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추천도서(26.1-)/2026-09

9월의 추천도서 (4943) 뇌가 만든 천재들

'-') 2026. 9. 14. 10:00

 

 

1. 책소개

고통과 부족함은 어떻게
독보적인 장점으로 승화되는가

신경 과학으로 읽는
천재 예술가들의 뇌와 마음

천재성은 뇌의 균열과 가능성의 틈새에서 탄생한다
광기라 불린 천재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

‘불광불급(不狂不及)’은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남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다 해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가 ‘광기’라 부르며 배제해온 사고방식이 때로는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보통과 다르다’는 건 ‘다르게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수만 년 전 알타미라 동굴 벽화부터 정신병원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탄생한 감각적인 스케치들, 나치 시절 ‘퇴폐 예술’로 낙인찍혀 불태워진 작품들까지, 데 라 피에드라는 인류의 역사에서 창의력이 어떻게 발현되어왔는지 과학의 시선으로 추적한다. 또한 뇌전증, 조현병, 양극성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상태를 단순히 ‘장애’로 환원하지 않고 창의성을 촉발시키는 조건으로서 살핀다. 뛰어난 기억력과 공감각, 꿈이 예술과 만나는 과정, 나아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까지 아우르는 저자의 통찰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미친 예술가들’의 내면에 깊이 공감하고, 창의성과 심리적 고통이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정신 질환이 곧 창의성을 낳는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한 해석은 과학적 근거 없이 정신 질환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킬 뿐 아니라 정신 질환 당사자를 고립시키기에 위험하다. 이 책의 미덕은 ‘광기 어린 천재’라는 낡은 신화에서 벗어나 사회가 정신 질환을 보다 정확하고 편견 없이 바라보게끔 이끈다는 데 있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광기’라는 이름으로 밀어내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천재란 모든 면에서 완벽했던 사람이 아니라, 신체적, 물질적, 정신적 한계를 안고 살았지만 이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이들이다. 바로 그 한계를 창의성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그들의 천재성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왜 여성 예술가들은 ‘광기’로 기록되었을까?
아니, 왜 여성들은 미칠 수밖에 없었을까?

버지니아 울프와 실비아 플라츠, 앤 섹스턴은 20세기 영어권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선택은 단순히 불행에서 벗어나려는 도피였을까, 최후의 저항이었을까, 아니면 정신과 뇌에서 비롯된 생물학적 반응이었을까?

세 사람의 삶에는 좌절과 상실, 가족의 학대와 갈등, 그리고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억압과 단절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울프는 남성 친척들의 성적 학대와 심적으로 의지하던 가족들의 죽음 등으로 여러 차례 정신적 붕괴를 경험했다. 플라스 역시 아버지를 향한 양가적 감정, 어머니와의 갈등, 결혼 후 남편의 배신과 외도, 경력 단절 등으로 고통받았다. 섹스턴 또한 어려서부터 성적 학대를 경험했고, 이후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들에게 고통은 끝나지 않는 굴레였지만, 하나같이 그에 잡아먹히기를 거부하고 고통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뇌를 들여다보면 그들이 받은 상처가 보인다. 데 라 피에드라는 상실과 고통이 뇌에 남기는 흔적에 주목한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염증을 유발하고, 이는 감정 조절과 충동 억제를 담당하는 신경 회로에 변화를 일으킨다. 여기에 유전적 취약성과 환경적 요인이 결합되면, 우울은 점차 자기 파괴적인 방향으로 기울게 된다. 즉 이 여성 예술가들의 극단적인 선택은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생물학적 변화와 사회적 경험이 교차한 결과다.

세 사람은 유전적, 사회적 환경 아래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지만, 이들의 작품은 삶에 대한 의지로 가득하다. 주어진 고통과 비극을 동력으로 삼아 예술로 승화시킨다. 저자는 이들의 비극이 절망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이 고통 속에서도 삶을 창조해내는 힘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한다. 세 여성의 삶은 고통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삶이 고통스러운가’가 아니다. ‘고통을 어떻게 인식하고 변형시키는가’다. ‘광기’로 치부되었던 이들의 삶은, 사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끌고 가려는 의지’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천재성’을 재정의하자는 선언문이다!” _에스파냐 일간지 《엘 문도》

19세기에 프랑스 살롱에서는 예술 작품에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했다. 예술가들은 전통 미술이 제시한 엄격한 기준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했고, 그 관습에서 벗어난 작품들은 어디에도 전시될 수 없었다. 1863년, 보수적인 심사 기준을 고수한 아카데미가 출품작의 3분의 2를 낙선시켰다. 뿔난 여론은 나폴레옹 3세를 압박했고, 결국 대안 살롱인 ‘낙선작 살롱’이 열렸다. 역설적으로 이 살롱이 기존의 보수적인 살롱을 웃도는 관람객들을 끌어들였다. 여기서 등장한 작품으로는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 등이 있다. 새로운 예술, 현대미술의 출발이었다.

이처럼 예술은 기존의 통념을 깨부수며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왔다. 한때 ‘전시 불가’한 작품이 현대미술의 문을 열어주었다면, 이제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만든 작품이 예술의 경계를 흔들고 있다. 2022년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열린 ‘콜로라도 순수 미술전’ 디지털 아트 부문에서 게임 기획자 제이슨 앨런의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 1등을 차지했다. 이 작품이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제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논쟁을 낳았다. 19세기 낙선작 살롱이 ‘예술의 기준을 누가 정하는가’를 물었다면, 이 작품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예술은 누가 만들 수 있는가?

인공지능을 활용한 작품을 예술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의식이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라는 통념에 도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데 라 피에드라는 이 책에서 인간의 뇌가 수행하는 의식과 감정, 창의성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추적하며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를 살펴본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변화해온 ‘천재성’의 개념을 짚어보고, 인간만이 창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천재성’이라는 개념이 유효한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공지능이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를 넘어, 인간만이 창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출처: 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마리오 데 라 피에드라 월터 (Mario de la Piedra Walter)

 

1991년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났다. 깊이 있는 학술 연구를 바탕으로 의학과 인문학의 접점을 탐구하는 의사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라살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독일 브레멘대학교에서 신경과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브레멘대학교 대학원 재학 중에는 바이에른의 부르가우 신경재활센터와 브레멘오스트병원에서 의식장애와 반공간무시 증후군을 연구하고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2022년부터는 독일 베를린의 UKB병원에서 신경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멕시코와 독일의 학회, 병원, 대학 등을 중심으로 신경과학 관련 강연을 활발히 이어가는 중이다. 멕시코의 교양·과학 잡지 《네소스(Nexos)》, 《메르쿠리오 볼란테(Mercurio Volante)》 등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예술가들의 창작성과 뇌과학, 신경학적 질환의 상관관계를 다룬 이 책은 에스파냐어 출간 직후 독일어, 포르투갈어, 한국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출간되었다.

 

출처: 본문중에서

 

 

 

 

3. 목차

 

[들어가며] 인간적인 어떤 것도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1장 정신병원에 갇힌 천재
-광기의 신화와 아웃사이더 아트

2장 ‘정상성’ 바깥에서 찾아낸 비상함
-앤디 워홀의 팝아트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

3장 색을 듣고 소리를 보다
-프란츠 리스트, 바실리 칸딘스키의 공감각

4장 고통을 직면해 얻은 통찰력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뇌전증과 문학성

5장 칼로 베인 자리에서 피어난 것
-프리다 칼로의 트라우마와 회복 탄력성

6장 세상은 여자를 미치게 만든다
-버지니아 울프와 실비아 플라스, 앤 섹스턴의 삶과 죽음

7장 한쪽 뇌가 무너져도 그림은 계속된다
-안톤 레더샤이트와 오토 딕스의 편측 무시 증후군

8장 환각 효과가 예술성을 깨우는 방식
-향정신성 물질과 《멋진 신세계》의 소마

9장 꿈은 인류의 예술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파리의 무의식이론부터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예술까지

10장 망각의 두려움이 구원한 작가
-기억에 갇힌 셰르셰프스키, 망각에서 도망친 보르헤스

11장 기계는 왜 인간이 아닌가
-인간과 인공지능의 창의성과 지능

12장 보이지 않는 신비를 보게 만든 자들
-시신 해부에서 뉴런 이론까지, 뇌를 향한 지난한 탐구

[나가며] 존재의 과학
[주석]

 

출처: 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구석기 후기의 동굴은 실험과 창의성의 장소로, 예술가의 작업실과 다를 바 없다. 수천 년 동안 여러 세대에 걸쳐 인류는 춥고 어두운 동굴 속으로 모험을 떠났고, 바깥세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의례를 위해서든,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 때문이든, 허구의 씨앗은 동굴의 틈새에서 싹을 틔웠고 세계 곳곳에서 꽃을 피웠다. 수만 년이 지난 오늘날, 사회가 예술의 가치에 의문을 품는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예술은 모든 영역에서 우리 종을 정의한다.
_20쪽, 〈들어가며 - 인간적인 어떤 것도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사회 전체가 정신 질환을 둘러싼 금기를 만드는 대신 그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여느 질병과 마찬가지로 정신 질환을 이야기하는 일이 당연해질수록 정신 질환 환자를 더 잘 이해하고 제대로 치료를 지원할 것이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은 죄다 광기라고 부르는 듯하다. 정말로 실패한 것은 그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의 논리다. 보르헤스는 시력을 잃은 일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누구나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도구로 여겨야 한다. 전부 목적이 있어서 주어졌으며, 예술가의 경우 더욱 그렇다.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 전부, 굴욕과 치욕, 불행까지도 진흙처럼 주어진 예술의 재료다. 그 재료를 활용해야 한다.” 라미레스와 도스토옙스키, 반 고흐를 비롯해 여기서 소개하는 모든 예술가들은 신체적·정신적·물질적 한계가 분명했지만 이를 작품을 통해 극복했으며, 바로 그 점에 그들의 천재성이 있다.
_46쪽, 〈1장 ─ 정신병원에 갇힌 천재〉

워홀은 침울하고 소용돌이치는 자의식을 담아 비꼬듯 말한다. “없는 것이 없다. 전부 거기 있다. 차가운 시선, 굴절된 우아함, 세련된 기이함, 수동적인 경이로움, 절망에 뿌리내린 화려함, 자기 자신을 숭배하는 무관심, 완벽한 타자성, 어렴풋이 불길한 기운…, 없는 것이 없다. 나는 내 스크랩북이 말해주는 그대로의 나다. 워홀에 관해 모조리 알고 싶다면, 내 그림과 영화의 표면과 나를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거기에 내가 있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워홀은 자기 행동을 감추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행동을 활용할 재치와 용기가 있었다. 세상에 적응할 수 없었던 그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대중문화에 푹 빠진 우리야말로 워홀의 우주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다.
_63쪽, 〈2장 ─ ‘정상성’ 바깥에서 찾아낸 비상함〉

도스토옙스키가 숭고함을 좇도록 이끈 뇌전증은 역설적으로 그의 몰락에도 힘을 미친 듯하다. 뇌섬엽은 병적인 도박을 비롯해 충동 조절 장애와 밀접하게 관련된 부위다. 측두엽, 전두엽, 뇌섬엽의 뇌전증 유발성 병변은 충동성과 관련 있으며, 뇌의 위험 예측 시스템에 장애를 일으켜서 도박 중독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어느 모로 보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 뇌전증은 작가를 상기하는 역할 이상을 맡은 듯하다. 뇌전증은 서사 구성에도, 존재와의 대면이라는 인식 경험에도 자양분을 주었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천재성이 질병에서 비롯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예술가의 탁월함은 고통 속에서 작품을 밝힐 소재를 발견하는 데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 본성이라는 어두운 바다에서 난파해서 등대를 세웠다. 끊어졌다 이어졌다 타오르는 이 불빛은 비참한 세상에서도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_107~108쪽, 〈4장 ─ 고통을 직면해 얻은 통찰력〉

대다수 현대 예술가들처럼 오토 딕스도 나치 정권에 작품을 압수당했고, 박해받았다.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은 소수의 작품은 1937년 뮌헨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선전 목적으로 개최된 악명 높은 ‘퇴폐 미술’전시회에 걸렸다. 이 전시회는 대중과 예술가에게 제3제국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예술이 어떻게 제재받을지 경고했다. 뒤셀도르프에서만 1,000점이 넘는 작품이 사라진 것으로 추산되며, 나치 정권 기간에 손실된 문화적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메트로폴리스〉의 의미는 당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술의 천재성은 시간을 초월하는 데 있다. 21세기에 우리는 전 세계에 서 민족주의가 부상하는 광경을 공포에 떨며 지켜보고 있다. 극우와 극좌 지도자는 사회의 좌절감을 선거 캠페인의 연료로 이용한다. 타인에 대한 증오와 소외는 허약한 결속만 만든다. 딕스의 그림은 다른 세계를 외면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일깨운다. 현실은 단일한 진실이 아니라, 우리 안팎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여러 경험의 집합이다. 이 사실을 우리가 이해한다면, 우리는 더 관대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_171~172쪽, 〈7장 ─ 한쪽 뇌가 무너져도 그림은 계속된다〉

기억은 현실을 불완전하게 재구성한다.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부호화와 공고화, 회상)은 기억을 왜곡하는 오류에 취약하다. 어떤 면에서 볼 때 기억 왜곡은 기억 형성의 일부다. 우리는 이를 떠올릴 때마다 기억을 수정한다. 보르헤스는 기억에 의구심을 품었지만, 기억으로 실명이라는 절망에 맞섰다(그는 유전성 안 질환으로 시력이 나빴고, 50대 후반에 실명했다-옮긴이). 말년에 보르헤스는 거의 시에만 전념했다. 내면의 운율이 망각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축복의 시(Another Poem of Gifts)〉에서 그는 삶에 경이로움을 안겨주는 순간들을 감사히 여기며 하나하나 세심히 열거한다. 그의 문학 세계만큼이나 무한한 이 시에서 그는 빵과 다이아몬드, 시와 호랑이의 황금 빛, 자신의 피에서 합쳐지는 강줄기, 결코 잊지 못할 책, 잠과 죽음, 음악, 그리고 “과거를 무효로 만들고 변형하는 망각”에 감사를 전한다. 그것들은 모두 “결과와 원인의 신성한 미로” 속에서 하나의 우주를 이룬다.
_230쪽, 〈10장 ─ 망각의 두려움이 구원한 작가〉

역사적으로 예술이 감정과 창의성을 수반한다는 개념은 최근에 생겨났다. 18~19세기 이후로 예술은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즉 우리는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며, 기교뿐 아니라 작가와 감상자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으로도 예술을 평가할 수 있다.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예술 이론가로 꼽히는 R. G. 콜링우드는 예술과 감정을 연결하는 미학 이론을 발전시켰다. 콜링우드는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자기 감정을 발견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창작은 감정을 분명히 하고 감정에 형태를 부여해서 의식화하는 수단이다. 이런 창작 과정을 인공지능이 만든 예술 작품의 작동 방식과 비교한다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특히나 지금 우리는 표현의 기술이 아니라 묘사의 기술을 다루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은 자연어로 정의한 명령을 바탕으로 우리의 생각을 구체화한다. 콜링우드의 원칙에 따르면, 사용자가 그저 보고 싶은 것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발견에 이를 수 없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는 창작과 생성의 경계가 비교적 분명하지만 인공지능과의 관계에서는 흐릿해진다.
_243쪽, 〈11장 ─ 기계는 왜 인간이 아닌가〉

인공지능은 최근 수십 년 동안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가장 많은 기대를 받는 과학 분야다. 지난 5년 동안의 투자 자금은 인공지능 기술의 역사를 통틀어 투자한 자금보다 더 많다. 인공지능 기술은 의학부터 정치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되며, 바로 이 때문에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페이스북처럼 단순한 알고리즘조차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치거나 특정 국가의 유럽 연합 탈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알고리즘이 언젠가 의식을 가지게 될 가능성보다 더 우려스럽다. 하지만 언론에서 가장 주목하는 주제는 의식이다. 인간에게만 의식이 있다는 통념에 도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공지능은 이름에 걸맞게 정말 지능이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의식이 있다는 뜻일까? 답은 인공지능을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달라진다.
_251쪽, 〈11장 ─ 기계는 왜 인간이 아닌가〉

 

출처: 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이 책은 광기와 창의성의 연결고리를 탐구하고, ‘인간만의 창의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간다. 도스토옙스키, 보르헤스, 반 고흐, 프리다 칼로, 앤디 워홀, 버지니아 울프 등 위대한 예술가들은 대체로 신경학적,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신경과 전문의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마리오 데 라 피에드라 윌터(이하 데 라 피에드라)는 천재적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최신 신경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고통과 창의성의 관계를 추적한다. 이를 통해 천재성이 뇌에서 어떻게 형성되는지 탐구하며, 뇌의 작동 원리와 창의성의 연관성을 살핀다. 이러한 탐구는 오늘날 생성형 AI 시대를 향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인간의 창의성과 천재성이란 무엇인가?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창조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인공지능의 결과물에도 과연 우리는 ‘창의성’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

-편집자 레터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미치다’의 첫 번째 뜻은 다음과 같다. “정신에 이상이 생겨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되다.” 가치 판단이 담기지 않은 정의이지만, 현실에서는 대개 상대를 비난할 때 쓰인다. “미친 거 아냐?” 이 한마디로 이해되지 않는 것을 손쉽게 ‘이상하다’고 정리하고, 낯선 가능성을 차단한다. 이렇듯 세상은 대체로 광기를 경계한다.

하지만 세네카는 “위대한 정신에는 언제나 약간의 광기가 섞여 있다”고 했다.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단호함, 집착이라 불릴 정도의 집요함은 광기의 특권이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훗날 ‘창의적인 인물’로 불렸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환대받았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위험한 사람, 심지어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는 시간을 견뎌야 했다. 책을 편집하면서 나는 그들이 받는 ‘미친 사람’ 취급에 이상한 위로를 받았다. 아, 남들과 달라도 괜찮구나.
오늘날 우리는 놀랍거나 압도당할 때마다 외친다. “와, 씨. 미쳤다!” 한때 비난이던 말이 이제는 감탄과 찬사의 언어가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야 세상을 바꾸는 창의성이 때로는 광기로 취급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 ‘미친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들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책을 덮을 즈음에는 자연스레 외치게 될 것이다.
“와, 씨. 미쳤다!”

 

출처: 「뇌가 만든 천재들 」흐름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