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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추천도서(26.1-)/2026-02

2월의 추천도서 (4741) 오늘의 한국 현대사 1: 점령과 전쟁

 

 

 

1. 책소개

 

“편향되고 정치적인 역사부정론을 거부한다”
현대사 연구자 31인, ‘사실’을 파고들다

‘해전사’ ‘해공점시’를 잇는 문제의식


한국 현대사 연구는 1979년 1권을 선보인 《해방 전후사의 인식》는 지식인 사회와 운동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이후의 현대사 연구는 그 자장磁場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어 2018년 푸른역사에서 냈던 《해방의 공간 점령의 시간》(이하 ‘해공점시’)은, 당시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국사 교과서 파동’을 포함해 역사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역사부정론에 대한 역사학계의 진지한 응답으로 평가받았다. ‘해공점시’ 필자들이 중심이 되어 8년 만에 낸 『점령과 전쟁』ㆍ『분단과 냉전』(‘오늘의 한국 현대사’ 시리즈 1ㆍ2권)은, 앞선 두 책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연구 지평을 넓힌 후속작이다. 전작 ‘해공점시’가 한미관계에 초점을 맞춰 해방 3년사를 다루었다면, 이 책은 사실史實에 대한 ‘종합적 분석’을 통해 해방 이후 전두환 정권기까지를 ‘점령과 분단’, ‘전쟁과 평화’, ‘냉전과 개발’, ‘민주주의와 역사인식’의 네 가지 키워드로 다루었다.

 

출처: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정용욱 외 14인

 

정용욱 서울대 역사학부 명예교수 | 한국 현대 지성사와 사회사
김도민 강원대 역사교육과 조교수 | 한국 현대사, 한반도 냉전사, 남북관계사, 북한사
김선호 한국 현대사 박사 | 북한사와 조선인민군사
김태우 한국외대 한국학과 부교수 | 한국전쟁사, 동아시아 냉전과 평화사
김혜영 육사 군사사학과 조교수 | 한국 근현대사 및 한국 군사사
류기현 서울대 국사학과 BK21 교육연구단 BK조교수 | 남북관계사 및 북한사
박수현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 졸업 | 미군정기 공보·선전 정책 및 활동
박영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 | 북·중관계사 및 한국전쟁사
송재경 한국외대 사학과 강사 | 한국 현대 외교사, 한미관계사, 냉전사
신유진 서울대 역사학부 강사 | 인도주의, 한미관계
안종철 이탈리아 베니스대Ca’ Foscari University of Venice 부교수 | 한국 근현대사, 법제사
요네즈 토쿠야 번역가,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 강사 | 6·25전쟁기 언론사
이상호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 한국 근현대사 및 한국 군사사
임다은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 한국 현대 경제사, 한미관계사, 냉전사
임찬혁 중국 연변대 역사학과 조교수 | 한국 근현대사

 

출처:본문중에서

 

 

 

 

3. 목차

 

⚫1권 점령과 전쟁

책을 펴내며

【제1부】 점령과 분단
1. 안종철 정권이 허가한 집회만 열라: 해방 이후 집회와 시위에 대한 제도들의 변화와 운용
2. 김도민 ‘아동’을 보호하라: 미군정기 〈아동노동법〉과 〈미성년자노동보호법〉
3. 박수현 미군정을 선전하라: 미군정 문화냉전의 도구로서 《주간신보》와 《농민주보》
4. 김혜영 미군정의 싱크탱크, 정치고문단
5. 김선호 여운형그룹의 월북과 북한군 창설의 숨은 이야기
6. 임찬혁 ‘한교’에서 ‘조선족’으로: 만주 지역 한인의 신분 변화와 그 의미

【제2부】 전쟁과 평화
1. 정용욱 6·25전쟁 전후 북한의 평화운동론
2. 김태우 평화의 붐에 대응하라: 한국전쟁 발발 전후 동아시아 국가들의 평화론과 평화운동
3. 송재경 상실한 평화의 기회: 이승만의 북진통일과 제네바회담
4. 류기현 1950년대 이승만 정부의 유엔 가입 시도와 남북한 동시가입론의 대두
5. 신유진 한국전쟁과 국제적십자위원회의 ‘인도주의’
6. 이상호 한국전쟁기 소년병들의 전쟁 체험
7. 박영실 중국군 포로 1만 4,000여 명은 왜 대만행을 선택했는가?
8. 임다은 한국전쟁기 북한의 농촌 동원과 농민의 반응
9. 요네즈 토쿠야 북한의 전재고아 해외 위탁사업과 냉전의 미디어: 현대 미디어를 통해 보는 심리전과 냉전의 흔적
⚫ 주
⚫ 찾아보기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1권 점령과 전쟁

미군정 측이 집회와 시위에 대해 취한 첫 번째 조치는 1945년 9월 15일, 즉 미군 상륙 약 일주일 후에 선포된 집회 허가제였다. 당시 서울이 포함된 경기도의 헌병사령관은 집회 허가신청서를 48시간 전에 “1) 행렬 또는 집회의 이유와 성질, 2) 행렬 또는 집회의 시일의 시작과 끝의 장소, 3) 행렬 또는 집회의 시작되는 시간, 4) 행렬 또는 집회의 끝나는 시간”을 포함해서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25쪽)

한국전쟁 발발 이후 집시법이 제정되는 1960년대 초까지는 〈국가보안법〉(1948) 혹은 〈계엄법〉(1949) 등을 통해서 집회·시위는 통제되었고 특히 집회에 대한 경찰의 통제권도 그대로 유지되었다.(39쪽)

하지는 미소공위 미국대표단 산하에 정치고문단 창설을 지시하였다.…정치고문단의 임무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과 관련된 정치적 문제와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계획에 대해 자문하는 것으로, 자문 방식은 주로 컨택, 즉 남한 정치인들과의 ‘접촉’이었다.(99쪽)

정치고문단에는 해방 전후부터 한국에 대한 경험이 많은 OSS 요원, 선교사 내지 선교사 2세들이 주로 포진되었으며, 한국에 대한 경험이 없더라도 해외에서 근무하며 정치분석 업무를 해온 전문가들이 중용되었다.(102쪽)

해방 직후 여운형이 북한으로 파견한 인물은 박승환을 포함해서 총 11명이었다.…여운형은 월북할 만주군 출신들에게 “북에 가서 인민군 창설에 참여하여 북한 인민군 고위 장령將領이 되어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무력남침의 쐐기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129쪽)

여운형그룹은 군관학교와 병종 부대를 창설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도 투입되었다. 이들은 2개 사단 창설계획을 마무리한 후에 평남 강서군 진지리에 군관학교를 만드는 계획을 작성했으며, 탱크학교와 포병부대를 창설하는 업무에 투입되었다.(134쪽)

여운형그룹은 10명 중에 8명이 평양형무소에 투옥되었다.…1948년 7월 하순부터 부인들을 통해 비밀리에 연락을 취하며 남한으로 탈출할 것을 모의했다.…9월 26~27일에 개성을 거쳐 서울역에 도착했고, 9월 28일에 육군본부 정보국을 찾아가 귀순 절차를 밟았다. 이때 단체로 월남한 인물은 박준호, 박창암, 방원철, 이재기, 최창륜 등 5명이었다. 김영택·박임항·이기건은 이들과 다른 경로로 월남했다.(145쪽)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의 체결, 8월 8일 덜레스 미 국무장관과 변영태 외무장관의 한미상호방위조약 서명 후에도 이승만은 북진통일이 한국의 주권 행사라는 견해를 유지했다.…북진 주장을 중단하는 대신 그 대가를 미국으로부터 얻으려는 협상도 시도하지 않았다.…이승만의 북진통일 주장은 오히려 한미동맹의 성립을 늦추는 역할을 했다.(244쪽)

미 의회는 조약을 비준하면서 한국 측이 무장공격을 받는 경우에만 방위조약이 발동된다는 단서를 붙였다. 미국 정부는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유엔군사령부 산하에 둔다는 내용의 합의의사록을 교환해야만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발효하겠다고 고집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동맹의 수립은 4개월가량 지연되었다.(245쪽)

‘한반도 내 유일한 합법 정부’는 추후 한국 정부를 중심으로 한반도를 통일할 명분을 제공할 수 있는 문구였다. 그러나 1948년에 수립된 한국 정부가 당장 한반도를 영토로 관할한다고 인정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승만의 흡수통일, 무력통일 주장은 처음부터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249쪽)

이승만은 1954년 7월 27일 아이젠하워와 회담에서 북진통일을 다시금 설득하려 했고, 미국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격렬하게 거부했다. 이승만은 7월 28일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미국과 중국의 전면전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폭탄 발언’을 터뜨렸다.(263쪽)

이승만은 제네바회담에서 한국 대표단으로 하여금 38선 이북 총선거를 골자로 하는 흡수통일의 원칙을 고수하도록 했고, 중국군 철수 및 인민군 항복이라는 비현실적인 요구사항까지 덧붙였다.(264쪽)

한국 정부는 최초로 유엔 가입을 신청한 1949년부터 1991년 이전까지 “단독 명의로 5회, 우방국 주도로 5회 가입을 시도”할 정도로 정력적으로 유엔 가입을 추진했다.(269쪽)

이승만 정권의 유엔 가입 노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1956년 7월부터 1957년 초까지 전국적인 대중운동으로 전개된 ‘유엔 가입 추진운동’이다.…유엔 가입 추진 전국위원회는 국민을 상대로 한 계몽선전 활동, 강연 등도 계획했지만 가장 핵심적으로 추진한 사업은 ‘1,000만 명 서명운동’이었다. 1,000만 국민의 서명을 받아 11차 유엔 총회에 참석할 한국 대표를 통해 유엔에 전달한다는 계획이었다.(276쪽)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를 자임하는 남한 정부는 당연히 동시 가입을 수용하지 않았다. 유엔 총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뉴욕을 방문한 조경규 국회부의장은 성명을 통해 “유엔 가입문제에 있어 소위 ‘보따리 흥정’의 일부가 되거나 그러한 흥정을 절대로 수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명백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283쪽)

6·25 참전 소년병이란 “전쟁이 발발한 이후 군번을 부여받은 정규군으로서 그 학적 소유를 불문하고 만17세 이하의 나이에 조국 수호를 위해 전·후방에서 근무하고 일정 기간의 복무 완수(상이 포함)로 인해 제대한 자”로 정의할 수 있다.(318쪽)

조선 전재고아를 위탁받은 나라는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몽골, 중국, 동독, 체코슬로바키아 등 8개국이었다.…한국전쟁 시기에 발행된 《로동신문》에 따르면 사회주의 나라들에 위탁된 조선 전재고아의 국가별 인원은…루마니아 1,500명, 헝가리 203명, 불가리아 200명, 폴란드 200명, 체코슬로바키아 200명, 몽골 수백 명이었다.…동구 6개국이 위탁받은 고아 인원은 합계 4,603명이고 여기에 몽골과 중국을 합치면 2만 4,800명 이상이 된다.(400쪽)

이해성에 의하면 프와코비체 양육원에서 배우고 북한에 귀국한 조성무는 오랫동안 조-폴 친선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평양외국어대학에서 폴란드어를 가르치면서 조-폴 사전을 편찬했다고 한다. 이해성은 조성무 이외에 폴란드에 위탁된 전재고아 중 한의표(주폴란드대사 역임), 박동호 등 외교관, 한경식(조선인민군 대좌, 주폴란드 북한대사관 무관 역임) 등의 이름을 들고 있다.(407쪽)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북한ㆍ만주에서 대공분실까지…시야를 넓히다
‘오늘의 한국 현대사’는 ‘해전사’와 ‘해공점시’의 주제를 시ㆍ공간적으로 확장했다. 우선 1ㆍ2권에 수록된 32편의 글 중 8편이 북한과 만주ㆍ중국을 다루면서 공간적으로 범위를 넓혔다. 사회주의 ‘형제국’에 보내진 북한 전재고아들의 실상이나 북한의 ‘자립적 중공업화’를 분석한 글 등이다. 한국 현대사라 하면 흔히 남한의 현대사로 이해한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적ㆍ경제적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선 불가분의 관계인 북한 연구를 빼놓을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북한 연구를 포함한 한국 현대사 서적의 발간은 의미 있는 시도라 하겠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 창설에 간여한 여운형 그룹의 월북 목적, 그들의 활동, 이후 행적 등 흥미로운 비화도 등장한다. 연구 대상 시기도 확장했다. 1945년 9월 15일, 즉 미군 상륙 약 일주일 후 집회 허가제를 선포한 사실에서, 5공 시절 남영동 대공분실의 실상과 배경까지 짚어내어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과 자본주의 불평등성의 뿌리를 캐냈다.

지세 물납제ㆍ경영학 이식까지…깊이를 더하다
연구 범위도 정치 이외에 경제ㆍ사회ㆍ문화ㆍ교육 등 다양한 이슈를 짚어내며 깊이를 더했다. 1956년 절량絶糧농가가 다섯 가구 중 한 가구꼴에 이르도록 늘어난 이유가, 정부 편의만 도모한 지세地稅 물납제에 있음을 통계적으로 입증한 김수향의 글이 좋은 예다. 미국 워싱턴대의 지원으로 경영학과가 국내 처음으로 고려대와 연세대에 개설된 과정을 추적해 미국의 냉전 전략을 보여주기도 하고, 1950년대 첫 ‘한국 국보전’ 해외 개최의 의미를 살피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공해’가 어떻게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는지, 어떤 우여곡절을 거쳐 ‘환경권’으로 인정받게 되었는지 분석하고, 새세대육영회를 중심으로 ‘5공의 어머니’ 이순자 여사의 영부인 정치를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공공성 가치의 위축과 특권 유지란 측면에서 서울대 법인화 논의를 역사적으로 다루는 등 ‘오늘’의 우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글들이 실렸다.

현대사 연구의 성과와 역량을 한눈에
이 책의 필진은 한국역사연구회와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대학교에서 이루어진 수업과 세미나 등 다양한 기회를 통해, 2025년 퇴임한 정용욱 서울대 역사학부 명예교수의 학은(學恩)을 입은 제자와 후배 연구자들로 구성되었다. 베니스국립대의 안종철 교수 등 중견 연구자들부터 서울대 국사학과의 이동원 교수를 비롯한 ‘차세대’ 교수들, 거기에 젊은 강사들도 다수 참여해 탄탄한 연구 성과를 제공했다. 여기에 임찬혁 연변대 역사학과 조교수, 장초 흑룡강대학 세계역사학과 전임강사와 요네즈 토쿠야 아오야마가쿠인 대학 강사 등 해외학자도 참여했다. 한국 현대사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 중인 필자들이 대거 참여한 성과물이라는 점에서, 현대사 연구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책이라 하겠다. 이 책은 한 마디로 한국 현대사 연구의 ‘이정표’라 부를 수 있다.

 

출처: 오늘의 한국 현대사 1: 점령과 전쟁출판사 푸른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