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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추천 도서(20.3~21.2)

5월의 추천도서(2636) 쿠데타, 대재앙, 정보권력

1. 책소개

 

현대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질 것인가
중년의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의 미래를 예측하다

현재 민주주의는 세계 곳곳에서 위기에 처한 것처럼 보인다. 2017년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고, 2016년 영국은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 경제 공동체에서 이탈하기로 결정했다. 한때 국가 부도 사태까지 몰렸던 그리스는 여전히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으며, 터키에서는 전 총리이자 현 대통령 레제프 에르도안이 개헌을 통해 18년째 장기 집권을 하고 있다. 과연 이 모든 징후가 민주주의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들일까? 영국 정치학계의 석학 데이비드 런시먼은 현대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협을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21세기 민주주의가 과거처럼 노골적인 국가 전복의 방식으로 무너지리라는 고정관념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그는 민주주의가 이미 뿌리내리고 성숙한 선진 민주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실패할 경우 그 실패의 모습은 과거 우리가 상상하던 모습과 전혀 다른 방식이 되리라 경고한다.

데이비드 런시먼은 현대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를 ‘중년의 위기’로 비유하면서 민주주의의 종말을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상상한다. 첫 번째는 민주주의의 실패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쿠데타다. 민주주의가 견고하게 자리 잡은 선진 민주국가에서 쿠데타는 역사책에서나 등장하는 일처럼 느껴지지만, 현대에도 쿠데타의 위협은 그 형식을 달리할 뿐 여전히 존재한다. 두 번째는 기후 변화, 핵전쟁 혹은 네트워크의 붕괴와 같은 대재앙이다. 민주주의는 그 체제가 기초하고 있는 사회가 붕괴해도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년 들어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코로나19의 판데믹은 보건 분야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미 서구권에서는 외출금지령이 발령되는 등 비상 체제에 돌입했으며, 이러한 사태가 지속될 경우 사회 전체가 무너져 민주주의도 함께 실패할 수 있다. 세 번째는 급격한 기술 발전이 불러오는 인간의 소외와 민주주의의 왜곡 가능성이다. 현대에는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 기술 기업들이 등장함에 따라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또 다른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의 대안을 생각해 본다.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제도가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릴지 모를 정도로 취약하다면 다른 방식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21세기식 실용주의적 독재체제부터 지식인에 의한 정치를 의미하는 에피스토크라시, 기술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대안의 출현 가능성까지 모든 측면을 검토한다.

 

출처:교보문고

 

2. 저자

 

저자 : 데이비드 런시먼

1967년 런던에서 태어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이다.
주요 저서로는 『자만의 덫에 빠진 민주주의』, 『정치적 위선Political Hypocrisy』, 『정치Politics』, 『대표Representation』 등이 있다.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정치 관련 글을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고, 저명한 학자들을 초대해서 정치 이슈에 관해 의견을 나누는 팟캐스트 〈토킹 폴리틱스〉를 진행하고 있다.

출처:교보문고

 

3. 목차

 

프롤로그 |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생각하다
서론 | 2017년 1월 20일

제1장 쿠데타의 위험은 현존하는가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전통적 방식
쿠데타의 시대는 끝났다
음모론은 왜 사라지지 않는가
21세기에도 민주주의가 작동할 것인가

제2장 민주주의는 대재앙을 막을 수 있는가
현대 민주주의에 드리운 재앙의 그림자
대재앙의 위기가 경시되다
민주주의는 실존적 위험을 제어할 수 없다
상호연결된 세계는 취약하다

제3장 기술의 발전이 더 나은 정치를 불러오는가
기계화되어 가는 민주주의
기계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네트워크 기술이 순수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다
인터넷이 파놉티콘을 만들다

제4장 더 나은 대안이 있을까
민주주의의 현실적 대안을 물색하다
실용주의적 독재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지식인에 의한 정치는 정의로운가
발전된 기술이 유토피아를 실현시킬 수 있는가

결론 | 민주주의는 이렇게 끝난다
에필로그 | 2053년 1월 20일

추천 문헌
감사의 글
미주
찾아보기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 쿠데타를 어떤 방식으로 분류하든, 모든 쿠데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민주주의가 확실하게 종식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쿠데타가 있는가 하면, 겉으로는 민주주의가 훼손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쿠데타가 있다. 국가를 전복하는 쿠데타는 전자에 해당한다. 하지만 공약성 쿠데타, 행정권 과용, 전략적 선거 조작은 후자다. 이런 쿠데타는 외견상 민주주의 형태를 유지한다. 선거에서의 승리는 이긴 자에게 권위를 부여하므로, 참여자들은 선거를 조작한다. 공약성 쿠데타와 행정권 과용은 민주적 제도들이 그대로 유지되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권력을 지닌 이들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을 때에만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낸시 버메오의 정의에 따르면 일부 쿠데타에서는 민주주의가 적이 되지 않는다. 쿠데타 공모자들은 민주주의의 파괴를 은폐하고, 민주주의를 자신들의 친구로 만든다. _p63

 

-- 오늘날 민주주의는 과거처럼 발전시킬 영역이 없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젊지 않다. 지금은 100년 전처럼 실현되지 않은 거대한 가능성의 시대에 존재했던 흥분이 없다. 선거권을 확대하기 위한 싸움은 거의 성 공했다. 정부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수준에 맞춰 광범위하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공공과 민간의 부채 규모는 커졌다. 세율은 더 높일 수 있지만(지난 100년간 세율은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국민들이 더 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국민들이 정착된 민주주의에 반발하는 지역은 한 때 최선을 다해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던 나라들이다. 국민들은 미숙해서 가 아니라 낡아서 반응이 없는 제도들에 화가 나 있다. _p100

 

-- 기후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이전 세대가 살충제에 느꼈던 공포와 같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위협은 좀 더 흔하고 광범위하며 불확실하다. 여기에는 필수 요소인 자극적인 면이 없다. 기후변화는 의심과 음모를 해소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강화해 왔다. 오늘날 상당히 복잡한 음모론은 기후변화와 관련된다. 이런 음모론은 종종 짓궂은 장난처럼 묘사된다. 추리 방식은 다음과 같다. 세계 정부를 세우고 싶은 비밀 엘리트 집단은 그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집단행동이 필요한 문제를 원한다. 기후변화는 그런 문제에 적합하다. 그러므로 틀림없이 엘리트 집단은 은밀히 문제를 날조해서 과학자들을 매수했을 것이다. 이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인 ‘누가 이익을 얻는가’에 대한 답이 된다. _p126

 

-- 민주주의는 실존적 위험이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먹고사는 문제의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다. 실제 선거 이슈는 세상의 종말이 아니었다. 지금도 아니다. 선거에서는 중요도와 상관없이 사람들을 대신해서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인들을 유권자가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주요 관건이다.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질문은 언제나 다음과 같다. 우리를 대신해서 의사결정하는 ‘이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안이 무엇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핵으로 인한 종말일 수도 있고, 물가일 수도 있다. _p146~147

 

-- 디지털 기술은 여러 비민주적 체제가 장악한 권력도 강화해 왔다. 독재자는 디지털 기술을 대단히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 기술은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결정적 무기가 되기는커녕 이들을 추적하는 도구가 되었다. 에티오피아나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의 반국가단체들은 자신들이 독재정권에 침투하는 것보다 독재정권이 자신들의 활동에 더 쉽게 침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이는 시간과 인력이라는 자원의 문제다.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정부조차도 뭐든 즉석에서 만들어 써야 하는 반국가단체보다는 시간과 인력이 더 많은 법이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은 독재를 무너뜨리는 기계가 아님이 입증되었다. 인터넷은 결국 권력의 또 다른 도구가 되었다. _p209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신호 하나, 은밀한 쿠데타
현대의 민주주의를 소리 없이 전복하는 쿠데타의 음모를 분석하다

흔히 민주주의의 실패라고 하면 쿠데타의 광경을 떠올리기 쉽다. 거리에 군인과 탱크가 늘어서 있고, TV에서는 정부의 대국민 선전이 흘러나오는 모습 말이다. 과거 한국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으며, 지금도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개발도상국에서는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서구 사회처럼 민주주의가 이미 오래전에 정착해 성숙한 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까?
데이비드 런시먼은 현대에는 정치적 폭력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실제로 현대 민주국가에서 과거 같은 국가 전복 쿠데타를 찾아보기는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쿠데타의 위협이 완전히 종식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런시먼은 민주주의가 정착한 선진 민주국가에서 쿠데타는 노골적인 국가 전복 형태가 아니라 보다 은밀한 방식으로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권력집단이 민주주의 제도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사실상 자신의 입맛에 맞게 조종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겉으로는 민주주의가 잘 굴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부 엘리트 집단에 의해 민의가 왜곡되어 민주주의가 사실상 파괴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저자는 이처럼 엘리트 집단이 대중에게서 민주주의를 빼앗았다는 생각이 포퓰리즘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를 대중에게 되돌려준다는 명목 하에 정치적 편집증을 유발하고, 그 결과 곳곳에서 음모론이 판을 치게 된다. 음모론의 황금기였던 20세기 초에는 민주적 개혁과 세계대전의 여파로 엘리트 집단과 대중이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여성의 참정권까지 보장하는 보통 선거가 정착되는 등 민주주의는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세계대전과 같은 대규모 폭력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고, 과거와 달리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정치적 영역도 훨씬 적다. 데이비드 런시먼은 만약 민주주의가 현대에 쿠데타로 무너진다면, 과거처럼 폭력적인 방식은 아닐 것이라고 추측한다.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불안정하게 표류하다 쇠퇴할 것이고, 결국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낼 때까지 계속해서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신호 둘, 통제할 수 없는 대재앙
기후변화, 핵전쟁, 네트워크 붕괴의 위협이 도사리는 미래를 상상하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실패를 단지 정치체제의 실패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우리 사회 전체가 무너져도 민주주의는 함께 파괴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가령 냉전 시대에 전 세계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핵전쟁의 위협이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른 기후변화, 생화학 테러나 살인 로봇의 등장이 민주주의를 끝장낼 수도 있다. 최근에는 사회 전반의 상호연결성이 극대화되어 어느 한 분야만 무너져도 연쇄적으로 전 시스템이 무너질 위험이 존재한다.
런시먼은 기후변화의 위기를 대표적인 예로 꼽는다. 20세기에 살충제의 남용을 경고했던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은 크나큰 파장을 일으켜, 실제로 정치권의 행동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현대에 가장 긴급한 문제인 기후변화 이슈를 앞두고 세계는 사분오열되고 있다. 런시먼은 이러한 현상의 이유를 재앙의 직접성에서 찾는다. 기후변화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지금 행동해야 하지만, 행동을 직접적으로 불러일으킬 직접적인 결과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다양한 주체들이 각자의 이익을 따라 행동하면서 끊임없이 음모론을 제기하고, 그 결과 현대의 정치는 더욱 극단적으로 분열된다.

기후변화와 같은 비극은 언젠가 실제로 발생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전 인류의 생존이 걸린 이런 거대한 위협 앞에서 민주주의는 하찮은 문제처럼 보인다. 당장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르는 순간에 정치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러나 데이비드 런시먼은 이런 ‘실존적 위협’이 닥쳤을 때 가장 두려운 부분은, 위협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생존투쟁에 몰려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투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인간의 실존을 위협하는 대재앙의 문제에서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1962년 소련과 미국을 핵전쟁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쿠바 미사일 위기를 무사히 넘긴 케네디 대통령은 그 직후에 열린 중간선거에서 보상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민주당 의석수를 잃었다. 이를 통해 런시먼은 대중이 민주주의를 실존적 위험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으며, 선거의 의제는 실존적 위험 같은 중대한 문제가 아니라 ‘대중이 특정 후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문제에 불과하다고 신랄하게 지적한다. 결국 민주주의는 실존적 위험과 공존하겠지만, 서로를 이해하거나 길들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신호 셋, 정보 기술의 독점
정보 기술을 관리하는 소수 엘리트가 민주주의를 왜곡하다

런시먼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마지막 요소로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정보 기술을 꼽는다. SF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려면 아직 멀었지만, 자연스레 우리의 삶에 간섭하는 반지능 기계가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계는 엄청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를 찾아주며, 사람들은 그 유용성에 매혹되어 지나치게 기계에 의존하고 있다.
런시먼은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결국 이러한 기술을 다룰 줄 아는 사람, 즉 기술관료들이 결정권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투표를 통해 선출되지 않은 인물이 기술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정치적 문제에 영향을 행사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글과 페이스북 등의 거대 기술 기업들은 이미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한편으로는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 기술 기업이 제공하는 소셜 네트워크 기술이 어쩌면 순수한 형태의 직접민주주의를 실현케 해줄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앙 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이나 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등이 바로 그러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급부상한 정치인이다. 인터넷 혁명이 일어난 초기에는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권력과 대중의 갈등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낙관론이 대세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런시먼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직접민주주의가 정당이라는 타협 기구를 제거함으로써 마녀사냥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또한 인터넷의 보급이 정보의 평등한 접근을 보장하지도 않는다며 정치인들이 국가기관을 이용해 국민들을 감시하여 권력을 강화하는 예를 보여 주기도 한다. 심지어 인터넷 기술은 대중의 교육 수준에 따라 그 기술에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런시먼은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 대한 낙관론과 비판을 모두 제시함으로써 멀지 않은 미래에 민주주의가 치명적인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민주주의가 끝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면
더 나은 대안은 있는가

저자는 현대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와 같은 위협을 상정하고 그 대안을 살펴본다. 만약 우리가 더 이상 소생 가망성이 없는 체제를 억지로 잡아 유지하고 있다면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데이비드 런시먼은 이미 시도되고 있거나 과거 저명한 학자들이 제안했던 민주주의의 대안들을 살펴본다.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시도되고 있는 실용주의적 독재체제, 150년 전 존 스튜어트 밀이 주장했던 지식인에 의한 정치, 그리고 미래에 우리를 해방시키는 기술의 출현이 바로 그것이다. 실용주의적 독재는 현재 개발도상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는 등 큰 성과를 가져온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체제가 민주주의를 왜곡한다고 비판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실용주의적 독재 노선을 취하고 있는 국가들, 즉 중국이나 러시아의 예를 볼 때 이러한 체제는 민주주의의 필수 가치인 자유주의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출처:아날로그(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