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추천도서(2041) 극장, 정치를 꿈꾸다 - 이상우
1. 책 소개
『극장, 정치를 꿈꾸다』는 식민지, 전쟁을 거쳐 지금도 분단시대에 있는 이 땅의 극장예술을 정치적 맥락에서 규명한다. 이 땅의 연극과 영화가 그 고난의 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이데올로기에 어떻게 착종되고 이종교배되었는지를 문화정치학적 관점에서 살펴본 것이다. 일제강점기 ‘김옥균이야기’는 일제의 대륙침략주의를 지지하는 알리바이가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운규의 영화 <개화당이문>에서처럼 민족수난사의 소재로 대중에게 소비된다. 이와 같이 ‘김옥균이야기’뿐만 아니라 <무영탑>, <왕자호동> 등 현재와 본질적으로 긴장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역사’극에서는 기억담론의 투쟁행위 혹은 주체들의 기억욕망의 경합이 단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이 책은 밝히고 있다.
출처 : 교보문고
2. 저자
저자 이상우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1996~2007), 컬럼비아대학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객원연구원, 메이지대학 문학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서로 『유치진 연구』, 『근대극의 풍경』, 『식민지극장의 연기된 모더니티』, 『세기말의 이피게니아』, 『우리연극100년』(공저), 『한국현대희곡선』(편저), 『연극의 즐거움』(공역), 『제국의 수도, 모더니티를 만나다』(공역), 『영화, 대동아를 상상하다』(공역) 등이 있다.
출처 : 교보문고
3. 목차
책머리에
1. 극장, 역사를 말하다
김옥균이야기는 극장에서 어떻게 기억되는가
군국주의 극장에 투영된 민족사이야기
2. 극장, 젠더를 말하다
식민지 여배우와 스캔들
김명순, 연극으로 하위주체를 말하기
3. 극장, 민족주의를 꿈꾸다
릿쿄대학시대의 유치진, 연극으로 정치하기
오영진, 일본어 글쓰기로 민족주의를 꿈꾸다
월경(越境)하는 식민지 극장: 다이글로시아와 리터러시
4. 영화인의 극장정치
신상옥은 영화 <꿈>을 왜 두 번 만들었을까
남북한 분단체제와 신상옥의 영화
주
참고문헌
출처 : 본문 중에서
4. 책 속으로
pp.53-54
문화텍스트에서 역사 인물의 재현은 한마디로 기억담론 투쟁 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 문화텍스트들에는 역사 인물에 대한 서술 주체의 각기 다른 기억 욕망이 존재하며, 그 문화텍스트를 담는 미디어/정치/자본의 기억 욕망, 당대 정치권력의 기억 욕망, 그리고 대중들의 기억 욕망 등이 서로 욕망의 경합(contest)을 벌여서 특정한 기억이 구성된다. 식민지시대의 문화텍스트에 나타난 김옥균에 대한 기억 욕망과 재현방식들도 아시아주의의 전유, 민족주의 및 대중 미디어의 전유, 군국주의의 전유라는 세 가지 부류의 기억 욕망이 서로 경합하며 김옥균에 대한 기억의 정치학을 창출해냈다.
pp.80-81
일제 말기 식민지 역사극에서 일반적으로 고대사 이야기가 과거 민족이야기에 대한 향수로 작용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이조'이야기는 대개 수치스러운 민족이야기로서 원망(怨望)과 회한(悔恨)의 대상이 되는 경향이 있었다. 다시 말해, 고대사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민족이야기의 측면을 갖는다고 한다면, '이조'이야기는 대개 부정적인 민족이야기의 특징을 갖는 경향이 있다. 이 시기 역사극의 두 가지 부류인 고대사 이야기와 이조이야기가 모두 식민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양가성(ambivalence)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pp.102-103
이러한 사실은 식민지 조선에서도 여배우의 출현은 지난한 난관을 거쳐야 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난관의 핵심은 근대 여배우에 대한 인식과 근대적 젠더의식 사이의 격차에서 비롯된다. 근대 동아시아에서 여배우에 관한 담론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근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와 연극의 지위, 그리고 근대국민국가 창출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이라는 문제가 서로 긴밀하게 착종되어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러한 문제들의 착종과 접합을 가장 표 나게 보여주는 실례가 여배우와 추문(醜聞)(스캔들)이라는 주제가 될 것이다.
pp.162-163
시, 소설, 희곡 등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김명순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 처지를 설명하고, 변명 내지 옹호하는 말하기를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희곡 [의붓자식]과 [두 애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두 희곡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성실과 기정은 모두 작가 김명순의 자전적 삶을 토대로 탄생한 인물들이며, 작가 자신의 뼈아픈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금욕주의적 연애 이상을 추구하고 있다. 그들의 금욕주의적 연애사상은 당대 젊은 지식인 남녀들 사이에 유행했던 엘렌 케이의 연애지상주의에 근거를 둔 일원론적인 영육(靈肉)일치 연애관과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육(肉)적 연애에 대한 병적 거부와 영(靈)적 연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라는 왜곡된 연애사상의 추구는 김명순 희곡의 여주인공들이 지닌 의지적 행동인 동시에 작가 자신의 내면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의 일그러진 연애사상은 자신이 남성에게 당한 육체적 훼손이라는 트라우마와도 연관될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해석하면 금욕주의 연애를 추구하는 여주인공들의 시도가 패배와 좌절로 귀결되는 파국을 보여줌으로써 문학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억압적 여성 현실을 폭로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p.230
오영진의 1930년대 일본어소설 [진상]은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진상]은 표면구조를 보면 인간의 애욕과 질투라는 욕망의 갈등을 다룬 통속적 작품으로 비치지만 심층구조를 분석해보면 당대 총독부의 식민지 농촌진흥정책(자력갱생운동)의 허구성을 예리하게 꼬집고 비판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다. 이는 오영진과 동향의 평양고보 동창생 작가 김사량의 소설 [덤불 헤치기]와의 비교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었다. 식민지시대 일본어에 능숙한 엘리트 문인들에 의해 창작된 일본어문학이 지닌 양가성, 즉 상대적으로 일제의 검열이 허술한 일본어창작을 통해 식민지 현실을 비판하고자 한 민족주의적 욕망을 표출한 측면, 그리고 일본어 글쓰기를 통해 피식민지의 차별을 극복하고 제국의 문단 중심, 세계적 보편성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제국 주체로의 욕망이 병존하고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p.235
특히 상연 및 상영을 전제로 쓰인 극문학의 경우에는 그것이 공연(상영)되는 극장의 문화적 맥락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식민지 극장을 둘러싼 문화적 동역학(dynamics)은 매우 복잡다단한 측면을 갖고 있다. 언어, 종족, 자본, 계급, 교양(교육), 성별의 다층적 위계성(hierarchy)이 식민지 극장의 환경을 둘러싸고 있다. 이 복잡다단한 식민지 극장의 문화적 동역학이 어떻게 당대 시나리오 및 희곡의 창작과 연관되며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에 대한 세밀한 고려가 필요한 것이다. 이와 아울러, 당대 식민지 극장의 문화상황에 대한 검토는 단지 조선이라는 일국(一國)적 관점만으로 이해가 곤란하다. 이는 제국 일본의 ‘대동아 신질서체제’와 연동하는 식민지 극장의 문화정치학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비로소 실효를 거둘 수 있다. 다시 말해, 식민지 조선의 극장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당대 동아시아적 문화 판도에 대한 시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p.322-324
그러나 박정희 정부와 신필름의 밀월관계에는 오래 지속하기 어려운 모순이 존재했다. 그것은 박정희 정부가 제정한 영화법 자체가 내포한 모순에서 비롯된다. 박정희 정부의 영화법은 소수 영화사를 기업화하여 한국영화산업을 육성하려는 취지를 갖고 있었다. 영화사 등록요건 규정도 거기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외화 수입 쿼터라는 당근과 검열이라는 채찍을 활용하여 소수 대형영화사를 길들이고 그들에게 영화제작과 외화 수입의 특혜를 집중시키는 독과점 구조를 형성함으로써 영화 미디어를 권력의 손에 장악하려는 것이었다. 외국영화와 경쟁력을 갖춘 한국 영화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진정한 방안은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대폭 확대하여 좋은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의 영화정책은 영화에 내포된 정치, 이념, 윤리, 풍속에 대한 엄격한 검열과 통제에 중점을 두고 있었기에 애초부터 한국영화산업이 외국영화와 경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막혀 있었다.
p.345
신상옥이 북한에서 만든 영화는 현재 우리 사회의 성숙함으로 미루어 볼 때 충분히 포용할 만한 수준의 영화들이다. 그것은 북한의 전형적인 주체예술들과도 다른 차원을 갖고 있다. 가령, [소금]이나 [탈출기]와 같은 영화는 남북한을 초월하여 상당히 뛰어난 예술적 성과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식민지 빈궁 현실의 사실적 묘사, 인물의 초점화 방식, 주인공의 변화, 발전적인 성격 창조에서 [소금]과 [탈출기]는 매우 뛰어난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신상옥이 북한에서 연출한 영화들은 인간 신상옥과 똑같은 운명처럼 오늘날 북한에서도 남한에서도 지워져버린 영화가 되었다. 그것은 분명 한민족의 삶을 그리고 있고, 한민족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남한영화사에도, 북한영화사에도 편입되지 못하고 제3지대를 중음신(中陰身)처럼 떠도는 영화가 되고 말았다.
출처 : 본문 중에서
5. 출판사 서평
금기와 불온의 공간으로
취급되었던 근대의 극장
그 극장은 어떠한 방식으로
정치적 욕망을 표현했을까?
역사, 젠더, 민족주의, 영화정치...
식민지, 전쟁, 분단의 질곡 속에서
우리 극장이 담아내고자 했던
그 시대정신을 말하다
이 책은 식민지, 전쟁을 거쳐 지금도 분단시대에 있는 이 땅의 극장예술을 정치적 맥락에서 규명한다. 이 땅의 연극과 영화가 그 고난의 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이데올로기에 어떻게 착종되고 이종교배되었는지를 문화정치학적 관점에서 살펴본 것이다.
왜 ‘김옥균이야기’는 때로는 일제의 대륙침략주의를 지지하는 알리바이로,
또 때로는 민족수난사의 소재로 대중에게 소비되었는가?
일제강점기 ‘김옥균이야기’는 일제의 대륙침략주의를 지지하는 알리바이가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운규의 영화 <개화당이문>에서처럼 민족수난사의 소재로 대중에게 소비된다. 이와 같이 ‘김옥균이야기’뿐만 아니라 <무영탑>, <왕자호동> 등 현재와 본질적으로 긴장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역사’극에서는 기억담론의 투쟁행위 혹은 주체들의 기억욕망의 경합이 단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이 책은 밝히고 있다.
왜 남성 지식인들은 ‘데이트폭력’을 당한 김명순을 비난했으며,
또 김명순은 금욕주의적 연애 이상을 추구하는 글로 자신을 방어했는가?
근대국민국가의 왜곡된 젠더 인식은 여성들에게 질곡으로 작용한다. 이 땅에서 근대적 의미의 ‘여배우’가 성립하는 과정은 윤심덕을 비롯한 토월회의 여배우들의 사례에서 보듯 수많은 난관을 거쳐야만 했다. 여성들의 수난사는 맞선을 본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오히려 김기진을 비롯해 김동인, 염상섭 등의 남성 지식인들로부터 인신공격을 받은 1세대 신여성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소설가인 김명순 사건에서 정점을 찍는다. 피해자인 김명순이 금욕주의적 연애 이상을 추구하는 글을 통해 스스로를 방어해야만 했던 상황은 당시의 젠더 인식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를 여실히 증명해준다.
왜 오영진은 민족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작품을 일본어로 써야 했는가?
오영진은 [한네의 승천] 등 민족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칭송받는 민족주의 작가이다. 그런데 왜 오영진은 일본어로 작품 활동을 해야만 했을까? 일본어가 고쿠고(국어)로 강제되는 이중언어 상황, 월경(越境)이라는 동아시아의 특수한 문화적 상황, 극장이라는 미디어적 특성 등의 상황에 따라 식민주의에서 민족주의를 꿈꾸는 모순이 발생했음을 이 책을 말하고 있다.
왜 신상옥은 남북한 최고 권력자로부터 전폭적 지원을 받았지만
진정한 예술창작의 자유를 얻지 못했는가?
신상옥은 박정희 정권과 밀월 관계였고 김정일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지만 결국 양쪽 모두에서 진정한 예술창작의 자유는 제공받지 못한 불운의 영화인이다. 박정권의 검열과 통제는 영화의 질을 높여 해외진출을 하고자 했던 감독이자 제작자의 꿈을 좌절시켰고, 북한의 유일사상체제는 오로지 그의 영화를 대외용으로만 이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영화사에서 그 위치가 줄어들고, 북한영화사에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한 신상옥 영화는 예술이 정치에 지배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이 책은 식민지, 전쟁, 분단시대를 헤쳐오면서도 우리 근대 극장이 끈질기게 담아내고자 했던 시대정신의 양상들을 아홉 편의 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출처 : 테오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