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추천도서(26.1-)/2026-03

3월의 추천도서 (4749) 고서의 은밀한 매력

'-') 2026. 3. 4. 10:00

 

 

 

1. 책소개

 

소자쌍행…공격…피휘결획…포쇄…
옛 책이 은밀히 말을 걸어오다

 

“보고 감상하는 대상”으로서의 옛 책
고서를 대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책이다. 내용이 아니라 표지, 제목, 본문과 주석의 배치, 글자 크기, 문단 나누기, 띄어쓰기, 본문 밖 여백, 소장자의 흔적에 주목한다. 고서에도 이런 요소가 있을까 의아하겠지만, 오늘날의 책과 마찬가지로 고서에도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가 있다. 소장자나 고서를 거쳐 간 사람들의 여러 흔적도 남아 있다. 오늘날 독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어서, ‘발견’하기 어려울 뿐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조선 시대 금속활자와 고서를 전시하고 연구해온 지은이는 이처럼 고서를 “보고 관찰하는 대상”으로 설정하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고서를 다룬 기존의 책은 “읽어야 할 대상”인 고서의 내용 소개에 치중했다.

옛 책 편집자들의 배려와 고민을 한눈에
저자는 이를 위해 《화엄경》, 《월인천강지곡》 《조선왕조실록》 등 한 번쯤 제목을 들어봤음 직한 15종의 책을 골랐다. 대신 책 내용에 관한 소개는 최소한으로 하고 각 고서의 물성과 물성에 최적화된 형식,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지면 배치 방식, 디자인 감각 등을 관찰하고 설명한다. 한데 이게 의외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돌 책’에 원고지처럼 구획을 둔 정간(井間), 본문 아래 작은 글자를 두 개 넣는 주석 표기 방식 소자쌍행(小字雙行) 등 편집 테크닉은 읽는 이의 이해를 돕는 장치다. 그런가 하면 실록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볕이 좋은 날 습기와 해충을 막기 위해 볕이 좋은 날 책을 바람에 말리는 포쇄(曝曬)를 행했다는 이야기를 통해 예전에 책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보여준다.

옛 책에 곁들여 풀어낸 역사 한 자락
이 책은 기본적으로 책의 물성에 관한 것이다. 대나무, 돌, 금속 등 종이책 이전의 ‘책’은 물론 선장본(線裝本), 두루마리, 절첩본에 이르기까지 책의 형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소개하는 내용이 골자다. 여기에 책을 둘러싼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도 놓치지 않았다. 예컨대 세종이 지은 찬불가인 《월인천강지곡》은 한글을 먼저 쓰고 뒤에 한자를 병기(倂記)한 거의 유일한 책이었다든가, 1777년에 간행된 《명의록》은 호학(好學) 군주인 정조가 책의 체제와 편집 방식에 세세하게 관여하면서 핍박받던 왕세손 시절의 〈존현각일기〉를 앞에 실어 즉위의 정당성을 강조하려 했다는 이야기기 그것이다. 이 밖에 세종이 《소학》에 직접 ‘토를 달았다’거나 구두점(句讀點)의 유래 등 책 밖의 책 이야기가 곳곳에 담겼다.

서양의 옛 책에도 눈을 돌리다
국내에서는 거의 소개하지 않은 서양 고서를 선정한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인천 소재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소장한 필사본 기도서와 《구텐베르크 성서》, 근대 출판의 선구자로 불리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출판업자 알도 마누치오가 간행한 헤로도토스의 《역사》, 이 3종을 통해 서양 고서의 역사를 소개한다. 여기서 서양 옛 책의 주요 재료였던 양피지가 실은 그리스 도시국가 페르가몬의 최대 도서관을 시기한 이집트가 파피루스 수출을 금지한 덕분에 ‘발명’되었다든가, 《구텐베르크 성서》 1부를 인쇄하는 데 송아지 160마리의 가죽이 필요했다는 이야기 등도 눈길을 끈다.

옛 책 ‘감상’을 위한 친절한 길라잡이
실상 박물관 등에서 만나는 어려운 한문이나 옛 한글로 된 고서를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그림이나 조각처럼 고서의 형태와 미감, 편집자나 소장자가 남긴 흔적과 온기를 발견하고 감상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지나쳐버린 고서의 존재 가치와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는다. 책을 이를 위한 길라잡이 역할을 톡톡히 한다. 탄탄한 내공을 지닌 지은이의 시선을 따라가면 절로 고서의 숨겨진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출처: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이재정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중국 명청시대사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국립한글박물관 전시운영과장으로 일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조선 시대 금속활자를 연구해왔으며, 조선 시대 책과 출판문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은 책으로 《활자본색》, 《활자의 나라, 조선》, 《문화재 이름도 모르면서》, 《조선출판주식회사》, 《의식주를 통해 본 중국의 역사》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오랑캐의 탄생》, 《왕 여인의 죽음》 등이 있다.

 

출처:본문중에서

 

 

 

 

3. 목차

 

머리말

책의 원형_목간
⚫목간이 책이라고?
⚫전시할 수 없는 목간
⚫목간에 글쓰기와 수정하기
⚫책과 권
【더불어 읽기: 죽책, 옥책, 금책】

금속판을 책처럼_왕궁리 오층석탑 은제도금금강경판
⚫국립익산박물관의 국보
⚫금속판에 불경을 담고 보관하는 방법
⚫제목과 계선
⚫문단 나누기
【더불어 읽기: 안평대군과 《금강경》】

돌에 새긴 책_대낭혜화상탑비
⚫남아 있는 가장 큰 신라 비석
⚫58×96자의 원고지
⚫제목, 저자, 판권
⚫띄어쓰기와 주 달기
【더불어 읽기: 피휘_난이도 최상의 존대 표시법】

두루마리에서 절첩으로_《대방광불화엄경》
⚫다양한 모습의 《대방광불화엄경》
⚫표지가 있는 8세기 두루마리
⚫고려대장경으로 이어진 두루마리
⚫절첩, 새로운 제본 방식

완성형 종이책 선장본 편집의 모든 것_《자치통감강목사정전훈의》
⚫조선판 《자치통감강목》의 결정판
⚫책 한 권이 서문과 목차인 책
⚫표지에 담긴 정보
⚫치밀한 편집
세 가지 버전의 한글책_《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 《월인석보》
⚫귀하디 귀한 한글 고서
⚫한글을 앞세운 《월인천강지곡》
⚫한글 금속활자로 찍은 최초의 책 《석보상절》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월인석보》
【더불어 읽기: 독자에 따라 다른 한글 번역】

정조가 기획하고 편집한 홍보 책자_《명의록》
⚫정조가 즉위하자마자 편찬한 책
⚫속표지 디자인의 등장
⚫편집에 반영된 정조의 의도
⚫널리 홍보하는 방법: 번각과 언해본

책 속의 그림_《삼강행실도》와 《오륜행실도》
⚫그림이 있는 책
⚫듣고 보는 책, 《삼강행실도》
⚫《오륜행실도》, 읽는 책으로
⚫그림이 있는 책 편집 방법
【더불어 읽기: 그림과 글의 다양한 편집 사례】

공부의 흔적_《예기》
⚫한문 읽기의 어려움
⚫구두점과 끊어 읽기
⚫토 달기
⚫난상에 주목하자

보존과 교정의 정석_《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세계기록유산 등재 이유
⚫원본과 재판본
⚫내용 보완과 표지 교체
⚫교정의 흔적
【더불어 읽기: 남아 있는 교정지】

배포와 소장 이력_《춘추》
⚫서명과 도장
⚫숙종이 연잉군에게 하사한 기록, 내사기
⚫연잉군의 도장, 연잉군방
【더불어 읽기: 영조와 정조의 장서인이 함께 찍힌 책 《춘추보편》】

낡고 헤진 책의 매력_《성리대전서절요》
⚫낡고 해진 책도 귀했던 시절
⚫대대로 전할 가문의 보배
⚫책주인이 남긴 흔적
⚫두 책은 한 세트가 맞는 것일까?

화려한 채색 그림이 있는 필사본_《기욤 몰레 2세의 기도서》
⚫소설《 장미의 이름》 속 기도 시간
⚫제목이 없는 책
⚫코덱스와 양피지
⚫주문자와 제작자 정보
⚫세상에 하나뿐인 책
【더불어 읽기: 두루마리가 남긴 단어들】

서양 최초의 인쇄본 성서_《구텐베르크 성서》
⚫베일에 싸인 구텐베르크와 그의 성서
⚫구텐베르크 성서일까, 42행 성서일까?
⚫장·절의 표시 방법
⚫책을 산 사람들이 한 일

근대 출판의 선구자 알도 마누치오가 인쇄한 책_헤로도토스의 《역사》
⚫출판계의 미켈란젤로
⚫근대적인 편집 방식
⚫출판사의 로고와 소장자의 장서표
⚫로만체와 이탤릭체

⚫참고문헌
⚫주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한자어인‘ 冊’은 사물의 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에서 비롯되었다.…중국 둔황 지역의 한나라 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물건을 보자. 글자가 적힌 동일한 크기의 나뭇조각 여러 개를 끈으로 엮은 모습이다.(12쪽)

대나무에 글자를 쓸 때는 불에 쬐어 대나무의 푸른 색깔을 없애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살청殺靑’이라고 한다.(22쪽)

연필과 지우개가 짝을 이루듯이 당시에는 붓과 칼이 짝을 이루었기에 중국의 역사서 《사기史記》와 같은 기록에서 문서를 작성하는 관리를 “도필지리刀筆之吏”로 지칭했다.(23쪽)

목간이 말려 있는 모습을 가리키는 한자가 ‘卷권’이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책 한 권”이라는 표현은 목간을 펼쳤을 때의 모습 ‘책’, 말았을 때의 모습 ‘권’에서 비롯되었다.(31쪽)

천자가 작위나 땅을 하사하며 제후나 신하로 삼는 것을 ‘책봉冊封’이라고 한다. 문서[冊]로 봉封하기 때문이다. 이후 왕위 계승자를 정하는 일을 “왕세자 책봉”이라고 하듯 책봉이 포괄하는 범위가 넓어졌지만, 책봉할 때 문서를 발급하는 전통은 여러 왕조에서 지속되었다.(38쪽)
원고지는 일본에서 처음 나온 것이라고 하지만 가로·세로 글자 수를 각각 일정하게 맞추는 글쓰기는 종이에 글을 쓰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출토 금강경판이 그런 경우다. 세로 선만 있고 가로 선은 없지만, 19장으로 이루어진 경판 하나하나가 가로 세로 각 17자로 구획된 원고지 1장과 같다고 볼 수 있겠다.(76쪽)

고대의 비석 중에는 오늘날의 원고지에 글을 쓰듯 비문 자체에 가로·세로 구획을 하고 그 안에 글자를 넣은 것이 있다. 우물 정井 자처럼 생긴 이런 구획을 정간井間이라고 한다. 654년(의자왕 14)에 백제의 대좌평 사택지적이 세운 사택지적비가 그런 예다.(78쪽)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표지를 가진 책이 등장하기 전에는 본문이 시작되는 부분의 첫 번째 행에 제목, 즉 권수제를 넣었다. 경우에 따라 두 번째 행에 저자나 편자를 표시하기도 했다.(81쪽)

낭혜화상탑비의…연꽃을 두르고 그 위로 구름과 용이 뒤엉킨 모양으로 조각한 머릿돌의 가운데 부분에 액자 형태의 구획이 있다.…이 액자 모양 안에 새긴 글자를 제액題額이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이마에 쓴 제목이다.(81쪽)

낭혜화상을 가리키는 ‘대사大師’ 앞에 공백이 있다.…공백 뒤의 글자가 지칭하는 대상에 대한 존경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공격空格 또는 간자間字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이런 공백은 872년(경문왕 12) 황룡사탑에 넣은 사리함 안쪽에 새긴 글자(찰주본기)에서도 발견되며, 글에 따라 비운 칸의 규모는 다르지만 조선 시대까지 이어진 규칙이었다.(90쪽)

‘명銘’은 원래 돌이나 금속 등에 글자를 새긴다는 뜻이지만, 사건의 전말, 기물의 내력, 유래 등을 물건에 새김에 따라, 사람의 공적을 기리는 글도 ‘명’이라고 일컫게 되었다.…묘지에 새긴 글을‘ 묘지명’이라고 하는 것도 여기서 비롯되었다.(91쪽)

본문 한 자 아래 작은 글자 두 자를 나란히 넣는 것을 ‘소자쌍행小字雙行’이라고 한다. 소자쌍행으로 배치한 주는 본문과 긴밀하게 연결하면서도 본문과 명확하게 구분하는 시각적 효과를 가져온다.(93쪽)

존엄한 왕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되기에, 왕의 이름을 ‘꺼리다’는 뜻의 ‘휘諱’라고 한다. 왕의 이름뿐 아니라 성인의 이름, 돌아가신 조상의 이름도 휘라고 했다.…피휘避諱, 휘를 피해서 써야 했다.…피휘 방법 중 널리 쓰이는 것 중 하나가 같은 글자를 쓰되 획을 하나 빼는 것이다. 이를 피휘결획避諱缺劃이라고 한다.(94쪽)

박물관에 전시된 고서는 대부분 이른바 ‘선장본線裝本’이라는 방식으로 제본되어 있다.…“인쇄된 면이 밖으로 나오도록 책장의 가운데를 접고 등 부분을 끈으로 튼튼하게 묶어 만든 책”…실로 묶어 제본한 책이어서 ‘선장본’이다.(97쪽)

초기의 종이책은 종이를 가로로 길게 이어 붙여 축에 말아 두루마리 형태로 제본했다. 이런 책을 권축본卷軸本, 권자본卷子本, 제본 방식을 권축장卷軸裝이라고 한다.(99쪽)

동일한 크기의 종이를 가로로 이어 붙이는 것까지는 권자본과 같지만 절첩본은 이를 축에 마는 대신 일정한 폭으로 접어 병풍처럼 펼쳤다 접었다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절첩은 접은 부분이 쉽게 상하는 단점은 있지만, 권자본에 비해 발전된 형태였음은 분명하다. 13세기에 만든 재조대장경은 절첩본이며, 특히 오늘날 다수 남아 있는 고려시대 사경은 권자본보다 절첩본이 주를 이룬다.(115쪽)

주희는 사마광이 쓴 《자치통감》을 연대순으로 기술하되, 중요한 사항을 강綱, 세부 사항을 목目으로 나누어 편집한 것이다.…《자치통감감목》 같은 강목체 역사서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강과 목으로 나누어 기술한 것이 아니다. …공자가 쓴 역사서 《춘추春秋》의 방식에 따라 강에는 사건을 간략하게 서술하면서도 도덕적 평가를 포함시켰다.(124쪽)

초간본의 낱장을 하나씩 목판에 뒤집어 붙여 다시 새긴 책을 말한다. 이런 책을 번각본飜刻本이라고 한다.(127쪽)

주희의 〈자치통감강목범례〉는 조선의 역사관과 역사 서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연산군과 광해군처럼 왕으로서 본분을 다하지 못해 폐위된 왕을 ‘군’이라고 칭하는 것도 〈자치통감강목범례〉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130쪽)

큰 글자로 인쇄한 부분이 바로 ‘강綱’…강 아래 두 줄로 인쇄된 글자는 강을 자세히 설명한 ‘목目’이다. 목 아래 다시 두 줄로 인쇄한 작은 글자, 이것이 바로 ‘훈의訓義’다. 이처럼 《강목훈의》는 내용의 중요도에 따라 크기가 다른 세 종류의 글씨를 사용했다.(139쪽)

한글을 먼저 쓰고 한글 뒤에 한자를 병기한 책이 있다. 한글 사용 인구가 증가한 근대기에 출간된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한글 창제 초기에 인쇄한 책 《월인천강지곡》이다. 이후에는 이처럼 한글을 먼저 쓴 책이 거의 없다.(146쪽)

정조는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학자 군주로 널리 알려져 있다.…규장각을 설치하고 학자들을 양성했다. 스스로 많은 글을 지었을 뿐 아니라, 마치 출판사 편집장처럼 《사기영선》, 《오경백편》, 《주서백선》과 같은 유교 경전의 편찬을 주관하고, 직접 교정을 보기도 했다.(174쪽)

책의 간행 시기, 간행 장소 또는 주체 등에 대한 기록을 ‘간기刊記’ 또는 ‘간인기刊印記’라고 한다.(181쪽)

한문본에 언해를 같이 넣지 않고 한글본만 별도로 편찬한 예는 영조가 1755년에 간행한 《천의소감언해》가 처음이다. 《천의소감》 역시 영조 때 일어난 여러 역모 사건의 전말을 기록한 것으로 《명의록》과 같은 성격의 책이다. 정조는 영조의 뒤를 이어 《명의록》을 비롯해 여러 ‘윤음’의 한글본을 별도로 간행하고 배포했다.(199쪽)
세종은“ 내가 (훌륭한 행실과 높은 절개가 있는 사람의 행적 중) 특별히 남달리 뛰어난 것을 뽑아서 그림[圖]과 찬讚을 만들어 중앙과 지방에 나누어주고, 우매한 남녀들까지 다 쉽게 보고 느껴서 분발하게 되기를 바란다”라고 했다.…집현전 직제학 설순 등은 효자, 충신, 열녀 각 110명을 문헌에서 찾아내 “앞에는 형용을 그림으로 그리고 뒤에는 사실을 기록하고 시詩를 붙여” 간행했다.(204쪽)

마침표, 쉼표, 느낌표 등을 아우르는 용어인 ‘구두점’은 한문 문장에 표시한 점에서 비롯되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 이규경李圭景(1788~?)은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명나라 때 편찬한 자전인 《자휘字彙》를 인용하여 “경전에서 끊어지는 곳을 ‘구句’라 하고, 말이 끊어지지 않았더라도 점으로 나누어 읊기에[誦詠] 편하게 한 것을 ‘두讀’”라고 했다. ‘구두’는 원래 이 ‘구’와 ‘두’를 합친 단어인 것이다.(236쪽)

‘토’는 원래 한문 문장 구절 끝에 붙여서 문장 뜻을 분명하게 하는 우리말을 뜻한다. “-하야, -하고, -더니, -하사, -로, -면, -에” 등이 토에 해당한다. 조사를 토씨라고 하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 되었다. “토를 단다”는 표현 역시 원래는 한문 구절 끝에 ‘토’를 단다는 뜻이었다. 한자 그대로 표현하면 현토懸吐다. 토는 구결口訣이라고도 한다.(243쪽)

《조선왕조실록》은 1대 태조부터 25대 철종에 이르는 조선 왕조의 역사를 담은 국가 공식 기록이다.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조선왕조실록》에 포함되지 않는다. 472년 17만 2,200여 일 동안 일어난 일을 날짜 순서로 기록했으니…정족산사고본 완질은 1,707권 1,187책, 글자 수로는 약 6,400만 자다.(253쪽)

정족산사고본의 경우 태조, 정종, 태종 3대 실록은 필사본이며 세종~명종 실록은 금속활자로 인쇄했다. 실록을 금속활자로 인쇄하게 된 계기는 《세종실록》의 분량이 너무 많아 필사한 원본을 베껴 쓰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실록은 필사본을 성종 때 한꺼번에 활자로 인쇄했다.(262쪽)

실록을 잘 보존하기 위해 조선 시대에 가장 자주 사용한 방법은 포쇄였다.…포쇄는 볕이 좋은 날 책을 바람에 말려 습기와 해충으로부터 책을 보호하는 일이다. 실록 포쇄는 원칙적으로 3년에 한 번 진행했다. 주로 봄과 가을, 날씨가 좋은 날 춘추관에서 파견한 사관이 담당했다.
실록을 궤에서 꺼내 하나하나 바람에 말린 다음 습기가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궤 내부의 위아래에 기름종이를 넣었고, 방습제 역할을 하는 천궁과 창포 가루를 자루에 담아 궤 안에 넣었다. 실록을 담은 궤는 자물쇠를 채우고 봉인하여 사고 관리자도 함부로 열지 못하고 중앙에서 파견된 사관만 열 수 있도록 했다.(265쪽)

정족산사고본의 표지는 푸른 비단을 사용했다. 제목은 긴 사각형으로 재단하고 검은 테두리를 넣은 흰 비단에 쓰거나 인쇄하여 붙였다. 이런 제목을 제전題箋, 제첨題籤이라고 한다.…《선조실록》까지는 기본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표지를 만들었다.…《선조수정실록》부터는 표지의 재질이 비단에서 황지黃紙로 바뀌었다. 황지는 벌레와 오염을 막기 위해 황색으로 물들인 종이다.(268쪽)
임시관청인 실록청에서 사관들이 전왕 대에 작성한 사초와 시정기 등을 수집하여 실록 편찬에 착수한다. 원고는 사관들이 일차로 작성한 초초初草와 이를 다시 교정하고 정리한 중초中草, 실록에 최종적으로 수록하는 정초正草 세 단계 수정 작업을 거쳐 완성된다. 초초와 중초는 물에 씻어 그 내용을 모두 없애야 한다. 이 작업을 세초洗草라 한다. 물에 씻은 종이는 재활용했다. 이렇게 완성된 정초본을 먼저 인쇄하여 교정을 본다. 교정 내용을 반영한 최종 인쇄본이 정본正本이다. 정본이 완성되면 교정본은 폐기하는 것이 원칙이다.(271쪽)

왕이 하사하는 책에는 언제 누구에게 하사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내사기內賜記’라고 한다.(283쪽)

내어쓰기를 한 ‘內’, ‘命’, ‘恩’은 모두 왕과 관련된 글자들이다. 이처럼 존경을 표하는 글자를 내어쓰기 하는 것을 ‘대두擡頭’라고 한다. 개행으로 쓰는 글자는 대두로 쓴다. 내사기뿐 아니라 조선 시대 필사본은 물론 간행본 대부분이 이런 원칙을 따랐다.(290쪽)

봉모당은 창덕궁에 있는 전각의 하나다. 정조가 즉위한 1776년에 설치한 규장각의 주요 시설 중 하나로 역대 왕들의 글씨, 그림, 책 등을 보관하던 곳이다.…연잉군이 왕위에 오름에 따라 연잉군이 소장한 책을 봉모당에 보관하게 되면서 ‘봉모당인’을 찍었을 것이다.(291쪽)

유럽 중세 사회에서 기도서는 기도할 때 사용하는 책 이상의 기능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서로 글을 익혔고, 화려한 기도서는 부와 권위의 상징으로 혼수나 선물이 되기도 했다. 현재도 수천 종이 남아 있을 정도로 기도서는 당시의 베스트셀러였다.(328쪽)

페이퍼백(소프트커버) 제본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 서양 책 표지는 두꺼운 나무로 만들고 가죽 등으로 감쌌기 때문에 표지에 제목을 넣지 않았다. 제목은 주로 표지를 펼치면 나오는 첫 번째 면에 표시되었다. 더 이른 시기의 책에는 본문 왼쪽, 즉 면지 뒤쪽에 표시하기도 했다.(333쪽)

파피루스는 얇아서 한쪽 면에만 글자를 썼으며, 접으면 훼손되는 속성 때문에 낱장을 가로로 이어 붙이고 두루마리 형태로 제본했다.…파피루스에 글을 쓰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기원전 2550년에 글자를 쓴 이집트의 파피루스 조각이 남아 있다.(336쪽)

기원전 2세기경 그리스의 도시국가 페르가몬의 에우메네스 2세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최고 도서관의 명성을 위협하는 도서관을 만들었다. 이를 시기한 이집트의 파라오 프톨레마이우스 5세는 페르가몬으로 파피루스 수출을 금지했 다. 이에 에우메네스 2세가 양가죽을 부드럽고 얇게 가공해서 파피루스 대신 사용하도록 했다는 것이다.…양피지를 뜻하는 영어 파치먼트parchment도 페르가몬에서 파생되었다.(338쪽)

그리스 사람들은 파피루스를 비블로스byblos라고 불렀다. 파피루스 수출 중심지인 페니키아의 도시 이름 Byblos에서 온 말이다. 종이를 뜻하는 영어 페이퍼paper도 파피루스에서 나왔다고 한다. 비블로스에서 비블리온biblion이라는 말이 파생되었다. 비블리온은 원래 두루마리를 뜻하는 단어였으나, 당시에 책은 두루마리 형태여서 비블리온은 책을 의미하는 용어가 되었다. 진정한 책이라는 뜻의 성서Bible도 비블리온에서 나왔다.(352쪽)

《구텐베르크 성서》 180부 중 30부를 인쇄한 벨럼지는 양피지보다 더 비싼 최고 품질의 가죽이었다. 중세에 송아지 한 마리당 전지 2장이 나온다고 볼 때 성서 1부를 인쇄하는 데 약 160마리 송아지가 필요했다.(364쪽)

1500년까지 베네치아에는 150여 개의 인쇄소가 있었으며, 유럽 전체에서 생산한 인큐내뷸러(1500년 이전 인쇄된 책)의 15퍼센트 이상을 생산했다고 한다. 특히 15세기 말 유럽 서적의 45퍼센트는 종교 서적이었던 반면 베네치아에서는 26퍼센트 정도에 그쳤고 고전 서적이 35퍼센트 정도를 차지했다.(379쪽)

알도 마누치오가 이룬 성과는 단순히 고전 출판에 그치지 않는다. 타이포그라피 역사에서 중요한 서체인 ‘벰보체’를 개발했으며, ‘이탤릭체’를 처음으로 고안했다. 오늘날의 문고판에 해당하는 포켓북을 만들어…문고판으로 출판한 페트라르카의 책은 10만 부 가까이 팔려 베스트셀러라는 말이 생겼다. 세미콜론과 아포스트로피, 악센트 등의 문장 부호 역시 알도 마누치오가 발명한 것이다.(380쪽)

 

출처: 고서의 은밀한 매력출판사 푸른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