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추천도서 (4889)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1. 책소개
“울지 마, 우리는 동무잖아”
이 지구에 더는 없는 목소리의 유랑인 허수경의 마지막, 유고 시집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출간
나는 그대가 먼저 간 길을 아주 오래 보다가
이렇게 쓸지도 몰라
저녁은 갑자기 오더니 어둠은 천천히 오시네, 라고
떠난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착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라고
오래된 시간의 영혼을 노래하는 시인이자 한국 서정시의 독보적인 존재 허수경.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하고 『혼자 가는 먼 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등을 펴내며, 동서문학상, 전숙희문학상, 이육사문학상을 수상한 그의 유고 시집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이 난다시편 9번으로 출간된다. 2018년 시인이 세상을 떠나고 8년. 6월 9일 시인의 생일에 그의 유고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을 내어본다. 그간 오롯했던 시인의 침묵 가운데 들어보게 된 42편의 반가운 시의 메아리다. 시인의 편지를 대신하여 시인의 산문 세 편을 얹었으며 표제작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Should You Go Before Me)」을 소제(Soje)의 번역으로 영문 수록했다. 2018년 이육사문학상 수상 당시, 김민정 시인에게 대독을 부탁한 수상 소감이자 시인이 지상에 친필로 남긴 마지막 시인의 말을 유고 시집의 머리로 삼았다.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한 장 한 장” 들을 수 있게 된 귀하디귀한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이면서 그가 지상에 남기는 마지막 시집이다.
총 3부에 나뉘어 엮인 이번 시집은 그가 번호를 매겨둔 시의 순서를 유언으로 알고 따르는 데서 편집의 기본 방향을 삼았다. 1이라는 숫자가 붙어 있던 그 첫번째 시 「공항에서」의 마지막 구절이라 하면 “나는 이 세상 속, 어떤 예쁜 사람이 되어 사라져간다”인데 어쩔 수 없이 시인의 마음속으로 기어들어가 웅크리게 되는 우리를 맞닥뜨리게도 된다. “당신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고/목소리도 마치 전생의 무늬 같다/취기만이 당신인 것처럼 곁에 앉았는데/많이 잘해주지 못해서 마음은 비었고/많이 안아주지 못해서 손도 비었다/꼭 내가 당신을 배반한 것 같다”(「공항에서」) “그녀의 시를 들으면 다시 슬퍼져 도통 바깥으로 나가지 못할 것 같아”서. 그는 죽은 사람일까, 떠난 사람일까. 어느 하루쯤은 “떠난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착각”할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떠난 사람으로 착각하며 하루를 보내도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시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인의 생일에 선을 보이게 된 이 유고 시집을 필두로 올 10월 3일 시인의 기일에는 그의 고향 어딘가에 허수경 나무를 심을 예정이다. 이제야말로 온전히 그를 쉬게 해줄 때가 아닌가 해서다. 평생 나무 곁에 살던 그였으니 이제 나무로 다시 태어나야 할 그가 아닌가 해서다. “뭔가 다 나간 자리에도 남아 있는 것은 언제나 있었다/몰랐을 뿐이었다//새들은 오늘 눈으로 목을 축이다가/아직 가지를 덮어주고 있는 푸른 나무 속으로 깃들어서는/따뜻하고 견고한 알을 낳을 것이다”(「종이 눈꽃」)
출처: 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허수경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가 있다. 동서문학상, 전숙희문학상, 이육사문학상을 수상했다. 2018년 10월 3일 뮌스터에서 생을 마감했다.
출처: 본문중에서
3. 목차
시인의 말 005
1부 우리 모두 다만 기어이 갈 곳으로 떠난다
공항에서 010
듣는 책 012
독일 남쪽 마을에서 쓰는 꿈 014
여행 꿈 016
나의 코끼리 꿈과 코끼리의 내 꿈 018
박하의 나날 024
하튜사 연가 026
사과는 떨어지고 029
푸른 계절이 왔네 032
눈 온다 034
시 번역 036
그녀가 들려주는 시 038
2부 울지 마, 우리는 동무잖아
동화책 시절 042
얼음세계 044
간고등어 046
퇴비통 048
태양약국 050
위장의 풍경 052
잎새라는 이름 054
손금 056
포도주 한 병 059
그해 봄밤에 나는 십 년 넘어 가지 못한 아버지의 무덤을 생각했네 060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062
꽃 지는 날 067
진주라는 곳 068
3부 이제 시 아닌 다른 겹의 시간에게
누군가 물었다 072
탕, 탕 074
데워진 술 한잔 075
흰 호텔 2016년 076
토끼는 내 말을 모른다 078
봄꿈 081
글로벌 유령 082
지난여름아 084
그 도시의 옛 이름을 불러보면 086
산책 정물화 089
냉동 새우 090
종이 눈꽃 092
늙어가는 마을 094
저녁의 미래 096
안는다는 것 097
이 시는 098
허수경의 산문
볼 수 없을 거라는 공포 102
이 지상의 어느 마을 105
시인이라는 고아 112
Should You Go Before Me-Translated by Soje 121
출처: 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그러다 언제쯤
당신과 나는 누군가가 듣고 있는
이 지구에 없는 목소리의 유랑인이 될 거다
아무도 건설해본 적 없는 국도를 걷는 아픈 고아,
꿈꾸는 귀가 듣는 발자국일 거다
_「듣는 책」부분
눈 온다
눈 덮여 막힌 길 속에서 잔인하게도
나타나지 않았던 여관을 찾았던 그날처럼
후회의 나날을 베개 삼아 베고
숨죽여 울던 여관의 처마처럼
_「눈 온다」부분
얼굴에 열린 불같은 세계 그러나 그 세계가 그렇게 격렬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의 시를 듣는데 다시 슬퍼져 도통 바깥으로는 나갈 수 없을 것 같아 마르고 있는 저 빨래를 걷으러 나갈 수 없을 것 같아 그녀의 얼굴을 다시 그려볼 수 없을 것 같아 그녀의 목소리가 걸린 하늘을 다시 디뎌볼 수 없을 것 같아
_「그녀가 들려주는 시」부분
파랑
곁에서 쉰다면
좋겠네
누군가가 있었던 자리는
연인, 숨소리로
뜨문뜨문
아련가련
뜨문뜨문
검은 빛바위, 숨처럼
잦아들겠네
_「퇴비통」부분
별이 새처럼 지저귀는 언덕에서
잠드는 해도 잎새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면
잠든 해 별의 먼지 아래
잎새라는 이름을 가진 당신이 있다면
얼마나 순한 눈썹을 당신은 가지고 있을까
_「잎새라는 이름」 부분
인간의 손금이라는 말을 들으면 쓸쓸해진다
아, 독일인 내 남편은 알까 싶어 손금, 알아요? 라고 물으면
빙긋 웃는 그의 손금 위에도 쓸쓸함 그리고 따스함이 언 서리꽃길처럼 있다
쓸쓸하지 않은 따스함을 당신은 보셨는가?
따스한 쓸쓸함을 당신은 보셨는가?
따스함이 쓴 쓸쓸의 안경
서럽고 따뜻하고 흐릿하다
_「손금」 부분
아마도 그 병 안에 우는 사람이 들어 있었는지
우는 얼굴을 안아주던 손이 붉은 저녁을 따른다
너는 아주 돌아올 듯 망설이며
우는 자의 등을 방문했다가 막 떠났는데
낡은 외투를 그의 등에 슬쩍 올려주며 막 떠났는데
그때 그는 네가 다녀간 걸 눈치챘을까?
그랬을 거야,
저렇게 툭툭, 털고 다시 가잖아
오므려진 손금처럼 어스름하고 가냘픈 길
그 길, 부셔서 마침내 사윌 때까지 보고 있어야겠네
이제 붉은 물은 내 손금 속에서
해, 달, 바람의 뒤안이 되어 흐르겠다
_「포도주 한 병」 전문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아직 뭔가를 쓸 수 있는 구십이라는 나이가 나에게 있다면
나는 그대의 무엇을 가장 마지막까지 쓸까
_「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부분
출처: 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ㆍ 허수경 시인을 추모하며
남성민중문학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가족 민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여성성으로의 연대를 새로 시작하기 위해, 오직 당신만의 이야기를 위해, 살아서 죽음을 추억하기 위해, 떠남으로 돌아오기 위해, 떠나고 돌아오고 다시 떠나고 바리공주처럼. -김혜순
그대마저 삼켜버릴 듯 쓸쓸하던 그대의 노래들. 잘 가라 노래를 발굴하다가 노래가 된 한 방울 눈물아. -함민복
오늘은 여쭙고 싶은 게 있지만 여쭈지 않아야겠어요.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을까봐서요. 아니, 제가 너무 쉽게 답을 찾을까봐서요. 늘 그러셨듯 씩씩하시구요. -김소연
이번 생은 당신이 있어서 참 좋았네요. 봄에 소풍 가자는 약속 말고 몇 개 더 약속할 걸 그랬어요. 많으면 남겨도 되니까요. 남으면 들여다보면 되는데요, 시로 다시 와주었으니 먼저 간대도 갔대도 믿지 않을래요. -이병률
“문학을 하면서 단 한 번 만났으나, 시를 읽으면 언제나 나의 언니 같았던 사람” -진은영
메아리를 숨긴 유월 숲입니다. 은행잎은 고생대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자음과 모음으로 갈라지는 목소리로도 정확히 한 사람을 부를 수 있는 기적이 시작된 그때부터요. -신용목
어느 언덕에선가 제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흔들린다면, 그 순간 저를 관통한 무언가를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건 모두 선생님의 기척. -안희연
눈 온다! 누나, 겨울이 온다. 비 온다! 누나, 여름이 온다. 시 온다! 누나, 시가 온다. 누나가 있다. 시인이 있다. 떠올릴 때마다 다시 있다. 수경이 있다. -오은
저는 아직 사는 일도 무섭고 죽는 일도 무섭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울음을 울게 해야 한다는 선배의 말을 지금도 떠올립니다. 내년 봄에도 내년 여름에도 우리의 울음은 잘 있겠지요? 또 얼마나 힘들까, 싶지만. -박준
누구에게든, 누구를 위해서든, 인간이란 언제나 기별의 기척일 뿐이라서. 만난 적 없어도 늘 그리워요! -유선혜
*허수경 시인을 그리워하는 목소리 일부를 전합니다. 마음을 함께해준 모든 시인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ㆍ 난다시편을 시작하며
손에 쏙 들어오는 시의 순간
시를 읽고 간직하는 기쁨, 시를 쥐고 스며보는 환희
1.
2025년 9월 5일 출판사 난다에서 시집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시를 모아 묶었음에 ‘시편(詩篇)’이라 했거니와 시인의 ‘편지(便紙)’를 놓아 시집의 대미를 장식함에 시리즈를 그렇게 총칭하게도 되었습니다. 난다시편의 라인업이 어떻게 이어질까 물으시면 한마디로 압축할 수 없는 다양한 시적 경향이라 말을 아끼게 되는 조심스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시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또 모든 말이 시의 언어로 발산될 수 있기에 시인에게 그 정신과 감각에 있어 다양함과 무한함과 극대화를 맘껏 넘겨주자는 초심은 울타리 없는 초원의 풀처럼 애초부터 연녹색으로 질겼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단호함은 있습니다.
2.
난다시편의 캐치프레이즈는 “시가 난다winged poems”입니다. 날기 위해 우리가 버려야 할 무거움은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날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가벼움은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바람처럼 꽃처럼 날개 없이도 우리들 몸을 날 수 있게 하는 건 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사랑처럼 희망처럼 날개 없이도 우리들 마음을 날 수 있게 하는 건 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여 온전히 시인의 목소리만을 담아내기 위한 그릇을 빚어보자 하였습니다. 해설이나 발문을 통한 타인의 목소리는 다음을 기약하자 하였습니다. 난다는 건 공중에 뜰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의 말이니 여기 우리들 시를 거기 우리들 시로 그 거처를 옮김으로 언어적 경계를 넘어볼 수 있겠다는 또하나의 재미를 꿈꿔보자 하였습니다. 시집 끝에 한 편의 시를 왜 영어로 번역해서 넣었는가 물으신다면 말입니다. 시인의 시를 되도록 그와 같은 숨결로 호흡할 수 있게 최적격의 번역가를 찾았다는 부연을 왜 붙이는가 물으신다면 말입니다.
3.
난다시편은 두 가지 형태의 만듦새로 기획했습니다. 대중성을 담보로 한 일반 시집 외에 특별한 보너스로 유연성을 더한 미니 에디션 ‘더 쏙’을 동시에 선보입니다. “손에 쏙 들어오는 시의 순간”이라 할 더 쏙. 7.5×11.5cm의 작은 사이즈에 글자 크기 9포인트를 자랑하는 더 쏙은 ‘난다’라는 말에 착안하여 디자인한 만큼 어디서든 꺼내 아무 페이지든 펼쳐 읽기 좋은 휴대용 시집으로 그만의 정체성을 삼았습니다. 단순히 작은 판형으로 줄여 만든 것이 아니라 애초에 특별한 아트북을 염두하여 수작업을 거친 것이니 소장 가치를 주기에도 충분할 것입니다. 시를 읽고 간직하는 기쁨, 시를 쥐고 스며보는 환희. 건강하게 지저귀는 난다시편의 큰 새와 작은 새가 언제 어디서나 힘찬 날갯짓으로 여러분에게 날아들기를 바랍니다.
[ 시가 난다 WINGED POEMS ]
001 김혜순 시집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
002 황유원 시집 일요일의 예술가
003 전욱진 시집 밤에 레몬을 하나 먹으면
004 박유빈 시집 성질머리하고는
005 정일근 시집 시 한 편 읽을 시간
006 곽은영 시집 퀸 앤 킹
007 채길우 시집 아버지를 업고
008 문혜진 시집 무증상 환자
009 허수경 시집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010 고명재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시절 (근간)
출처: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