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추천도서(25.3~)/2025-08

8월의 추천도서 (4547)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

'-') 2025. 8. 14. 10:00

 

 

 

1. 책소개

 

중학생 연우와 초등학생 정우, 두 발달장애 남매를 돌보는 엄마
통합 교육을 꿈꾸며 좌충우돌하는 중학교 영어 교사

학부모이자 교사, 어쩔 땐 학부모도 교사도 아닌 어떤 존재.
그 덕분에 길에서 교실에서 강연장에서 만난 수많은 교사, 학부모, 학생과 나눈
웃기면서도 가슴 아프고, 슬프면서도 통쾌한 이야기들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 바라본
함께하는 교육, 함께하는 성장

 

출처: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이수현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공부’를 가장 강조하던, 열정적인 대한민국의 교사였다. 학생들을 뜨겁게 사랑했고, 그 사랑의 방식은 엄격한 ‘학습’ 지도였다. 주어진 제도에 순응하고 정해진 틀에 맞추어 자신을 훈련해 최고가 되는 것, 그것이 삶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성취라고 믿었다. 하지만 장애가 있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이후, 완전히 다른 교사가 되었다.
학교가 요구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학생들, 아무리 노력해도 정해진 틀 안에 들어갈 수 없어 매일을 힘겹게 버티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마음이 기울었다.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며 학부모로서 존재가 쪼개지는 고통을 겪었고, 그 끝에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장애가 있든 없든,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누구나 타고난 기질과 특성을 존중받으며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며 행동하고 있다.
아무도 가지 않은 척박한 길이지만, 그 길을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걷고 있다.
통합 교육과 발달장애에 관한 글을 쓰며, 교사 연수와 학부모 교육의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쓴 책으로는 『누가 뭐라든 너는 소중한 존재』가 있으며, 함께 쓴 책으로는 『해 보니까 되더라고요』, 『돌봄과 작업 2』, 『모두 참여 수업: 중등편』, 『특수에서 보편으로』가 있다.

 

출처:본문중에서

 

 

 

 

 

3. 목차

 

프롤로그 10

1장. 나를 부모로 만든 아이들
당연히 낳아야지요 14
내가 바랐던 아이 17
병원 쇼핑 20
사이비 치료 28
엄마, 이거 봐 40
꿈이 바꾼 삶 47
노래 부르는 어린이 52
유아 수험생 56
다섯 살의 연우에게 59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63
함께하는 손길 66
진짜 기도 71
채비 74
내가 꿈꾸는 아이의 미래 78

2장. 내 아이를 위한 학교
보이지 않는 아이 86
사람이 우선이지 90
싸우는 엄마들 98
내 아이를 위한 학교 108
다시 돌아간 공교육 112
실수가 아니라 차별 119
바지를 내리면 학교에 다닐 수 없어 132
그 질문, 왜 하면 안 될까? 137
조급한 엄마가 되지 않기로 144
존중의 언어 148
정우가 장애인이에요? 152
깍두기 규칙이 보여 준 함께하는 교육 155

3장. 엄마의 눈으로 본 세상
있는 그대로의 사랑 162
나도 배우고 싶어요 165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을 향유할 권리가 170
장애로 퉁 쳐지는 사람 172
버스 하나 해 먹은 날 176
야만 사회 181
접시빵 주세요 187
뒤돌아봐 줘서 고마워 192
표현하지 못한 마음 195
딸의 사춘기 198
아름다운 역주행 201
사랑의 메아리 206
조심스럽게 다리를 놓는 중입니다 210

4장. 함께하는 교실, 함께하는 성장
약점이 강점이 되기까지 216
모두를 위한 수업 설계 220
함께하는 교실, 함께하는 성장 224
교실에서의 존엄 234
특수학교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240
배려와 배제 사이 243
교사에게 짐이 되는 통합 교육, 어떻게 해결할까? 247
배우지도 않고 평가받는 아이들 258
부모는 다 아프다 268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272
함께 눕는 아이들 277
장애를 당당하게 말하는 아이 282
그건 정말 당연한 걸까? 285
나쁜 소식 전하기 289
선생님, 사실 힘들어요 292
모두 다 꽃이야 297
너의 내일을 응원해 299
녹음기 이전에 해야 할 고민 304
마이크를 잡은 엄마 308

에필로그 311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아이가 여섯 살이 되던 해 여름, 지옥이 시작되었다. 자폐증이 있는 아이라 계절 변화에 민감해 매년 여름이 힘들긴 했다. 하지만 그해에는 어떤 말로도 표현하지 못할 고통이 찾아왔다.
아이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유 없이 울기 시작했다. 밥을 먹을 때 잠시 멈췄다가, 다시 울었다.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울음소리는 다양했다. 끙끙 앓는 소리, 짜증 섞인 신음, 점점 커지는 울부짖음. 시간이 지날수록 내겐 모두 똑같은 고문의 소리로 들렸다.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아이에게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28쪽, 〈사이비 치료〉)

나는 이제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멋진 1등만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는 소외된 아이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는 아이들에게 나는 그 누구보다 관심을 쏟는 교사가 되었다. 시험 점수 1점이라도 올리는 것이 중요했던 내가, 소외된 사람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심성의 제자를 기르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는 내 아이들을 보는 마음으로 제자들을 만난다. 내가 만나는 학생들이 곧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자 미래이므로. (50쪽, 〈꿈이 바꾼 삶〉)

카페에서 쫓겨난 경험을 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느 날 우리 가족은 카페에서 빵을 먹다 쫓겨났다.
“손님들이 불편해하십니다. 죄송하지만 정리하고 나가 주세요.”
그렇게 큰 소리로 부르지도 않았고, 아주 짧게 부르다 그쳤을 뿐인데. 노래를 부르지 말아 달라는 부탁도 아니고 나가 달라니? 게다가 어디서든 환영받아야 마땅할 일곱 살짜리 아이였는데. 시선을 다른 데 둔 채로 온 감각을 동원해 우리를 주시하고 있던 카페 손님들, 그 공간에 가득 차 있던 쌀쌀한 공기는 두고두고 잊히지 않았다. (54쪽, 〈노래 부르는 어린이〉)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의 깨달음을 안고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자폐’라는 단어에 얽매이지 않고 아이와 함께 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다. 비장애 아이들의 부모처럼 놀이터에 가고, 여행도 다니면서 그저 자연스럽게 세상을 경험하도록 해 주고 싶다. 치료실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배우도록. 물론 여전히 사람들의 차별적인 시선과 맞닥뜨릴 것이고,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도 있겠지만, 예전처럼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나는 알고 있으니까. 치료실 안에만 있어서는 언어도, 사회 기술도 배울 수 없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은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더 많이 배운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도 우리 아이들에 대해 배워야 한다는 것을. (62쪽, 〈다섯 살의 연우에게〉)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야. 너와 함께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이 남아서 다행이야. 네가 나의 아이라는 것이 내게 더없는 행복인 것처럼, 내가 너의 엄마라는 사실이 너에게 행복이면 좋겠어. (65쪽,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딸이 생리를 시작한 해에는 여성 지원 인력이 필요해 요청했는데, 역시나 배치되지 않았다. 교육청에서는 여학생의 신변 처리를 지도할 수 없는 사회 복무 요원을 배치해 주겠다고 했다. 내가 또다시 항의하자 담당자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지금 남녀 차별하시는 건가요? 그럼 남자 특수교사는 여학생을 가르칠 수 없겠네요?”
그 일을 통해 깨달았다. 민원을 넣는 것은 힘없는 말단 직원과 시민끼리의 답이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일을 전혀 해결할 수 없는 사람끼리, 일선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끼리 물고 뜯는 싸움일 뿐임을 처절히 깨달았다. (100쪽, 〈싸우는 엄마들〉)

“선생님, 우리 연우 것은 없나요?”
“어머, 어머니… 너무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네요. 깜빡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사실 준비물이 뭐 별건 아니에요. 점토랑 색종이랑 만들기 재료 몇 개….”
선생님은 내 마음을 달래려 애쓰고 있었지만, 오히려 더 속이 상했다.
‘별거 아니라면서… 왜 우리 아이만 빠뜨린 걸까?’
대부분의 특수교육 대상자가 한 번쯤 학교에서 겪어 봤을 일이다. 예를 들면, 학급 단체 사진에서 우리 아이만 빠진 적이 있었다. 전시회에서 내 아이의 작품만 보이지 않은 적도 있었다. 현장 체험 학습이나 발표회 같은 행사에서 비장애 아이들은 듣지 않을 “참여시키는 게 괜찮을까요?”라는 질문에 답해야 했다. (119쪽, 〈실수가 아니라 차별〉)

나는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바지를 내렸다고 해도 놀랍지 않다. 내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그 장애의 특성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다만 학교가 화들짝 놀라 분리 외에는 어떠한 교육적 대처도 미흡하다는 사실이 늘 아쉽다. 이 일은 우리 아이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데 말이다. 적어도 ‘분리’는 ‘교육’이 아니라 명백한 ‘차별’이라는 것, 장애가 있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같은 공간에 있는 비장애 아이들에게도 비교육적이라는 통찰은 우리 교육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36쪽, 〈바지를 내리면 학교에 다닐 수 없어〉)

“정우가 장애인이에요?”
나는 놀랍도록 순수한 아이의 눈동자에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장애인이 아니면 대체 정우가 왜 이렇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이 아이 눈에는 정우의 장애가 안 보이나?’
그래, 어린이들에게는 정우가 보이는 거였다. 친구들에게는 정우가 그냥 정우였다. 매일 함께 지내는데 왜 불편함이 없었겠는가? 서로 적응하며 힘들고 어려운 지점이 분명 있었을 텐데, 이를 장애 때문이 아닌 서로가 지닌 다양한 특성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런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정우도 용기 내어 인사하는 법을 되찾게 된 게 아닐까? (154쪽, 〈정우가 장애인이에요?〉)

“연우는 깍두기야. 알았지?”
아이들은 연우에게 던질 때는 연우가 잘 받을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던졌고, 연우가 던지는 공은 최대한 잘 받으려 노력했다. 놀이 중간에 아이들은 ‘왼발만 사용하기’, 혹은 ‘뒷짐 지고 손 사용하지 않기’ 등으로 자신들에게 적용되는 규칙을 바꾸어 가며 놀았다. 연우의 존재가 놀이의 또 다른 규칙이 된 셈이었다. 연우도 아이들도 금세 놀이에 푹 빠져 뺨이 발그레 물들었다.
“얘들아, 깍두기가 뭐야?”
나는 정확한 의미가 궁금해서 물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설명했다. 어떤 깍두기 규칙이 있는지 서로 설명하려고 야단이었다. (156쪽, 〈깍두기 규칙이 보여 준 함께하는 교육〉)

아이의 장애를 생각하면 가슴이 뻐근해지지만, 자신으로 인해 마음 아픈 부모를 보며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할까 봐 얼른 그 마음을 지워 낸다. 우리는 그렇게 아프게 부모가 되어 가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배우고 있다. (164쪽, 〈있는 그대로의 사랑〉)

자폐 진단을 받고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냐고 질문을 쏟아 내는 내게 담당 의사가 말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그냥 똑같이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하고 키우시면 됩니다.”
그 답변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큰아이가 자폐 진단을 받은 지 10년쯤 흘렀다. 그사이 발달장애 관련 인기 드라마도 방영되고, 탈시설에 관한 논의도 많아지는 등 긍정적 변화가 보였다. 하지만 아직도 아이와 함께 갈 수 없는 곳이 많고, 아이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을 자주 만난다. 아마 아직도 많은 이들이 잘 몰라서, 익숙하지 않은 데서 오는 두려움이 커서 그런 듯하다.
아이들과 일상을 사는 나는 가정에서는 아이들의 장애가 전혀 불편하지 않다. 대부분의 시간, 장애를 의식조차 하지 않고 살아간다. 하지만 대문 밖으로 나와도 여느 아이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면 좋겠다. 의사의 말처럼 양육자가 내 아이는 다르다는 생각을 버릴 수 있을 만큼, 어디서든 어린이라는 이유만으로 환대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장애 특성이 낯설거나 불편하지 않을 만큼 누구나 장애를 마음껏 드러내고 말하는 사회, 장애 어린이도 배우고 싶은 것은 실컷 배우는 환경, 장애와 상관없이 누구나 친구가 되는 세상을 내 아이들이 누릴 날이 오기를 바란다. 장애가 있는 어린이에게도, 내 아이들에게도,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을 향유할 권리가 있으니까. (171쪽,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을 향유할 권리가〉)

“준비, 출발!”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가 인라인스케이트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출발선에 있던 아이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멀뚱멀뚱 서 있자 뒤에서 부모들이 소리쳤다.
“출발해! 앞으로 가!”
아빠의 목소리를 들은 우리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서로가 경쟁해야 할 대상인 줄도 모르고.
“손 놓고 가야지! 손 놔!”
손을 놓으라고 소리치자 불안해진 연우는 호루라기를 불었던 진행 요원에게 달려가 팔을 잡고 경기를 하지 않겠다고 소리쳤다.
“안 할 거예요! 안 할 거야!”
당황한 나는 얼른 달려가 연우를 떼 놓았다. 흥분한 연우가 트랙을 이탈해 풀밭으로 도망을 가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혼자 달리던 정우는 누나가 오지 않자 뒤로 돌아 역주행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풀밭에 있는 연우를 붙잡고 설득해 다시 경기를 하도록 했고, 결국 연우와 정우는 나란히 달려 결승선을 통과했다. …
인라인스케이트 경기에 출전해 서로의 손을 잡고 출발한 우리 아이들의 모습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앞질러 가는 것보다 함께 가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걸 우리 아이들은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01쪽, 〈아름다운 역주행〉)

“그래요, 선생님. 선생님 뜻이 그렇다면 8반 특대자 아이를 선생님 반으로 배치할게요. 하지만 선생님이 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말은 비밀로 합시다. 선생님이 너무 오랜만에 복직해서 잘 모르죠? 교직 사회 무서워요. 선생님이 그 말을 하는 순간 약점 잡히는 거예요.”
그날 8반 선생님은 통합반을 뽑았다며 속상해했다. 특수교사에게 통합 수업 시간이 얼마나 되냐고 물어보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가슴이 미어지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아이도 저렇게 만나기도 전에 미운 아이가 되겠네.’ (216쪽, 〈약점이 강점이 되기까지〉)

교사인 내가 해야 할 일은, ‘수업’이라고 부르는 공간이 누구에게나 편안히 열릴 수 있도록 개찰구를 넓히는 것이다. 보편을 우선하다 보면 오히려 더 특수한 상황이 소외되기 쉽지만, 가장 특수한 경우부터 살피다 보면 모두를 위한 교육으로 확장할 수 있다. 결국 ‘특수’를 인정하는 것은 곧 다양성을 포용하는 일이며, 이렇게 다양한 아이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과정이 우리 모두의 배움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나는 조금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 (223쪽, 〈모두를 위한 수업 설계〉)

“진혁이도 친구들처럼 발표해 볼까?”
“싫어요.”
늘 싫다는 말부터 먼저 하는 진혁이의 말은 진심이 아닐 때가 많았다. 사람을 좋아하는 진혁이의 특성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럼 친구랑 같이 발표해 볼까?”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친구가 같이 나와 주겠다고 하자 쭈뼛거리며 앞에 나왔다. 친구는 옆에서 진혁이의 그림을 들고 있고 진혁이는 더듬더듬 발표를 시작했다. 비록 영어로는 하지 못했지만, 한국어로, 자신의 언어로 자동차를 열심히 설명했다.
내 교직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진혁이가 처음으로 발표를 해서 감동한 게 아니었다. 나는 그 순간 진혁이를 바라보던 아이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아이들은 따뜻한 미소로 진혁이를 바라봤다. 마치 자신이 진혁이의 엄마라도 되는 듯한 응원의 표정이었다. (227쪽, 〈함께하는 교실, 함께하는 성장〉)

“수업을 이해하지도 못하는데 특수반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특수학교에 가서 수준에 맞는 공부를 하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교육 현장에서 자주 받는 질문이다.
통합 학급에서 배울 수 없다고 아이를 분리하면, 비장애 학생들은 장애가 있거나 능력이 부족하면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교사가 아무리 ‘존중’을 가르쳐도, 아이들은 교실에서 ‘눈으로 보고’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 장애 학생이 배제되는 모습을 보며 차별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특수학교도 마찬가지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지만, 이웃이 아닌 먼 곳의 특수학교로 다녀야 한다면, 결국 장애인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체득하게 된다. 교육에서의 분리는 결국 사회에서의 분리로 이어진다. (240쪽, 〈특수학교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몰라서 그렇다. 누구나 자신은 차별하지 않는 좋은 사람이라 여기지만, 장애에 대한 경험이 워낙 없으니 무엇이 차별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다. 왜 차별하냐고 화를 내고 다그치면 방어부터 하는 게 당연하다. 친절히 알려 주고 지원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도 쉽지는 않지만 최대한 많은 사례와 시행착오를 통한 깨달음을 공유하려 노력한다. 통합 교육의 다양한 사례와 어려움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의 경험은 최대한 공유할 것이다. 올해도 현장에서 열심히 고민하고 교육하고, 성찰하고 나누고, 공유하고 돕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45쪽, 〈배려와 배제 사이〉)

사회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저, 질문이 있는데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뭔데요, 선생님? 말씀해 보세요.”
“요즘 사회 시간에 인권을 배우고 있어요. 특수교육 대상 학생인 현규네 반에서 수업을 하는데, 현규가 갑자기 큰 소리로 그러는 거예요. ‘선생님! 저는 발달장애인인데요! 저도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거죠? 저 장애인 복지관에서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나는 미소가 지어졌다.
“현규가 참 건강한 아이네요. 자신이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건 좋은 태도예요. 그런 순간이 오면 당황하지 마시고, 현규를 칭찬해 주세요. 그리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이야기해 주세요. 자신이 가진 장점이든 약점이든 솔직하게 드러내는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고요.” (282쪽, 〈장애를 당당하게 말하는 아이〉)

“저는 발달장애인의 엄마이자 교사입니다.”
이렇게 강의를 시작하면,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청중도 고개를 든다. 아무 기대 없이, 그저 의무 연수니까 억지로 앉아 있던 교사들도 나를 본다. 그들의 눈에 스치는 놀람을 보며 나는 웃으며 말하곤 한다.
“놀라셨나요? 혹시, 장애인의 엄마처럼 안 보이나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현장의 문제가 더 가까이 보이고,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엄마로만 살아가기에도 벅찬 날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걸음을 떼게 해 주는 힘은 늘 아이들에게서 나온다. 나를 한없이 약하게도, 강하게도 만드는 우리 아이들 덕분에 나는 교사로서도, 강연자로서도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308쪽, 〈마이크를 잡은 엄마〉)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나는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배우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더 많이 배운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도 우리 아이들에 대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으니까.”

“손님들이 불편해하십니다. 죄송하지만 정리하고 나가 주세요.”
“수업을 이해하지도 못하는데 특수반이나 특수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위험한데 생존 수영 수업에 참여시켜도 괜찮을까요?”
“학원 입장도 생각해 주세요. 장애 아이가 들어오면 학부모들 민원이 심합니다.”

●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분리하면서도 그게 ‘차별’은 아니라고 하는 사회

“정우가 장애인이에요? 얘는 그냥 내 친군데요?”
“아이를 성장시키는 건 실패의 경험 아닐까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실패할 권리가 있어요.”
“수업 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기본적 권리입니다.”
“얼마든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예요. 같이 고민해 봐요.”

● 사회의 출발점인 학교에서 시작되어야 할, 모두가 배제되지 않고 함께하는 교육

교사가 아무리 ‘존중’을 가르쳐도, 아이들은 교실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수업 진도를 따라가는 능력에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장애 학생을 특수반이나 특수학교로 내모는 학교와 사회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걸까? 장애가 있거나 능력이 부족하면 배제되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까? 그 학생들이 만들어 갈 세상은 지금보다 차별 없는 곳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사회에 만연한 분리는 교육 현장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게 아닐까?
이 책은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서로에게 배움을 얻으며 성장하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중학교 영어 교사의 기록이다. 통합 교육과 발달장애에 대해 꾸준히 써 온 글들과 교사 연수 및 학부모 교육의 강연자로 활동하며 수많은 교사와 학부모를 만나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엮었다. 자신의 교육과 강연이 누군가에게는 새롭고 때로는 충격처럼 다가온다는 것을 보며 ‘어쩌면 이렇게 모를까?’ 싶다가도, 자신 또한 두 발달장애 남매를 낳고 돌보기 전에는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만 여겼을 뿐 교사와 학교, 사회와 국가의 책임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솔직한 깨달음이 이 책을 쓰게 했다.

“어린이라는 이유만으로 환대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장애 특성이 낯설거나 불편하지 않을 만큼 누구나 장애를 마음껏 드러내고 말하는 사회, 장애 어린이도 배우고 싶은 것은 실컷 배우는 환경, 장애와 상관없이 누구나 친구가 되는 세상을 내 아이들이 누릴 날이 오기를 바란다. 장애가 있는 어린이에게도, 내 아이들에게도,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을 향유할 권리가 있으니까.”
- 책 속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이자 학부모로서 ‘엄마 이수현’은 곳곳에서 높은 벽을 마주하며 절망한다. 매년 신학기를 앞둔 겨울이면 ‘내 아이가 얼마나 중증인지’를 증명해야 했고, 딸이 생리를 시작한 해에는 여성 지원 인력을 요청했지만 여학생의 신변 처리를 지도할 수 없는 사회 복무 요원을 배치하겠다는 교육청에 찾아가 싸웠다. 자신의 아이만 빠져 있는 학급 단체 사진을 보는 일도, 전시회에 내 아이의 작품만 걸려 있지 않는 일도 많았다. 현장 체험 학습이나 발표회 같은 행사를 앞두면 비장애 아이들은 듣지 않았을 “참여시키는 게 괜찮을까요?”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경험은, 육아휴직과 간병 휴직으로 7년간 휴직했던 ‘교사 이수현’을 다시 교실로 돌아가게 했다. 엄마로만 살아가기에도 벅찬 날이 많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현장의 문제가 더 가까이 보이고 더 절실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교사로서 자신이 할 일은 ‘수업’이라고 부르는 공간이 누구에게나 편안히 열리게끔 개찰구를 넓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보편을 우선하다 보면 오히려 더 특수한 상황이 소외되기 쉽지만, 가장 특수한 경우부터 살피다 보면 모두를 위한 교육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특수’를 인정하는 것은 곧 다양성을 포용하는 일이며, 이렇게 다양한 아이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과정이 우리 모두의 배움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한다.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경험이 워낙 없다 보니 무엇이 차별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한데 어우러지는 ‘통합 교육’의 현실과 가능성을 보여 주는 이 책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를 통해 차별 없는 사회의 모습을 조금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멋진 1등만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는 소외된 아이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는 아이들에게 나는 그 누구보다 관심을 쏟는 교사가 되었다. 시험 점수 1점이라도 올리는 것이 중요했던 내가, 소외된 사람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심성의 제자를 기르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는 내 아이들을 보는 마음으로 제자들을 만난다. 내가 만나는 학생들이 곧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자 미래이므로.”
- 책 속에서

 

출처: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출판사 후마니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