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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소개
법이란 무엇인가! ‘극한의 질문’을 통해 따져 묻는 악마의 법철학
철학이란 기존의 앎을 철저히 의심하고, ‘존재하는 것’의 근거는 무엇인가를 탐구해가는 사고(思考)다. 우리가 자명하다고 여기는 상식을 다시 묻고, 확신을 따져 묻고, 진리의 탐구로 향해 간다. 법철학은 법률에 대해 그러한 사고를 들이댄다. 법철학에는 두 개의 얼굴, 즉 천사의 얼굴과 악마의 얼굴이 있다. 실정법학에 협력하여 그것들이 더 잘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도록 개혁하기 위한 지침을 제시하는 것, 즉 헌법에 대해서는 입헌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인권이나 지배 등에 대해 깊은 사색을 제공하고, 형법에 대해서는 형벌의 목적을 둘러싸고 응보주의와 사회방위론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제언을 하는 것 등이 천사의 얼굴이다. 반면 악마의 얼굴이란 현행 법체계의 기초 원리와 그것을 지지(支持)하고 있는 인간 사회의 습속이나 상식 그 자체를 철저히 의심하고 사정없이 비판해가는 것이다. 예컨대 왜 장기를 매매하면 안 되는가? 왜 도박은 범죄가 되는가? 정부와 폭력단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 아닌가? 왜 클론인간을 제작하면 안 되는가? 등등.
이 책은 악마의 얼굴을 한 법철학 쪽이다. 굳이 법률과 그것을 지지하는 학(學)이나 상식에 의문을 보이며 어깃장을 놓는다. 법률은 결국 세계를 돌아가게 하는 시스템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처럼 법률을 상대화함으로써 법률에는 맡길 수 없는 인간의 다양한 ‘살아가는 힘’을 깨닫게 한다. 룰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머리로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더욱 자유로워진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채로 오염된 상식과 저열한 권위에 휘둘리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를 의심해봄으로써 비판적 안목과 주체적 사고를 함양하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일본 아오야마가쿠인(?山?院) 대학의 초인기 강의를 기반으로, ‘정의’ ‘권리와 의무’ ‘자유’ ‘평등’ 등 크게 열한 가지 장으로 분류하고, 매우 유머러스한 필체로, 때로는 지독한(그러나 실제로 있었던) 에피소드를 제시하면서 흥미진진한 법철학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출처:교보문고
2. 저자
저자 : 스미요시 마사미
1961년 홋카이도 출생. 홋카이도대학 대학원 법학연구과 박사후기과정 수료. 법학박사. 야마가타(山形)대학 인문학부 조교수를 거쳐 현재 아오야마가쿠인(?山?院)대학 법학부 교수(법철학). 저서로 『크게 웃는 에고이스트: 막스 슈티르너의 근대합리주의 비판(哄笑するエゴイスト - マックスㆍシュティルナの近代合理主義批判)』(風行社), 공동집필서로 『법의 임계(Ⅱ): 질서상의 전환(法の臨界(Ⅱ) 秩序像の?換)』(東京大?出版?), 『브릿지북 법철학(ブリッジブック法哲)』(信山社), 『질문하는 법철학(問いかける法哲?)』(法律文化社) 등이 있다.
출처:교보문고
3. 목차
들어가는 말
권위와 싸우는 철학자 디오게네스와의 만남/ ‘악마의 얼굴’의 법철학/ 짓궂게 생각한다
제1장 사회가 무너지는 것은 법률 탓?
_법화(法化)의 공과 죄
물론 법률이 있으니 생활할 수 있다……손치더라도/ 복권에 당첨된 남자가 전처의 부양을 받는다?/ 법률에 올바름을 기대하지 마라/ 법률의 궁극의 근거? ‘근본규범’/ 법의 기원은 폭력이다/ ‘세력권(나와바리) 행동’에서 입법까지/ 관료에게 조종당하다 - ‘법화’의 부정적 측면/ 기묘한 성희롱 대책/ 재판에서 파괴된 인정/ 재판은 만능이 아니다!/ 뭐든지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늘어왔다
제2장 클론인간의 제작은 NG(No Good)인가?
_자유법론 vs. 법실증주의
체포되는지 아닌지는 운 나름/ 국가라는 합법적 ‘강도단’/ 법률과 도덕은 무관계 - 법실증주의/ 인간의 ‘본성’에 묻다 - 자연법론/ 전 인류에게 공통되는 양심이란 게 있을까?/ 자연법론의 재평가/ 본래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가?/ 자발적인 매춘은 옳은가 그른가?/ 왜 클론인간을 제작하면 안 되는가?
제3장 고액소득은 재능과 노력 덕분?
_정의를 둘러싼 물음
정의가 수상쩍다?/ 정의의 원점, 그것은 재판/ 그래도 우리는 ‘부정’에 분노한다 - ‘정의’의 의미 1/ “정의가 없어도 지구는 돈다?” 음, 하지만…… - ‘정의’의 의미 2/ 분배적 정의를 묻는 현대 - ‘정의’의 의미 3/ 존 롤즈 - 불우한 사람들에게 최대의 이익을/ 무지의 베일/ 누구나 합의하는(?) 롤즈의 정의 2원리/ 누구나 자신의 장래에 대해 비관적? - 맥시민 원리/ 에스푸아르(희망)에서의 후나이(船井)의 말 - 맥시민 원리의 파탄/ 로버트 노직 - 사람은 모두 다르다/ 노직 vs. 롤즈 ① - 나의 재산에 손대지 마라/ 노직 vs. 롤즈 ② - 고액소득은 개인의 재능 덕분?/ 노직 vs. 롤즈 ③ - 재능은 사회의 공통 자산이어야 할까?
제4장 악법에 거역하는 악동이 되라!
_준법 의무
법률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는 있는가?/ 부당 판결에 따른 소크라테스/ 법을 지켜 굶어 죽은 재판관/ 사고정지한 준법은 죄다/ 명령에 반하여 많은 인명을 구한 두 명의 영웅/ 법률에 따라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는 없다?/ 법을 사랑하기 때문에 법을 범합니다 - 시민적 불복종/ 일본의 시민적 불복종 - 그렇습니다. 내가 암거래 쌀집입니다/ 자신이 마실 술을 자신이 만드는 게 어디가 나쁜가?/ 살인적 호우 속에서도 등교하는 대학생/ 가카시 선생의 말
제5장 적령기의 아이에게 자유로운 피임을 허하라
_법과 도덕
잉여인간의 마음을 아는 법철학/ 적령기의 아이가 자유롭게 피임케 하라/ 함 리덕션/ 기분 나쁜 건강증진법/ 도덕을 법으로 강제하고 싶습니까?/ ‘히치하이커 여행’은 경범죄?/ 만일 ‘1억 총 히어로(hero)화’법이 시행된다면
제6장 다수의 행복을 위해 당신이 희생되어주세요
_공리주의
사실은 이렇게 다정한 공리주의/ 독점은 허용되지 않는다! -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약속보다도 박애를!/ 사람들을 선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공리주의/ 복지국가가 행하고 있던 ‘생명의 선별’/ 살릴 자와 죽어야 할 자를 선별한다 - 상당히 무서운 공리주의
제7장 인류가 에조사슴처럼 구축되는 날
_권리 그리고 인권
개그에 저작권을 인정한다면?/ 의사설과 이익설/ 토끼가 호소했다/ 도덕적 권리와 법적 권리/ 새로운 권리를 만들기 위한 허들/ 미기 양의 말 - 권리란 건 인간만의 것/ 인권은 인류 안에서만 통용된다/ 인권은 자의적으로 인정되어왔다/ 표류하는 구명보트 안에서/ 국가가 없는 곳에서는 인권보다도 자기보존/ 인류가 솎아지는 날
제8장 나의 생명, 팔겠습니까?
_어디까지가 ‘나의 소유물’인가
자신의 임종, 보입니까?/ ‘신체를 소유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자유의사로 자신의 장기를 파는 것이 왜 금지되는가?/ 봉사의 마음에는 대가를/ ‘목숨을 파는’ 것도 나의 자유인가?/ 예전의 자신은 어디까지가 ‘자신’인가?
제9장 국가가 없어도 사회는 돈다
_아나코 캐피털리즘이라는 사상
국가가 싫어지는 이유/ 그런 국가는 어떻게 생겨났나?/ 도덕적으로 보아 국가는 작은 편이 좋다 - 로크, 노직/ 효율적으로 보아 국가는 작은 편이 좋다 - 스미스/ 국가는 정원사 - 하이예크/ 국가는 필요 없다 - 아나키즘/ 아나키즘이 가능해지는 조건/ 아나코 캐피털리즘(무정부자본주의)/ 아나코 캐피털리즘의 원칙/ 아나코 캐피털리즘의 세계/ 그래도 국가는 필요한가?
제10장 불평등의 근절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_어디까지 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가/해야 하는가
회식의 평등이란?/ 평등은 사람마다 다르다/ 드워킨 - 평등하게 존중받는 것에 대한 권리/ 자원의 평등 - 타인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부러워하지 않으면 된다/ 본인이 만족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 ‘후생의 평등’이면 된다?/ 동페리옹 교수와 캔츄하이 교수 - 평등하게 다루려면?/ 어퍼머티브 액션과 평등/ 평등을 위해서라면 역차별도 있다?/ 자원이 아니라 잠재능력의 평등이다 - 센/ 만인이 볼 수 있게 되기 위해 안구는 한 사람에게 한 개까지/ 슈퍼 의족 - 없었던 기능을 장착한다/ 능력 증강이냐, 아니면 능력의 평준화냐
제11장 나에게는 ‘누군가에게 먹힐 자유’가 있다?
_사람은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는가
자유는 어디까지가 인정되는가?/ 자신의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우행권/ 자기관계적 행위와 타자관계적 행위/ 불쾌 원리/ 성기를 먹는 세기적 이벤트/ ‘나에게 먹히고 싶은 사람 모집’ - 성인끼리의 합의에 따른 식인/ 당신은 정말로 자유롭습니까?/ 훈련되고 조련된 자유/ 인간은 가축화되어 있다/ 사람에게 자유의사란 없다?
맺는 말
상식이라는 연못의 물, 전부 퍼내버려라!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모든 분쟁을 법정으로 가져가는 게 당연한 사회가 되면,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고소당할 것을 각오하고서 행동할 수밖에 없다. 미국인들은 법조(法曹)가 아닌 일반 사람들도 일상적으로 “We will sue you(고소할 거야).”라고 말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수(sue)족’이라는 말이 붙은 적도 있었다. 그만큼 소송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린 사회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어느 날 느닷없이 법정에 출두하여 자신에 관해 시시콜콜 폭로당하는 걸 늘 각오하며 살아가야 한다면, 당신은 그런 생활을 감내할 수 있겠는가? _〈제1장 사회가 무너지는 것은 법률 탓?〉
간혹 스포츠 선수나 유명인이 (도박으로) 적발되고는 하는데, 같은 일을 하고도 적발ㆍ체포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나오는 것은 왜인가? 형사소송법에는 “범인의 성격, 연령 및 처지, 범죄의 경중 및 정상, 또 범죄 후의 정황에 따라 소추를 할 필요가 없을 때는 공소를 제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문이 있다. 때문에 돈내기 마작을 한 사람 모두가 수사되고 체포되는 것은 아니며 경찰이나 검찰의 재량에 의한다. ……즉, 법률이 체포될지 아닐지도 운 나름이라고 정하고 있는 것이다. _〈제2장 클론인간의 제작은 NG(No Good)인가?〉
여러분은 어떨 때 자기도 모르게 “부정이다!” 또는 “허용할 수 없다.”는 말이 튀어나오는지 상기해보기 바란다. 타인의 물건은 뭐든 빌리는 주제에 자신의 물건은 어느 것 하나 빌려주지 않는 자, 자신의 지위와 입장을 이용해 제 자식을 뒷구멍으로 대학에 입학시키는 문부과학성의 관료, 모두가 (내고 싶지 않은데) 납세하고 있는(하게끔 되어 있는) 가운데 몰래 탈세하는 자, 지위를 이용해 부하에게 성적 관계를 강요하거나 당치 않은 일을 시키는 자…… 등등.
아무래도 ‘정의’에 대해 확실히 이해하려면 그런 일상적인 ‘부정’에 대한 분노의 감각에서부터 접근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부정’을 뒤집으면 ‘올바름’이, 그리고 단순한 독선과는 다른 ‘정의’의 의미가 보일 것이다. _〈제3장 고소득은 재능과 노력 덕분?〉
어떤 사회에나 반드시 빈부의 격차가 있다. 이를 “재능이 있고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부자가 되고, 재능이 없고 분발하지 않은 사람이 결국 가난해진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마침표를 찍어도 좋을까? 물론 세상에는 잠을 아껴가며 일하는 사람과 게으름뱅이가 존재한다. 본인 탓이라는 요소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현대의 빈부격차는 그러한 인간의 성격이나 의사에서만 유래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출발점부터 불공평한 것이다. 태어난 집안이 대부호이고 더욱이 그 나라의 다수자인 까닭에 차별을 받지 않고 유아기부터 풍부한 자금으로 고도의 교육을 받고 커서는 셀럽(celebrity: 유명인사) 그룹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능력이 있어도 학교를 마음대로 다닐 수 없는 까닭에 스킬을 습득하지 못하여 빈곤으로부터 탈출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는가는 본인의 탓이 아니므로, 하다못해 그 스타트라인의 부당한 격차를 가능한 한 줄이려는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_〈제3장 고소득은 재능과 노력 덕분?〉
이 건에 대해 한나 아렌트라는 철학자는 이렇게 썼다. 아이히만의 “완전한 무사상성, 그것이 그가 저 시대의 최대 범죄자 중 하나가 되는 요인이었다.” 전문적 지식과 능력이라는 점에서는 유능할지라도 인간으로서 사고하기를 포기하고 오로지 명령에 따르며 그 결과에 대해서는 상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한 관료의 범용(凡庸)이라는 이름의 죄가 얼마나 깊은지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그가 무엇이 나쁜 일인지 몰랐던 것(처럼 보이는 것)이 더더욱 무섭다. 사고 없는 준법이야말로 가장 질 나쁜 것이다. _〈제4장 악법에 거역하는 악동이 되어라!〉
요즘의 대학생은 성실하다. 가엾을 만큼 성실하다. 예컨대 새벽부터 방재 속보 알람이 연달아 울리고 기상 정보는 호우 정보를 발하며 이른 아침부터 JR의 일부 구간이 운전 중지되고 또 그런 구간이 확대되어가는 분위기인데도 “대학에서 휴강 연락이 없었다.”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1교시 강의 출석을 위해 등교한다.
“이렇게 큰비가 오는데 외출하는 건 위험해. 못 돌아올 수도 있어. 안전을 위해 쉬자.”고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오로지 ‘대학으로부터 지시’의 유무에 따라 행동한다. 이유는 “혹시라도 강의가 진행되어 출석을 체크할지도 모르니까.”라는 것이다. 출석과 몸의 안전 중에 뭐가 중한가?
그러나 요즘의 대학생을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 지시 대기자”라고 비판하는 것은 그들ㆍ그녀들에게 가혹하다. 요즘의 대학생들이 이렇게 가엾을 정도로 성실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대학이 출결을 체크하게 된 것(초등학생도 아닌데), 그리고 (옛날에는 없었던) 학기 15회 강의라는 룰 때문에 대학이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휴강을 하지 않게 된 것 등, 문무과학성에 의한 대학의 속박이 강화된 것에 기인한다. _〈제4장 악법에 거역하는 악동이 되어라!〉
대체로, 선악을 정해놓고 사람들에게 권력으로써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강제하는 규정이나 규칙 중에는 제대로 된 게 없다. 교칙이 그중에서도 제일이다. 어떤 고등학교에서는 “머리는 검어야 한다.”며 태어날 때부터 갈색 머리를 가진 소녀에게 염색을 강요했다. 무리하게 계속 머리를 염색했던 소녀는 두피에 손상이 와 고통을 호소했다. 그 교사는 이에 대해 사과는커녕 아무리 “금발의 외국인 학생이 유학 왔다 해도 검게 염색시킨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사고정지다. 대체 머리색이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가? 머리가 검지 않으면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교사들도 제대로 교육을 하기 위해 머리를 염색해야 할 것이다. 백발의 선생도 까맣게 염색해야 하고,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한 선생도 두피에 유성펜으로 검게 칠해야 한다. _〈제5장 적령기의 아이에게 피임의 자유를 허하라〉
부모에게 피임의 방법을 물어봐야 통상은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너,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니니?” 하며 외출 금지나 감시가 한층 심해질 게 뻔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이들은 피임 지식 없이 성교를 했다가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게 되는 나쁜 결과가 허다하게 있어왔다. 그런 이유로 영국 정부는 피임 조치 없이 성교하는 아이가 부모의 허가가 없어도 필 등 피임 수단을 얻을 수 있게 한 것이다. _〈제5장 적령기의 아이에게 피임의 자유를 허하라〉
좌석 수가 그리 많지 않은 카페에서 단 한 잔의 커피를 시켜놓고 장시간 죽치고 앉아 노트북 좌판을 두드리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이 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 거지반 한 세기가 지났는지 컵 안은 물기 한 점 없다. 혹은 떼로 몰려와 딱 한 잔의 음료만 주문하고는 재잘재잘 떠들면서 한없이 자리를 독점하고 있는 무리가 있기도 한다.
솔직히 그런 손님은 가게의 입장에선 성가실 것이다.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는 않겠지만, 다른 손님도 받고 싶으니 빨랑 돌아가든지, 오래 앉아 있을 양이면 주문하든지, 그렇게 생각할 게 틀림없다. 당연히 새로 가게에 들어오고 싶은 손님에게도 그런 앞 손님은 방해꾼이다. 그러나 가게 주인도 다른 손님도 당사자 또는 당사자들에게 직접 주의를 주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커피 한 잔밖에 안 시켰지만 나는 버젓한 손님이다. 나에게는 한 잔의 커피로 이 가게에서 오랜 시간 즐길 권리가 있다.”는 식으로 되받아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만 물을 따라주어 귀찮게 하거나 음악 볼륨을 서서히 높여 앉아 있기 어렵게 하는 등 간접적으로 눈치를 줄 수밖에 없다.……
그 감정을 이치에 닿는 말로 표현하면 이렇다. “손님은 당신만 있는 게 아니다. 가게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즐기고 싶어 한다. 그러니 당신의 ‘느긋하게 즐길 권리’ 행사를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도 느긋이 즐기게끔 자제해주기 바란다.” 이것이 바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알려진 공리주의의 출발점이다. _〈제6장 다수의 행복을 위해 당신이 희생되어주세요〉
애초에 사람들을 평등하게 보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는 생각에서 나온 공리주의가 “사회 전체의 불이익을 최소한으로 하자.”는 발상으로 전환되는 순간, 불이익을 당해야 할 사람들을 찾아내는 선별 사상으로 바뀌고 만다. 그리고 그러한 선별을 할 때 방금 살펴본 실례처럼 편견과 멸시가 작동하거나, 최종적으로는 불리해지는 사람 수 크기로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선별은, 물론 선별의 책임을 지는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_〈제6장 다수의 행복을 위해 당신이 희생되어주세요〉
사람을 행복을 느끼는 ‘주체’가 아니라 행복 최대화를 위한 ‘수단’으로 파악하기 시작했을 때, 공리주의는 냉혹한 선별 사상으로 일전한다. 본래 사람에 따라 가치관이 다른데 만인에게 공통하는 행복의 내용을 결정할 수 없고, 그것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도 없다. 이를 모르는 인간이 정치가가 되어 짝퉁 공리주의를 휘두르며 “LGBT는 생산성이 낮다.”든가 “LGBT가 늘어나면 나라가 망한다.”며 어리석은 발언을 의기양양한 얼굴로 하기 때문에 곤란한 것이다. _〈제6장 다수의 행복을 위해 당신이 희생되어주세요〉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법의 상식이라는 연못의 물, 전부 퍼내버려라!
법치주의라는 말이 자주 들려온다. 사람(특히 유력자)에 휘둘리지 않고 법에 따라 집행을 하겠다는 것이니 일견 시비할 수 없는 타당한 말로 들린다. 그러나 여기에는 의심스러운 구석도 있다. 무엇보다도 ‘법’이라는 것 자체가 과연 인간 삶의 제반사를 합당하게 처리해주는 만능의 룰인지, ‘법치’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일체의 주관이 배제된 공정한 객관의 토대만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하는 의심이다.
‘법 없이 살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매우 보기 드문 선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를 뒤집어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법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우리는 이미 법에 의해 지켜지며 살아가고 있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는 것도, 집을 임차해 거주하는 것도, 장사를 하는 것도 모두 법률에 의해 가능하게 되어 있다. 반면, 법망을 피해 나쁜 짓을 기도하려는 자에게도 법률은 중요한 텍스트다. 미국 복싱 흥행의 중심인물이면서 수많은 계약위반, 착취, 살인 등으로 악명을 떨쳤던 프로모터 돈 킹(Don King)도 “나의 성공은 법률의 옹호가 있었기 때문이다.”고 큰소리쳤다고 한다. 선인에게도 악인에게도 법률은 현대 사회에서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한 기술을 주고 있는 셈이다.
본래 법의 시초는 무엇이었을까? 인간과 동물의 집단생활에 공통하는 법의 발단은 세력권의 획정과 서열 짓기였다. 세력권은 약한 종이 양육강식에 의한 절멸을 피하는 데, 그리고 서열 짓기는 동료 사이의 파멸적인 투쟁을 막아 생존능력을 증대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본능적인 지혜였다. 그러나 그 후 감정과 지성을 여분으로 갖게 된 인간만이 독자적으로 법을 발전시켰다. 자연적인 질서 내에서, 권력욕이나 명예욕에 사로잡혀 반역하거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에 대한 응보형과 벌, 사람의 재산 소유를 확실히 하는 소유권이 생겨났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계약에 의해 이전까지의 자연질서를 해체하고 신질서를 만들며,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법률을 만드는, 즉 입법을 하는 지점에까지 이르렀다.
정부나 의회는 먼저 시장이라는, 사람들이 분업을 매개로 하여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 상호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생적 질서에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장에서 발생하는 약자를 돕고, 자유경쟁이 공정하게 이루어짐으로써 공존공영이 유지되도록 다양한 입법을 해왔다. 부정경쟁방지법, 독점금지법,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들 등이다. 또한 인권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법이 들어가지 않는’ 영역이었던 친밀권(가족, 부부, 연인 사이 등)이나 특별한 지배-종속관계가 인정되어왔던 학교, 교도소 등에 대해서도, 약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법률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배우자로부터의 폭력 방지 및 피해자의 보호에 관한 법률(DV방지법),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법과 조례, 스토커규제법 등이다. 이렇듯 입법에 의한 행정의 사회 개입에는 약자를 구하고 사회의 부정을 바로잡는다는 좋은 면이 있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법의 증식에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정부가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입법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해진 결과, 제정법이 증식하고 소송 대상이 확대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법화(法化)’라 하여 문제시되었다. 법화의 어두운 부분 중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법 적용의 전문성과 기술성이 높아짐에 따라, 권리 실현의 주도권이 당사자 국민이 아니라 번다한 법률이나 내규, 규칙 등을 조종하는 관료의 손에 쥐어졌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계약을 할 때 판매원이 뭐가 뭔지 모를 내용을 빠른 말투로 설명하는 걸 듣고 자기도 모르게 필요 없는 어플리케이션을 받거나 태블릿 계약까지 억지로 떠안게 되듯이, 관료에 의한 난해한 법이나 규칙에 관한 설명을 듣고는 결국 그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실정이다.
우리는 왜 법률에 따르고 있을까? “법률은 오류 없이 옳기 때문이다.”고 생각하여 따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인지 생각한 적도 없고, 그저 습관으로 따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 아닐까? 혹은 “체포당하는 게 싫어서”, “불만스런 법률은 있지만 지키지 않으면 이래저래 성가시니까 일단은 지킨다.”고 답하지 않을까? 아마 대개는 단순한 타성, 메리트(이점),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뒤에서 손가락질 당하지 않기 위해 등등이 사람들이 법에 따르는 동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법률이라고 해서 무조건 따라야 하는 도덕적 의무는 없다. 특정 목적으로 특정 시기에 과해지는 법률에 대해서는 그 근거를 의심하고 따져보며, 이를 수용할지 말지를 권리자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이때 긴요한 도움을 주는 것이 ‘위험한 법철학’적 사고다. 상식처럼 보이지만 법철학적 사고를 들이대면 결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정의’ ‘권리와 의무’ ‘자유’ ‘평등’ ‘공리주의’ ‘아나키즘’……극한의 질문을 통해 다시 생각해보는 법철학의 테제들
‘법철학’이라는 주제어를 듣고, 왠지 부담이 간다고 생각하는 독자분이 계시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오히려 이렇게 유쾌하고 재미있는 책을 통해 생소한 법철학을 접하고 이해하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저자가 대학에서 초인기 강의를 누릴 수 있는 이유는(학생들 사이에서 “I ♥ 住吉雅美”라는 티셔츠가 인기를 끌 정도다) 풍부한 에피소드, 그중에서도 지독한(그러나 실제로 있었던) 사례를 들어 핵심 내용에 대해 질문하고 학생들 스스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머리말에 나와 있듯이 공부하고 싶지 않고, 일하고 싶지 않고, 결혼하고 싶지 않고, 아이를 기르고 싶지 않은, 여배우를 꿈꾸었던 저자는 그 길로는 먹고살 것 같지 않아 주변의 권유에 편승하여 법학부에 입학했다. 그러다가 법철학이라는 분야를 발견하고, “우리를 지배하는 권력, 어느샌가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상식이나 습관 그리고 법률과 싸우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하여 결국은 ‘기르고 싶지 않았던’ 아이들의 선생(법학부 교수)이 되었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먼저, 법률 지키기를 좋아하는 선량한 시민 여러분에게 법률에 대한 회의심을 갖게 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런 다음 법철학의 전통적인 논점들(정의, 법과 도덕 등)을 말하고 이어 현대적인 문제들을 다루면서 최종적으로 자유마저 의심하도록 전개하고 있다. 극단적인 예(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케이스)도 들기 때문에 당신의 상식은 상당히 흔들리게 될 것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몇 가지 ‘질문’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성희롱을 매뉴얼로 박멸할 수 있을까?
* 카지노는 합법인데 돈내기 마작이 위법인 것은 왜인가?
* 자발적인 매춘은 해도 되는가, 안 되는가?
* 클론 인간을 제작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 고소득이 노력과 재능의 덕분이라면, 그것은 간섭해서는 안 되는가?
* 정의가 없어도 지구는 돈다? 당신이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 지시만 따르는 인간이 죄를 저지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 곤경에 처한 사람을 못 본 체하는 것은 죄가 될까, 아닐까?
* 인플루엔자 백신이 얼마 없을 때 누구를 우선하여 배분할까?
* 동물에게 권리가 있을까?
* 당신의 인권은 극한상황에서도 지켜질 수 있을까?
* 자신의 의사로 장기를 파는 것은 왜 안 되는가?
* 내 집이니 쓰레기를 마음대로 쌓아놓아도 괜찮을까? 등등
출처: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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