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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추천도서(26.1-)/2026-02

2월의 추천도서 (4732) 금서의 귀환, 논어

 

 

 

1. 책소개

 

법학자 김기창이 새로 옮긴 『금서의 귀환, 논어』는 '시대에 분노하고 세상에 저항하다'라는 부제를 달았다. 분노와 저항의 사상가로 공자를 복권하는 대담한 시도다. 우리가 안다는 '공자'란 누구인가. 예의범절과 글월 공부, 어진 품성이나 논하며 수천년간 동양의 정신세계를 복고주의로 퇴행시킨 '공자왈, 맹자왈'의 슈퍼 꼰대인가? 서당이 사라진 21세기 한국에서도 웬만한 이들이라면 교양이랄 것도 없이 면학의 주문처럼 암송하는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가 그의 사상인가?

이 책은 논어 첫 구절부터 기존 해석을 탄핵한다. 공자의 '학(學)'을 체계적으로 왜곡시킨 세력이 '배움'을 지식계급의 전유물로 찬탈해갔다는 것이다. 공자의 배움이란 문헌에 대한 암기나 해석이 아니다. '습(習)'은 경전을 복습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인(仁)에 대한 왜곡도 그렇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논어에서 거듭 강조한 '仁'에 대한 규정은 맹렬한 분노,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함, 목숨을 바쳐 이뤄야 할 '윤리적 결기'에 가깝다. 이런 강렬한 핵심은 빼놓고 고작 '어질고 너그러운 품성'으로 仁을 봉인한 해석 전통은 공자의 폭탄 같은 사상에서 뇌관을 제거하는 작업과 같았다.

새롭게 옮긴 논어와 해설을 읽고 나면 왜 초기의 유가 사상가들이 ‘분서갱유’라는 무시무시한 권력의 탄압을 받았는지 알게 된다. 공자 사상 원래의 논어, 그 불온한 금서가 귀환하는 것이다.

 

출처: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 로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하여 변호사(연수원 19기)로 일하다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캠브리지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30년 가까이 학생들에게 〈동양의 법과 사상〉을 가르치면서 늘 〈논어〉를 곁에 두었다. 캠브리지대 출판부에서 박사 논문을 수정 증보한 학술서 『Aliens in Medieval Law』를 냈고, 지은 책으로 『새롭게 만나는 공자』, 옮긴 책으로 『법의 지배』, 『유럽 역사에서 본 로마법』 등이 있다.

 

출처:본문중에서

 

 

 

 

 

3. 목차

 

새로운 논어 번역을 제시하며

제1편. 배움과 실천
- 배움(學)의 진정한 의미
- 적절한 때에 실천하라
- 문, 행, 충, 신(文, 行, 忠, 信)을 가르친 공자
- 여자를 좋아하듯 현자(賢者)를 흠모하라?
- 배움의 핵심: 분노와 자기성찰
- 균형 감각과 판단 능력을 기르기 위한 배움
- 실천의 기쁨

제2편. 덕(德)으로 하는 정치
-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 아름다운 모습
- 정치는 바로잡는 것
- 정치는 올바른 인재를 쓰는 것
- 종법 봉건 제도에서 효(孝)가 가지는 정치적 의미
- 효제(孝弟)와 예법

제3편. 제사, 예식, 의전 행사의 예법
- 제사, 예식의 절차와 규칙로서의 예법(禮)
- 의전 행사의 예법
- 예법과 돈: 공자의 검소함과 묵자의 극단
- 예법으로 장식되는 찬란한 문화
- 예법과 음악의 또 다른 의미

제4편. 인(仁): 윤리적 결기
- 외모의 아름다움에서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 교언영색(巧言令色): 겉모습에 대한 경고
- 인(仁): 맹렬한 분노, 윤리적 강건함
- 仁에 대한 다양한 ‘눈높이 가르침’
- 仁에 대해 단정하기를 꺼린 공자
- 윤리적 우월감에 대한 경계
- 인자(仁者)가 누리는 기쁨

제5편. 전과자를 사위로 삼은 공자
- 옥살이를 한 제자, 공야장
- 자공, 자로, 재아의 면모
- 동시대 귀족들에 대한 인물평

제6편. 공자의 제자들
- 제자들에 대한 인물평
- 권세가 계씨(季氏) 집안과의 관계
- 제자 염유의 능력과 한계
- 고(觚)가 고(觚)같지 않으면…

제7편. 있는 것을 전할 뿐
- 스승으로서 공자의 면모
- 육포 꾸러미? 자행속수(自行束脩)의 본뜻
- 공자의 일상 생활

제8편. 옛 임금들
- 양보의 미덕
- 이상적 통치자의 모습
- 제사 지내는 일은 실무자에게

제9편. 선생님의 면모
- 이득(利), 운명(命), 윤리적 결기(仁)
- 배워서 유명해지고 싶은가?
- 예법(禮) 준수에 관한 상반된 두 입장
- 선생님은 네 가지에 얽매이지 않았다.
- 이 편의 나머지 구절들

제10편. 고향 마을에서는
- 특이한 친구 관계
- 음식, 옷, 주거 환경
- 공자의 수레와 말
- “제철이지! 제철이야!”

제11편. 진취적인 사람들
- “선진(先進)”과 “후진(後進)”의 의미
- 예식 예법 준수는 형편에 맞게

제12편. 최고의 제자 안연
- 윤리 규범으로서의 예법
- 성공이란 무엇인가? 자장(子張)의 허영심

제13편. 용맹한 제자 자로
- 적정한 형벌의 올바른 사용
- 섭공(葉公), 정치 그리고 정직(直)

제14편. 제자 원헌의 질문
- 정치인에 대한 윤리성 논란
- 벽세(辟世), 벽지(辟地), 벽색(辟色), 벽언(辟言)

제15편. 위나라 군주 영공
- 나설 때와 물러날 때
- 백성(民)들의 윤리적 결기

제16편. 노나라 권세가 계씨
- 계환자를 잘 보좌하지 못한 염유와 자로
- 편찬상의 특이점

제17편. 반란을 일으킨 양화
- 개혁과 반란의 경계 선상에서
- 습(習)의 의미
- 시를 배워야 하는 이유
- 공자가 싫어하고 미워했던 것들

제18편. 어지러운 세상
- 세상을 외면하지 않은 공자와 제자들
- 올바른 도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

제19편. 제자들의 말
- 자하와 그 제자들의 역할
- 공자의 마지막을 함께한 자공

제20편. 하늘이 내린 복록이 영원하도록
- 변화무쌍한 천명(天命)
- 폭정의 결말
- 편찬자가 재사용한 구절들

후기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 괄호 안의 숫자는 주희의〈논어집주〉에 따른 논어의 장구 구분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7.18은 제7편(‘述而不作’이라는 유명한 문구가 나오는 논어의 7번 챕터)의 18번째 장의 문장을 말합니다.

나의 번역은 정부가 옹호하는 통치 이데올로기로 변질되기 전, 원래의 논어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드러내고자 노력한 결과를 담은 것이다.
-p12, 「새로운 논어 번역을 제시하며」

공자는 자기 자신을 묘사하기를 “분노하면 식사하는 것도 잊어버리는(發憤忘食)” 사람이라고 했고(7.18), 제자들에게도 “분노하지 않고서는 깨달을 수 없고(不憤不啟), 이를 악물지 않고서는 발전이 없다(不悱不發)”고 훈계하기도 했다(7.8).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사는 사람이 공자의 수제자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p.80, 「제4편 인(仁): 윤리적 결기」

“안회라는 자가 배우기를 좋아했습니다. 노여움을 누그러뜨리지 않았고(不遷怒),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았습니다(不貳過).” (6.2)
-p.108, 「제6편 공자의 제자들」

“분노하지 않고서는 깨달을 수 없고(不憤不啟), 이를 악물지 않고서는 발전이 없어(不悱不發).” (7.8)
-p.120,「제7편 있는 것을 전할 뿐」

공자는 과거 지향적, 복고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젊은 세대, 장래 세대에 희망을 가졌던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구절도 있다. “다가올 미래가 현재만 못하다고 어찌 단정할 수 있겠나(焉知來者之不如今也)?”라는 그의 입장은 젊은 세대를 가르치는데 평생을 바친 공자가 스승으로서 품었던 희망을 보여준다.
-p.164,「제9편 선생님의 면모」

제10편에 수록된 구절들은 공자가 결코 금욕주의자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고급스러운 미식가에 가깝게 묘사되며, 계절별로 다양한 복장을 색상까지 완벽히 맞춰 깔끔하게 차려 입고 패물을 차고 다니는 멋쟁이 신사였음을 알 수 있다.
-p.174,「제10편 고향 마을에서는」

“이름이 난다는 것은 윤리적인 듯 모양새를 갖추긴 하지만 행동은 개차반이고 그렇게 살면서도 아무 반성이나 뉘우침도 없다는 것이지. 그런 놈들이 나라에서도 명성이 자자하고 집안에서도 명성이 자자하지.” (12.20)
-p.204,「제12편. 최고의 제자 안연」

예법을 그저 늘 공손히 절하는 예절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무턱대고 공손하게 구는 것은 고되기만 하고(8.2), 부끄러운 일이고(5.24) 치욕을 자초하는 일(1.13)이다.
-p.208,「제12편. 최고의 제자 안연」

“형벌이 빗나가면 백성들이 어디에 손발을 둬야 할지 모르게 되지.” (13.3)
-p.212,「제13편 용맹한 제자 자로」

“강인함(剛), 맹렬한 분노(毅), 투박함(木), 어눌함(訥). 이게 윤리적 결기(仁)에 가까워.” (13.27)
-p.217,「제13편 용맹한 제자 자로」

“원한으로 나를 대하는 자에게 덕(德)으로 갚아주는 것은 어떤가요?”라고 누가 묻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덕(德)으로 나를 대하는 자에게는 그럼 뭘로 갚아줄려고? 원한으로 나를 대하는 자는 똑바르게 갚아주고, 덕으로 나를 대하는 자를 덕으로 갚아줘야지.” (14.36)
-p.236,「제14편 제자 원헌의 질문」

도리가 지켜지는 나라에서는 말도 당차게 하고 행동도 당차게 해야 하지만(危言危行), 도리가 지켜지지 않는 나라에서는 말은 조심하되 행동은 당차게(危行言孫) 해야 한다.
-p.243,「제14편 제자 원헌의 질문」

“대화가 될 법한(可與言) 사람인데도 말을 걸지 않으면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인데도 말을 거는 것은 말을 허비하는 것이지.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어버리지도 않고 말을 허비하지도 않아.” (15.7) 
-p.251,「제15편. 위나라 군주 영공」

“예법, 예법 그러는데, 내가 옥이나 비단 이야기 하는 줄 아니?” (17.11)
-p.272,「제17편. 반란을 일으킨 양화」

“군자는 또한 신임을 얻은 후에야 간언을 하는데, 신임을 얻기 전에 그렇게 하면 상대방은 자기가 비방당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19.10)
-p.291,「제19편 제자들의 말」

(하나라를 멸한 은나라 탕왕) “저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여러 백성과는 무관한 일이고, 여러 백성에게 죄가 있다면 그 죄는 저에게 있습니다.” (20.1)
-p.298,「제20편 하늘이 내린 복록이 영원하도록」

공자에 대해서는 예찬과 비난이 함께 존재한다. 하지만 비난의 상당 부분은 번역 오류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태가 조금이라도 험악해지면, 당당하게 맞서기보다는 세상을, 나라를, 또는 사람을 피하고 도망할 궁리나 하는 것이 현자(賢者)의 자세라는 식으로 제시되어 온 잘못된 번역은 공자를 비겁한 위선자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여기 제시된 새로운 번역이 이런 불행한 사태를 조금이나마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p.307,「후기」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법이 법 같지 않으면 그게 법이냐고!”
인(仁)은 저항과 투쟁의 ‘윤리적 결기’
논어는 왜 금서가 되었는가?
오역으로 오욕을 겪은 공자의 사상을 다시 읽다

논어는 불태워진 책이다. 그 추종자들은 산 채로 매장된 자들이다. 진시황제의 폭정은 그렇게 전해진다. 그래서 더 의문이다. 늘 ‘예의 바르게 부모님과 윗사람을 모시고, 형제와 이웃에 우애 깊고, 틈만 나면 책이나 보던 어진 이들’을 그렇게 가혹하게 탄압할 필요가 있었을까?

『금서의 귀환, 논어』는 진나라 분서갱유 당시의 ‘블랙리스트’ 논어를 그 자체의 불온함으로 복원하고, 한나라에선 통치이념으로 순화되며 거세된 공자를 본연의 강렬한 사상가로 복권하고자 한다.

영국에서 로마법을 가르친 법학자의 ‘논어 탐구’

논어를 쉬운 우리말로 본래의 뜻을 새겨 새로 번역하고 해설한 김기창 교수는 (유가를 탄압한 진나라 법가를 끌어올 일은 아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법학자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사법시험 합격 뒤 연수원 입소를 미루고 미국 시카고대 로스쿨로 유학을 떠났다. 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연수원(19기) 수료 뒤 국내에서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다시 유학을 떠나 영국 캠브리지대에서 중세 유럽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캠브리지대에서 영국 법제사와 로마법을 강의했으며, 지금은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30년 가까이 동서양 모든 제자들에게 ‘동양의 법과 사상’을 가르치면서 그가 항상 곁에 둔 책은 ‘논어’다. 강단의 법학자로서, 법정의 변호사로서 그는 꼼꼼한 문언 검토와 해석의 일관성을 늘 추구해왔다. 법학자가 본 논어의 기존 해석들은 ‘진술의 일관성’이 상당히 결여돼 있었다. 앞뒤 증언이 엇갈리고, 명백한 문헌 증거를 애써 외면하고, 당연한 논리적 결론을 굳이 에둘러 간다.

‘인(仁)’은 목숨도 내놓는 윤리적 결기

공자 사상에서 ‘인(仁)’은 남을 사랑하는 어진 품성으로 풀이돼 왔다. 수신제가와 충효 사상을 강조하며, 공손과 겸양을 예찬하고, 분노하지 않는 온순 화목한 마음가짐을 추켜세운다. ‘인(仁)’에 대한 체제순응적 해석은 한 무제 때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 논어를 읽으면 이런 해석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논어 제15편 8장에 나와 사자성어처럼 잘 알려진 ‘살신성인(殺身成仁)’이 그렇다. ‘인(仁)’이란 목숨을 바쳐 이루는 것이다. 논어 13편 27장에서 공자는 인(仁)을 또 이렇게 설명한다. 

“강인함(剛), 맹렬한 분노(毅), 투박함(木), 어눌함(訥). 이게 인(仁)에 가까워.”
剛毅木訥(강의목눌) 4글자 어디에서 어질고 온화한 품성이 느껴지는가. 특히 ‘의(毅)’라는 글자는 멧돼지가 분노하여 온몸의 털이 쭈뼛 솟은 모습을 표현한다. 그만큼 물불 안 가리는 맹렬한 분노, 저돌적 노여움이란 뜻이 들어있다. 이를 투박하고 어눌해도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공자 본래의 ‘仁’이다.

그래서 이 책은 번역과 해설에서 논어의 ‘인(仁)’을 ‘윤리적 결기’로 옮긴다. 그러면 ‘인자수(仁者壽)’(6.21)라는 대목도 이해가 간다. 기존 풀이는 ‘어진 이는 장수한다’고 본다. 아니, 목숨을 바쳐 인을 이루라고 해놓고선 그러면 오래 산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때의 ‘수(壽)’는 죽어도 잊혀지지 않는 삶으로 봐야하고 그렇게 쓰인 용례가 고전 문헌에 얼마든지 있다. 윤리적 결기(仁)를 이룬 자는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야 우뚝 선 북한산 인수봉(仁壽峰)의 위용이 달리 보인다.)

仁을 ‘윤리적 결기’로 풀면 논어의 앞뒤 안 맞는 구절들이 하나로 풀린다. 그렇게 풀려난 ‘인(仁)’은 오늘날 현대의 정치현실에서도 큰 힘을 발휘한다. 정당성이 없는 정부, 위선적 정치인에 분노하고 저항할 수 있는 투쟁의 무기가 되는 것이다.

“예법, 예법 그러는데 내가 옥이나 비단 이야기하는 줄 아니?”

공자 사상에서 ‘인(仁)’과 함께 핵심적인 것이 ‘예(禮)’다. 그래야 ‘어질고 예의 바른 유교적 인간’이 완성된다고 여긴다. 그러나 논어에 나오는 ‘예(禮)’는 2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제사, 예식, 의전 행사에 쓰이는 예법이며, 다른 하나는 윤리규범으로서의 예법이다.

공자에게 제사, 예식, 의전 예법은 분수와 격식에 맞게 지키면 훌륭하지만 그래도 부차적이다. 그런 예법은 공자 스스로도 어기는 대목이 논어에 여러 차례 나온다. 하지만 인간의 도리, 윤리규범으로서의 예법은 절대적이다. 국법과 예법이 충돌하는 상황에선 목숨을 걸고 예법(윤리규범)을 지키라는 것이다. ‘옥이나 비단’ 따위 형식뿐인 법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윤리’를 지키라(17.11)는 공자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대단히 폭발적이다.

‘악법도 법’이니 지키라는 게 아니라, 권력이 법을 앞세워 불의를 저지르고, 사법제도마저 법 기술자들의 손아귀에서 흉기처럼 작동할 때 목숨 걸고 저항하라는 메시지가 된다.

다 알지만 다 읽어보진 못한 책, 논어를 다시 읽다

새로 옮겨 풀어낸 논어에 저항과 투쟁의 격렬한 메시지만 담은 것은 아니다. 논어 자체가 그렇게 단순한 책도 아니다. 노회한 정치가로서의 공자의 풍모가 지혜롭고, 직장 내 승진 경쟁을 닮은 제자들의 은밀한 암투도 재미있다. 수천년 전이건 지금이건 인간의 속성은 변하지 않는 만큼 사람의 성정과 세상의 움직임을 꿰뚫어봤던 공자의 가르침은 지금의 인간군상에도 정확히 적용되는 통찰을 담고 있다.

김기창의 논어는 한자 원문을 쉬운 우리말로 옮겼다. 쉽게 의역을 한 것이 아니라 원문에 충실하다보니 오히려 쉬운 우리말이 됐다. 공자의 가르침 자체가 그만큼 알기 쉬웠던 것이다. 논어 20편 전체에 우리말 새 번역과 해설을 붙였다. 한문은 일부러 싣지 않았다. 일반인들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고대 희랍어까지 대조하며 볼 필요는 없는 것과 같다. 우리말만으로 논어를 정주행해보길 권한다. 논어 전편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구어체로 쉽게 옮긴 논어로 공자의 가르침을 이야기책 읽듯 ‘완독’해 보는 것은 분명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출처: 금서의 귀환, 논어출판사 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