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추천도서 (4399) 조지훈 시 전집
1. 책소개
정본 시 전집으로 다시 만나는
‘지조와 멋의 시인’ 조지훈
민족의 전통과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수,
역사 속 상실과 고뇌를 생생히 그려 낸 시적 언어
‘지조와 멋의 시인’ 조지훈의 시 작품을 완전히 새롭게 엮은 전집이 약 30년 만에 다시 출간되었다. 1996년의 《조지훈 전집》을 기반으로 지훈의 시 작품들만을 한 권에 모은 《조지훈 시 전집》이다. 청록파의 한 사람이자 ‘지조와 멋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지훈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수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전통과 자연에 대한 서정을 그려냈고, 혼란의 시대에는 첨예한 언어로 현실을 직시하며 역사 속 상실과 고뇌를 생생히 기록했다. 지훈의 시는 지금까지도 시대의 발화이자 생활에 대한 사유로서 현대의 독자들을 깨우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
《조지훈 시 전집》은 《조지훈 전집》 출간 30년, 지훈상 제정 25년을 앞두고 지훈 시를 온전히 한자리에 모으고자 했다. 시집과 발표지 원본, 시인이 남긴 육필원고를 검토하여 시의 정본을 만들고, 기존의 한자 표기를 한글로 바꿔 독자들이 지훈의 ‘감성과 지성, 사유와 인간’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끔 하였다. 뿐만 아니라, 지훈의 시론 〈나의 시의 편력〉과 새로이 만든 시 연보 등을 수록하여 독자가 지훈 시의 전모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책이다.
출처: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조지훈
본명은 조동탁(趙東卓). 1920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났다. 1939년과 그 이듬해 《문장》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혜화전문학교 졸업 후 월정사 불교강원 강사를 지냈고 조선어학회 《조선말 큰사전》 편찬위원으로 일했다. 1948년부터 고려대 문과대학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종군문인으로 6·25전쟁을 겪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국학 연구의 기틀을 닦고 《한용운 전집》 간행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저술, 편찬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박두진, 박목월과의 3인 합동 시집 《청록집》을 포함해 총 5권의 시집을 출간하였고, 시론집 《시의 원리》, 수필집 《지조론》 등을 펴냈다.
출처:본문중에서
3. 목차
발간사
조지훈 전집 서문
일러두기
1부 청록집
봉황수|고풍의상|무고|낙화 1|의루취적|고사 1|고사 2|완화삼|율객|산방|파초우|승무
2부 풀잎단장
화체개현|산길|풀밭에서|묘망|그리움|편지|절정|밤|창|풀잎단장|암혈의 노래|
흙을 만지며|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서면|사모|마을|산 2|앵음설법|달밤|도라지꽃|고목|낙엽|송행 2|향문|석문|가야금
3부 조지훈 시선
길|지옥기|손|월광곡|종소리|영상|유찬|학|부시|춘일|영|낙백|민들레꽃|포옹|기도|
운예|염원|코스모스|산 1|호수|유곡|꽃새암|낙화 2|정야 1|정야 2계림애창|북관행 1|
북관행 2|송행 1|밤길|매화송|별리|선|고조|대금|후기
4부 역사 앞에서
서문|눈 오는 날에|꽃그늘에서|기다림|바람의 노래|동물원의 오후|비혈기|산상의 노래|
비가 내린다|그들은 왔다|그대 형관을 쓰라|십자가의 노래|역사 앞에서|불타는 밤거리|
빛을 찾아 가는 길|마음의 태양|첫 기도|절망의 일기|맹세|이기고 돌아오라|전선의 서|풍류병영|청마우거 유감|다부원에서|도리원에서|여기 괴뢰군 전사가 쓰러져 있다|죽령전투|
서울에 돌아와서|봉일천 주막에서|너는 지금 삼팔선을 넘고 있다|연백촌가|패강무정|벽시|
종로에서|언덕길에서|핏빛 연륜|천지호응|이날에 나를 울리는|빛을 부르는 새여|새 아침에|
우리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는가|어둠 속에서|잠언|사육신 추모가|선열 추모가|
석오·동암 선생 추도가|인촌 선생 조가|해공 선생 조가
5부 여운
설조|여운|범종|꿈 이야기|빛|폼페이 유감|귀로|혼자서 가는 길|가을의 감촉|추일단장|
뜨락에서 은방울 흔들리는|아침1|소리|연|동야초|여인|색시|아침 2|산중문답|
터져 오르는 함성|혁명|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사랑하는 아들딸들아|우음|이 사람을 보라|
사자|그날의 분화구 여기에|불은 살아 있다|후기
6부 바위송
바위송|풀잎단장 2|녹색파문|찔레꽃|마음|초립|사랑|옛마을|합장|백야|
밭기슭에서|방아 찧는 날|장날|원두막|과물초|우림령|향어|밀림|편경|비조단장
7부 병에게
이력서|인쇄공장|백접|꽃피는 얼굴로는|이율배반|비련|비가|재단실|참|화비기|
풍류원죄|계산표|귀곡지|공작 1|공작 2|갈|진단서|섬나라 인상|대화편|
행복론|병에게
8부 새 아침에
겨레 사랑하는 젊은 가슴엔|마음의 비명|새 아침에|관극세모|너의 훈공으로|
“FOLLOW ME”|하늘을 지키는 젊은이들|Z 환상|강용흘 님을 맞으며|8·15송|
민주주의는 살아 있다|계명|호상명|그것이 그대로 찬연한 빛이었다|앉아서 보는 4월|
하늘의 영원한 메아리여|안중근 의사 찬|장지연 선생|어린이에게|농민송|
우리들의 생활의 내일
부록
한시 국역
창작 한시
나의 시의 편력: 슬픔과 멋에 대하여
조지훈 연보
조지훈 시 연보
작품 색인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모래밭을 스며드는 잔물결같이
잉크 롤러는 푸른 바다의 꿈을 물고 사르르 밀려갔다.
물새인 양 뛰어 박힌 은빛 활자에 바야흐로 해양의 전설이 옮아간다. 흰 종이에도 푸른 하늘이 밴다. 바다가 젖어든다. 파열할 듯 나의 심장에 진홍빛 잉크, 문득 고개 들면 유리창 너머 난만히 뿌려진 청춘, 복사꽃 한 그루.
- 〈인쇄공장〉 전문
오늘이 슬플 때
어제는 아름답다
아름다운 어제의 앨범을 펴 놓고
우는 사람에게 내일은 더욱 슬프다
아름다운 내일을 맞으려거든
오늘에만 몰두하라
어제는 이미 없고
내일은 오늘 속에 오는 것
내일을 참으로 알려거든
내일을 잊어버려라
내일 지구에 종말이 와도
오늘 꽃나무를 심는 그 마음으로
- 〈우리들의 생활의 내일〉 부분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낙화〉 전문
누거만년의
그 소슬한
침묵을
깨뜨려라
바위여-
바위도 울 때가
있느니
스쳐가는 것은
오직 풍상
흔들리지 않는다
바위는
그 역사를
가슴에 새길 뿐
- 〈바위송〉 부분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生의 외경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직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 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 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생에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 〈병에게〉 부분
만신에 피를 입어 높은 언덕에
내 홀로 무슨 노래를 부른다
언제나 찬란히 틔어 올 새로운 하늘을 위해
패자의 영광이여 내게 있으라.
나조차 뜻 모를 나의 노래를
허공에 못 박힌 듯 서서 부른다.
오기 전 기다리고 온 뒤에도 기다릴
영원한 나의 보람이여
묘막한 우주에 고요히 울려가는 설움이 되라.
- 〈역사 앞에서〉 전문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한국시문학사에 큰 자취를 남긴 시인이자
올곧은 정신의 지사, 지훈의 시를 한 자리에 모으다
《조지훈 시 전집》은 1996년의 《조지훈 전집》을 기반으로 하여 지훈의 시 작품들만을 새로 엮어 시인 지훈의 시와 시인의 삶을 온전한 시 전집에서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지훈 시의 정본을 만들고자 시집과 발표지, 시인이 남긴 육필원고를 면밀히 검토하였고 미발표 시 또한 이본을 대조하여 원본을 확정하였다.
지훈상 운영위원장을 맡았고 박목월, 윤동주, 이육사 시인의 시집을 엮은 이남호 교수의 책임편집하에 한자를 모두 한글로 바꾸고 오늘날의 어법을 존중하면서도 지훈만의 시적 언어를 보존하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시 세계를 이해하기 쉽도록 지훈이 직접 쓴 시론 〈나의 시의 편력〉을 부록으로 싣고 그를 바탕으로 작품을 새로 배치했다. 또한 새로 만들어 수록한 시 연보와 색인은 독자가 지훈 시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시의 꿈을 시대의 언어로 치환하며
“아름다운 내일”로 향해 가는 지훈 시의 미학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附椽) 끝 풍경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느리운 주렴에 반월이 숨어
아른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
고와라 고와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 〈고풍의상〉 부분
지훈은 시를 “생활의 진실”로 여겼으며, 평생 동안 시의 편력(遍歷)을 통해 “변하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자신을 탐구했다. 그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수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전통과 자연에 대한 서정을 그려냈다. 〈고풍의상〉, 〈승무〉 등으로 《문장》지의 추천을 받을 무렵, 그의 시는 ‘신고전’의 이름을 얻으며 선(禪)의 미학을 향해 나아갔다. 습작시기에는 역설과 풍자를 담은 심미주의적 작품을 여럿 창작하였으나, 〈고풍의상〉을 계기로 새로운 시의 화법을 획득하면서 시의 길을 넓혀 나간 것이다.
“금시라도 하늘로 피어날 듯 아른한 구름무늬”(〈향문〉)와 “꿀벌의 날개 끝에 우는 북소리”(〈무고〉)를 생생히 불러오니, 아득한 그리움이 형태를 갖추고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자연과 전통에 대한 서정을 그리는 시적 언어는 시작(詩作) 초기부터 정립되어 말년까지 이어진다. 그는 “짐짓 단장(短杖)을 짚고 / 나목(裸木) 숲 샛길로 접어들”(〈대화편〉)며 늙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반추한다.
바둑이가 밟고 오는 잎새 소리에
문득 그리운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낙엽이 뿌리로 돌아가듯이
내가 잠시 죽음 앞에 눈을 뜨고 있기 때문
- 〈청마우거 유감〉 부분
지훈은 “탁류의 역사 속에서도 진리와 허위, 정의와 불의를 준엄하게 판별하였고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엄격하게 구별하여 과감하게 행동”하는 올곧은 지사였다. 해방 전후를 기점으로 시인의 언어는 ‘꿈’과 ‘현실’이라는 이원의 극복을 향해 나아가며 역사의 질곡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에게 역사란 “오기 전 기다리고 온 뒤에도 기다릴 / 영원한 나의 보람”(〈역사 앞에서〉)이다. 지훈은 사회시편과 역사시편을 씀으로써 시대의 목소리와 스러져 가는 인간사를 마음에 새기고자 했다.
지훈은 시 창작에 있어서 결코 “체질에 맞는 세계만을 찾고 그렇지 않은 것을 소외”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훈의 시 세계에는 조화와 불화가 공존하고, 그의 작품들은 서경(敍景)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다가도 애절한 탄식을 내뱉는다. 그야말로 시의 꿈을 시대의 언어로 치환하여, 발화된 문학이 영속적인 힘을 가지게 만든 것이다.
생에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
잘 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 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리 다시 인생을 얘기해 보세그려
- 〈병에게〉 부분
“지훈이 남긴 시 속에서 우리는 그의 감성과 지성, 사유와 인간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지훈은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도 삶의 아름다움을 시로 남긴다. “생에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데서는 삶을 대하는 초연한 멋이 느껴진다. 그의 시 세계는 시인을 둘러싼 외부에서 출발해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향한다. 지훈에게 시 쓰기는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자, 생의 고통을 열락으로 이해하는 과정이다.
지훈에 따르면 “이미 써 놓은 시는 좋든 나쁘든 시인의 것이 아니”므로, 좋은 시는 독자들에게 계속 읽힘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지훈의 시들은 한 권의 책으로 엮임으로써 오늘날의 독자에게 친밀히 다가가고, 거듭 다시 읽히며 “아름다운 내일”로 향해 간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자연과 벗하며 심미의 꿈을 꾸면서도, 시대의 불의에 올곧게 맞서며 생의 여운을 향해 나아갔던 지훈의 길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조지훈 시 전집 」 출판사 나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