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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추천도서(26.1-)/2026-03

3월의 추천도서 (4769) 일곱 괴물이 사는 마음

 

 

 

1. 책소개

 

 

 

 

“냉소도, 미화도 없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누구도 쉽게 안도하지 못할 것이다.”

 

분노, 탐식, 색욕, 질투, 나태, 탐욕, 교만. 인간의 이 부정적인 감정들을 종교에서는 죄악의 근원으로 보고, 사회에서는 성숙하지 못한 태도로 취급한다. 이 책은 부정적 감정들이 극복해야 할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 진화해온 인간 기능의 한 형태일 수 있다고 말한다. 신경과 의사인 저자가 실제 임상 현장에서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교만’이 어떻게 자기 인식 회로의 손상에서 비롯될 수 있는지, ‘분노’가 왜 위협 감지 시스템의 과활성으로 폭주하는지, 어째서 ‘나태’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동기와 보상 회로의 붕괴일 수 있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어디까지가 ‘인격’이고 어디까지가 ‘미친 것’인지, ‘정상’과 ‘비정상’, ‘장애’와 ‘비장애’를 무 자르듯 완벽하게 잘라낼 수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출처: 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가이 레슈차이너 (Guy Leschziner)

 

옥스퍼드 매들린칼리지와 임페리얼칼리지 세인트메리병원에서 의학 교육을 받았고, 임페리얼칼리지 런던과 케임브리지 웰컴트러스트생어연구소에서 간질 유전학 및 약물 관리 분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반 의학 수련을 마친 뒤 가이스앤세인트토머스병원, 채링크로스병원, 퀸스퀘어 국립 신경학 및 신경외과병원에서 신경학 수련을 받았다. 이어 가이스앤세인트토머스병원과 퀸스퀘어에서 간질 및 수면 의학 펠로우십을 수료했다. 2010년 가이스앤세인트토머스병원에 컨설턴트로 합류한 이후 수면장애센터의 임상 책임자로 10년 이상 일했다. 현재 같은 병원의 신경과 및 수면장애센터를 비롯해 런던브리지병원, 크롬웰병원, 원웰벡에서 신경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고, 킹스칼리지 런던 정신의학·심리학·신경과학연구소에서 신경학 및 수면 의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잠이 고장 난 사람들》, 《감각의 거짓말》 등을 썼으며, BBC라디오4와 월드서비스에서 신경과학 시리즈 세 편의 대본을 쓰고 출연했다. 2019년 왕립의학협회로부터 엘리슨-클리프 메달을 수상했다.

 

출처: 본문중에서

 

 

 

 

3. 목차

 

추천의 글 인간을 다시 바라보는 성찰의 과정
들어가며 과학으로 헤쳐 나가는 죄악의 세계

분노 - 주체할 수 없는 내 안의 불
발작하는 사람은 폭력적일까 | 맞았기에 때리는가, 계획적으로 때리는가 | 환자에게 병을 준 의사 | 분노의 뇌과학 |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뇌 영역 | 공격성을 촉진시키는 호르몬 | 사이코 유전자 | 유전자에 깊이 새겨진 폭력 | 내 머릿속에 일어나는 끝없는 전투 | 뇌 속에 각인된 시한폭탄 | 그놈의 술, 술, 술! | 나에게 가장 가혹한 나 | 차가운 분노, 진화적 명령 | 사이코패스의 뇌 | 난발하는 화를 통제하는 법

탐식 - 게걸스럽게 음식물을 끌어당기는 혀
비만임에도 당뇨 위험에서 벗어난 동물 | 온종일 배고픈 뇌 | 왜 식탐을 자제하지 못하는가 | 허기 화학물질 탐색 | 인간의 체중에 관여하는 것들 | 흔한 유전자들이 주는 혜택 | 비만을 향한 여러 가지 가설 | 극단적인 식욕, 극단적인 대응 | 이 시대 진정한 유행병 | 미생물과 항생제를 둘러싼 오해와 환상 | 산모의 비만 유전자도 유전될까 | 도파민과 보상욕구 | 다이어트만 하면 초콜릿이 먹고 싶은 이유 | 음식 중독자와 마약 중독자의 상관관계 | 왜 사람과 회색곰은 다를까 | 세상에서 비만을 종결시킬 힌트

색욕 - 감춰지지 않는 음탕한 속내
불안해서 불안하다 | 강박적으로 생각하고 강박적으로 행동하기 | 왜 아무하고나 자면 안 되는가 | 여성과 남성의 다른 짝짓기 전략 | 하룻밤 만남의 진화적 이점 | 지속적인 관계의 진화적 혜택 | 여성의 아름다움과 임신의 가능성 | 한국에서 거래되는 동남아 여성들 | 딴 놈의 아이 키우지 않는 법 | 뇌 속의 부러진 제동 장치 | 성적 충동과 이마엽의 상관관계 | 뇌 손상으로 성욕도, 성격도 달라진 사람들 | 성별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 남성에서 여성으로, 다시 남성으로 | 트랜스젠더의 뇌 | 성적 선호와 뇌 | 파킨슨 병, 성욕과다증, 도파민 | 도파민과 섹스 중독 | 마음과 뇌의 구분

질투 - 남이 가진 것을 빼앗고 싶은 마음
네가 가진 것을 갖고 싶어 | 생존의 원동력 | 질투의 두 얼굴 | 정상인과 환자의 모호한 경계 | 나르시시스트도 질투를 느낄까 | 시샘이 낳은 망상 | 시샘하기 때문에 시샘하기 | 허상을 시샘하는 사람들 | 왜 그는 비극을 맞이하고, 그녀는 회복되었나 | 이 모든 것은 열등감 탓이다 | 황급히 찾아왔다가 황급히 사라진 병 | 생존과 경쟁의 기반

나태 - 가능성 앞에서도 움직이지 않는 두 발
종교에서 보는 나태, 의학으로 보는 나태 | 동기를 촉진시키는 요소, 보상 | 나태 정도를 담당하는 뇌 기관 | 나는 헌팅턴병이에요 | 끊임없이 춤추는 병 | 질병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니까 | 이마엽과 다른 뇌 영역들의 상호작용 |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유령과 함께 살기 | 나태에 빠진 이들이 피곤해하는 이유 | 초인적인 괴력의 비밀 |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피로의 관계 | 노력할 가치가 있을까 | 정신과 신체의 모호한 구분 선 |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

탐욕 - 간악한 계획을 꾸미는 욕심
사회의 가치를 반영하는 거울 | 욕심의 장점 | 돈이 많을수록 행복할까 | 정의를 버리고, 기만을 추구하고 | 저장 강박은 탐욕인가 | 삭제당한 위험 신호 | 탐욕은 병인가

교만 - 오만하고 자만하는 태도
치통이 불러온 이기심 | ‘요즘 애들’의 자기애 | 애정 결핍이 자존감에 미치는 영향 | 자긍심이 능력에 미치는 효과 | 정치인들의 오만 증후군 | 교만이라는 성격 |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 | 고장 난 믿음 평가 체계 | 피해망상을 겪는 사람, 과대망상을 겪는 사람 | 스테로이드가 불러온 망상 | 어디까지가 ‘인격’이고, 어디까지가 ‘미친 것’인가

자유 의지 - 그렇다면 인간은 뇌의 꼭두각시인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 자유 의지는 죽었다 | 너무 일찍 선고된 죽음 | 뇌가 시킨 것인가, 정신이 시킨 것인가 | ‘미친 사람’의 범위 | 자유 의지가 없다면 죄악은 어디에 물어야 하나 | 무궁한 스펙트럼 사이에 있는 세계 | 자유 의지 없는 범죄의 처벌 | 종교가 말하는 도덕적 틀

주석

 

출처: 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신학과 철학이 시대와 지리, 문화를 막론하고 죄악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이것이 매우 보편적인 생각과 행동이라는 사실을 반영한다. 이런 죄악은 우리 안에 아로새겨져 있다. 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우리 영혼의 본질에 틀어박혀 있다. 이러한 죄악들이 과거 인류의 역사에서부터 현대 사회의 조직 구조에 이르기까지 깊은 영향을 끼쳐왔다는 사실은, 그것들이 이원론적 특성을 지녔음을 시사한다. 즉 이 죄악들은 ‘혜택’도 줄 수 있다. 이 행동들이 오로지 해악만 끼친다면, 그것이 우리 존재라는 태피스트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 파괴적인 특성이 대대로 전해지고, 생명의 진화 과정 내내 존속했다면, 분명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_15쪽, 〈들어가며 ─ 과거를 만든 추진력이자 현재를 빚어낸 힘〉

분노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분노는 동기를 부여하고, 목표를 달성하도록 계속 노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 분노는 방해받거나, 부당하게 대우받거나, 기대한 보상을 얻지 못할 때, 상황이나 남의 행동이 내 목표 달성을 방해할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동시에 분노는 성취, 달성, 소유하려는 욕구의 원동력이기에, 때로 공격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다수는 때때로 화를 내더라도 폭력으로까지 치닫지는 않는다. 분노는 ‘감정’이지만, 공격성은 해를 끼치려는, 남에게 피해를 입히려는 ‘행동’이다. 그리고 분노가 자동적으로 폭력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화를 잘 내는 성격은 공격성이 높고, 가정 내 폭력을 일으키거나 사회 활동과 대인 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_30~31쪽, 〈분노 ─ 주체할 수 없는 내 안의 불〉

어떤 유전자 변이체가 널리 퍼져 있다면, 그 이유가 분명 있지 않을까? 이 변이체가 생존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세대를 지날수록 더 희귀해졌어야 한다. (…) 이런 흔한 변이체도 분명 정자나 난자가 만들어질 때 DNA 복제 오류, 즉 돌연변이로 생겨났을 것이다. 이 돌연변이가 심각한 질병을 일으킬 정도로 유전자를 훼손한다면, 해당 돌연변이를 가진 사람이나 그 자녀는 질병이나 난임 등의 이유로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로 전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렙틴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사람들처럼, 이렇게 심각하게 기능을 훼손하는 돌연변이도 드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유전자 서열 변경이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낮고 사실상 생존에 유리하다면, 이 돌연변이는 자손에게 유전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시간이 지날수록 흔한 변이체가 될 것이다. 따라서 생존에 유리하도록 돕는 유전자 변이체는 우연히 출연한 이후 인류 진화 과정에서 불어난 것이다.
_101~102쪽, 〈탐식 ─ 게걸스럽게 음식을 끌어당기는 혀〉

인간의 심리가 진화를 통해 형성되었다면, 우리의 뇌는 그 심리 과정을 지원하도록 발달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신경생물학은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라고, 아무하고나 짝을 지으려는 충동을 억누르라고 부추긴다. 합리화를 담당하는, 원초적으로 행동하려는 욕구를 진압하는 뇌 영역은 ‘색욕’의 고삐를 쥔다. 그리고 그 신경학적 또는 심리학적 체계가 잘못될 때 색욕이 마구 날뛴다.
_166~167쪽, 〈색욕 ─ 감춰지지 않는 음탕한 속내〉

이런 장애가 뇌에 새겨져 있으며, 마음이나 뇌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 과정의 결과가 아니라는 관점에 따라, 대부분의 정신의학자는 인격 장애를 정신 질환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분명 인격 장애가 정신 질환의 위험 요인이자 치료를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이지만, 구분되는 별개인 실체라고 본다. 인격 장애는 궁극적으로는 여느 정신의학적 신경학적 장애처럼 뇌 기능이나 더 나아가 뇌 구조의 차이를 반영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처럼 아동기 초기에 발달해서 평생 지속되는, 다른 장애들과 비슷한 양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전적으로 질환, 병, 장애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의미론적 문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뇌라는 천에 섞여 짜인 어떤 상태, 우리의 본질적인 측면을 다루는 것이 감염, 염증, 화학적 불균형에서 비롯된 뇌의 비정상을 치료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_204~205쪽, 〈질투 ─ 남이 가진 것을 빼앗고 싶은 마음〉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맞든 틀리든 간에, 남들의 마음이 내 마음과 비슷하다고 가정한다. 기본 구조, 사고 과정, 감정이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경학의 사례에서 종종 그렇듯이, 병든 뇌라는 맥락에서 보면 그런 가정들은 더욱더 문제가 있다. 우리는 자신의 관찰과 확대 추정뿐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신경학적으로 변형된 사람과 함께 사는 사람들, 즉 자신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욱더 의존한다. ‘(아내인) 베키의 헌팅턴병 뇌가 자신의 삶과 세계의 지각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이해하고자 할 때, 우리는 거의 전적으로 (남편인) 레트의 생각과 말에 의지한다. 그의 생각과 말은 그의 뇌와 성격에 기반해 형성된 마음을 통해 걸러진다.
_56쪽, 〈나태 ─ 가능성 앞에서도 움직이지 않는 두 발〉

헌팅턴병은 분명히 정상의 스펙트럼 안에 있지 않다. 치매에 좀먹은 뇌가 이해하는 세계는 건강한 뇌의 세계와 명백히 다르다. 하지만 정상과 비정상은 누가 정하는가? 뇌 영상에서 정상으로 보이는 뇌일까? 우리는 많은 신경계 질환이 뇌 영상에서 정상으로 보인다는 것을 안다. 심한 신체적, 심리적 외상으로 행동이 달라진 사람은 정상일까? 행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은 정상일까? 주된 문제는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이냐’다. 정상이 끝나고 비정상이 시작되는 지점, 윤리학이 갑자기 병리학으로 대체되는 지점이 어디인가.
_275쪽, 〈나태 ─ 가능성 앞에서도 움직이지 않는 두 발〉

(그들은) 계속 낙제점인데도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니라는 증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음에도 자신이 영리하고 재능 있고 유능하다고 믿는다. 자신이 또래들보다 본질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자부심과 과신, 확신에 차 있다. 그리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낮은 평가가 정확하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분명히 학교나 직장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극도로 자존감이 높은 이들이라고 생각할 만도 하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전혀 다른 존재다. 이들은 나르시시스트(narcissist)다. 자존감과 달리 자기애(나르시시즘narcissism)는 자신의 중요성이나 장점을 과대평가한다. 탐욕과 마찬가지로 심리 형질이며, 모든 사람은 자기애 척도의 어느 지점에 놓여 있다. 이 척도의 한쪽 끝에는 자기애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성공 수준에 환상을 품으며, 자신이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특별한 존재이기에 존경과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고 믿고, 남과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굴욕을 당하면 말이나 몸으로 울컥 분노를 표출하기 쉽다. 이러한 특징들은 높은 자존감과 관련된 것이 아니며, 실제로 자존감과 자기애의 상관관계는 매우 미약하다
_307쪽, 〈교만 ─ 오만하고 자만하는 태도〉

모두가 자기 행동의 수동적인 방관자라면, 책임은 어떻게 될까? 궁극적으로 우리는 자신이 제한적으로만 통제할 수 있는 것, 또는 전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책임을 질 수 있을까? 특정한 경로를 선택할 자유, 즉 분노나 탐식, 색욕, 질투, 나태, 탐욕, 교만에 빠질지 여부를 선택할 자유가 없다면, 이런 생각이나 행동이 정말로 개인의 도덕 가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자유 의지란 무엇일까?
_250쪽, 〈자유 의지 ─ 그렇다면 인간은 뇌의 꼭두각시인가〉

유전적 요인은 환경과 상호작용한다. 뇌는 유전적, 사회적, 해부학적 배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두 사람이 동일한 경험을 하더라도 영향을 받는 방식은 전혀 다를 수 있다. 다른 의학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신경과학에서도 질병이나 기능 장애는 생물학적, 사회적, 심리적 요인들의 결합이라고 인정받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과정에는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도 존재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인간의 성격과 선택,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점점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면, 질병과 건강 사이의 경계는 어디일까? 누군가 ‘슬픈지, 미쳤는지, 나쁜지’를 판단하는 기준 말이다. 한 사람의 본래 성격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를, 또 유전자나 해부학적 구조, 환경의 영향을 누가 판단해야 할까? 판사일까, 배심원일까, 의사일까, 철학자일까, 성직자일까?
_257쪽, 〈자유 의지 ─ 그렇다면 인간은 뇌의 꼭두각시인가〉

 

출처: 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
정재승(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 적극 추천!
★★★★★

질투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탐하고…
내 안의 타락천사가 사라지지 않는 과학적 이유

악의 마음은 우리의 유전자, 창자, 뇌 속에
켜켜이 박혀 있었다!

우리를 영원히 유혹하는 나쁜 감정들의 신경학적 기원

런던에 사는 30대 후반인 제임스는 몸무게가 230킬로그램을 육박했다. 한번은 샤워 칸막이 안으로 넘어졌다가 몸을 가누지 못해 사흘 동안 갇혀 있었다. 당시 제임스는 허파가 몸에 눌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고, 심장도 제대로 뛰지 못했다. 그의 담당 의사였던 레슈차이너가 채혈을 위해 살을 헤집어보았지만 살이 워낙 두툼해 정맥을 찾을 수 없었다. 제임스의 피부에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해 곳곳에 욕창이 생겼고, 사이사이에 습기가 차 곰팡이가 퍼져 있는 곳도 발견되었다.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해 샤워실에 낀 이 남자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리가 제임스를 마주했다면 ‘자제력이 부족하다’거나 ‘게으르다’고 평가했을 것이다. 레슈차이너 역시 당시 그를 한심하게 보았다고 고백한다. “비만, 즉 탐식은 게으름을 보여주며, 이는 곧 도덕적 실패, 자제력 부족 때문이라는 일반적인 견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레슈차이너는 실제 환자들을 만나면서 ‘탐식’을 비롯한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을 다른 관점으로 보기 시작한다. 심리적, 도덕적 요인과 상관없이, 우리의 유전자와 창자, 뇌 깊숙한 곳에서 유래하는 감정들이 있었다. 그는 도덕이나 종교에 등장하는 일곱 가지 대죄, 즉 분노, 탐식, 색욕, 질투, 나태, 탐욕, 교만을 진화론적, 신경학적, 심리학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의 연구는, 교만은 자기 인식 회로의 손상에서, 분노는 위협 감지 시스템의 과활성에서, 나태는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동기와 보상 회로의 붕괴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책은 그 통찰의 결과물이다.

인류의 죄악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왜 사라지지 않는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전복시키는 매혹적인 탐구

왜 하필 인간의 어두운 감정을 들여다보기로 했을까. 여기에는 저자의 개인적인 사연이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1938년 수정의 밤(11월 9~10일 나치가 독일 전역에서 유대인 상점을 부수고 약탈한 사건) 때 부헨발트강제수용소로 잡혀 들어갔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할아버지는 파시즘의 참상을 직접 목격한 뒤 인류를 향한 믿음이 산산조각 났고, 이후로는 가족만을 위해 살았다. 저자 집안의 역사 안에 타인을 향한 질투, 천연자원을 향한 탐욕, 노골적이면서 냉혹한 공격성, 교만 또는 파시스트 독재자의 오만함이 켜켜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는 저자 집안만의 특수한 이야기는 아니다. 인류의 잔혹함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시대든 늘 있어왔다. 그는 인류의 죄악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왜 사라지지 않는지 질문한다.

이후 레슈차이너는 신경과 전문의로서 수십 년간 뇌에 이상 증후가 생긴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게 된다. 앞서 살펴본 제임스의 사례뿐 아니라, 비정기적인 발작 이후 분노에 사로잡혀 손에 잡히는 대로 부수는 숀, 뇌종양이 생긴 후 남편이 자신을 독살하고 젊은 여성과 바람을 피운다고 믿게 된 여성, 전쟁에서 뇌에 총상을 입은 뒤 성적 자극과 섹스에 집착하게 된 군인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수십 명 환자의 사례를, 그들을 대표하는 감정을 중심으로 살핀다.

어떤 이는 창자가 터지기 직전까지 음식을 먹었고, 또 다른 이는 분노나 질투, 교만, 욕정 등에 사로잡혀 정신을 잃고 응급실에 실려 오기도 했다. 모두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멀쩡했던 사람들이다. 레슈차이너는 그들의 문제를 치료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들의 감정 자체를 이해하려 한다. 그의 연구는 우리가 감정을 보다 다각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돕는다. 무엇이 도덕적 실패이고, 무엇이 뇌의 취약성인지 구분할 수 있게 한다.

나쁜 감정은 결코 나쁘지 않다
수천 년간 인류와 공존한 부정적 감정의 과학

‘죄를 도덕적 관점만이 아닌 뇌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몹쓸 행동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을 불러올 수 있다. 범죄자들이 형량을 감하기 위해 ‘심신 미약’을 증거로 내놓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감정은 뇌 탓이니 누구에게도 죄를 물을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가 제안하는 것은, 도덕적 잣대뿐 아니라 환자가 실제 아픈 상태인지, 즉 뇌를 고칠 수 있는 문제인지 여부를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단이 틀리면 해결 방법도 틀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 책에 등장하는 일곱 가지 부정적인 감정은 맞다/틀리다로 나뉘는 문제가 아니라, 0과 1 사이 기나긴 스펙트럼 어딘가에 놓여 있다. 예컨대 현대 사회에서 탐식이나 나태는 일종의 질병처럼 취급되지만, 인류의 진화와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감정 중에 하나였다. 시대가 바뀌었을 뿐, 감정의 역할은 그대로다. 그러니 우리는 정상/비정상을 가르는 경계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재점검해야 한다.

또한 어떤 감정이든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한다. 만약 일곱 가지 대죄가 인간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나쁜’ 감정들이었다면 진화 과정에서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부상이나 질병 시 ‘나태’를 부리는 게 유리할 수 있고, 자기 보호를 위해 ‘분노’가 필요할 순간도 존재한다. ‘색욕’이 없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그의 연구는 우리에게 기분 좋은 혼란을 야기한다. 이 혼란은 우리를 좌절시키는 게 아닌 새로운 성찰로 이끌어나간다. 그간 이해하지 못한 타인을 이해하게 돕고, 누군가를 쉽게 낙인찍기 전에 한 번 더 멈춰 서서 판단하도록 하고, 자책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보다는 자신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도록 돕는다. 인류의 부정적인 면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도, 결국 인류를 긍정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의 연구는 귀하다.

[편집자 레터]
가만히 있다가도 분노 버튼이 눌려 버럭 성질을 내거나, 나보다 잘난 사람을 시샘하고 질투하거나,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식탐을 자제하지 못하거나, 너저분한 집에 누워 하루를 공친 사람을 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른답지 못하군.’ 그럼에도 나 또한 때때로 그와 같은 하루를 보냈다. 조심하고 억눌러도 이내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는 ‘미친 감정’들이 있었다. 트리거 하나가 당겨진 날에는 어김없이 내 안에 사는 죄악의 감정들을 만났다. 누군가에게 날 선 감정을 드러낸 날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감정 하나 컨트롤하지 못하는’ 내가 실망스러워 고개를 떨궜다. ‘나 또한 어른답지 못하군.’

이 책을 편집하며 알았다. 나는, 내 감정은 잘못한 게 없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캐릭터인 불안이의 폭주가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듯이, 내 안의 미친 감정들은 나를 위해 나타났던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진짜 어른답다는 건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이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이해하는 사람이다. 알면 이해하고, 이해하면 용서할 수 있다. 이제 나는 나를, 내 안의 괴물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출처: 일곱 괴물이 사는 마음 」흐름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