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추천도서 (4788) 죔레는 거기에

1. 책소개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헝가리 현대문학의 거장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최신작 장편 국내 최초 헝가리어 원전 번역
2025년 10월 9일 스웨덴 한림원은 “종말론적 공포의 한가운데에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해주는 강렬하고도 예언적인 작품 세계를 높이 평가한다”며 헝가리 현대문학의 거장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에게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겼다. 안데르스 올손 노벨위원회 의장은 “그의 작품은 중앙 유럽의 대서사 전통을 잇는 작가로, 프란츠 카프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로 이어지는 부조리와 그로테스크의 계보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2026년 2월,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최신작 장편소설 《죔레는 거기에(Zsömle Odavan, 2024)》가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30번으로 출간됐다.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이 헝가리어 원전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죔레는 거기에》 자체가 외국어로 번역된 것 역시 한국어판이 최초이다. 헝가리 소설 《여행자와 달빛》 《장미 박람회》 《도어》 등을 한국어로, 한국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채식주의자》를 헝가리어로 옮기며 양국 문학의 가교 역할을 해온 김보국 역자의 섬세한 번역으로 만나볼 수 있다.
출처: 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Krasznahorkai László, 1954~ )
1954년 헝가리 줄러에서 태어났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공부했고, 1987년 독일에 유학했다. 이후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그리스, 중국, 몽골, 일본,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 체류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해왔다. 헝가리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며 고골, 멜빌과 자주 비견되곤 한다. 수전 손태그는 그를 “현존하는 묵시록 문학의 최고 거장”으로 일컫기도 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종말론적 성향에 대해 “아마도 나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인 것 같다”라고 밝힌 바 있다. 주요 작품으로 《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 《서왕모의 강림》 《라스트 울프》 《세계는 계속된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등이 있으며 전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티보르 데리 문학상, 산도르 마라이 문학상, 코슈트 문학상, 슈파이허 문학상, 브뤼케 베를린 문학상 등 국내외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2015년에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으며 2018년 《세계는 계속된다》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 후보에 또 한 번 이름을 올렸다. 20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출처: 본문중에서
3. 목차
1장 · 11
2장 · 46
3장 · 81
4장 · 110
5장 · 144
6장 · 176
7장 · 199
8장 · 235
9장 · 270
10장 · 307
11장 · 356
옮긴이의 말 · 385
출처: 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물론 요지 아저씨는 언제나 조금 예측 불가능했는데, 왕들에게는 이것이 낯선 일이 아니지만, 그들로서는 이 어두운 구름을 걷어내고 왕정복고라는 성스러운 목표로 향하는 과정을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으며, 그것은 곧장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했기 때문인데, 나라가 바닥에 떨어져 죽어가고 쇠약해지고 붕괴되고 있는 지금, 그들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기에, _93면
이제 늘 자신과 함께하는 이 피로가 아마도, 어떻게든…… 몹시 기운이 빠져버린 상태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 더 이상 불을 피우지 않겠다는 말을 그렇게 많이 했던 것이며, 슬프다거나 그런 뜻은 아니고, 오히려 모든 것이 다 상관없어져버린 느낌이라 했다,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다 괜찮다는 것이었으며, _101면
슬픔이란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생각하오, 철학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것은 나 자신의 몫도 아니지만, 긴 삶을 살아오며 한 가지는 분명히 깨달았소, 그것은 흥분과 행동하려는 의지와 안달 나서 설치는 몸짓과 고집스러운 집착과 (…) 끝없는 욕망이 사람을 늙을 때까지 몰아붙인다는 사실인 터, (…) 뭐, 어쨌든, 이는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고, 분명히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이 사람을 평생 몰아가는데, 대체로 말하자면, 그 죽음은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찾아오는 것이니, 살아 있는 동안 사랑하는 이들에게 준 기쁨보다 훨씬 더 많은 슬픔을 남긴다는 것을 큰 욕망을 품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하오, _133~134면
나는 이미 나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지만, 여기 남아 있는 일곱 분, 어떤 의심도 없이 끝까지 내 곁에 남아준 여러분의 충심이, 나로 하여금 곧 이런 결정을 발표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소, 관계를 정리하고, 군주제 복원 계획을 중단하며, 사적인 삶으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이토록 깊이 자멸의 지옥 속으로 빠져든 적이 없었던 이 성스러운 조국 헝가리는 이 단 하나의 꿈과 함께 얼마나 찬란하고 얼마나 아름답겠소, 다시 헝가리 왕국이 서는 모습 말이오, _189면
심장박동은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지만, 여기서는 오직 폭력적인 권력 장악만이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이것이 그의 뇌 속 모든 세포를 갉아먹고 있었으며, 게다가 그는 오랜 세월, 아니 어쩌면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두개골의 상처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안에 박힌 그 파편이 타올랐고, 타들어갔고, 불길처럼 활활 타올랐다, _239면
더러운 배신자들, 그는 이에 절망적으로 고개를 저었는데, 이 일에는 분명 배신이 개입되어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신, 하지만 누가 누구를 배신했는지, 그리고 자기가 도대체 이 개탄스러운 난장판에 어떻게 말려들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가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는 왕인데?!, 그렇지 않은가?!, _279면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지, 이제 제대로 깨어나야 하지 않나, 그리고 일을 시작해야 하지 않나, _317면
이곳에서는 모두가 소유만을 생각하고,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으며, 오직 더 많이, 더 많이, 더 많이 갖는 것에만 집착하고 있지만, 그의 나라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끊임없이 소유만을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냉소적으로 말하길, 우리는 돈으로 살아간다며,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기에, 가장 비열한 짓들까지도 서슴지 않고, 처음에는 작은 잘못들을 저지르지만, 스스로에게 이미 그 첫 번째를 허용했다면, 그다음 것들이 이어지고, 그곳에서 그들에게는 한계라는 것이 작동하지 않으며,
붕괴되어버리지
, 그는 러치커 쪽으로 몸을 숙이며, 붕괴되어버린다는 이 단어를 아주 무겁게 강조해서 발음했다, _336면
출처: 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종말론적 공포의 한가운데에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해주는
강렬하고도 예언적인 작품 세계를 높이 평가한다.”
_2025 노벨문학상 수상 이유
“《죔레는 거기에》는 그 절망적인 색채에도 불구하고
크러스너호르커이의 가장 사랑스럽고 재미있는 소설이다.”
_보니바르트 아그네시(문학비평가)
“더 이상은 불을 때지 않겠다”
크러스너호르커이 소설 세계의 최종점
거장의 노련함과 고유한 종말론적 세계관이 빛나는 이 소설은 전체 11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많은 쉼표들로 연결된 한 개의 문장(1장은 두 문장)이 한 개의 장이다. 작가 특유의 호흡이 길고 유려한 문체에 유연한 리듬감이 더해져 음악적인 흐름을 타는 듯한 인상을 주며,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한 문장과 플롯이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 작품은 “《사탄탱고》 이후 점점 더 난해해지는 크러스너호르커이 작품의 정점”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고, “전통적인 의미의 소설로서는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언급된 적도 있는” 만큼 크러스너호르커이 소설 세계가 도달한 최종점으로 볼 수도 있겠다.
더 이상은 불을 때지 않겠다.
장작 난로 속의 불꽃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그 속의 불꽃을 바라보며, 아니야, 어떤 경우에도 이건 아니야, 여기까지야, 더 이상은 아니야, 지금까지 뜨거웠던 것이 이제는 차갑고, 지금까지 달아올랐던 것은 꺼져버렸다, 삶은 나를 더 이상 건드리지 않고 나는 거기에 관심도 없다, 어떤 변화도 없을 거야, 마지막 순간의 심장처럼 삶은 그렇게 멈출 것인데, 글쎄, 그는 여기서 아직 뭔 놈의 것을 찾고 있는지, 종말이여, 오라, 뭐가 대수인가, 볼 것은 충분히 보았고, 족할 정도로 투쟁했으며, 몸속에서 피와 림프와 근육과 신경은 그만하면 되었다 할 정도로 자기 일을 했으니 천상의 주 하느님께서 이곳에 오시기를, _11~12면
“그 자신의 심장은 죔레가 지니고 있다“
왕정복고의 꿈을 꾸던 92세 노인, 반란의 수괴가 되다
소설은 어느 이름 없는 마을 산꼭대기의 작은 집에 죔레라는 개와 단둘이 살고 있는 91~92세의 카다 요제프(일명 요지 아저씨)에게 유랑 음악가 청년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전직 고교 교사 퍼쿠서 페테르, 역사학자 버디지 소시 레네 등을 포함한 일단의 추종자들이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수십 년 동안 그를 찾아다니며 도서관과 문서보관소, 중고서적상들을 뒤졌고, 가계도와 문장을 샅샅이 훑고 추적하며 사냥하듯 탐색해, 결국 찾아낸 것이다,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가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_12면
은퇴한 전기 기술자인 요제프는 사실 헝가리 아르파드 왕가의 벨러 4세와 칭기즈 칸의 후손으로, 아르파드의 요제프 1세라는 이름으로 헝가리 왕좌에 오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정치와는 아무 관련이 없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열성적인 추종자들 가운데에는, 여러 국가 기관이나 정치인, 종교인에게 청원서를 보내는 요지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평화적으로 군주제를 재건하려는 자들뿐만 아니라, 무기를 모으고 세력을 규합해 무장 봉기를 준비하는 자들까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결국 이에 연루된 요지 아저씨는 수사기관에 잡혀 들어가고, 소중히 보살펴온 개 죔레와도 강제로 헤어지게 된다.
죔레가 그에게는 마치 자신의 심장 같다고 했다, 아무도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어느 날 분노가 폭발했는데,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고 두드리더니,
그 자신의 심장은 죔레가 지니고 있다
고 했고, 데려와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지만,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_292면
“이 아름다운 인생의 끝은 결국 엿 같은 거요”
인간 존재의 형이상학적 결핍과 부조리를 향한 희비극적 애도
작가는 산문집 《묻지도 말고 대답하지도 마라》에서 “내 책들은 ‘반사회적’이다. 근본적인 틈새로 혼란스럽게, 깊이 우리 것인 그 체제를 들여다보려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소설 역시 시의적절하고 체제비판적인 생각들을 많이 담고 있다. 네오나치 이데올로기(《헤르쉬트 07769》에서도 사건의 주요 모티프였다)가 헝가리식으로 가장하고 등장하는데, 헝가리 근위대, 고대 헝가리교, 세계민족 인민주권당 등등 극우 집단들이 언급되며, 이들의 폭력적인 권력 장악 시도를 요지 아저씨가 단호히 저항해 막아낸다.
그러자 그는 이제 어느 정도 정신을 추슬러 단호하게 말했는데, 아니라고,
아니야
, 그 목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_116면
다만 딸과 가족의 완전한 무관심, 뇌졸중, 감옥, 재판, 미뤄진 대관식, 비참한 병원 환경까지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서 요지 아저씨 또한 폭력에 의지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긴 한다. 물론요지 아저씨의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이 꺾이지는 않았으나, 영원히 발길을 끊은 방문객들과 되찾았지만 곧 빼앗길 것 같은 죔레로 인해 결국 깊은 우울감이 찾아온다. 삶의 끝에 대한 그의 생각은 평소 이러했으니, 앞으로의 전개에는 절망감이 드리워질 뿐이다.
이 아름다운 인생의 끝은 결국 엿 같은 거요, 막혀버리는 것, 말하자면 꼼짝없이 조여드는 것이오, 결국 우리는 그 끝에서 막다른 데로 몰리게 되니 빠져나갈 길은 없소, _134면
“인간의 몰락과 어리석음, 그 어리석음이 불러온 엄청난 위험,
그리고 결국 꺼져버린 형이상학적 희망”
한 가지 주지할 사실은 카다 요제프가 완전한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카 요제프(1919~2016)라는 헝가리의 은퇴한 전기 기사가 말년에 자신이 헝가리 왕위의 정당한 계승자라고 주장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는데, 그의 인터뷰에서 소설 내용과 일치하는 많은 일화를 찾아볼 수 있다. 소설의 헌사 “D. J.를 기리며”는 이에 대한 참조로 보인다. 다만 작가는 “이 책은 상상의 산물이며 그것 자체로도 현실의 일부로서 이번에도 현실로부터 양분을 얻고 있지만, 간접적으로 양분을 얻은 그 현실과 이 작품은 여기에서 읽히는 예술적 형식 안에서 이제부터는 더 이상 아무런 관련도 없다. 유감스럽게도”라고 밝혀두었다.
소설에는 희망도 해피엔딩도 없다. 단지 지적인 아이러니로 제시된 체제와 사회에 대한 비판이 남았을 뿐. 그 기본 설정은 너무나도 부조리하기에 오히려 허구가 아닌 사실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2001년에 “나는 진심으로 인간의 고양과 위대함, 그리고 거대한 형이상학적 희망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인간의 몰락과 어리석음, 그 어리석음이 불러온 엄청난 위험, 그리고 결국 꺼져버린 형이상학적 희망에 관해 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훌륭히 구현한 소설이 바로 《죔레는 거기에》다.
옮긴이의 말
따라서 이 작품은 헝가리의 역사, 정치사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지역, 인종, 정치, 세대, 그 외 각종 구분에 따른 혐오가 만연한 이 사회에 던지는, 대가의 큰 울림이다. 실상은 이러한 혐오에 대한 혐오가 아닌, 현재 그것이 발현되는 구조, 정치라는 말을 갈아타며 편 가름을 하는 그 악성적인 구조가 되풀이되는 과정을 소설이라는 형식의 서사를 빌려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로써 한국 사회에서도 만연해 있는 혐오와 정치의 함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 작품이 돋보이는 이유는 거대담론을 소담론으로 풀어내고 거대서사와 미시서사를 비유적이되 일상의 틀로 엮어낸다는 것이다.
출처: 「 죔레는 거기에 」은행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