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추천도서 (4091) 미츄
1. 책소개
출처: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 발튀스 (Balthus, 1908~2001)
본명은 발타사르 클로소프스키 드 롤라. 발튀스는 본래 일종의 애칭이었지만, 릴케가 그에게 화가의 삶을 권하며 그 이름을 활동명으로 추천했다. 소녀들과 고양이를 주로 그렸으며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로 유명했다. 미술에 관한 해설과 비평을 거부했으며 자신의 전기적 요소를 남기는 일마저 거절했다. 알베르 카뮈, 파블로 피카소, 알베르토 자코메티, 만 레이 등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가 그의 작품에 매혹되었다.
저자 :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1875~1926)
20세기의 위대한 시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작가. 『두이노의 비가』, 『말테의 수기』 등 문학사에 남을 걸작을 내놓았다. 10대 초반이던 발튀스의 재능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화가의 길을 권했으며, 이후로도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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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목차
서문
미츄- 40개의 이미지
작품 및 작가 해설: 영원한 상실의 장소 (이현아)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무언가를 발견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던 걸 말이죠. 그런데 고양이를 발견하는 건 아예 놀라운 일입니다! 그 고양이는 마치 무슨 장난감마냥 당신의 삶에 완전히 들어오지는 않으니까요.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고양이는, 지금 당신의 세계에 와 있다 하더라도, 조금은 밖에 머물러 있어요. 늘 그런 식이죠.
인생+고양이
장담하건대, 이 둘의 합은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18~19쪽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건 매우 슬픈 일입니다. (중략) 찾는 것, 잃는 것, 상실이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상실이란 단순히 자신이 짐작하지도 못했던 기대를 막 충족했던 그 관대한 순간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한 순간과 상실 사이에는 항상 무언가가 있는데, 조금 어설프긴 하지만 그걸 소유라고 칭해야 하겠군요.
그런데 상실이 아무리 잔인한 것이라 해도, 상실은 소유에 대항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상실은 소유의 끝입니다. 상실은 소유를 확인해 줍니다. 결국 상실이란 두 번째 소유일 뿐이며, 그 두 번째 소유는 아주 내적인 것이며, 첫 번째와는 다른 식으로 강렬합니다.
-19~20쪽
매일 안고 자던 인형, 담요, 일기장, 크레파스, 옆집에 살던 개, 불현듯 이사가 버린 동네 친구……. 어른들은 무시하기 쉬운 이러한 상실은 아이의 마음속에 영원히 메울 수 없는 공백을 만든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적 없는 아이들은 이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른다. 어른들은 아이가 공백의 자리를 건너뛰고, 상실을 받아들이며 조금 더 빨리 어른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그러곤 마치 산타의 정체가 밝혀지는 때처럼, 더 이상 자신이 떠나온 세계를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환상의 세계에서 잠든 아이들을 깨워 현실로 데리고 오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도 그것을 원했던가? 그들에게 필요한 건 애도의 시간이 아니었나?
-111쪽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한 천재 소년이 오직 사랑만을 담아 만든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고양이 그림책
성장한 고양이는 집을 떠나 자신만의 영역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발튀스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소년 발타사르의 고양이 ‘미츄’ 역시 자연의 섭리에 따라 더 넓은 세계로 떠났다. 그러나 고양이와의 그런 작별 과정에는 명백한 문제, 꼭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헤어질 때 작별 인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날 케이크를 너무 많이 먹어 며칠 동안 앓아누웠던 발튀스는 다시는 미츄를 볼 수 없었다. 고양이와는 그렇게 이별하는 거라고, 다들 그런 거라고 말하는 건 열두 살 소년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아픔은 고유하기 때문이다.
예술가이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책과 그림을 끼고 살았던 발튀스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길고양이 미츄를 만난 순간부터 다시는 미츄를 보지 못하게 된 날까지, 사랑하는 고양이와 함께한 시간을 40점의 연작 그림으로 담은 것이다. 그 그림들은 기나긴 작별 인사였다.
마치 언어로 주고받는 위로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는 듯, 열두 살 소년이 그린 이 연작 드로잉에는 단 한 글자도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배경의 연속과 단절, 특정한 구도의 리드미컬한 변형으로 인해 독특한 운율이 느껴진다. 이 운율은 흐름으로 이어지고, 이 흐름은 결국 언어에 의존하지 않는 이야기가 된다. 사랑하는 고양이와의 만남부터 헤어짐까지, 발튀스가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던 기쁨과 슬픔이 그림 속에서 음악 선율처럼 흐른다.
열두 살 발튀스가 식탁 위에서 혼자 그린 이 애도 작업을 발견한 건 당시 엄마의 연인이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였다. 이 연작 드로잉에서 천재성을 감지한 릴케는 그 그림들을 책으로 출판해 주면서 서문까지 직접 써 주었다. 이 데뷔 화집을 본 화가 피에르 보나르는 릴케와 마찬가지로 천재적인 재능을 감지했으며, 장차 발튀스가 위대한 화가가 되리라고 예견했다. 그리고 그 예견은 적중했다. 릴케의 후원 아래 미술 공부를 시작한 발튀스는 당대의 유행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고전적이고 몽환적인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미술사에 길이 남을 거장이 된 것이다.
출처: 「 미츄 」 출판사 을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