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추천도서 (3942) 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
1. 책소개
출처: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 줌파 라히리
1967년 영국 런던의 벵골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곧 미국으로 이민하여 로드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바너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보스턴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에 재학하면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같은 대학에서 르네상스 문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첫 소설집 『축복받은 집』을 출간하며 그해 오헨리 문학상과 펜/헤밍웨이상을,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2003년 출간한 장편소설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은 ‘뉴요커들이 가장 많이 읽은 소설’로 뽑혔고 전미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2008년 출간한 소설집 『그저 좋은 사람』은 프랭크오코너 국제단편소설상을 수상했고 〈뉴욕타임스〉 선정 ‘2008년 최우수 도서 10’에 들었다. 2013년 두 번째 장편소설 『저지대』를 출간했다. 가족과 함께 로마에서 거주했던 경험을 계기로 이탈리아어로 쓴 산문집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책이 입은 옷』, 소설집 『내가 있는 곳』 『로마 이야기』 등을 출간했다.
프린스턴대학교를 거쳐 현재 바너드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생활 중이다.
출처:본문중에서
3. 목차
서문
왜 이탈리아어인가
통_도메니코 스타르노네의 『끈』 서문
병치_도메니코 스타르노네의 『트릭』 서문
에코 예찬_번역의 의미를 고찰하며
기원문에 부치는 송가_어느 번역가 지망생의 메모
나를 발견하는 곳_자기번역에 관하여
치환_도메니코 스타르노네의 『트러스트』 후기
그람시의 ‘트라두치온’_통상적 이감과 특별한 번역에 대하여
언어와 언어들
이국의 칼비노
후기_변신을 번역한다는 것
몇 가지 메모
옮긴이의 말
부록
참고 문헌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20쪽
작가이자 번역가로 산다는 건 존재와 생성 둘 다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주어진 언어로 쓴 글은 보통 그 상태로 남아 있지만, 번역은 그것이 다른 모습을 띠도록 강제한다. 나는 번역─하나의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가 되는 행위─덕분에 내가 오래도록 추구해온 문학과의 대화가 더 완성되고 더 조화롭고 훨씬 더 충만한 가능성을 지닌다고 느낀다.
39쪽
처음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 축소된 시지각이 미친 영향을 감추고 싶지 않았다. 지나치게 텍스트를 매끈하게 다듬어서 내가 보지 못한 것이 보이는 것 같은 환상을 독자에게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게 목표였다면 아마 계속해서 영어로 글을 썼을 것이다. 나의 제한된 이탈리아어에 짜증이 이는 독자들이 있다는 점은 알고 있었다. 언어 구사력이 불완전한 누군가의 말을 듣고 있으면 답답해지기도 한다. 왜 이탈리아어냐고? 다른 눈을 키워보려고, 취약함을 실험해보려고.
56쪽
글쓰기는 삶을 건져 올려 거기에 형태와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감춘 것을 폭로하고, 우리가 간과하고 잘못 기억하고 부인한 것을 밝혀낸다. 포획하고 규정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일종의 진실이자 해방이기도 하다.
88쪽
만약 나르키소스와 에코의 신화가 해피 엔딩이었다면, 그들의 아이는 자라서 나처럼 작가이자 번역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두 인물 모두에게서 내가 가진 창의적 충동의 면면을 발견할 수 있다. 글쓰기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겨냥한 깊은 응시일 테니. 최선의 글쓰기는 물러서지 않는 자기 성찰에서 나온다.
94쪽
번역은 가능성으로 가득한 지평을 열어 창작에 새로운 방향과 영감, 어쩌면 변화까지도 가져다줄 뜻밖의 길로 작가를 안내할 것이다. 번역이란 거울을 응시하다가 그 안에서 자기 외에 다른 이를 보게 되는 그런 것이니까.
115쪽
나에게 이탈리아어 번역은 내가 사랑하는 언어와 멀리 떠나 있을 때 그 언어와의 접촉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번역한다는 건 한 사람의 언어적 좌표가 달라지는 일, 놓쳐버린 것을 붙잡는 일, 망명을 견뎌내는 일이다.
139쪽
대신에 우리는 말과 더 심오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말의 심층부로 내려가 은밀하게 감춰져 있는 겹겹의 대체어를 캐내야 한다. 언어를 조금씩이나마 이해해나갈 방법은 오로지 언어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것, 그래서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고 우리를 괴롭히다 못해 통째로 집어삼킬 듯 위협하는 언어에 우리를 내맡기는 것이다.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이탈리아어는 나에게 제2의 삶,
또 다른 인생을 안겨주었다”
나 자신을 번역하며 깨달은 자유의 감각
줌파 라히리는 이탈리아어로 연이어 책을 출간한 후에도, 몇몇 이탈리아어 모어 사용자들에게 끊임없이 왜 ‘너의’ 언어가 아닌 ‘우리’ 언어로 글을 쓰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마치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의 에필로그처럼 느껴지는 첫 번째 에세이 「왜 이탈리아어인가」에, 로마에서 느낀 “이탈리아어가 내 것이 아니”라는 소외감을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왜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느냐’는 물음에 랄라 로마노와 엘레나 페란테의 작품에서 발견한 몇 가지 은유를 들어 답한다. 줌파 라히리에게 이탈리아어는 “눈부신 장관을 펼쳐” 보이는 “문”이며, “취약함을 실험”할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실명”이며, 새로운 문화/언어에 뿌리 내리는 “접목” 행위에 다름없다.
왜 이탈리아어냐고? 이렇게 요약하고 싶다. 문을 열려고, 다르게 보려고, 나 자신을 다른 존재에 접목해보려고.
─44쪽
한편, 줌파 라히리는 이탈리아 작가이자 친구인 도메니코 스타르노네의 소설 『끈』 『트릭』 『트러스트』를 번역하면서 명실상부한 번역가로 거듭난다. 『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에는 이 세 작품을 옮긴 과정을 상세히 기술한 서문과 후기도 담겼다. 줌파 라히리는 단어를 선택하는 일과 문화적인 맥락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텍스트에 대한 사랑을 충족시키기에 번역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라고 단언한다.
줌파 라히리가 번역가로서의 자의식과 언어적인 지평을 더욱 확장하게 된 것은 자신이 이탈리아어로 쓴 『내가 있는 곳』을 직접 영어로 번역하면서다. 그는 자기번역이란, 양쪽 텍스트를 끊임없이 오가면서 “지면에 쓰인 낱말 하나하나의 유효성을 의심하도록” 강요받는 “가혹한 행위”이며, 작가는 “원본과 파생본의 서열이 해체”되는 경험을 통해 자기 작품의 약점을 발견하고 오류를 바로잡게 된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글을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바꾸면서 스스로 “깊이 변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짜릿함에 대해서도 주지한다. 이처럼 줌파 라히리는 자기번역을 반추하면서 번역 행위의 본질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그 작업에서 얻는 즐거움과 경이까지 고스란히 담아낸다.
나에게 이탈리아어 번역은 내가 사랑하는 언어와 멀리 떠나 있을 때 그 언어와의 접촉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번역한다는 건 한 사람의 언어적 좌표가 달라지는 일, 놓쳐버린 것을 붙잡는 일, 망명을 견뎌내는 일이다.
─115쪽
“나는 번역한다, 고로 존재한다”
번역은 자신의 기원으로 돌아가는 것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그중 에코와 나르키소스 신화를 비유 도구로 삼은 번역에 대한 성찰이다. 에코는 “남들이 한 말의 마지막 한 토막만을 따라” 하지만, 줌파 라히리는 그에게서 복제를 넘어 “경청하고 복원하는” 열정적인 태도를 발견한다. 그에 따르면 번역은 단순히 원작을 “반복”해서 “파생”시키는 “모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번역가의 “상상력과 독창성과 자유로움을 요하는 연금술”과도 같은 것이다. 이러한 고찰은 번역을 문학의 보조적인 행위로 취급하는 인식에 경종을 울린다.
모든 번역은 다른 무엇도 아닌, 변신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다시 말해 일정한 특성과 요소들이 떨궈지고 다른 것들이 얻어지는, 과격하고 고통스럽고 경이적인 변화로 보아야 한다.
─77쪽
줌파 라히리가 존경할 만한 번역가로서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인물은 안토니오 그람시다. 그는 그람시가 옥중에서 가족들에게 쓴 편지와 수고(手稿)를 읽으면서 다양한 언어와 번역에 대해 지속적이고 끈질긴 관심을 보이는 그람시란 인물을 분석한다. 문화와 언어 사이를 계속해서 오가는 줌파 라히리에게 번역에 끝없는 열망을 보이는 그람시는 이상적인 번역가로 인식된다. 또,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였던 이탈로 칼비노를 번역의 관점에서 연구하며, 그에게서 “두 개의 텍스트, 두 개의 목소리를 연주하는 번역가의 감성”을 발견한다.
『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은 어느새 번역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게 된 줌파 라히리가 ‘번역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장 앞에 두고 써 내려간 글들을 엮은 것이다. 수년간 글쓰기와 번역과 언어에 천착해온 그는, 자신의 기원을 돌아보며 “늘 번역하는 사람이었음을 거듭 말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번역의 열렬한 옹호자이자 지지자인 그의 풍부한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문화와 문학의 중심에 놓여 있던 번역의 존재, 그리고 언어의 생생함을 깨닫게 된다.
출처: 「 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 」 출판사 마음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