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추천도서(2456) 명이대방록 - 황종희
1. 책소개
정치의 대법(大法)을 말하기 위해 황종희가 저술한 책으로 암울한 명나라 말기의 시대적 상황이 담겼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군주와 신하의 관계 개선 및 법제도, 인사제도, 토지제도, 군사제도, 회계제도 등의 혁신을 주장하며 새로운 시대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출처 : 교보문고
2. 저자
황종희는 전제정치를 비판하며 새로운 정치를 꿈꾼 중국 명-청 교체기의 사상가이다.
황종희는 53세(1662) 때에 소년기 이래 파란만장한 삶의 총결산이라 할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을 쓰기 시작하였다. 사회정치적인 면에서 전통적 사회질서가 와해돼가고 새로운 사회질서가 태동하기 위한 격렬한 몸부림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가운데 한민족의 명조(明朝)가 이민족인 청조(淸朝)에 의해 무너지는 명말청초라는 전환기에 처하여, 황종희는 명조의 멸망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후 그 원인을 분석하고 당시 사회의 문제점들을 해명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모색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그의 철학사상을 건립하였다. 그는 명조 멸망의 원인을 정치상으로는 주로 명대에 극심했던 전제군주제의 폐해에서 찾고, 『명이대방록』을 저술하여 그것을 비판하고 새로운 정치체제를 모색한 것이다.
출처 : 교보문고
3. 목차
001. 새 시대를 갈망하는 "명이대방록"의 사상사적 의의....(21)
002. [명이대방록]....(43)
003. 머리말....(45)
004. 군주론....(49)
005. 신하론....(58)
006. 법제론....(65)
007. 재상론....(71)
008. 학교....(79)
009. 관리선발....(93)
010. 수도건설....(119)
011. 국경수비....(126)
012. 토지제도....(133)
013. 병사제도....(159)
014. 회계제도....(180)
015. 서리....(202)
016. 환관....(211)
017. [황종희 연보]....(223)
018. 옮긴이의 말....(289)
019. 찾아보기....(295)
출처 : 본문 중에서
4. 출판사서평
명말청초 격변기의 사회 상황과 신사조의 형성
명말청초의 사회는 정치 경제적인 격변기였다. 안으로는 이자성(李自成)과 장헌충(張獻忠)의 농민봉기로 혼란스러웠고, 밖으로는 강성해진 만주족이 명조를 위협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조정 내부에서는 동림파(東林派) 대 비동림파의 대립이 극심하였는데, 이 당쟁은 위충현(魏忠賢)을 중심으로 한 환관들의 동림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졌다.
한편 경제적으로는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했다. 정치·행정의 중심인 북경을 비롯한 행정 중심지역에서는 내분과 전쟁이 끊이지 않은 반면, 강소·절강 등 강남지역에서는 상업과 수공업이 발달한 중대형 도시가 형성되어 번창하고 있었다.
'명이대방록'이 후대에 미친 영향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명이대방록]이 추구하는 정치 경제적 형태는 매우 개혁적이고 혁신적이다. 전제왕권하에서 개혁과 혁신을 주장한 것은 그만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아마도 황종희는 이미 회생 불가능한 명조에 기대를 걸기보다는 새로운 왕조-물론 그가 바랐던 새로운 왕조가 만주족 정권이라고 못박을 수는 없지만-에 대한 강한 집념과 의지를 이 책을 통해 표현했던 것이다. 그 왕조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 사회의 제도와 형태는 매우 분명한 어조로 그리고 있다.
새로운 사회의 주체는 비록 구체적 언급이 없다 하더라도 다음 세 가지 방향에서 추론할 수 있다. 첫째는 이미 멸망한 명왕조 회복을 통해서, 둘째는 새롭게 들어선 청조를 통해서, 셋째는 제3의 세력을 통해서이다. 여기서 첫째, 둘째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황종희는 잘 알고 있었다. [명이대방록]의 저술시기로 볼 때, 그가 명조 회복의 불가능함을 알고 썼다는 것과 극렬한 반청운동을 전개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명조를 비롯한 역대 전제왕권이 [명이대방록]의 정치 경제적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전 왕조가 여기에 해당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따라서 마지막 세번째가 아마도 황종희가 기대를 걸고 추구했던 사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황종희 자신의 구체적 언급이 없는 부분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이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겠으나, [명이대방록]이 신시대에 대한 열망과 과거 잘못된 사회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자못 강렬하다는 점에서 과연 신시대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두고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황종희가 갈망했던 신시대는 [명이대방록] 내용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특정 왕조가 주체가 되는 사회라기보다는 '군객민주'에 보이듯 백성이 주인이 되고, 정치의 주역으로 사대부 지식인 출신의 재상과 관리들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근대적인 민주주의 사회와는 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기존의 전제왕조사회에서 논의되던 '군주민본'(君主民本)과는 분명 다른 차원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명이대방록]은 신시대·신사회를 갈망하는 청말 지식인들에게는 유용한 교과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하튼 [명이대방록]은 수백년 간의 전제정치에 대한 과감한 비판을 시도하고, 민주주의 정신을 발현하였는데, 이것은 손문·양계초·담사동·장개석을 비롯한 지식인들의 정치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황종희의 공리적(公利的) 민본 정치사상은 청말민초 변화된 사회의 요청과 요구에 적합한 논리로서 당시 환영받던 이론이었던 것이다.
출처 :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