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추천도서 (4130) 공항으로 간 낭만 의사
1. 책소개
의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7000만 여행객의 주치의, 인천공항 의료센터장 신호철의 20년 외길, ‘공항 의사’ 이야기
〈유 퀴즈〉 출연 ‘공항 의사’가 방송에서 못다 말한
인천국제공항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 그리고 ‘의사의 길’에 대한 질문과 대답.
연 7000만 여행객(2023년 기준)과 7만여 상주 직원의 의료 관제탑 인천국제공항 의료센터,
그곳에선 날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모처럼의 해외여행, 아프지 않고 싶다면?
문신투성이 사내가 자기 배 속에 담아 온 위험한 물건?
그 ‘응급피임약 커플’ 은 ‘등짝 스매싱’? ‘다정히 손잡고’?
하루 2만 보를 걷는 노동자에게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라고?
의학 교과서에는 절대 나오지 않는 ‘꿀물 타기 좋은 온도’?……
드라마 제작 확정! _ 〈트레인〉 〈미씽2, 그들이 있었다〉 제작사
출처: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 신호철
대한민국의 의사, 가정의학과 전문의. 인천국제공항 의료센터장.
‘인류에 봉사’하겠다고 의학에 입문하지는 않았으나
하다 보니 ‘인류를 사랑’하게 되었고,
‘안정된 전문직’을 얻으려 의사가 되지는 않았으나
하다 보니 항공 의학 전문가라는 ‘전문직 중의 전문직’을 갖게 되었다.
장학생으로 의대에 들어갔지만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을 당했고,
군의관이 아닌 의무병으로 군복무 후 사면 복권, 등록금 내고 학업을 마쳤다.
2005년 ‘공항 의사’ 일을 시작했다가 힘들어 이직하려 했지만
절반은 운명, 절반은 의리로 눌러앉게 되어,
하다 보니 누구보다 일터를 사랑하는 의료센터장으로 20년째 근무해 오고 있다.
자타공인 ‘음주성 비만자’로 세 자릿수 몸무게를 앞두고 헬스와 배드민턴에 입문하여
자타공인 ‘몸짱, 동호인 A조 선수’가 되었다.
은퇴 후엔 ‘운동하다 쓰러지면 심폐소생술을 해 주는 체육관’ 관장이 될 것을 꿈꾸며
동갑내기 아내와 서른여섯에 낳은 딸, 마흔둘에 나온 아들과 함께 오순도순
티격태격 잘살고 있다. 모든 성취와 보람의 원동력은 칭찬과 인정욕구라 믿으면서
날마다 조금씩 더 칭찬받고 더 인정받는 좋은 의사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출처:본문중에서
3. 목차
여는 글 ‐‘유 퀴즈’가 불러낸 공항 병원의 이야기들
1부. 의사가 공항으로 간 까닭 _ ‘3년 후 벤츠’에서 ‘20년째 공항살이’까지
비행기 타러 오신다고요? 저는 만나지 말고 가세요! 17
‘빨간 전화’를 받는 가정의학 전문의 21
군의관이 아니라 의무병 출신? 26
신속, 정확, 질서, 이왕이면 친절! 33
출근길 새벽에 바치는 인사 39
2부. 인천국제공항의 생로병사 _ 국제공항은 날마다 응급 상황
약을 놓고 왔어요! 47
목에 걸린 소시지 54
탑승해도 될까요? 60
우리 애 좀 살려 주세요! 66
비켜 주세요, 플리즈! 71
가느냐 돌리느냐 내려앉느냐 76
사람은 물고기가 아니랍니다 83
사랑한 후에 94
아이슬란드 화산의 ‘나비 효과’ 99
아이들은 원래 갑자기 아프다 105
보디패커를 잡아라 111
출생지가 인천공항? 117
미국 발 베트남 행 비행기에서의 안타까운 죽음 124
멀미의 추억, 앰뷸런스 블루스 128
오후 3시의 징크스와 ‘조용한 VIP’ 136
‘빨간 전화’와 양치기 소년 141
3부. 알면서도 모르는 항공 질병 이야기 _ 고도 10km 상공에서 아프면 어떡하지?
하품을 하실까요, 껌 좀 씹으실까요? _기압 중이염 147
기내에서는 술을 끊고, 조금은 어수선하게 _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 153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대가를 소액결제하고 싶다면? _시차 증후군 158
방금 내게 무슨 일이? _실신 164
‘목신(Pan)’이 찾아오면 딴청을 피우세요 _ 공황장애, 비행공포증 170
질병 예방은 다다익선 _풍토병과 전염병 178
우주 방사선과 승무원 산재 _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질병 185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건강검진? _항공 종사자 건강검진 189
4부. ‘공항 의사’가 사는 세상 _ 꿀물 타기 좋은 온도를 아시나요?
액땜이냐 조짐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197
보이지 않는 사람들 200
인천공항 ‘터미널’의 ‘톰 행크스’들 206
이주 노동자의 꺾여 버린 꿈 213
‘공항 졸업생’에게 건네는 의료센터의 ‘졸업장’ 218
그 많던 원주민 환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222
팬데믹 시절의 공항 풍경 228
‘선한 사마리아인’을 위하여 233
피어라 들꽃 238
공항 ‘닥터’의 영어 울렁증 243
집돌이와 방구석 여행가 248
“뭐 없냐고? 살려는 드릴게.” 254
시험 없는 공부의 참을 수 없는 즐거움 261
아프십니까? 저도 아픕니다 266
편리함 뒤의 고단한 노동들 273
공항 활주로의 날지 않는 비행기 앞에서 277
아실 만한 분이 그러면 되겠습니까? 282
많이 걸으라고요? 나더러? 289
닫는 글 ‐어느 전공의의 편지 298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이 책은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내 가슴속에서 불러낸 공항 병원의 이야기인 셈이다. 나에게 이 책을 쓰는 과정은 삶과 죽음, 일과 사랑, 그리고 의사의 길에 대한 수많은 질문과 대답의 연속이었다. 그러니 한편으로 이 책을 ‘신 퀴즈 온 더 공항’이라 부를 만도 하겠다. _9쪽
공항 의사로서 20년 경험은, 이곳 공항이 어떤 사람에게는 삶의 종착지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 또한 알려주었다. 그것이 나의 부주의로부터 비롯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비장한 긴장감이 있다. _ 25쪽
남자 의사들은 대부분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로 병역을 마친다. 그런데 나는 육군 야전부대의 의무병 출신이다. 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아니, 왜?” _26쪽
나이 서른 먹은 놈이 의대를 다니는데 돈은 없고, 아내가 대학 선배들을 불러 모아서 거실에다 인형을 잔뜩 쌓아 놓고 같이 눈알을 붙이는 걸 보면 가슴에서 불이 났다. _ 31쪽
비행 중인 항공기에서는 인위적으로 기압을 높여 승객들에게 안락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엔진으로 빨아들인 공기를 정화하고 압축하여 객실로 공급한다. 이렇게 하는 것을 ‘객실 여압cabin pressurization’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비행기를 타면 항상 에어컨이 틀어져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이 객실 여압 장치가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_ 62쪽
영종도에 있는 캠핑장이나 펜션 등에서 귀를 부여잡고 의료센터로 달려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날벌레부터 개미, 작은 지네가 외이도의 좁은 통로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꿈틀대고 있는 것을 목격하면 이경을 쥔 내 손에도 닭살이 돋는 경우가 많다. _85쪽
응급피임약의 이런 부작용은 약을 복용하는 여성이 혼자 겪어 내게 된다. 상대 남성도 사랑하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심적인 불안과 육체적 고통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_97쪽
전신에 문신을 한 피의자는 처음에는 실실 웃으며 내가 시행하는 진찰에 순순히 응하는 듯했다. 그런데 막상 방사선 촬영실에 들어가게 하자 온갖 욕설을 내지르며 거칠게 반항하기 시작했다. “개XX, 내가 꼭 죽여 버리겠다. 얼굴 기억해 둘 거다. 밤길 조심해라!” _115쪽
어쨌거나 체중 2.8kg의 그 사내아이는 출생지가 ‘인천공항 환승구역 탑승구 앞’이 되었다.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기를 바란다. _121쪽
요식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의 손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손등이고 손가락이고 온통 크고 작은 봉합의 흔적과 화상 자국이 가득하다. 이분들도 나처럼 힘들고 바쁜 오전 시간에 온통 집중을 한 후 오후의 고단함을 이겨 내며 일하다가 잠시 잠깐 집중력을 놓쳤을 것이라는 생각에, 최대한 흉터가 남지 않도록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봉합해 드리는 게 나의 임무다 _138쪽
내 진료의 마지막은 환자를 안심시키는 것이다. 단순히 괜찮다는 말만 가지고는 불안해하는 환자를 충분히 안심시킬 수 없다. 이런 증상의 발생 원인과 주로 발생할 만한 상황들을 인지시키고 그런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법에 대해 교육하는 것까지를 포함해야 한다. _167쪽
공항터미널은 공항에서 지내는 노숙인들에게는 쾌적한 쉼터를 제공하는 고마운 공간이기도 하다. 출퇴근하면서 이 구역을 지날 때마다 노숙인들을 유심히 보곤 한다. 전과 비교해 행동이나 움직임에 특별한 이상 징후가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공항에 살다시피 하는 노숙인들은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어차피 공항 의료센터로 오게 된다. 그러니 나에겐 그들이 언젠가 진료실에서 만나게 될 예비 환자이기 때문이다. _201쪽
처방된 약을 잘 복용하지 않고 오는 환자분들에게 종종 나의 약상자를 보여주며 웃으면서 말한다. “저도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랍니다.” _271쪽
나의 만행을 CCTV로 지켜보고 있던 상황실 직원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아실 만한 분이 이러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이 한마디에 나는 쥐구멍에도 숨지 못하는 초라한 쥐 한 마리가 돼 버렸다. 금연을 결심했다. _286쪽
“선생님, 제가 공항에서 청소 일을 하면서 하루 2만보가 넘게 걸어 다닙니다. 얼마나 더 걸어야 하나요? 그리고 밥도 직원식당에서 나오는 대로 먹어야지 골라 먹을 형편이 아닙니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밀린 집안일도 하고 나면 지쳐서 쓰러지기 일보직전인데 운동을 더 하라니요.”
환자의 원망 섞인 말투가 내 심장에 비수처럼 날아들어 왔다. 일순간 정적이 흐르고 나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 버렸다...... 내 앞에 앉아 진료를 받는 환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교과서에 나온 몇 가지 문구를 읊으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사인 내가 한심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_294쪽
사람들이 의사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여 주는 이유는, 의사에게는 상대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을 설득하고 교육하여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떨어져 살게 해야 하는 교육자의 임무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_297쪽
교과서에 적혀 있는 어려운 의학 용어를 환자들에게 정확하지만 친근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기억하게 하는 것이 의사가 ‘선생님’이라 불리는 또 다른 이유이지 않을까. _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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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출판사서평
20년 외길 ‘낭만 의사’, 인천공항 의료센터장이 들려주는 국제공항의 생로병사와 ‘의사의 길’
1. 의료계와 정치권이 읽어야 할 진료 현장 보고서
“소아과 의사들은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아이들을 치료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도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하고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한 조언이나 충고, 교육도 해야 한다. ...... 공항 의료센터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 중 어린이의 비중이 크지는 않다. 하지만 몇 차례 안 되는 소아 진료에 어른 진료보다 몇 배의 노력과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느낌이 든다.” -110쪽, 〈아이들은 원래 갑자기 아프다〉 중
“응급치료를 했다가 범죄행의로 처벌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협의임을 입증하기 위해 경찰서를 오가거나 법적 공방을 하게 되는 것 자체가 심적, 금전적, 시간적 손해를 떠안게 되는 문제가 있다 ...... 물론 언제든 어느 때든 의사나 구조자를 찾는 간절하고 애타는 목소리가 들린다면, 내 몸은 이런 법조항을 떠올릴 겨를도 없이 먼저 반응할 것이다. 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 이전에 나는 성숙한 시민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237쪽, 〈선한 사마리아 인을 위하여〉 중
이른바 ‘의정 갈등’이 끝 간 데를 모르고 있습니다. 서로의 생각과 사정에 대한 소통과 공감이 절실한 때입니다. 특히나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런 가운데, ‘별반 돈이 안 되는’ 진료 현장에서 20여 년간 묵묵히 일해 온 한 전문의가 그동안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을 책으로 써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인천국제공항 의료센터장 신호철의 에세이집 《공항으로 간 낭만 의사》입니다.
‘인천공항 의료센터’는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생소한 곳일 겁니다. 하지만 연간 약 7,000만 여행객이 이용하고 7만여 상근자가 일하고 있으며, 종합병원이 있는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섬에 위치한 국제공항의 의료기관인 만큼, 공익적으로 꼭 필요한 곳이지요. 한편 이곳은 들뜬 해외여행객부터 고단한 공항근로자까지, 외국인 관광객부터 이주 노동자까지, 출장 기업인부터 상주 노숙인까지 각양각색 남녀노소의 질병뿐만 아니라,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비상상황의 의료적 사태와 고도 10km 상공에서 운항 중인 항공기 내의 발생 환자까지 관리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그처럼 ‘버라이어티’하고도 공익적인 진료 현장에서 20여 년 일하며 보고 듣고 겪고 생각한 것들을 차근차근 책 속에 풀어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들 속에 어떠한 정치적 견해나 이권 지향적인 속내도 비치지 않습니다. 그저 의업의 본질에 대한 생각과, 의사의 본분을 수행하면서 느끼는 조건과 상황의 문제만을 담담히 말할 뿐이지요,
오랫동안 진료 현장을 지켜온 이의 이러한 태도와 생각이 오히려 극한으로 치닫는 ‘의정 갈등’을 푸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표피적 현상이 아니라 본질에 대한 진지하고도 구체적인 성찰에서 비롯하는 것이니까요.
2.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권하는 직업 이야기
“퇴근 무렵이면 몸이 곤죽이 되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다’는 안도감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 누가 시키는 일이었다면 아마 튕겨나갔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이 그리로 움직였기에 자꾸만 스스로 문제를 내고 그걸 풀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25쪽, 〈‘빨간 전화’를 받는 가정의학 전문의〉 중에서
살다 보면 수많은 갈림길을 마주하게 된다.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지는 선택의 시점에서는 알 방법이 없다. 그것은 아마도 신의 영역일 것이다. 그때 마음을 다시 잡고 이 길을 계속 걸어온 나의 선택이 그저 옳았기를 바랄 뿐이다. _ 43쪽 〈출근길 새벽에 바치는 인사〉 중에서
“내 영어 실력은 발령 초기에 진료실에서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환자의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고 진료를 대충 할 수도 없는 일이니 시간도 많이 걸렸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 승객들에 대한 공포심이 점차 쌓여 갔다 ...... 그러나 부끄러움은 새로운 시작의 원동력이라 하지 않는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부족한 영어 실력의 반쪽을 채우기로 결심했다.” -244쪽, 〈공항 ‘닥터’의 영어 울렁증〉 중에서
2023년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발표한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 결과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희망직업은 학령이 올라갈수록 순위가 현실적으로 변화하지만 대체로 ‘전문직종’의 범주 내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진로의 방향이 잡히고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대한 인식이 훨씬 더 현실적인 대학생이 되면, 직업보다는 직장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공기업과 대기업을 ‘목표’로 삼게 되지요. 그와는 별개로 ‘공부깨나’ 하는 아이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반’ 열풍에 휩쓸리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소위 ‘금수저’가 아니고서야 이 ‘정글자본주의’ 사회에서 ‘안정과 고소득’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아쉬운 것은 ‘어떤’보다 ‘무엇’이, 과정보다 목표가, 일의 즐거움보다는 벌이의 효용이 중시되는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 통념에 비추어, 이 책의 저자는 ‘대단히 성공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대표적 ‘고소득 전문직’인 의사인데다가, 그중에서도 전문직인 ‘항공 의학’ 전문가이니까요. 그런데 책을 찬찬히 읽어보면 저자가 도달한 자리는 오늘을 미루고 치열하게 추구했던 내일의 ‘목표’가 아니라, 오늘 하루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꾸준히 하며 지내온 과정의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소개글에 쓰인 것처럼 “‘인류에 봉사’하겠다고 의학에 입문하지는 않았으나 일하다 보니 ‘인류를 사랑’하게 되었고, ‘안정된 전문직’을 얻으려 의사가 되지는 않았으나 일하다 보니 항공 의학 전문가라는 ‘전문직 중의 전문직’을 갖게 되었”으며, “힘들어 이직하려 했지만 절반은 운명, 절반은 의리로 눌러앉게 되어, 하다 보니 누구보다 일터를 사랑하는 의료센터장으로 20년째 근무해 오고 있”으니 말이지요. 의대에 들어간 것도, 학생운동을 한 것도, 제적을 당했다가 사면복권 후 복학을 한 것도, 몸짱에 배드민턴 동호인 A조 선수가 된 것도, 〈유 퀴즈〉에 출연한 것도, 이 책을 쓰게 된 것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본분을 성심껏 수행‘하다 보니’.
‘하다 보니’는 사실, 성공한(했다고 여겨지는) 사람이건 아니건 대개의 기성세대가 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특출난 ‘위인’이나 지독한 ‘야심가’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특별히 ‘큰 꿈’을 품고 미래를 위한 ‘초인적 노력’을 경주하며 살지는 않으니까요. 그저 열심히 ‘하다 보니’에 ‘칭찬과 인정욕구’가 얼마나 원동력으로 작동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성취와 보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겠지요.
그러고 보면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 말고는, 기성세대 대부분이 이 책 끄트머리의 문장처럼 “이만하면 잘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한때 의과대학 유급생“이었던 저자처럼, 한때 어떤 실패의 경험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지요. 그렇다면 이 책은 ‘안정’을 희구하면서도 동시에 ‘대박’을 꿈꾸는, 이 불확실하고 모순적인 시대에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권할 만한 직업 이야기라 할 만도 하겠습니다. ‘하다 보면 점점 나아지니 내일을 위해 오늘을 유보하지 말라. 불확실한 미래에 집착하기보다는 확실한 지금 여기의 과제에 집중하라’고 말해 주는.
3. 7,000만 항공 여행자들의 건강 여행 안내서
“기내에서 ➀이륙 후 시계를 도착지 시간으로 맞추고 활동합니다. 도착지 시간이 밤이면 기내에서 활동을 줄이고 안대를 착용하고 수면을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➁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세요. 피로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탈수입니다. 기내에서 과도한 알코올과 카페인의 섭취는 탈수를 일으켜 시차 증후군을 악화시키므로 가급적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162쪽, ‘시차 증후군 예방을 위한 안내 사항’ 중에서
“단시간 작용하는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아 단거리 노선을 타는 연습을 하고, 익숙해지면 장거리 여행에 도전해 보세요. 나중에는 약을 먹지 않고 그냥 가지고만 있어도 큰 공포심 없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177쪽, ‘공황장애와 비행공포증이 두려운 분께’ 중에서
한국공항공사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3년 항공편 이용 승객은 출발 도착 합하여 국제선 약 6,900만 명, 국내선을 포함하면 1억 3,360만 명에 이릅니다. 왕복 이용 승객 수로 단순 환산하여도 우리나라 총인구를 훌쩍 넘는 약 7,000만 명이 항공 여행을 한 셈입니다. 이 숫자는 코로나 펜데믹 이후 점차 늘고 있습니다. 이는 항공 여행 시의 안전과 건강 문제가 온 국민의 관심사일 수 있다는 뜻이며, 공항과 운행 중인 여객기 내에서 의료적 문제 상황이 생길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7,000만 항공 여행 시대’에 여행자들에게 꼭 필요한 의료정보를 꼼꼼히 짚어 주는 ‘건강 여행 안내서’입니다.
‘공항 병원’ 20년 경력의 저자가 전하는 건강 여행 안내는 그저 이런저런 경우에는 이런저런 점들을 유의하라는 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고단한 오후 식재료를 썰다가 손에 자상을 입은 공항 음식점 직원이 조금이라도 쉬라고 남들 눈에 띄도록 커다랗게 붕대를 감아 줄 만큼 섬세한 성정처럼, 저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항공 의학의 지식과 정보를 꼼꼼하고 성실하면서도 따뜻하고 자상하여 풀어주어, 생소한데도 왠지 친숙한 듯 마음까지도 편안해지게 해 줍니다.
4. 화려한 공항의 뒤편,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연대와 응원의 메시지
“출퇴근하면서 이 구역을 지날 때마다 노숙인들을 유심히 보곤 한다. 전과 비교해 행동이나 움직임에 특별한 이상 징후가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공항에 살다시피 하는 노숙인들은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어차피 공항 의료센터로 오게 된다. 그러니 나에겐 그들이 언젠가 진료실에서 만나게 될 예비 환자이기 때문이다.” -200쪽, 〈보이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처방된 약을 잘 복용하지 않고 오는 환자분들에게 종종 나의 약상자를 보여주며 웃으면서 말한다. “저도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랍니다.” 그리고 불편하고 힘들지만 같이 노력해 보자는 다짐도 조금 더 공고히 해 본다.“ -271쪽, 〈아프십니까? 저도 아프답니다〉 중에서
”부끄러움은 반성으로 이어졌고 반성은 새로운 시작의 거름이 되었다. 그때까지 머릿속에 가지고 있던 질병 예방과 생활습관 교정에 대한 지식들을 하나하나 꺼내 다시 분석하고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공항 상주 직원들의 직종별, 나이별, 성별로 가장 많이 문제가 되는 질환들에 대한 자료들을 좀 더 현실성 있게 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상담과 충고로는 상주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의 행동을 교정하고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를 이어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은 조종사와 승무원 등 운항 관련 인력들부터 환경미화원, 하역노동자, 보안 요원 등 공항의 여러 시설들과 시스템을 유지 관리하는 7만여 근로자들, 그리고 공항터미널에서 상주하는 노숙인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들뜬 여행객들 사이에서 삶을 이어가는 일상의 터전이기도 합니다. 인천공항 의료센터는 여행객 외에 이들 공항 식구들 모두의 건강을 관리하는 의료기관이지요.
오랜 세월 공항 사람들의 주치의 역할을 해 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들, 공항을 받치는 사람들의 건강을 염려하고 노고를 응원하는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다정하면서도 믿음직스럽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터미널 노숙인들까지도 ‘예비 환자’로 보고 건강 상태를 예의주시하는, 의사로서의 철저한 직업정신과 그 자신이 치료약을 상복해야 하는 지병 환자로서 환자에 대해 갖게 된 공감과 동료의식, 그리고 스스로의 안일함을 수시로 깨닫고 부끄러워하며 고쳐나가 조금씩 더 나은 의사가 되고자 하는 진지한 인정욕구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5. ‘꿀물 타기 좋은 온도’를 알려주는 역지사지 ‘낭만 의사’의 이야기
이제까지 풀어놓은, 이 책과 저자의 모든 덕목은 책 속의 다음과 같은 문장들로 요약된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구급차를 타고 응급출동을 할 때도, 의료센터에 실려 오는 응급환자를 진료할 때도 반드시 이 세 단어를 되뇐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환자의 상태를 판단하되 평정심을 유지하고 ‘질서’ 있게 환자를 회복시킨다는 다짐이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단어 하나가 추가되었다. ‘이왕이면 친절. -38쪽 〈신속, 정확, 질서! 이왕이면 친절!〉 중에서
의사로서 나의 지론 중 하나는 의사도 좀 아파 봐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픈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게 의사의 숙명이다. 그렇다면 의사 자신도 좀 아픈 곳이 있고 질병으로 고생을 해 봐야 아픈 사람들의 호소에 좀 더 공감하고 귀를 기울일 수 있지 않을까. -267쪽 〈아프십니까? 저도 아프답니다〉 중에서
“환자분, 목이 많이 부었네요. 이럴 때는 너무 뜨거운 물이나 찬물은 인후에 자극이 될 수도 있으니 미온수를 조금씩 자주 마시는 게 좋습니다. 집에 혹시 꿀이 있으시면 꿀물을 드시면 좋은데 혹시 꿀물 타기 좋은 온도는 아시는지요?” 환자분에게 가벼운 질문을 던지며 슬며시 내 뒤에 앉아 있는 전공의를 바라본다. 그의 눈동자는 답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의학 교과서에 꿀물 타기 좋은 물의 온도가 나와 있을리 만무하니까. ..... 의사의 설명과 교육은 교과서처럼 정확해야 하지만 환자의 일상생활에 맞게 구체적이고 풍부하고 현실적이어야 한다 -301쪽 〈닫는 글 - 어느 전공의의 편지〉 중에서
의사, 법관, 교수,.. 소위 ‘힘 있는 고소득 전문직’들입니다. 이들이 상대하는 사람들은 아프거나 곤란한 처지에 있거나 배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지요. 굳이 말하자면 도움이 필요한 상대적 약자들일 텐데, 도움을 청하는 상대방들은 그리 친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 앞에서 왠지 주눅이 드는 게 사실이지요.
강자가 약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회의 민주주의와 문화적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강자의 덕목은 말할 것도 없이 ‘역지사지’겠지요. 이 책 속 곳곳에서 독자들은 ‘공항 의사’ 신호철 원장이 아픈 사람을 대하는 역지사지의 태도와 자세를 엿볼 수 있을 겁니다. 적지 않은 의사와 법관과 교수들이 ‘의醫’와 ‘법法’과 ‘교敎’의 본분에 충실하기보다 ‘사師’와 ‘관官’과 ‘수授’ 같은 지위에 집착하는 세태 속에서 자기 일의 본질을 돌아보며 하루하루 충실히 본분을 실천하는, 예사로워야 하나 예사롭지 않은 직업인의 모습입니다.
출처: 「 공항으로 간 낭만 의사 」 출판사 저상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