하고 나서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국회 내 다수당인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입법을 하는 건 사법부 권한 침해가 아니라 정당한 권한이라는 주장이다.……사실 내가 놀란 건 이 발언 내용과 더불어 확신과 자신감에 넘치는 그의 어법과 표정이었다. 순간 “윤석열의 죄가 정말 크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언젠가 “민주당 인사들은 윤석열이 저지른 죄악이 자신들을 백설처럼 순결하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한다는 신앙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수정해야겠다. 그들은 윤석열 덕분에 ‘백설 같은 순결’을 넘어 ‘전지전능한 지식·지혜’마저 갖게 되었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오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다.
- 제8장 「진영 논리와 선악 이분법에 중독된 사람들」(본문 357-358쪽)

 

출처: 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윤석열이 “나를 안 만났으면 편안하게 살 수 있었는데 나를 만나서 굉장히 고생했다”며 김건희를 향한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고 그걸 가끔 표현한다는 건 좋거니와 아름다운 일이다. 단, 사인(私人)일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그가 사인의 그런 정과 의리에만 충실하고자 했다면 아예 처음부터 대통령 출마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런 사적인 정과 의리를 앞세워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김건희를 ‘암묵적 금기어’로 만들어 성역시하던 관행을 계속 유지하겠다면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건가? 애주가인 윤석열이 술에 흔들릴 수 있듯이, 명품 애호가인 김건희가 명품에 흔들릴 수 있다. 측근은 두었다 무엇에 쓰는가? 김건희·윤석열은 “그러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옆에 두고 있는가? 그간 보여준 걸로 봐선 그들의 곁엔 그런 사람이 없다. 이게 바로 윤석열 정권의 본질일 수 있다.
- 제1장 「김건희의 위험한 ‘대통령 놀이’」(본문 28쪽)

“성격의 노예가 되지 말고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윤석열은 노예가 된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윤석열은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을 넘어서, 현 체제는 대통령의 성격이나 기질에 의해 국가와 국민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도 있는 가능성에 대해 무방비 상태라는 점이다. 이에 대한 성찰을 건너뛰면서 윤석열 개인에게 아무리 비난과 저주와 조롱을 퍼부어보아야 달라질 건 없다. 그 성찰은 역사적 임시변통에 의해 만들어진 한국형 대통령제라고 하는 제도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고, 권력에 대한 맹종과 아첨에 길들여진 습속이나 관행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다. 그간 이런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늘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수준에만 머물렀다. 바로 이런 안이함이나 게으름도 “윤석열은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 제3장 「윤석열은 왜 12ㆍ3 계엄을 선포했을까?」(본문 111~112쪽)

위기에 빠진 정권과 당을 구해야 하는 사명을 짊어진 비상대책위원장은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한 답은 갖고 있었어야 했다. 오랜 친분과 신뢰 관계를 밑천으로 자신이 간곡히 설득하거나 호소하면 윤석열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기대 정도는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동훈에겐 그게 없었다. 한동훈은 왜 그랬을까? 왜 아무런 자신감도 비전도 없는, 망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를 자신이 책임지고 해보겠다고 나섰느냐 이 말이다. 한동훈은 윤석열의 김건희에 대한 집착은 그 어떤 인간의 언어로도 설득할 수 없다는 걸 오랜 세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에 비상한 상황의 압력이 가져다줄 수 있는 변화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기대는 어긋났다. 김건희 문제에서 사실상 패배한 셈이었으니 다른 문제들은 볼 것도 없었다.
- 제4장 「한동훈을 향한 지긋지긋한 ‘배신 타령’」(본문 147쪽)

홍준표는 오직 정의를 향해 돌진해 얻은 ‘모래시계 검사’라는 영예가 부끄러운가? 그럴 리 없다. 나를 포함해, 배신자라는 낙인에도 정의를 위해 싸운 그의 용기와 활약에 경의를 표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당시 그의 정의로운 행동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검찰 간부들이 “얼마나 널 아꼈는데, 네가 우리를 이렇게 배신할 수 있느냐”며 ‘인간 말종’이라고 비난한다면 동의할 수 있겠는가?……특정 정치인을 지지했던 일반 유권자들이 그런 비난을 하는 건 얼마든지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누구 못지않게 배신과 관련된 아픔과 상처가 있는 홍준표가 어느 기자의 말처럼 ‘배신자 박멸 전도사’로 나서서 정의를 말살하는 ‘배신자 프레임’을 강화하고 유포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젊은이들과의 소통을 즐길 정도로 열려 있는 홍준표가 ‘배신자 프레임’을 오남용하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 제6장 「이준석의 편견과 홍준표의 증오」(본문 278쪽)

양쪽이 특정인의 사적 이익이나 일시적인 정파적 이익을 위해 벌이는 ‘서로 못하기 경쟁’은 ‘적대적 공생’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적대적 공생은 적대적 관계에 있는 쌍방이 사실상 서로 돕는 관계라는 뜻인데, 이는 의도하지 않은 구조적 결과일 뿐 양쪽 모두 그 어떤 의도를 갖고 그러는 건 아니다. 그래서 서로 증오하면서 원수처럼 싸우는 관계에서도 서로 도우면서 각자의 기득권을 지키거나 강화하는 역설이 가능해진다. 자폐적인 진영 논리와 선악 이분법에 중독된 사람들은 오직 상대편에 대해서만 비난을 퍼부을 뿐, 자기편의 문제에 대해선 눈을 감고 침묵한다. 이들을 선동하는 강성 정치군수업자들은 유튜브 등을 매개로 산업적 규모의 번영을 누리면서 이 파괴적인 질서를 지속시킨다. 그래서 싸우는 양쪽 모두 상대편에 대한 증오만 선동하면 무슨 짓을 저지르더라도 자기편의 안전이 보장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다.
- 제7장 「우리는 왜 서로 증오하면서 싸우는가?」(본문 313~314쪽)

2025년 9월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재명이 이른바 ‘권력 서열론’을 내세우면서 삼권분립에 정면 도전하고 나서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국회 내 다수당인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입법을 하는 건 사법부 권한 침해가 아니라 정당한 권한이라는 주장이다.……사실 내가 놀란 건 이 발언 내용과 더불어 확신과 자신감에 넘치는 그의 어법과 표정이었다. 순간 “윤석열의 죄가 정말 크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언젠가 “민주당 인사들은 윤석열이 저지른 죄악이 자신들을 백설처럼 순결하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한다는 신앙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수정해야겠다. 그들은 윤석열 덕분에 ‘백설 같은 순결’을 넘어 ‘전지전능한 지식·지혜’마저 갖게 되었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오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다.
- 제8장 「진영 논리와 선악 이분법에 중독된 사람들」(본문 357-358쪽)

 

출처: 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김건희의 위험한 ‘대통령 놀이’와 윤석열의 ‘12ㆍ3 계엄’ 선포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언행을 해왔던 김건희는 윤석열의 지지율을 낮추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김건희는 공사 구분 의식이 박약하고 공적 마인드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언행에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리숙하고 경솔했다. 김건희는 ‘스캔들의 여왕’이었다. 2022년 9월 김건희는 명품 백을 받았다. 대통령 부인이 크게 화를 내면서 명품 백을 돌려준 게 아니라 받았다는 사실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 ‘명품 백 수수 의혹’으로 2024년 4월 총선은 민주당의 대승, 국민의힘의 참패로 끝났다. 김건희는 불법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국정농단의 소지가 큰 일을 자주 저질렀다. 대통령 관저 공사 수주 의혹, 대통령 취임식 초청 인사 명단 의혹, 건진법사의 각종 이권 개입 의혹, 리투아니아 순방 당시 명품점 방문 등 ‘김건희 리스크’는 윤석열 정부의 몰락을 자초했다. 이 ‘김건희 리스크’를 방치한 것은 윤석열이다. 그러나 윤석열에게 김건희는 금기어에 가까웠고, 절대 성역이었다. 윤석열은 사실상 김건희의 ‘대통령 놀이’를 찬양 고무했다.
윤석열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주의하거나 둔감한 스타일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다. 윤석열의 불통과 오만과 독선과 어리석음은 그의 집권 내내 지속되었다. 윤석열은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성격과 체질상 협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는 협치와 소통을 거부하는 거칠고 고압적인 일방통행형 지도자라는 낙인을 스스로 뒤집어썼다. 아무 실속도 없는 강성 발언을 남발해 ‘극우’라는 말까지 들었고, 극우 유튜브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자신을 세상과 완전히 차단시켰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던 그는 대통령이 된 후 자신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폭군 행세를 했다. 이른바 ‘입틀막 경호’가 보여주었듯이, 윤석열은 권위주의적이었다. 그는 계엄 선포 9개월 전인 2024년 3월부터 계엄에 대해 언급했다고 한다. 결국 윤석열은 12·3 계엄을 선포해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고 말았다. 윤석열은 국민을 배신했고, 국익을 배신했고, 한국 민주주의를 배신했다.

누가 보수를 학살하는가?

윤석열의 12·3 계엄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국민의힘은 여전히 ‘윤 어게인’을 외쳐댄다. 윤석열이 ‘공정과 상식’을 유린하면서 당을 자기 부하나 되는 것처럼 함부로 다루는 독재자 행세를 했지만, 윤석열을 영웅이나 되는 것처럼 떠받드는 집단적 광란극이 일부 국민의힘 정치인들과 강성 지지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대통령은 무조건 숭배해야 할 성역인가? 그것은 노예근성이자 권력에 맹종하던 두뇌가 몸에 각인시킨 버릇이다. 전(前) 국민의힘 의원 김웅이 갈파했듯이, 윤석열은 ‘보수 학살’의 주범이기 때문에 보수진영에서는 저주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오죽하면 보수 논객 조갑제마저 “명백하고 현존하는 미치광이 역적 대통령을 제명도 할 줄 모르는 국힘당은 이적단체이다”라고 말했을까? 그렇게 국민의힘은 윤석열과 단절하지 않은 채 그를 추종하는 제2의 자폭을 저질렀다.
윤석열에게 충성했던 정치세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겠다며 탄핵 찬성자들을 ‘배신자’로, 한동훈을 배신 세력의 우두머리로 몰아 비난과 저주를 퍼붓는 광란극을 벌였다. 그들은 강성 지지자들의 증오를 자극하는 선동을 통해 면죄부를 얻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사실상 당권을 장악했다. 그들은 시대착오적인 부족주의 언어인 ‘배신자’로 그들을 몰아갔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탄핵소추안 가결에 협력한 책임을 물어 한동훈에게 집단적인 몰매를 가하면서 당대표직에서 내쫓고 그를 제명했다. 전한길은 “한동훈은 윤석열 대통령과 보수 우파를 배신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12·3 계엄 후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당선된 권성동은 “저는 정치보다 사람 관계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며, “인간적 도리가 정치의 본분”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에 정당 민주주의가 살아 있었다면 12·3 계엄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배신자 타령의 본질은 ‘지도자 숭배주의’다. 한국인 특유의 ‘광신적 지도자 숭배’와 인질로 잡힌 피해자들이 가해자인 인질범을 지지하고 옹호한다는 ‘스톡홀름 신드롬’이 결합한 비극이었다. ‘배신자 프레임’은 정의를 말살하는 위험한 선동이다. 국민의힘은 사적 인연과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전근대적인 부족주의 정당인가? 여전히 ‘윤 어게인’이라는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는 국민의힘은 유럽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순수 극우 정당으로 우뚝 서겠다는 것인가? 국민의힘에는 ‘강한 권력에 대한 맹종’이나 사적 의리를 앞세우는 부족주의적 문화나 체질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국민의힘에 다른 목소리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목소리 자체가 들리지 않은 것은 ‘권력을 태양처럼 숭배하는 사람들’의 집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진영주의 내로남불’이 민주당의 DNA인가?

2024년 2월 민주당의 ‘공천 참사’를 기억하는가? 일명 ‘박용진 탄압’ 사건은 ‘지도자 맹종’과 ‘지도자 숭배’ 체제의 치명적인 문제를 드러냈다.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지만, 민주당은 혁신이자 혁명이라고 자화자찬했다. 이재명은 2022년 8월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당 운영을 위해서 우리 박용진 후보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그런 당 확실하게 만들겠습니다”고 큰소리로 외쳤지만 말뿐이었다. 박용진은 재심을 신청하고 경선을 수용했지만,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이재명은 친명 대변인 한민수를 공천했다. 그러자 모든 공천의 기준은 오직 이재명에 대한 충성도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맹목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지도자와 강성 팬덤에 영합해 아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2024년 6월 민주당은 당대표 이재명 맞춤형 당헌·당규 개정을 시도했다. 이는 국회의장과 원내대표 선출 때 당원 투표 20퍼센트 반영, 당권·대권 분리 규정에 예외,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될 경우 당무 배제 규정 삭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던 한동훈은 “민주당은 아첨꾼만 살아남는 정글”이 되었다고 비판했고, 전(前) 국회 사무총장 유인태는 “국회의장, 원내대표를 뽑는데 당원 20퍼센트 반영한다니, 해괴망측한 소리”라고 비판했다. 2025년 11월 이재명 정권은 대장동 사건의 항소 포기 경위와 법리적 이유를 설명해달라는 검사들의 요구를 ‘집단 항명’으로 규정하면서 좌천·강등이라는 보복 조치를 취했다.
내로남불은 민주당 정권의 DNA인가? 민주당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원 판결이 나오면 판사들을 극찬하고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판사들을 욕하는 치졸한 작태를 반복해왔다. 이재명 정권은 ‘내란 청산 TF’를 동원해 공무원 75만 명을 조사하는 ‘마녀사냥 공포극’마저 연출했다. 이재명은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담당했던 변호사 12명을 국회·정부 요직에 중용하고, “측근 인사 없다”고 큰소리치더니 자신의 사법연수원 동기 7명을 요직에 기용하는 담대함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정치와 민주주의를 위해

12·3 계엄을 저지한 1등 공신은 누구인가? 보통 사람들이다. 시민들은 마지막 계엄령이 있었던 1980년, 즉 44년 전의 시민이 아니었고 군인들도 44년 전의 군인이 아니었다. 미국 미시간대학 정치학과 교수 댄 슬레이터(Dan Slater)는 한국 시민을 “전 세계 민주주의의 등대”라는 말로 칭송했다. 시민들은 44년간 축적된 민주주의 역사와 정서로 불법 계엄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민은 진보했지만 비상계엄 선포에 이르기까지 권력 집단 내부에서 벌어진 일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산증인이 윤석열과 ‘윤 어게인’을 외쳐댄 국민의힘 지도부와 지지자들이다. 민주당은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로 대변되는 자신들의 문제에서는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수준의 위험한 일만 골라서 했다. 특히 팬덤정치를 기반으로 한 민주당의 사당화(私黨化)가 한국 정당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있다.
한국의 정치는 상대를 죽여야만 사는 전쟁인 양 미쳐 돌아가고 있지만, 그것은 결코 정치가 아니다. 지금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누가 더 한심한지를 겨루는 못난 경쟁을 하고 있다. 민주당이 ‘진영주의 내로남불’로 정권을 잃었듯이, 국민의힘은 ‘권위주의 내로남불’로 정권을 잃었다. 한국은 원래 ‘정치 과잉’의 나라라고 하지만, 수년째 정쟁에 국력을 탕진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권력에 대한 ‘신뢰 위기’를 넘어 ‘정당성 위기’를 겪고 있다. 더구나 거대 양당의 증오·혐오 마케팅에 염증을 느끼는 유권자가 많아지고 있다. 여기에 선동가형 정치인들이 강성 지지자들의 힘을 이용한 ‘팬덤정치’를 통해 정당을 지배하고 더 나아가 한국의 정치를 극단적으로 몰아가고 있다.
한국과 같은 양당제 국가에서 정치 발전은 양당이 대등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어느 정당이든 혁신하고 성공해야 한다. 누가 더 큰 혁신과 성공을 했느냐는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어느 한 정당의 쇠락이나 타락은 다른 정당의 쇠락이나 타락을 불러온다. 이제 정치와 민생을 집어삼키는 증오·혐오 소용돌이의 악순환을 끝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바로 이재명 정권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특별감찰관을 임명하는 것이다. 이재명은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권력은 권력을 가진 본인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견제를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늘 독선과 오만에서 벗어나 권력을 두렵게 생각하는 겸손이 필요하다. 오만하면 죽는다. 대한민국 정치의 철칙이다.

 

출처: 권력과 복종 」이글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