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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추천 도서(21.3~22.2)/2022-2

2월의 추천도서 (3262) 리더의 상상력

1. 책소개

 

정치적 상상력이 실종된 시대, 다시 리더의 역할을 묻다

 

인간은 지금 자신에게 부재하는 것을, 미래에 도래할 일을 상상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 상상으로부터 출발하여 현실을 만들고 바꾸어나간다. 또한 인간은 개인의 꿈(욕망)과 사회의 이상(도덕과 정의) 사이를 오가며 양자를 조정하는 존재이다. 상상 속 사회와 정치가 현실의 사회와 정치를 만나면, 둘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변화가 시작된다. 만약 상상이 멈춘다면 그 사회와 정치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며 생활하는 세계의 대부분은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한민국 14대, 15대 대통령을 역임한 10년간 조정되고 만들어졌다. 이 시기에 김영삼은 국민의 상상과 요구에 응답하여 과거의 모순을 해체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개혁의 가치를 다시 썼다. 김대중은 사회의 혼란과 정부의 무능을 바로잡고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따라서 두 사람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새로운 영웅 만들기나 우상화 작업이 아니다. 이것은 헌법에 따라 유한한 권력을 손에 쥔 리더가 무엇을 바꾸고 어떤 성과를 이룰 수 있는지 정확하게 관찰하려는 시도이다. 또한 정치가 세상에 희망을 주던 과거에 관한 기록이며, 오늘과 내일을 위한 역사 설계도를 그리는 작업이다.

출처:교보문고

 

2. 저자

 

 

저자: 심용환

성균관대학교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 국회청문회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및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로 일하고 있다.
강연과 출판, 방송을 종횡하며 역사의 상상력으로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를 소개하는 유튜브 〈현재사는 심용환〉 채널을 진행하며, 역사 이야기와 문화 공연을 접목한 ‘인문학 콘서트’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헌법의 상상력』, 『1페이지 한국사 365』, 『1페이지 세계사 365』, 『단박에 한국사』 시리즈(전 3권), 『우리는 누구도 처벌하지 않았다』, 『심용환의 역사 토크』, 『역사 전쟁』 등이 있다.

출처:교보문고

 

3. 목차

 

들어가며 5

1장. 숙명의 리더와 성찰의 리더: 대통령이 되기까지 13

민주주의를 갈구한 신념의 투사
시작은 패배였지만-40대 기수론, 그 찬란한 실패 15
선명한 의회주의자의 정치 투쟁 20
김대중이라는 딜레마를 넘어서 29

성찰의 길을 걸은 숙련된 현실주의자
역경이 만든 지식인형 정치인 34
비판적 현실주의자의 대안 모색 41
세 번의 패배와 한 번의 승리 48

2장. 눈앞의 지형도: 권력이 현실화되는 자리 51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가다
3당 합당-기묘하고 위험한 선택 53
내각제의 덫에 빠지다 57
완벽한 복종을 얻어내기까지 64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지역주의로부터 지역주의 밖으로 71
준비된 지도자 혹은 대통령병 환자 78
동료의 손을 함부로 뿌리치지 마라 84

3장. 혁명보다 어려운 게 개혁이다: 집권 초기의 개혁 89

단호하게 결심하고 철벽같이 밀어붙이는 속도전의 대가
“위로부터의 개혁이 시작됩니다” 91
조선총독부 해체-민주공화국의 정통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95
공직자 재산 등록-역사를 바꾸는 명예혁명 103
하나회 해체 I-별들의 이전투구 108
하나회 해체 II-단칼에 베다 120

텅 빈 국고의 열쇠를 받은 후 새로운 질서를 만들다
문민정부, 환란의 전주곡을 틀다 127
한보 사태-1997년 1월의 삭풍을 누구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 131
삼성 보고서가 불러온 파란 137
얼어붙은 아시아 금융 시장 143
재벌 중심의 성장과 독점의 결말 148
문민정부,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다 152
김대중이 이끈 변화, 김대중 정부가 주도한 변화 155

4장. 무엇을 무너뜨리고 무엇을 세울 것인가: 다음 시대를 위한 대통령의 정치술 167

과거의 비극에 정치권력이 응답하는 방법
노태우,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거부하다 169
반발-여소야대 국회와 두 번의 청문회 175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191
국가가 잘못을 사과하고 피해를 보상하는 시대를 열다 199

거절과 반대를 설득과 동의로 넘어선 햇볕정책
현실과 공상 사이에서 방향을 가리키다 208
노태우의 북방정책과 평화 공세 216
김영삼 정권기의 혼란-꺼져버린 통일의 불씨 223
베를린 선언과 남북 정상 회담-경쟁 아닌 공존의 틀을 만들다 228

5장. 세기를 넘어서 237

김영삼과 김대중의 마지막 도전 I-재벌 개혁과 노동 문제
금융실명제와 정치 개혁 239
금융실명제와 재벌 개혁 245
시드니 구상과 OECD 가입 247
정리해고제 도입 259
경제-개방과 희생 앞에서 261

김영삼과 김대중의 마지막 도전 II-한일 관계와 관료 문제
협력 외교의 전범을 쓰다 270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나아지고 있는 관료제 276

마치며 283
주 285
참고문헌 297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여야 갈등, 부정 선거, 4·19혁명 그리고 혁명의 열기 가운데 쏟아져 나온 급진적 주장과 행동들. 야당 의원 김영삼은 정권의 부정부패에 저항했고, 혁명의 열기를 의회 안으로 옮겨와서 정치적 변화를 만들어내려 했다. 의회주의자 김영삼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곧 그는 민주공화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과 마주친다. 그의 나이 34살이던 1961년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난 것이다. (…) 김영삼이 이해한 민주주의는 박정희의 정반대편에 있었다. 자유라는 가치의 절대성과 자유민주주의라는 제도적 기초. 박정희는 이 둘을 부정했다. 김영삼이 보기에 박정희의 통치는 실패했다. 자유를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짓밟은 박정희의 원칙 없는 통치는 ‘부의 불평등’, ‘황금만능주의’, ‘정경 유착’, ‘인권 유린’ 등을 초래해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_16~17쪽, 「민주주의를 갈구한 신념의 투사」 중에서

단식 23일째인 1983년 6월 9일에는 성명서를 통해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의 부활은 바로 민주주의 실현을 통해서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며, 민주주의 없이는 우리 모두는 죽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라고 선언했다. (…) 단식 투쟁의 결과 민주화추진협의회(이하 민추협)가 결성된 것이다. 여러 야당 인사들은 물론이고 박찬종, 김창근 등 구 여권 인사까지 함께 모여 ‘정당형 반체제 단체’인 민추협을 만들었고, 이 단체는 반독재 투쟁의 중요한 구심점이 된다. (…) 애초에 김영삼은 의회주의자. 그는 초선 이후 대통령이 될 때까지 국회를 벗어난 적이 없고, 유신 체제하의 불합리한 선거 구조에서도 국회 안에서 싸움을 이어왔다. 아무리 불합리하더라도 결국 선거에서, 국회에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정치인의 책무이다. 국회를 벗어나 어디에서 국민을 설득하겠으며 국민은 국회 말고 무엇에 의지하여 변화를 요구하겠는가. 재야와 운동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영삼과 민추협은 총선 참여를 결정했다.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_26~27쪽, 「민주주의를 갈구한 신념의 투사」 중에서

1970년 10월 16일 대통령 후보 김대중은 기자 회견을 열고 ‘4대국 안전보장론’, ‘남북 교류와 평화통일론’, ‘대중 경제 노선’을 주장했다. 이 밖에도 향토예비군 폐지, 공산권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및 교역 추진, 초중등학교의 육성회비 폐지, 사치세 신설, 학벌주의 타파, 이중곡가제 실시 등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김대중은 박정희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비전을 제시했다.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은 채 6·25전쟁에서 베트남전쟁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대립과 반목을 낳는 반공주의는 결코 해답이 될 수 없다. (…) ‘문제 해결을 위한 대범한 노력이 필요하다.’ 김대중은 주변 열강을 끌어들여 다자 대화 구도를 만들고, 동시에 북한과 직접 대화를 시도하며 긴장 상태를 주체적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보았다. 심지어 공산권과도 대화하고 교역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당시 야권의 입장에서도 매우 파격적인 사고였으리라. _45쪽, 「성찰의 길을 걸은 숙련된 현실주의자」 중에서

하지만 김영삼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측근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홀로 결단을 내렸다. 평생을 싸워온 사람들과의 동거. 반민주 세력, 장기 독재 정권의 하수인들과 한 식구가 되기로 결심했다. 노무현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야합’이라고 규정했던 도무지 이해 못 할 행동. 변절자 김영삼! (…) 그렇게 민주자유당(이하 민자당)이 탄생했다. 5공 세력과 박정희 세력과 김영삼 세력이 결탁한 거대 여당의 등장. 지역적으로는 경상북도와 경상남도, 충청도가 전라도를 포위하는 정치 블록이 만들어졌다. 제2야당 대표였던 김영삼은 일거에 집권 여당의 지도자가 되었고 자신의 지역 기반인 경상남도를 고스란히 유지한 채 경상북도와 충청도까지 손에 넣었다.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 바야흐로 지역주의의 시대 아니던가. 이제 김영삼은 대권으로 다가가는 가장 빠른 길에 올라탔다. _56~57쪽,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가다」 중에서

정치적 경쟁 구도에서 누군가를 상대로 승리하고 차기 주자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강렬한 허탈감,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패배감을 심어주어야 한다. ‘오직 김영삼밖에 없다.’ 상대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때, 자신의 패배를 처절한 심정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때 김영삼은 진짜 대안이 될 수 있다. 인정은 한 번의 승리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승리에는 그 크기만큼의 반감이 쌓이기 마련이다. 계속해서 시기와 질투라는 방해물이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더구나 이곳은 정치판 아닌가. 없던 대항마를 만들어서라도 싸움을 붙이는 곳. 완벽한 승리를 반복해서 그 어떤 저항과 도전도 소용없음을 상대방에게 처절히 각인시켰을 때, 마침내 ‘자발적 복종’을 얻게 된다. _65쪽,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가다」 중에서

1980년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가혹한 탄압과 인권 유린, 그로 인한 광주와 전라도 지역의 적극적인 정치 의지 분출, 그리고 오랜 연금과 교도소 생활 이후 내란 음모 사건에 엮여 사형 선고를 받고 망명 생활까지 한 김대중의 고난. 지역과 인물이 결합되고 출신 지역과 정치적 역량이 결착되면서 새 구조가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이제 야당은 하나. 평민당만 남아 있으며 김영삼이 사라진 자리에서 김대중을 상대할 만한 야권 주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역주의가 한국 사회에서 전라도의 지위를 특별하게 만들었다면, 김영삼의 부재는 김대중의 위상을 더욱 높이는 기묘한 정치적 결과를 낳았다. _73쪽,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중에서

대부분의 개혁은 물거품이 된다. 이유를 찾자면 한도 끝도 없다. 역사에는 ‘개혁’이라는 이름이 붙은 수많은 시도가 보잘것없는 실패의 변명과 함께 너저분하게 늘어서 있다. 하지만 1993년 김영삼의 개혁은 달랐다. 하나회 해체, 기무사와 안기부 개혁, 공직자 재산 공개,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행보는 짧은 시간에 획기적 변화에 성공하며 대한민국 행정 권력이 할 수 있는 일의 ‘선례’를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개혁의 메커니즘’이 이후에도 계속 작동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누가 개혁을 주도했는지가 아니라 개혁 과정에서 만들어진 ‘방법’이 지속적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개혁은 단순한 선례여서는 안 된다. 하나의 개혁은 연속적 인과 구조로 바뀌어서, 집권자가 물러난 후에도 후임자에 의해 이어져야만 한다. 대통령 김영삼이 보여준 개혁은 당시의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연속성의 선례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의의를 지닌다. _108쪽, 「단호하게 결심하고 철벽같이 밀어붙이는 속도전의 대가」 중에서

김대중 정부가 주도한 변화, 금융 개혁과 재벌 개혁의 방향은 매우 명확하다. 외환 위기의 근본 원인은 박정희 정권 이래 쌓여온 정경 유착, 관치 경영에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정부는 정부의 역할을 하고 기업은 기업의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국민을 보호하며 건전한 시장 경제의 발달을 촉진하는 데 있다. 기업은 시장에서의 성공, 책임감 있는 기업 윤리의 확보를 목표로 하면 그만이다. 이것이 정상화의 시작이다.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 주도한다. 시장 경제는 국민 경제의 성장을 전제로 하며, 정부는 국민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기업의 독단적 성장을 제어한다.’ 김대중의 개혁에는 금융 기관은 물론이고 미국과 IMF까지 동원되었다. _160쪽, 「텅 빈 국고의 열쇠를 받은 후 새로운 질서를 만들다」 중에서

김영삼은 왜 두 전직 대통령 사법 처벌에 대한 입장을 바꾸었을까. 이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다. (…) 김영삼의 지지율은 집권 3년 차에 가파르게 하락했고, 여러 방면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한 개혁은 피로감을 일으키거나 민심의 호응을 얻지 못하거나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또한 그는 정통성에 집착하며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는 자신의 말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싶어 했는데, 5·18 문제야말로 그가 표방한 대의의 결정체 아니던가. 이로 인해 한국의 과거사 청산은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 한국형 대통령중심제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성에 의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는 특징을 지닌다. 오랫동안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정치 투사의 강력한 의지와 오랜 기간 공무원의 철저한 복종을 기반으로 길러낸 대통령 중심의 극단적 행정 효율성이 기묘하게 결합하여 이룬 성과라고 할 수 있다. _199~200쪽, 「과거의 비극에 정치권력이 응답하는 방법」 중에서

6·15남북공동선언은 북미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00년 10월 23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은 북미의 관계 개선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 협상의 결과가 남북 관계의 구체적인 현실을 변화시키고, 남한이 주도한 한반도 평화 정책에 미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가 보조를 맞추고, 그 결과 냉전 시대의 반공주의에 비견할 만한 외교 유형을 만들어냈다는 측면에서 햇볕정책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김대중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1971년 대선 때 주창한 ‘새로운 외교’의 구체적 결과물이다. 남북 관계의 평화적 개선뿐 아니라 주변 열강을 끌어들여 평화 체제를 구축하자는 구상이 햇볕정책과 함께 추진되었다. 일본과 중국의 참여를 이끌어 아세안플러스3 등 동북아 관계의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으니, 대한민국의 외교력이 두드러졌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_235쪽, 「거절과 반대를 설득과 동의로 넘어선 햇볕정책」 중에서

참으로 복잡한 현실. 오랜 기간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박정희, 전두환이라는 독재자와의 싸움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역사의 상상력으로 현재를 바라보는
심용환의 ‘역사 상상력 아카이브’ 시리즈 제2권『리더의 상상력: 영웅과 우상의 시대를 넘어서』 출간


KBS 〈역사저널 그날〉,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마스터 X〉, 유튜브 〈사피엔스 스튜디오〉, 〈현재사는 심용환〉 등의 방송과 『단박에 한국사』 시리즈, 『1페이지 한국사·세계사 365』 등의 도서를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 이야기를 발굴해온 역사가 심용환이 김대중과 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고 돌아왔다. 심용환은 역사의 상상력으로 현재를 바라보는 ‘역사 상상력 아카이브’ 시리즈의 전작 『헌법의 상상력: 어느 민주공화국의 역사』에서 1948년 헌법 제정부터 1987년 현행 헌법에 이르는 헌정사를 한국 현대사의 진행 과정 속으로 옮겨놓았다. 헌법이 바뀌던 순간마다 한국 현대사는 크게 요동쳤고, 이 변화를 읽는 것은 단순히 정치 체제의 변화를 넘어 이 땅의 정의와 가치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왔는지 확인하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새 책 『리더의 상상력: 영웅과 우상의 시대를 넘어서』에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변화를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두 정치인을 통해 톺아본다. 책의 전반부에서 박정희·전두환 독재 시절의 대한민국 현대사와 김영삼과 김대중이 각각 대통령이 되기까지 걸어온 삶을 되돌아본다. 후반부에서는 두 인물이 대통령 재임 시기에 실행한 개혁과 세기의 전환기에 일어난 정치·사회의 변화상을 분석한다.
1987년의 개헌으로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갖추게 되었다. 이것은 건국의 아버지들과 산업화의 영웅들이 지배하던 40여 년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고, 마침내 주권재민의 원칙을 확립한 사건이다. 그러나 6공화국의 시작은 군부 독재의 연장선에 서 있었다. 군복을 벗고 ‘보통 사람’을 자처한 이들이 민주화의 속도와 방향을 조정하겠다고 나선 그때 그 시절. 누가 우리를 억압해온 과거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로 향하는 길을 닦을 것인가. 또한 누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며 그곳으로의 개혁을 이끌 것인가. 1987년 이후의 역사는 정치를 향해 이 역할을 해내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마침내 정치가 국민의 삶과 잇닿은 바로 이 지점에서 대한민국 현대사는 새 장을 쓰기 시작했다. 심용환이 들려주는 김영삼·김대중의 시대, 가장 가까운 과거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남긴다.

“정치란 무엇인가? 그리고 당신은 무엇을 위하여 정치를 하는가?”

민주주의를 갈구한 신념의 투사
목표를 향해 정치라는 도구를 날카롭게 벼리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거대한 행정 권력 일체를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단 한 명의 리더이다. 역대 모든 대통령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이용해서 세상을 바꾸었을까? 권력을 잡는 일과 그것을 사용하는 일, 나아가 권력을 사용하여 국가의 대사와 방향을 정하는 일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_8쪽에서
1954년 제3대 민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한 김영삼은 오랫동안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독재에 항거했다. 지은이는 김영삼은 철저한 의회주의자였다고 말한다. 그는 정당 정치의 틀 안에서 선거를 통해 국민의 의사를 묻고 확인하는 일을 민주주의의 최우선 과제로 여겼다. ‘40대 기수론’을 주창하며 1971년 대통령 선거전을 이끌었고, 유신 체제가 시작된 뒤에는 ‘민주 헌법 개정’과 ‘중앙정보부 해체’를 외치며 스스로 반유신 투쟁의 구심점이 되었다. 박정희 사후 신군부의 독재가 이어지며 김영삼은 정치 활동 금지 및 가택 연금을 당하지만 김대중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하여 군부 퇴진, 헌법 개정, 인권 및 생존권 보장을 일관되게 요구했다. 또한 민추협과 함께 12대 총선에 뛰어들어 독재 정부를 견제할 거대 야당을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에게 패배한 이후에는 3당 합당이라는 기묘한 선택, “호랑이 굴로 들어가 호랑이를 잡겠다”라는 역설적 선택을 통해 정치권력의 최고 자리로 향하는 길을 점유했다. 그는 민주화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치라는 도구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고, 결국 자신이 선택한 방법으로 목표에 도달하게 된다.

“김영삼은 언제나 국회에서 활동했고 정당 기반의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승리를 강조했다. 오직 정치로써 국가를 바로잡아야 하는 숙명. 그는 이것을 자신의 역할로 받아들였다. … 바로 이 지점에서 김영삼은 다시 한번 숙명적이다. 그의 숙명은 ‘김대중 없이 대통령 되기’이다. 자신의 투쟁을 한국 민주주의 발전사와 동일시했고, 민주화의 최종 지점은 합법적 선거를 통해 민주 정부가 구성되고 민주 정부에 의해 민주주의 통치가 실행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누가 민주 정부를 주도할 것인가. 그 답은 대통령 김영삼. 김대중이 배제된 대통령 김영삼이어야 한다.” _32쪽에서

성찰의 길을 걸은 숙련된 현실주의자
위기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다


“감옥 3년, 망명 3년, 연금 6년, 그리고 한 차례의 사형 선고. 가혹한 고난의 여정은 김대중을 대표적인 민주화 인사, 저명한 야당 정치인,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주었다. 동시에 “나를 악선전한 종이가 수억 장은 될 것”이라고 회고할 정도로 그는 급진적이며 친북적이고 위험한 인사라는 공격을 끝도 없이 받았다.” _39쪽

김영삼이 국회 안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 투쟁을 이어갔다면, 김대중은 정권의 폭압을 직접 몸으로 견뎌내며 반독재 투쟁의 상징이 되었다. 1970년 10월, 김영삼을 누르고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된 김대중은 ‘4대국 안전보장론’, ‘남북 교류와 평화통일론’, ‘대중 경제 노선’을 주장했다. 이 밖에도 향토예비군 폐지, 공산권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및 교역 추진, 초중등학교의 육성회비 폐지, 사치세 신설, 학벌주의 타파, 이중곡가제 실시 등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 결과 부정·금권·관건 선거라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뚫고 박정희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하지만 선거 패배 후 돌아온 것은 혹독한 보복이다. 유신 정권은 납치와 살해 시도, 옥살이와 장기간의 연금으로 김대중의 손발을 꽁꽁 옭아맸다. 박정희 사후에 권력을 잡은 전두환도 김대중에게 1980년 광주의 책임을 덮어씌워 사형을 선고했다.
김대중은 이 시기를 스스로를 단련하는 기회로 삼았다. 옥중에서 철학과 신학, 정치와 경제, 역사와 문화 등 다방면의 책을 섭렵하며 정치란 무엇이며 어디로 흘러야 하는지를 성찰했다. 이 과정을 거치며 그는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우월성이나 사회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의 우월성이 아니라 권위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세기의 세계사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독재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를 발견한 그는, 바로 그 민주주의를 한국 사회에 이식할 방법을 찾는 데 전념했다.

“김대중은 박정희 정권이 추구해온 통치 방향을 바꾸려 했다. 경제는 보다 합리적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정경 유착과 부정부패 문제는 해결할 수 있으며, 그러한 방향으로 변화할 때 부의 재분배가 일어나는 건전한 국민 경제를 이룰 수 있다. 또한 반공, 승공 등 체제 경쟁과 위기를 조장하는 정치가 아닌 국제 사회를 끌어들여서 대화와 타협을 도모하는 새로운 외교 정책이 남북 관계는 물론이고 남한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는 궁극의 방법이다.” _47쪽에서

“복귀한 정치인 김대중은 꼼꼼했다. 국가보안법을 민주질서수호법으로 대체하여 인권 유린을 막는 동시에 남북한 관계 개선의 기틀을 마련하려 했다. 한편 그는 1국가 2체제라는 북한의 연방제 주장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남북한이 긴밀한 화해와 협력의 과정을 거치며 단계적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았다. 재벌의 독과점 문제 또한 심각하기 때문에 공정거래법 도입 등 보다 강력한 입법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다. 김대중 특유의 정책 중심적 리더십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_82쪽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개혁의 가치를 다시 쓴 리더
과거를 청산하고 현재를 바로잡는 틀을 만들다


1992년 12월의 선거에서 김영삼은 숙적 김대중을 꺾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심용환은 이 시기의 김영삼을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개혁의 가치를 다시 쓴 리더’로 정의한다. 1993년 2월 대한민국 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김영삼은 독립운동사에서 민주화운동사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역사 발전을 재정립했다. 또한 그는 현직 대통령 최초로 임시정부를 성역화했고 4·19를 혁명으로 승격시켰으며 5·18을 비롯해 국가 폭력으로 얼룩진 과거사의 청산을 시도했다. 하나회 숙청,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 실행, 정치개혁법과 전면적 지방자치제 도입 등 김영삼 집권 초기의 개혁들은 1987년 6월의 열망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작동했다. 또한 그가 제창한 세계화와 OECD 가입 같은 국가 발전 의제들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사회적 지표로 기능하고 있다. 특히 군부 독재의 상징인 군대 내 사조직 하나회를 숙청하고 두 전직 대통령을 사법 처리하는 대목에서는 정치가 김영삼이 반세기 동안 단련해온 정치적 의지와 능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지점에서 지은이는 김영삼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의 선례를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표류하는 국가의 키를 잡고 정부의 역할을 재창조한 리더
현재를 수습하고 미래의 진행 방향을 제시하다


1997년 12월 외환 위기의 한복판에서 치른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은 네 번의 도전 끝에 마침내 승리했다. 심용환의 설명에 따르면 김대중은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정부의 무능으로 초래된 경제 문제를 해결하며 동시에 대한민국의 새로운 전망을 제시했다. 그는 단순히 외환 위기에서 벗어나는 문제를 넘어서서 산업 합리화와 재벌 개혁, 벤처 산업 육성 등 1980년대부터 외쳤던 한국 경제의 구조 조정과 질적 변화를 실현했다. 또한 햇볕정책을 통해 남한과 북한이 협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고, 일본 총리와 함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동시에 아세안플러스3 회의를 통해 동아시아 협력 체계의 모델을 제시했다. 특히 미국과 일본은 물론, 유럽 여러 나라와 중국까지 포섭하여 북한의 핵개발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실현하려 했던 햇볕정책 구상은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지위와 역할을 한 단계 위로 올려놓았다. 지은이는 여기에 이르기까지 김대중이 한 역할을 설명한 뒤 그를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리더로 정의한다.

정치가 소실된 시대에 던지는 질문


『리더의 상상력』은 현재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건들을 기억 속에서 꺼내어 우리 눈앞에 펼쳐놓는다. 한날한시에 선거 유세장으로 무려 100만 명의 시민을 불러 모았던 1971년의 대통령 선거. 영구 집권으로 줄달음치던 독재자의 죽음.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참혹한 국가 폭력과 그날의 사실이 텔레비전 화면으로 중계되던 1988년 광주청문회. 노동자와 시민, 학생들의 대투쟁. 김영삼의 3당 합당에 거세게 반발하며 소리치던 초선의원 노무현. 법정에 선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이 선고되던 날. 서울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의 첨탑을 잘라낸 1995년 광복 50주년 8·15 기념식. IMF 구제 금융을 발표한 임창열 경제부총리. 남북한의 두 정상이 처음으로 직접 만나 통일을 이야기한 2000년 6월 15일. 역사의 수많은 지류들이 얽히고설키는 와중에도 한국 현대사의 본류는 하나였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라.’ 그리고 김영삼과 김대중의 정치는 정확히 본류를 관통했다.
상상과 현실의 합일. 이 책은 정치가 소실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로 이것이 리더가 만들어내고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닌지를 질문한다.

“고독한 영웅의 위대한 투쟁으로는 바꿀 수 없는 세세한 문제들의 연속, 구체적 현실 안에서의 싸움이 오늘날의 일상이 되었다. 우리는 이 부분을 두고 각양의 언어를 쏟아내고 있다. ‘구성원의 적극성을 끌어내고, 개혁적이며 창의적인 활동을 촉진하는 민주적인 새로운 리더십.’ 오늘날 리더의 덕목이 바뀌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덕목은 덕목일 뿐. 지도자는 관리인이 아니다. 결국 지도자는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엄두를 내기 힘든, 꿈꾸기 어려운 것들에 대한 탁월한 상상을 제시해야 한다. … 이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새로운 ‘리더의 상상력’이 출현하기를 기대한다.” _282쪽에서

 

출처: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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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상상력:영웅과 우상의 시대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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