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추천도서(25.3~)/2025-04

4월의 추천도서 (4428) 느리게 가는 마음

'-') 2025. 4. 17. 10:00

 

 

 

1. 책소개

 

 

 

슬픔을 달래는 느긋한 농담과 유머의 힘
인간의 선의를 믿고 싶게 만드는 윤성희표 소설의 온기

 

완숙한 시선과 따듯한 유머가 섞인 필치로 삶의 희로애락을 그리는 윤성희의 일곱번째 소설집 『느리게 가는 마음』이 출간되었다. 동인문학상, 김승옥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고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 1위 작가로 선정되는 등 두루 작품성을 인정받아온 소설가 윤성희가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웃음을 끌어내는 엉뚱한 발상과 재치,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응집된 복잡한 삶의 얼굴을 행간에 부려놓는 솜씨는 독특한 개성으로 자리매김한 윤성희 소설의 인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장기가 돌올하게 드러나는 여덟편의 단편소설을 묶어낸 이번 소설집에서는 ‘생일’이 주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 ‘죽음’과 ‘태어난 날’이라는 극명한 대치를 통해 우리가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맞이하게 될 시간을 절묘하게 겹쳐놓는 수작들을 모았다.


아무리 작은 비중을 가진 등장인물이더라도 그를 둘러싼 작은 서사가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는 윤성희표 소설에는 기쁨과 슬픔, 슬픔을 어르는 농담, 갑작스럽게 닥쳐오는 사고 등 마치 실제 우리의 인생사처럼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가 물 흐르듯 유연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인간의 선의를 믿고 싶게 만드는 작가의 다감하고도 부드러운 필치가 담겨 있다.

 

출처: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윤성희

 

소설가 윤성희(尹成姬)는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레고로 만든 집」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 『감기』 『웃는 동안』 『베개를 베다』 『날마다 만우절』, 장편소설 『구경꾼들』 『상냥한 사람』, 중편소설 『첫 문장』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한국일보문학상, 김승옥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출처:본문중에서

 

 

 

 

 

 

3. 목차

 

마법사들
타임캡슐
느리게 가는 마음
자장가
웃는 돌
해피 버스데이
여름엔 참외
보통의 속도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딸이 만들어준 호박죽을 먹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 할머니는 죽을 얼마 먹지 못했고,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그만 애쓸란다, 하고. 성규는 할머니가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나는 그만 먹을란다,라고 말했다고. “내가 분명히 들었어. 너무 이상한 말이라 기억한다니까.” 내가 우기자 성규가 대답 대신 휘파람을 불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노래였다. 한참 후에 성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만 애쓴다니. 그건 너무 슬픈 말이네.”(「마법사들」28면)

이모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작년에 고등학교 동창들이랑 여행을 갔는데 거기에 느리게 가는 우체통이 있었다는 것. 이모는 땀구멍에게 엽서를 썼다는 것. 거기에 결혼하자는 내용을 적었다는 것. 느리게 가는 우체통 속 엽서는 일년 후 배달이 되는데 그게 다음 달이라는 것. 사실 땀구멍이 얼마 전에 결혼을 했는데 엽서에 적은 그 주소에 계속 살고 있다는 것. 이모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요약하면, 그러니까 그 엽서를 찾으러 가야 하는데 혼자 갈 자신이 없으니 나보고 같이 가달라는 거였다.(「느리게 가는 마음」 83면)

엄마와 나는 즐거울 때는 같이 웃었지만 슬플 때는 서로 모른 척했다. 위로를 해주지 않는 엄마에게 가끔 상처를 받기도 했다. 엄마도 나에게 상처를 받았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엄마의 슬픔을 알아차린 적이 거의 없었다. 엄마는 들키지 않았으니까. 나는 엄마가 실컷 울 수 있도록 가게 밖으로 나왔다. 어렸을 때 나는 눈물샘이 자주 막혔다. 슬픈 일이 생기면 그때의 내 사진을 보았다. 눈이 붓고 눈곱이 낀 아기.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아기. 다시 눈물샘이 막힌 아기가 된 기분이었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흐르지 않는 아기. 나는 계단에 앉아서 눈을 맞았다. 내 몸을 그대로 통과하는 눈을. 눈이 펑펑 내렸다. 쌓인 눈을 보자 내가 죽은 게 어제 일처럼 느껴졌다.(「자장가」 122~23면)

아이들의 말을 듣자 갑자기 어떤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내가 중학생 때였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봤는데 맞은편 옥상에서 빨래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 빨래는 전날에도 있었고 전전날에도 있었다. 사흘이나 걷어가지 않은 빨래라니. 갑자기 슬퍼졌다. 온몸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조금만 움직이면 눈물이 쏟아져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용기를 내 엄마한테 말했다. 하지만 왜 그런지는 말할 수 없다고. 나조차도 설명할 수 없다고. 그랬더니 엄마가 말했다. “괜찮아. 그런 날이 있지.” 그때 그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길가에 쪼그려 앉아 울었다. 어린아이처럼 울었다.(「웃는 돌」 164면)

산책로를 맨발로 걷는 사람을 구경했다. 산책로를 거꾸로 걷는 사람도 구경했다. 아주 느리게 걷는 노부부도 구경했다. 노부부의 발걸음에 맞춰 숨을 쉬어보니 천천히 흘러가는 세상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지금 재생 속도는 0.25배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의 부장님은 유튜브 영상 속도를 1.5배로 설정하고 보았다. 주로 주식에 관한 영상을 보았는데, 말이 빨라지면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더 집중을 하게 된다고 했다. 스키를 탄다는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징그럽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았다. 저 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왔다. 갑자기 등이 시려왔다. 봄볕은 따뜻했고 나무마다 꽃망울이 맺혀 있었다. 문득 내가 지금 추운 게 아니라 외로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의 외로움이 내게로 옮겨올까봐 나는 얼른 엄지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입바람을 불었다. 그러자 다시 세상이 보통의 속도로 재생되었다.(「보통의 속도」 249면)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일상의 결을 환하게 조각하는 애틋한 손길
작은 거짓말이 만들어낸 하루의 행복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을 쓸 때 “인물들에게 작은 파티를 해주고 싶었”(작가의 말)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는 생일을 둘러싼 다양한 풍경이 다채롭게 등장한다.


「해피 버스데이」의 ‘나’는 어느 날 친구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는다. 하지만 정작 그날은 자신의 생일이 아니다. ‘나’는 생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고 하루 동안 생일인 척 살아보기로 한다. 생일을 기념해 저녁을 사주겠다는 직장 상사와 함께 간 술집에서 ‘나’는 가스 폭발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고, 자신이 난생처음 병원에 입원해보고 깁스도 처음 해보았음을 깨닫는다. 지금껏 얼마나 운이 좋은 삶을 살았는지 역설적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즉흥적인 가짜 생일은 「여름엔 참외」에도 등장한다. 친구의 아들과 함께 본 애니메이션 영화 속 입양아가 자신의 진짜 생일을 몰라 해마다 생일날을 바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나’는 마음 내키는 아무 날을 생일로 정한다. 한편 생일날 잘못을 용서받은 ‘나’도 있다. 「타임캡슐」의 주인공 ‘나’는 생일날 어떤 짓을 해도 혼내지 않겠다는 아빠와 고모의 약속을 받고, 고모가 자존심 때문에 끝까지 하지 못했을 어떤 일을 대신 저지르며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봉합한다.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주지 않은 아버지에게 화가 나서 가출을 감행한 고등학생도 등장한다. 「마법사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몇년째 까치발로 걷는 기이한 버릇이 생긴 ‘나’가 하루 종일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쓴 채 생활하는 ‘성규’의 가출에 동조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계획 없이 집을 나선 둘은 극장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며 밤새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후드티 모자를 쓴 채로 생활하게 된 사연, 아버지와 함께 여행하며 비로소 까치발로 걷는 습관을 고치게 된 기억을 서로에게 공유한 둘은 더욱 가까워진다.

“그런 날이 있지”라는 담담한 위로의 풍경

이렇듯 생일을 둘러싼 일상의 풍경을 작가 특유의 명랑하고도 애틋한 필치로 그려낸 다른 한편에는 ‘탄생’과 대치되는 ‘죽음’의 풍경이 자리한다.


「자장가」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은 ‘나’가 화자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나’는 장례식이 끝난 뒤 잠 못 이룰 엄마를 염려하며 엄마를 따라 집으로 간다. 엄마가 자신의 죽음을 가슴 아파하며 밤을 새우기를 은근히 바라지만, 엄마는 오히려 죽은 ‘나’의 생일상을 차리고 씩씩하게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살아 있던 때에도 엄마의 슬픔을 눈치챈 적이 없다. 죽은 ‘나’의 생일날 정성껏 차린 음식들을 싸들고 친구를 만나러 간 엄마가, 꿈에도 나오지 않는다며 그리움에 우는 모습을 처음 본 ‘나’는 엄마의 꿈속으로 들어가 지금껏 둘이 함께 만들어온 다정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꿈속에서 엄마는 어린 시절을 다시 살아가고 사랑을 하고 가족을 이루며 새로운 삶을 경험한다.


「웃는 돌」에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슬픔으로 눈물을 흘렸던 어린 ‘나’에게 “괜찮아. 그런 날이 있지”(164면)라는 말로 다정한 이해와 위로를 건넸던 엄마가 등장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엄마의 그 목소리가 우연히 한 유튜버의 영상에 녹음돼 있다는 걸 발견한 ‘나’는 “그런 날이 있지” 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반복해 들으며 엄마를 애도한다.
죽은 자가 사랑하는 이를 지켜보며 어떻게 위로하는지, 남겨진 사람은 어떻게 슬픔을 견디고 살아가는지, 상실과 슬픔을 그리는 이 작품들은 아름답고도 담담하게 애도의 풍경을 펼쳐놓는다.

세상이 1.5배 속도로 재생될 때 내 마음의 속도는 0.25배로 흘러가도록

표제작 「느리게 가는 마음」의 ‘나’는 ‘이모’와 함께 ‘느리게 가는 우체통’을 찾으러 떠난다. 사연인즉슨, 이모가 1년 전 그곳에서 남자친구에게 엽서를 썼는데 그후 이모와 헤어진 그가 얼마 전 결혼을 했다는 것, 그리고 엽서에 쓴 주소지에 아직도 살고 있다는 것, 그 엽서가 조만간 배달되기 전에 찾으러 가자는 것이었다. 갑작스레 이루어진 이 엉뚱한 여행에서 ‘나’는 생각보다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편지에는 “지금처럼 잘하자. 지금까지 잘해왔다”(92면)는 식의, 스스로를 향한 위로의 말이 담겨 있다는 것도.


“느리게 걷고, 느리게 보고, 느리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행복한 하루”(작가의 말)를 그리려 했다는 작가는 「느리게 가는 마음」에서 이름도 간판도 없는 한 식당을 소개한다. 경로당에 모여 매일 고스톱을 치는 게 전부였던 할머니들이 모여 만든 이 식당은 “팔리든 말든. 일단 우리가 맛있는 거 먹으려고”(97면) 다 같이 차리게 된 곳이다. ‘나’는 평소 먹지도 않았던 나물 반찬이 너무 맛있어 밥을 양껏 먹는다. 또,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보통의 속도」 속 ‘나’는 아파트 외벽 페인트공으로 일하며 매일매일 예쁜 구름 사진을 찍어 보관하고, 페인트칠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아파트 벽에 몰래 새기기도 한다.

세상의 속도와 다르게 살아가는 인물들의 행보를 촘촘하게 따라가듯, 독자 또한 숨을 천천히 고르며 느리게 읽어야 윤성희 소설만의 감동을 축복처럼 누릴 수 있다. 짧은 문장 안에도 수많은 생의 얼굴이, 희로애락의 복잡한 감정이 응집되어 있는 이 책은 상처와 상실을 싸안는 따뜻한 유머의 힘을 증명하며 독자에게 ‘느리게 가는 마음’의 미덕을 선사한다.
진짜 생일이 아니어도 상관없으니 오늘 하루를 생일이라고 생각하고 지내보면 어떨까? 그 하루를 기념하는 마음만으로도, 세상은 조금 더 다정해질 테니까. 누군가의 생일을 축복하고 환대하는 마음으로 인간의 선의를 증명하는 윤성희의 소설처럼 말이다.

 

출처: 느리게 가는 마음출판사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