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4년 추천도서(24.3~/2024-06

6월의 추천도서 (4120) 디 에센셜 김연수

 

 

1. 책소개

 

 

미발표 시부터 최신 장편까지,
단 한 권에 담은 김연수 작품세계의 에센스!

 

문학동네와 교보문고가 공동 기획하여 만드는 ‘디 에센셜’ 시리즈는 작가의 핵심 작품들을 큐레이팅하여 한 권으로 엮은 스페셜 에디션이다. 2022년 한강 작가를 시작으로 두번째로 소개하는 작가는 소설가 김연수이다. 오랜 시간 소설, 시, 산문 등 다양한 분야를 활발하게 넘나들며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강력한 아름다움이 된 김연수 작가, 그의 작품세계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들을 한 권에 담았다. 특히 책으로는 한 번도 묶인 적 없는 미발표 시 6편과 ‘도서관 산책’이라는 콘셉트로 쓰인 7편의 산문이 포함되어 있어 김연수 작가가 밟아나가는 문학의 가장 큰 둘레를 따라갈 수 있게 되었다. “책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 읽는 것도 독서이지만, 내용은 똑같은데 내 삶의 맥락이 달라지면서 전혀 새롭게 읽히는 것도 독서”(「내가 좋아하는 것들」, 513쪽)라는 말처럼, 지금까지 읽은 김연수와 아직 읽지 않은 김연수가 현재 우리의 삶과 포개지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에게 일어나는 소중한 변화일 것이다.

 

출처: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 김연수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이토록 평범한 미래』, 장편소설 『7번국도 Revisited』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원더보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일곱 해의 마지막』, 짧은 소설집 『너무나 많은 여름이』,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 『우리가 보낸 순간』 『지지 않는다는 말』 『소설가의 일』 『시절일기』 등이 있다.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허균문학작가상, 김만중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말

오랫동안 나는 ‘세계의 끝’이란 표현에 빠져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장편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을 쓰고 나서 알게 됐다. ‘세계의 끝’에 이르렀을 때, 우리에게는 지나온 길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조망에서 오는 이해가 저절로 생긴다. 이 이해는 그 끝을 새로운 시작으로 만든다.

 

출처:본문중에서

 

 

 

 

3. 목차

 

작가의 말 … 007

1부 중단편소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 015
달로 간 코미디언 … 075
깊은 밤, 기린의 말 … 137
난주의 바다 앞에서 … 171

2부 장편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 … 201
작품 후기│이후의 삶 … 441

3부 시
강화에 대하여 … 449
그 언덕을 나는 기억한다 … 456
아름답다고 말하며 우리는 아름답게 … 458
겨울 못淵 안의 잉어 … 460
쏟아져내리는 십이월 … 461
졸업생 … 462
정지용 전집을 읽는 시간 … 464

4부 산문 어떤 도서관도 내게는 작지 않다
숲과 더불어, 거기 오래 머물길 … 471
언젠가 나도 꿈꾼 적이 있는, 해피엔딩 … 477
진주를 좋아한다 … 483
생겨난 마음이니 곧 부서질 테지만 … 489
실패한 이들이 얻게 되는 것, 다정함 … 495
몰랐기 때문에 받는 선물 … 501
내가 좋아하는 것들 … 508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더이상 쓸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써나갈 때 그는 가닿을 수 있는 마지막 지점에 이르렀다. 그 지점에서 그의 문장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꿈은, 문장이 끊어진 자리에서 시작했다.(「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23쪽)

느닷없이 터져나온 눈물은 마음을 한결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울음을 터뜨리기 전까지만 해도 일어난 일을 부인하던 마음이 울음을 계기로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총동원해. 그 문장을 통해 그는 세상에는 아무리 모든 것을 총동원해도 이뤄질 수 없는 꿈이 있다는 걸 납득했다. 눈물이 흐르고, 그다음에 우울이 지나갔으며,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슬픔을 납득했다. 그런 일을 겪고도 자신은 살아남았으므로 또 뭔가를 배워야만 한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히면서도 위로했다. 그렇게 해서 잠이 오지 않는 밤마다 그는 집에 있는 책을 한 권씩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내용이나 주제가 무엇인지는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한때 자신도 지녔음직한, 소설에 나오는 순진한 기대나 막연한 소망의 문장들을 하나하나 버리고 자신에게 닥친 슬픔을 배워가는 일이었다.(「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31~32쪽)

하지만 그가 결국 깨닫게 된 것은, 아무리 해도, 그러니까 자신의 기억을 아무리 ‘총동원해도’ 문장으로 남길 수 없는 일들이 삶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37쪽)

별다른 이유 없이 사랑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이 세상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할 일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는데, 막상 별다른 이유 없이 헤어지고 나니 왜 지구는 자전 따위를 해서 밤이라는 걸 만들어내 나를 뜬눈으로 누워 있게 만드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달로 간 코미디언」, 85쪽)

얼마 전에 녹음한 책에 보니까 아프리카에서는 노인이 한 명 죽을 때마다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썼습디다. 그게 참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책을 읽을 수 없게 됐으니까 내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처럼 눈이 안 보이게 되면 읽을 수 있는 책이 한정돼 있거든요. 소설가는 한 번도 만나본 일이 없으니까 소설가에 대한 책은 아직 읽어본 일이 없는 셈입니다.(「달로 간 코미디언」, 114쪽)

여러 개 중 하나의 희망이라면 이뤄져도 그만, 안 이뤄져도 그만이겠지만, 거기 단 하나의 희망만 남는다면 그건 돌멩이처럼 구체적인 것이 되리라.(「깊은 밤, 기린의 말」, 146쪽)

인내심이란 뭔가 이뤄질 때까지 참아내는 게 아니라 완전히 포기하는 일을 뜻했다. 견디는 게 아니라 패배하는 일. 엄마가 알아낸 인내심의 진정한 뜻이 그게 맞다면, 그 일 년이 지난 뒤부터 엄마는 진짜 인내하게 됐다.(「깊은 밤, 기린의 말」, 150쪽)

그간 그가 읽은 시와 소설들은,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저도 모르게 쓰기 시작한 글들은 모두 그런 노력의 결과물들이었다. 아무런 의미가 없어 무자비할 수밖에 없는 자연에 맞서기 위해 상징을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정현이 평생 몰두해온 일이었다.(「난주의 바다 앞에서」, 178~179쪽)

몇 년 뒤 전쟁이 벌어져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이거니와 친구들까지 전선으로 나간 뒤에야 벨라는 그 시절에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새삼 알 수 있었다. 그런 회한과 슬픔이 그녀를 글쓰기로 이끌었다. 그렇게 그 아름다운 시절의 기억이 몇 줄의 문장으로 남게 됐다.(『일곱 해의 마지막』, 222쪽)

기행을 매혹시킨 불행이란 흥성하고 눈부셨던 시절, 그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의 결과물이었다. 다시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랑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불행해지는 것쯤이야 두렵지 않아서.(『일곱 해의 마지막』, 228쪽)

당신 안에서 조선어 단어들이 죽어가고 있다면, 그 죽음에 대해 당신도 책임감을 느껴야만 해요. 날마다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아침저녁으로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러지 않으면 제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매일매일 죽어가는 단어들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게 시인의 일이에요. 매일매일 세수를 하듯이, 꼬박꼬박.(『일곱 해의 마지막』, 363쪽)

그때 세상은 아름다운 것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따뜻한 것들로, 좋아하는 것들로, 다정한 것들로. 이를테면 잘 길들여진 돼지처럼 순하고, 남국의 산록같이 보드라운 것들로. 그때는 세상 모든 것이 두 겹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사랑이 있다면 그 뒷면에는 미움이 있고 즐거움과 괴로움은 서로 붙은 한몸이라는 사실을 아직 모를 때였다.(『일곱 해의 마지막』, 383쪽)

천불은 저절로 생겨나 순식간에 숲 전체를 활활 태우며 나무들을 서 있는 숯으로 만든다고 했다. 그 불을 보고 두메의 화전민들은 생을 향한 어떤 뜨거움을, 어떤 느꺼움을 느낀다고 했다. 불탄 그 자리에서 새로운 살길이 열리는 것이기에.(『일곱 해의 마지막』, 438쪽)

물결이 물러나면 밀려온 경계가 서서히 지워지고 그 위로 새로운 물결이 밀려왔다. 매번 다른 파도였고, 새로운 모양의 경계가 만들어졌다. 매일 아침 생겼다가 저녁이면 부서지는 어떤 마음들처럼. 그때의 나에게, 혹은 소설 속 할머니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게 완벽한 삶이라고. 완벽한 인생이란 완벽하지 못한 것들, 못난 것들, 부서진 것들까지도 모두 아우르는 삶이라고.
어떤 마음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생겨난 마음이 부서질 때 삶이 온전해진다는 것은 알 것 같았다.(「생겨난 마음이니 곧 부서질 테지만」, 493쪽)

이제 나는 평화롭고 안온한 삶을 원하게 됐는데, 그 삶은 나와 타인, 혹은 나와 세계 그 사이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 사이에서 산다는 것은 언제라도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 일이다. 어떤 맥락 속에 있느냐에 따라 나는 매 순간 달라진다. 사이에 있을 때 나는 ‘지인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무해한 대화를 나누는 나’ ‘도서관에서 빌려온 흥미로운 책을 읽는 나’ ‘낯선 이의 플레이 리스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나’ 등등으로 계속 변해간다.
‘지금까지의 나’가 항상 어떤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관념 속의 나였다면, ‘지금부터의 나’는 매 순간 바뀌는 관계 속의 나가 되기를. 이 말은 이런 뜻이다. 혼자 힘만으로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없다. 새로운 인생은 세계와, 또 타인과 새롭게 관계를 맺을 때 시작된다. 어떤 관계를 원하느냐는 내게 달린 문제다.(「내가 좋아하는 것들」, 509쪽)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 중단편소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달로 간 코미디언」
「깊은 밤, 기린의 말」 「난주의 바다 앞에서」


첫 소설집 『스무 살』(2000)부터 최근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2022)까지 여섯 권의 소설집에 묶인 55편의 중단편 가운데 김연수 작가가 직접 꼽은 4편의 중단편을 담았다. “지금까지 펴낸 여섯 권의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설명처럼 4편의 소설은 김연수의 작품세계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문학평론가와 문학 전문 기자, 서점 MD 등을 대상으로 ‘21세기 최고의 중단편소설’을 묻는 설문에서 1위를 차지한 작품으로, 연인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설산에 오른 한 남자를 통해 ‘사랑의 모든 국면’을 경험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한 소설이 좋은 소설이기 위해 갖춰야 할 실존의 모험, 의미의 모험, 글쓰기의 모험이라는 3차원적 모험 구성의 방식에서도 뛰어난 솜씨를 드러내 보인다”는 평과 함께 제7회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달로 간 코미디언」에서 공들여 묘사하는 것 또한 빈틈으로 남은 누군가의 삶이다. 한때 인기를 끄는 코미디언이었던 아버지가 가족에게 가장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사라진 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의 삶을 재구성하게 된 딸의 목소리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헤어진 남자친구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말해주는 건 이야기가 아니라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그런 미세한 결 같은 것”(104쪽)이라고 생각한다는 소설 속 표현을 빌리자면, 누군가의 삶은 그 사람의 직접적인 진술이 아니라 목소리가 끊어지고 멈추는 자리에서, 새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의 침묵 속에서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깊은 밤, 기린의 말」에서 침묵은 인물이 가진 절대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소란스러움이 물러난 어두운 거리를 비추며 시작하는 이 작품은 ‘내성적인 쌍둥이 자매와 말 못하는 자폐아’를 통해 캄캄하고 깊은 좌절 위에 어떻게 ‘돌멩이처럼 단단한 희망’이 생겨날 수 있는지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난주의 바다 앞에서」는 30년 만에 재회한 두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면서, 그보다 더 오래전에 살았던 옛 사람의 이야기를 불러오면서, 인생으로부터 KO를 당해 주저앉게 되었을 때 그 넘어짐 다음에 뜻밖에 우리를 향해 불어오는 ‘두번째 바람’에 대해 절실하고 설득력 있는 어조로 말해준다.

나는 당신들이 부러워. 당신들은 사랑의 모든 국면을 다 경험했어. 심지어 죽음까지.
_「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48쪽

나는 어느 날 사막에서 실종된 한 남자의 고독을, 그 남자를 이해하기 위해 사막을 향해 달려가는 한 여자의 욕망을, 그리고 그 남자와 그 여자가 보게 될 사막의 빛과 어둠, 열기와 서늘함, 고독과 슬픔을 들었다.
_「달로 간 코미디언」, 134쪽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우리 머리 위에는 거대한 귀 같은 게 있을 거야. 그래서 아무리 하찮고 사소한 말이라도 우리가 하는 말들을 그 귀는 다 들어줄 거야. 그렇다고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맺어주거나 내 안에 가득한 슬픔을 없애준다는 뜻은 아니니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그저 크고 크기만 한 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귀가 있어 깊은 밤 우리가 저마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들은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은 거야.
_「깊은 밤, 기린의 말」, 154~155쪽

버티고 버티다가 넘어지긴 다 마찬가지야. 근데 넘어진다고 끝이 아니야. 그다음이 있어. 너도 KO를 당해 링 바닥에 누워 있어보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넘어져 있으면 조금 전이랑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져. 세상이 뒤로 쑥 물러나면서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 나한테로.
_「난주의 바다 앞에서」, 194~195쪽

◎ 장편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
장편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2020)은 청춘, 사랑, 역사, 개인이라는 그간의 김연수 소설의 핵심 키워드를 모두 아우르는 작품으로, 한국전쟁 이후 급격히 변한 세상 앞에 선 시인 ‘기행’의 삶을 그려낸다. 1930~40년대에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다가 전쟁 후 북에서 당의 이념에 맞는 시를 쓰라는 요구를 받으며 러시아문학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는 모습에서 기행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시인 ‘백석’을 모델로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행은 원하는 대로 시를 쓸 수 없는 상황, “희망과 꿈 없이 살아가는 법”(260쪽)을 새롭게 배워야만 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시를 붙들려 하지만 번번이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시를 향한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더라도, 개인을 내리누르는 현실의 무게가 압도적이라면 그 마음은 끝내 좌절되고야 마는 걸까. 속수무책의 현실 앞에서 작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도저히 버려지지 않는 마음,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일곱 해의 마지막』은 이러한 물음을 안고 한 명의 시민이자 작가로서 어두운 한 시절을 통과한 끝에 김연수가 내놓은 긴 대답과도 같은 소설이다.

그래도 꿈이 있어 우리의 혹독한 인생은 간신히 버틸 만하지. 이따금 자작나무 사이를 거닐며 내 소박한 꿈들을 생각해. 입김을 불면 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작고 가볍고 하얀 꿈들이지.
_『일곱 해의 마지막』, 422쪽

◎ 시 「강화에 대하여」 외 6편
김연수 작가가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데뷔작 「강화에 대하여」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그의 시를 접하기 어려웠던 독자들에게 이 6편의 시는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6편의 시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쓰인 작품들로, 한 번도 본 적 없던 이십대 시인으로서의 김연수를 만날 수 있게 해준다.

◎ 산문 「숲과 더불어, 거기 오래 머물길」 외 6편
팬데믹 기간 동안 김연수 작가가 어느 때보다 자주 향한 곳은 도서관이다. 경주에 위치한 시립도서관부터 청주에 있는 열린도서관까지, 작가의 천천한 걸음을 따라 산책하듯 걸어가면 전국 곳곳에 자리한 다양한 도서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고요함 속에서 열성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과 서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을 통해 사유를 넓혀가는 작가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도서관이 필요한 까닭을,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자연스레 깨닫게 한다.

나무들 사이에 서서 그들과 함께 어두워지며 올려다보는 저녁의 빛은 세상에 지친 마음을 교정해준다. 모든 것이 다 끝난 뒤에도 우리에게 남은 게 있음을 지켜보는 일. 이것이 저녁 산책의 기쁨이다. 애당초 기쁘게 살고 싶다, 는 아니었다. 아무리 번거롭고 힘들더라도, 또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심지어 오해를 한다 해도 기쁘게 죽을 수 있도록 살고 싶다, 는 마음이 거기 있었다.
_「언젠가 나도 꿈꾼 적이 있는, 해피엔딩」, 478쪽

※ 『디 에센셜 김연수』는 출간 후 1년간 교보문고에서 단독 판매됩니다.

 

출처: 디 에센셜 김연수출판사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