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추천 도서(18.3~19.2)

7월의 추천도서(1965) 광자의 탄생 - 류멍시

'-') 2018. 7. 18. 10:00


1. 책 소개


동양 사유의 빛이 되어준 광자의 계보학!

『광자의 탄생: 중국 광인의 문화사』는 중국 문화사에서 좀처럼 담론화되기 어려운 ‘광狂’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각 시대별 ‘광’의 존재와 그 형상을 보여주는 책이다. 중국 문화 속의 광자정신은 크게 두 가지 맥락으로 짚어볼 수 있다. 하나는 ‘광’과 ‘견?’에 대한 인식과 개념을 자기만의 독자적인 시각으로 풀어낸 인물들이 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다른 관점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광자의 독특한 삶을 몸소 실천해 보여준 인물들이 있어왔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중국 문화 속에 면면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광자의 전통을 발굴하여 역사적인 맥락에 따라 정리한 이 책을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저마다의 느낌대로 광자정신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교보문


2. 저자


저자 류멍시는 중국예술연구원 종신연구원, 중국문화연구소 소장, 중앙문사연구관 관원. 1941년 출생으로 런민대 언어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지금까지 주로 사상문화사, 명청 문학, 근현대 학술사상 분야를 연구해왔다. 주요 저서로 『학술사상과 인물學術思想與人物』 『홍루몽과 백년중국紅樓夢與百年中國』 『중국현대학술요략中國現代學術要略』 『국학과 홍학國學與紅學』 『천바오전과 호남 신정陳寶箴和湖南新政』 『천인커의 학설陳寅恪的學說』 『당대중국의 전통과 현대의 변주當代中國傳統與現代的變奏』 등이 있으며, 일찍이 『중국현대학술경전中國現代學術經典』(35권)을 편찬한 바 있다.

출처 : 교보문


3. 목차


한국어판 서문 
머리말 

1장 공자의 광견사상, 그 혁신적 의의 
2장 진한대의 ‘올곧은 광狂直’과 ‘미친 척 가장하는 광佯狂’ 
3장 위진 지식인의 ‘방탄한 광誕狂’과 ‘이성적 오만理傲’ 
4장 죽림에서 전원을 거쳐 다시 선림禪林으로 
5장 이백과 당대의 시광詩狂 
6장 소동파, 시광詩狂과 주광酒狂 
7장 이탁오, “호걸은 반드시 광견에서 나온다” 
8장 왕양명의 ‘광자의 흉금’과 ‘성인의 광聖狂’ 
9장 광을 ‘용덕龍德’으로 여긴 원굉도의 설 
10장 소리 없이 종적을 감춘 청대의 광자정신 
11장 청말 민초에서 5·4까지: 광의 돌발적인 등장과 쇠퇴 
12장 광의 두 가지 금기 : ‘광망이 위세를 떨치다’ ‘온 나라가 광기에 휩싸이다’ 

후기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출처 : 본문 중에서

4. 출판사 서평


중국판 ‘천재와 광기’ 
동양 사유의 ‘빛’이 되어준 광자狂者의 계보학
 

“이 작은 책은 바로 공자의 광견사상을 풀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이 책에서 공자의 광견사상이 중국사상사에서 혁신적이면서도 혁명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특히 ‘사士’계층과 진한대 
이후 사회의 문화적인 소양을 갖춘 인물들의 “광자정신”은 사실상 인문과 예술의 창조적인 원천이 되었다. 광자정신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사실은 바로 이것이다. 중국 역사에서 광자정신이 떨쳐졌던 때는 대부분 인재가 배출되고 창의성이 용솟음쳐 인문과 예술의 정신적인 성과가 고양되는 시기였다. 그러나 일단 광자들이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 채 숨죽이고 있거나 견자들이 모습을 감추게 되면 사회는 점차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억압받는 지식인들이 ‘사士’로서의 빛을 잃고 점차 창조적인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도 서양의 사상가들이 광증을 의미하는 ‘풍전?癲’과 천재를 함께 연관 지어 생각한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_한국어판 서문 

책소개 

유가와 도가와 불가가 지배적인 동양사유에서 그 이외의 흐름들은 ‘부정형’으로 정의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유가가 아닌 것이란 식으로 말이다. 흔히 말하는 지류, 일탈, 말류, 그리고 오랑캐의 것이 유불선을 벗어난 일체의 것에 부여된 다양한 지위들이다. 그러나 중국문화사 또한 유불선의 길항만으로 유지되어온 것은 아니다. 큰 흐름 밑에는 좀 더 천천히 흐르거나 더 맑거나 흐린 부분도 있게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소용돌이의 원인이 되는 역류의 기운은 특별하다. 기 거스름의 기운생동은 때로 중심 물결과 만나 거대한 소용돌이나 와류를 일으키기도 한다. 중국사상사와 문화사에서 그러한 ‘역류’의 움직임은 흔히 ‘광狂’으로 지칭되어 왔다. 이 책 『광자의 탄생』은 바로 그 ‘광狂’의 존재양태를 최초로 통사적으로 추적해서 재구성해낸 역작이다. ‘경敬’의 개념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중국문화를 조망한 것이 바로 이 책의 미덕이자 독창성이라고 할 수 있다. 

‘광狂’의 철학자들과 실천가들 소개 

아 책은 크게 두 가지 맥락으로 짚어볼 수 있다. 하나는 ‘광狂’과 ‘견?’에 대한 인식과 개념을 자기만의 독자적인 시각으로 풀어낸 인물들이 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다른 관점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광자의 독특한 삶을 몸소 실천해보여준 인물들이 있어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중에는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준 이른바 광자의 인식을 가지고 광자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들도 있었다. 
공자는 일찍이 『논어』에서 네 가지 품격, 즉 중행中行·광狂·견?·향원鄕原을 언급하면서 ‘광’과 ‘견’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그러나 공자가 지향했던 이상적인 인간상은 어디까지나 ‘중행’이었고, ‘광’과 ‘견’은 공자 사상의 핵심인 ‘인仁’과도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다행히 맹자가 당시에 공자의 의중이 어떠했는지를 제자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광견사상도 재조명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후 ‘광견’에 관한 담론은 역사적인 변천과정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범엽은 공자의 광자정신을 도입부에 인용하면서 독자적인 시각으로 그 의미를 풀이했다. 중도에 부합되는 완벽한 사람이 되기 어려운 현실에서는 각자의 성향에 따라 추구하는 바를 달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편향되지만 걸출한 인물이 배출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따라서 범엽의 이 말은 사람을 판단할 때 섣불리 정형화 된 기준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탁오, 원굉도, 장학성으로 이어지는 광狂의 재해석 

성인만이 누구나 꺼려하는 광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독려해줌으로써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긍정적으로 발현시켜주는 사람이라고 한 것은 이탁오가 공자의 생각을 누구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진정한 광자란 진취적인 실천력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행동과 말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 또한 눈여겨볼 대목이다. 
광전의 품격을 높이 평가했던 원굉도가 칭한 ‘용덕지광龍德之狂’은 겸제천하兼濟天下를 기탁한 광이다. 원굉도는 사인들의 ‘광’ 가운데 ‘태연자약한 취향과 원대한 견식의 광자’가 바로 증점曾點 이래 공자가 지향했던 광자라는 점을 강조했으며, 이른바 위진 이후 노장사상의 영향으로 등장한 ‘오만방자한 광자’는 행동을 제멋대로 일삼는 자들로서 공자가 관심을 기울였던 ‘광’과는 거리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정주程朱가 ‘광’과 ‘성’의 긍정적인 연관성을 보지 못했다면 왕양명은 ‘광’과 ‘성’의 합일 가능성을 전제로 ‘광’이야말로 ‘성’이 될 수 있는 필수요건이라고 보았다. 마침내 왕양명은 정신적인 자아초월의 단계를 거쳐 ‘성광聖狂’에 도달한다. 그 역시 이탁오와 마찬가지로 광자와 견자를 바라보는 성인의 시각과 그들에게 합당한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장학성은 공자가 제시한 ‘사품취향四品取向’에 위광자僞狂者, 위견자僞?者가 끼어들어 모두 ‘육품취향六品取向’이 되었다는 점을 언급했으니 사람의 복잡다단한 품성을 꿰뚫어 본 실로 날카로운 분석이 아닐 수 없다. 
장타이옌은 광증과 사상을 각각 기선과 화물에 비유하며 사상이 있는 광증을 높이 평가했고, 광증이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언설들은 때로는 정곡을 찌르는 예리함으로 간담을 서늘하게 했고 때로는 죽비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들어본 듯한 말이지만 들어본 적이 없고 떠올려본 듯한 생각이지만 입으로 뱉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광狂은 어떻게 중국 지식인들의 내면에 영향을 미쳤는가 

역대 사상가들 가운데는 ‘광’에 관한 언설을 통해 간혹 유가의 권위에 도전하고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기존의 사유체계를 뒤흔든 경우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심층적인 재해석을 통해 공자가 제시한 광견사상의 가치를 제고시키는 데 기여했다. 중국 역대의 광자정신은 중국 지식인들의 정신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 유생과 문사들의 ‘광’의 전통”이 ‘양지의 오만’으로 불리는 신유가의 심리구조 형성에 일조를 했을 것이라는 위잉스余英時의 주장에서도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광자정신’에 담긴 메시지는 오늘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보더라도 음미해볼 만한 점이 적지 않다. 
광자는 공통적으로 ‘고집이 세고 사상이 독립적이며 시류를 따르지 않으려는 성품’을 가졌다. 그런 기준으로 보았을 때 지금은 좀처럼 광사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이다. 그래서 현대를 무광無狂의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옮긴이는 ‘광’을 빛光과 이상, 더 나아가 희망으로 보았다. 빛과 이상, 희망을 잃은 개인, 사회, 국가는 미래를 내다볼 수 없다. 침체된 이 시대에 희망을 소생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광자와 견자의 존재가 더 절실히 요구되는 지금이다. 
‘성聖’이 가상의 목표라면 ‘광狂’과 ‘견?’은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전향적이다. ‘광’과 ‘견’의 핵심은 바로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그 자세에 있다. 우리는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거치면서 현상을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하게 된다. 그러나 인식과 판단에 머물러서는 지행합일을 이룰 수 없다. 마치 왕양명이 지행합일론을 주장하면서 실천하지 않으면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고 설파했듯이 ‘광’과 ‘견’에는 매우 적극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중도’와 ‘향원’이 서로 쉽게 결탁될 수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데 반해 ‘광’과 ‘견’은 오히려 각각 ‘함으로써 실행하는 실천’과 ‘하지 않음으로써 실행하는 실천’의 두 가지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그러한 광기와 견기가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내적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실천을 전제로 하지 않은 ‘양지의 오만’은 성립되지 않으며 오히려 ‘양지의 기만’이 될 수 있다. 실천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완만하게라도 변화의 실체를 경험할 수 있다. 지식인으로서 사회를 점진적으로라도 변화시키려는 마음가짐과 그에 상응하는 실천력으로서의 ‘일분 광一分狂’의 위력은 자못 크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머리말에 나오는 「완계사」의 마지막 한 구절 ‘선비여, 일분의 광만은 부디 남겨두시길’이란 말은 참으로 산뜻하게 정신을 뒤흔드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창의력의 불씨, 창조의 원동력 

또한 ‘광’의 정신은 무엇보다 창의력의 불씨가 되고 창조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광기’를 가진 인물들이 지탄받거나 소외되는 것은 비단 전통사회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광기’를 지닌 인물들이 자신의 재능을 주체하지 못해 경박스럽게 굴었던 것이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들을 조롱하고 비난하다 마침내 사회적으로 매장시켜버리는 사회분위기도 경망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패거리의식이나 집단주의적 행동양태에서도 드러나듯이 자기 목소리를 내거나 남과 다른 개성을 보이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배제 당하곤 했다. 마치 광적인 행태에 대해 사람들이 맹호나 독사로 규정하고 따돌려버린다는 이탁오의 지적처럼 말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어릴 때부터 꼬리를 감추고 몸을 사리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면 된다는 왜곡된 경쟁심리만 부추기게 된다. 우리 사회가 점차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다름에 대한 배타성은 여전히 공고하다. 그런 측면에서 창조적인 에너지를 가진 ‘광인’들이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로의 변화가 더욱 요구되는 시점이다. 

왜 ‘미치광이’가 아니고 ‘광자’인가 

역자들은 이 책을 번역하면서 ‘광자狂者’를 과연 어떻게 번역하는 것이 좋을까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단히 ‘미치광이’라고 번역하면 좋겠지만 그 말로는 ‘광자’의 풍부한 뜻을 담아내기에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한 가지로 고정된 의미의 단어보다는 한자어를 그대로 살려 글자가 담고 있는 함축성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 
저자는 중국문화 속에 면면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광자의 전통을 발굴하여 역사적인 맥락에 따라 정리를 했다. 산만하게 흩어져있던 ‘광’에 관한 구슬들을 일일이 찾아내어 중국문화의 또 다른 맥락으로 꿰어내었으니 그 공이 지대하다고 하겠다. 작지만 참으로 심원한 의미를 담고 있는 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광’의 모습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개념 또한 다소 모호하여 논리적으로 ‘광’을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그러나 각 시대마다 ‘광’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독자들은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 그대로를 따라가며 음미하고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다. ‘견인견지見仁見智’란 말이 있듯이 저마다의 느낌대로 광자정신에 대한 현대적인 재해석이 가능하리라.

출처 : 글항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