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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추천도서(1770)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 프리초프 카프라

'-') 2018. 1. 4. 10:00



1. 책 소개


현대 물리학 속에 담긴 동양사상에 대한 내용을 담은『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개정판. 이 책은 현대 물리학의 주요 개념과 이론들을 수식이나 전문 기호를 쓰지 않고 이해하기 쉽게 구성한 것으로 현대 물리학 속의 새로운 세계관이 동양의 고대 사상에 담긴 세계관과 얼마나 비슷한가를 비교한다. 

또한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 물리학에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물리학의 역할을 살펴보고 현대 물리학과 동양 철학의 유사점을 통해 서양의 문화에 수용방법과 조화를 이루는 방법도 함께 서술한다. 

출처 : 교보문고


2. 저자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 
빈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유럽의 여러 대학에서 물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 뒤 미국에 건너가 캘리포니아대학의 교직에 있으면서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에서 오랫동안 소립자 연구를 계속했다. 

현재 미국의 버클리에 살고 있는 카프라 박사는 국제적인 생태문제 연구 조직인 엘름우드 연구소를 창설, 새로운 생태과학의 이론을 정립하여 오늘날 사회 경제 및 환경 문제에 응용하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The Tao of Physics)>,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The Turning Point)>, <탁월한 지혜(Uncommon Wisdom)>, <생명의 그물(The Web of Life)> 등이 있다. 


출처 : 교보문고


3. 목차


제2판 역자 서문 | 이성범 
제1판 역자 서문 | 이성범 
제2판 저자 머리말 | 카프라 
제1판 저자 머리말 | 카프라 

제1부 물리학의 길 
1. 현대 물리학 - 마음을 담은 길? 
2. 아는 것과 보는 것 
3. 언어를 초월하여 
4. 새로운 물리학 

제2부 동양 신비주의의 길 
5. 흰두교 
6. 불교 
7. 중국 사상 
8. 도교 
9. 선 

제3부 대비 
10. 만물의 통일성 
11. 대립의 세계를 넘어서 
12. 공간 - 시간 
13. 역동적인 우주 
14. 공과 형상 
15. 우주적 무도 
16. 쿼크 대칭들 - 하나의 새로운 공안 
17. 번역의 모형 
18. 상호 관통 

맺음말 
제2판 후기 다시 찾은 신물리학 
제3판 후기 신물리학의 미래 

참고문헌 
찾아보기 

해설 김용정 
발사 서정주

출처 : 본문 중에서


4. 책 속으로


현대 물리학은 상대성 이론과 양자 물리학을 말하는 것으로 그 자연관은 고전 물리학적 자연관과는 극히 대조적으로 고잔 물리학의 절대 공간과 절대 시간의 개념은 그 허구성이 드러났으며 인과율은 원자의 세계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개념으로 전락하였고 단순한 질량적 물질은 합리적 이해를 초월하는 자기모순에 가득 찬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객관주의의 태도로 자연을 관찰하는 고전 물리학과는 반대로 불교 등 동양 사상은 주관주의에 입각한다. 주관적인 마음이 인식의 주체이므로 객관적 존재란 신빙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현대 물리학이 순수 객관주의에서 주관주의의 방향으로 접근해 옴에 따라 본질적으로 주관주의적 도양의 사상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대 물리학자들의 심각한 사상적 고민 속에서 그들은 일찍부터 동양 사상에 깊은 관심을 가졌지만 동양 사상의 세계관에 파고들어 많은 공통점을 밝히지는 않았다.


물질의 궁극체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이며 물질적 존재란 전일적인 것의 한 과정으로서만 성립될 수 있다는 현대 물리학의 자연관은 그 보는 방법과 과정에 있어서 전혀 대조적인 것이지만 동양 사상의 견해와 거의 일치하는 결론에 도달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존재 자체를 신비한 것으로 본다는 의미의 힌두교와 불교와 도교의 철학을 뜻하는 동양의 신비주의와의 유사성은 물리학에 그치지 않고 생물학, 의학, 심리학과 그 외의 과학에도 나타나고 있다. ('동양의 신비주의'라는 말이 주는 모호성을 피하기 위해 '동양 사상'이라고 기술한다.)


이 책의 목적은 현대 물리학의 제 개념과 극동의 철학적 · 종교적 전통 속에 들어 있는 기본 이데아들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다. 동양적 지혜와 서양의 과학 사이에 본질적인 조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과학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현대 물리학이 기술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어 물리학의 길(道)이 있음을 담는 길이 될 수 있으며 영혼의 지식과 자기실현의 도정이라는 것을 보이고자 한다.


제1부: 물리학의 길

1. 현대 물리학 - 마음을 담은 길?


     현대 물리학은 인류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 사상과 문화의 영역에까지 확장되어서 우주에 대한 그리고 우주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관념에 일대 수정을 가하게끔 했다. 이런 변화들이 동양 사상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관점과 매우 유사한 방향의 세계관으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모든 신비적 성향을 가진 철학과 종교에서도 어느 정도씩은 발견될 수 있기는 하지만 동양에서는 철학적 · 종교적 사상의 주류를 이루어 왔다는 것이 다르다.


물리학의 근원은 과학과 종교가 분리되지 않았던 문화인 초기 그리스 철학에서 찾을 수 있고 초기 그리스 철학에는 동양 사상과 유사점이 많이 있었다. 서양의 과학은 르네상스에 와서야 비로소 더 발전하게 되고 사변적 아이디어를 실증하기 위한 실험이 이루어졌으며 수학적 언어로 표현되었다. 갈릴레오는 실험적 지식을 수학과 결부시킨 최초의 사람이었으며, 이 점에서 그를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 일컫는 것이다.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의 극단적 공식화를 초래한 철학 사상의 발전이 근대 과학의 탄생을 선행하고 동반하였다. 이 공식화는 데카르트 철학에 의 나타나는데 '데카르트적'인 분할은 물리는 죽은 것으로 자신들과는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취급할 수 있게 하고 물질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기계로 조립된 제각기 다른 객체의 군집으로 보도록 허용하였다. 뉴턴은 이것을 기초로 기계론적 역학을 구축하여 고전 물리학의 기반을 다졌다. 데카르트적인 분할과 기계론적인 세계관은 고전 물리학과 기술의 발달에는 성공적이었지만 문명에 대해서는 많은 역작용을 초래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동양의 세계관은 '유지적'인 것으로 동양 사상에 있어서는 감각에 비치는 모든 사물과 사건은 상호 관련되고 연결되어 있으며 다 같은 궁극적인 실재의 다른 양상 내지 현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동양 사상들은 세세한 면에서 다른 점도 많지만 모두 우주의 근본적인 전일성을 강조하며 그것이 중심적 교의이다. 동양의 세계관은 본질적으로 역동적이며 시간과 변화를 본래부터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란 영원히 움직이고, 살아 있고, 유기적이며 정신적인 동시에 물질적인 하나의 불가분의 실재로서 보이는 것이다.


2. 아는 것과 보는 것


     지적 사상뿐만 아니라 감각적 인지까지도 초월하는 실재의 직접적인 체험으로부터 오는 지식은 항상 상대적이며 근사치에 머무는 분별하고, 추상하고, 분류하는 지성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불교도들은 그것을 절대지라고 부른다. 그것은 차별이 없고 불가분 하며 한정되지 않은 '존재 자체(眞如)'로 궁극적인 실재는 드러낼 수 있는 추론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절대지란 전적으로 실재의 비지성적 체험으로 '명상적'인 상태라고 불릴 수 있는 비일상적 의식 상태에서 일어나는 경험이다. 이런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은 동서양의 수많은 사람들이 증언했을 뿐만 아니라 심리학적인 연구에서도 시사되었다.


과학적 추상 방법은 아주 효율적이고 강력하지만 우리의 개념 체계를 더 정확히 정의하고, 그것을 더욱 능률화시키며, 그 연결을 더울 엄밀하게 한다면 그것은 실재의 세계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된다. 수학적 모형은 그 내적 ㅜ조에 있어서는 엄밀하고 일관성이 있지만 그 기호들이 우리의 경험에 바로 와 닿지는 않는 반면에 언어적 모형은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개념들을 사용하지만 늘 애매모호하고 부정확하다는 차이가 있다. 만약 과학에 직관적인 요소가 있다면 동양 사상에도 추론적 요소가 있다. 동양적 사상들이 경험에 그 지식의 기반을 확고히 두고 있다는 사실은 과학적 지식이 실험에 확고한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과 유사하다. 동양 사상의 지식은 관조(觀照)를 통해 봄(見)으로서 알게(識) 되는 것이다. 과학적 실험과 깨달음 사이의 유사성은 그 관찰 행위가 성격상 판이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무척 놀라운 일이다. 심오한 깨달음은 오랜 준비가 필요하나 직관적 통찰은 일상에서도 일어난다. 마음의 준비는 주로 명상의 형태로 나타나고 그 목적은 사고하는 마음을 누르고 깨달음을 추론적인 데서 직관적 의식의 모습으로 바꾸는 데 있다. 주위 환경과 합일하는 체험은 이런 명상 상태의 주요한 특징이다.


뉴턴 모형과 양자론 그리고 상대성 이론은 틀리거나 맞는다고 할 수 없고 현상의 특정 범위에서만 타당한 근사치이다. 그 범위를 넘어서면 이 이론들은 자연에 대해 만족할 만한 기술을 더 이상 줄 수 없고 새로운 모형이 발견되어 근사치를 개량함으로써 확장해 나가야 한다.


동양의 사상가들 역시 실재에 대한 모든 언어적 기술이 애매모호하고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은 사유와 언어의 영역을 초월하며 그래서 모든 사상은 바로 이 직접적인 체험의 기초 위에 서 있으므로 부분적으로만 진실일 수 있다. 이를 신화적 언어를 사용(힌두교) 하거나 언어의 부조화와 한계를 드러내기 위한 역설을 사용(도가) 하였고 공안(公案)을 가진 선불교에 영향을 미친다. 선의 대가들이 가르침을 전승시키기 위해 활용한 일견 합당치 않은 난제인 공안들은 현대 물리학과 하나의 중요한 평행선을 이루어 나간다.


3. 언어를 초월하여


     동양 사상이 부딪친 언어의 문제는 현대 물리학이 당면한 문제와 같다. 둘 다 그들의 지식을 전달하려 하지만 말을 가지고 하는 경우 그들의 진술은 역설적이고 논리적 모순으로 가득 차 버린다. 사물의 본질적인 속성이 지성으로 분석될 때마다 그것은 불합리하거나 역설적으로 보이게 마련이라는 점을 동양 사상가들은 언제나 인지해왔지만 과학에서는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문제가 되었다. 우리가 자연의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일상 언어의 이미지와 개념을 더욱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동양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물리학자들도 이제 비감각적인 경험을 다루게 되었고, 또한 동양 사상가들처럼 경험의 역설적인 면모에 마주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 물리학의 모형과 이미지가 동야 철학의 그것과 동류가 되기에 이른다.


4. 새로운 물리학


     현대 물리학의 모든 발견은 공간, 시간, 물질, 대상, 인과 등과 같은 개념들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러한 변화로부터 새롭고도 아주 다른 세계관이 나왔고, 그것은 현재의 과학적 탐구에 의하여 아직도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금세기 초에 현대 물리학의 근본적인 두 이론인 양자론과 상대성 이론이 우리로 하여금 자연에 관해 더욱 미묘하고 전일적이며 유기적인 견해를 채택하도록 하였으며, 고전적인 기계론적 세계관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관의 첫 모습을 고전 물리학의 배경과 대조시키며 설명한다.



제2부: 동양 신비주의의 길

5. 힌두교


     힌두교는 여러 세기에 걸쳐 인도의 지적 생활에 영향을 끼쳐왔을 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적 생활까지도 거의 전반적으로 결정지어 왔다. 힌두교는 수많은 종파와 의식과 철학적 체계로 구성된 하나의 거대하고도 복합적인 사회 종교적 유기체이며 다양한 종교 의식과 예식 및 전신적 계율을 포함하고 있다. 힌두교의 정신적 원천은 《베다 경전》에 두고, 그중 시기 및 철학적으로 마지막 부분을 형성하기 때문에 '베단타(Vedānta:《베다》의 끝·결론)'라고도 하는 《우파니샤드》는 정신적 메시지의 정수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은 《우파니샤드》보다 방대하고 다채로운 수많은 민간 설화를 통해 가르침을 받아 왔다.


무한하고 모든 개념을 넘어서 있는 궁극적 실재인 브라만은 만물의 영혼 또는 내적 정수(精髓)로 이해된다. 그것은 지성으로 이해될 수 없고 언어로써 적절하게 기술될 수 없다. 브라만이 인간의 영혼 속에 현시되는 것을 '아트만(自我)'이라 부르고 이 개별적 실재인 아트만과 궁극적 실재인 브라만 사상은 《우파니샤드》의 한 본질을 이루고 있다.


힌두교의 자연관에서 만상은 상대적이고 유동하고 영원히 변화하는 마야며, 위대한 마술사의 신성한 유희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거룩한 '릴라'는 율동적이고 힘찬 유희인 까닭에 이 마야의 세계는 부단히 변화하는 것이다. 이 유희의 역동적인 힘은 '카르마'인데 이는 '행위'를 의미한다. 활동하고 있는 전 우주의 실천 원리로 여기에서 만물이 다른 만물과 역동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다.


마야의 주술에서 해방되는 것, 카르마의 속박을 부숴 버리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감각으로 인지하는 모든 현상이 다 같은 실재의 부분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이 브라만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몸소 체험하는 것을 뜻한다. 이 체험이 '모크샤(解脫)'이며 힌두교의 정수(精髓)다.


6. 불교(佛敎)


     불교는 아시아 대부분 지역에서 지배적인 정신적 전통이 되어 왔고 지적 · 문화적 · 예술적인 생활에 강한 영향을 끼쳐 왔다. 불교는 오로지 인간 존재의 고뇌와 좌절 등 인간적 상황에 관심을 둔다. 체험의 본질은 지적인 분별과 대립의 세계를 넘어 야친타(無思議)의 세계에 도달하는 것으로, 여기에서는 실재가 분할되지 않고 차별되지 않는 '진여(眞如)'로서 나타난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으나 인연의 이치를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 설법 방법으로 사성제(四聖諦)를 고안하였다. 사성제는 고집멸도의 사제로 마지막 도제(道諦)는 정견(正見), 정사(正思: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근(正勤: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의 팔정도(八正道)로 되어 있다. 부처는 그의 교시를 단지 개오(開悟)를 얻는 한 가지 수단으로 간주하였다. 대승불교에서는 만물의 본성은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 용어인 진여(眞如)와 사람의 마음이 만든 실재에 관한 모든 개념이 궁극적으로 공허하다는 의미의 공(空)에 의해 설명될 뿐 아니라 불가의 종교적 의식에 나타난 실재를 기술한 용어인 법신(法身)에 의해서도 서술된다.


7. 중국 사상


     유교는 사회 조직과 상식과 실천적 지식의 철학으로 교육 제도와 사교적 예절의 엄격한 관습을 마련해 주었다. 도교는 자연을 관조하여 '도'를 찾아내는 데 주로 관심이 있으며 인간의 행복은 인간이 자연의 질서에 순응해서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자신의 직관적 지혜를 믿을 때 얻어진다고 한다.

 중국 정신은 논리적으로 추론해 들어가는 일이 없어 서양에서 진화되어 온 것과는 사뭇 다른 언어를 발전시켰다. 중국의 단어들은 강렬한 암시력을 가지고 마음속에 그림과 같은 영상과 감정을 막막하게 복합시켜 주는 심원한 상징으로 절대적 기호가 아니라 이미지의 완전한 융합과 단어의 암시력을 보존시켜 주는 하나의 유기적 패턴(형태)이다.


8. 도교(道敎)


     인습적 지식과 이성에 대한 불신은 서양 철학의 다른 어는 학파보다도 도교에 있어 한결 강하다. 그것은 인간의 지성이 결코 도를 해득할 수 없다는 공고한 신념에 근거하고 있다. 논리적 추론을 사회적 예절 및 도덕적 규범과 아울러 작위적인 인간 세계의 일부로 간주하였다. 분석적 방법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적절한 과학적 이론들을 수립하지 못했지만 강한 신비적인 직관과 결합된 주의 깊은 자연 관찰로써 현대의 과학 이론에 의해 확인되고 있는 깊은 통찰에 이르렀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통찰 중 하나는 변용과 변화가 자연의 본질적인 모습이며 이는 음양 양극 간의 역동적인 상호 작용이 빚어 낸 것으로 보았고 따라서 어떤 대립하는 쌍도 그 극 가운데 하나가 다른 하나에 역동적으로 연관돼 있는 극관계를 성립시킨다고 믿게 되었다. 이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만물은 유전한다'라는 말로 부단한 변화를 강조한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 도는 자발성이 있으며 이는 도의 행동 원리이며 인간의 행위가 도를 본뜨는 것이기 때문에 자발성은 모든 인간 행위의 특성이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과 조화하는 행위란 자발적인 행위, 곧 스스로 진정한 본성에 합치되는 행위를 뜻한다. 그것은 마치 우리를 들러싸고 있는 모든 사물 속에 변화의 법칙이 내재하듯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해 있는 직관적 지성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현자의 행위는 직관적 지혜 속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자기 스스로 또는 주변의 무엇도 강제할 필요가 없으며 다만 도의 운동에 자기의 행위를 순응시켜 나갈 따름이다. 이를 '무의(無爲)라 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하는 바대로 허용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도와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므로 '무위로 모든 것이 성취될 수 있다'.


※ 강신주의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에서 보듯 최근에는 노자와 장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시도되고 있기도 하다. 아래의 링크에서 그 요지를 참조할 수 있고 강신주의 해석을 따르자면 노자보다는 장자가 이 책의 도교를 논한 논거에 알맞다는 생각이다.


http://blog.naver.com/kijsoh/221038923302&http://blog.naver.com/kijsoh/221043140863)


9. 선(禪)


     중국 정신의 실용적인 면을 인도 불교의 실제적인 상(相)에 집중하여 명상으로 번역되는 선(禪)이란 정신적 수련으로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인도 불교의 영향에 대응했다. 선은 인도의 신비주의와 도가의 자연성과 자발성에 대한 사랑 그리고 유교 정신의 철저한 실용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다소 특이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선은 그 목적이 깨달음(覺)이라는 개오(開悟)의 얻음이므로 본질에 있어서는 순수하게 불교적이다. 개오의 체험은 동야 철학의 모든 학파의 핵심이지만 특히 선은 오직 이 체험에만 전념하고 더 이상의 해석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선은 언어로써 궁극적 진리를 나타낼 수 없다고 확신한다. 이는 도교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런대 선 체험은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전해질 수 있는데 이를 선문답(禪問答)을 포함한 직지(直指)라 하고 이는 지적이라기보다는 직관적이며 사실을 사실대로 토로하는 동양적 마음의 전형이다. 이것은 화두(公案)처럼 개념적 사고의 역설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제자들을 신비 체험에 대비시키기 위해 사고 과정을 정지시키는 것을 뜻한다. 선은 우리의 일상적인 체험이며 평상심(平常心)이다. 일 생활을 개오로 나아가는 도정으로 볼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개오 그 자체로 본다. 그러므로 선의 완성은 일상생활을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사는 데 있다.


제3부: 대비(對比)

10. 만물의 통일성


     동양적 세계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모든 사물과 사건들의 통일성과 공동의 상호 관계에 대한 깨달음으로 세계의 모든 현상을 기본적인 전일성의 현시로서 체험하는 것이다. 모든 것들이 우주 전체의 상호 의존적이고 불가분의 부분들로서 또는 동일한 궁극적 실재의 다른 현현(顯現)으로서 이해한다. 그러나 일상적 생활에서 우리는 이 만물의 통일성을 깨닫지 못하고 세계를 개별적 사물들과 사건들로 나눈다. 이 분할이 일상적 환경을 다루는 데는 유용하고 필요하지만 그것이 실재의 참모습은 아니다. 명상을 통해 '전심적 평형'인 삼매(三昧)에 이르면 우주의 기본적 통일성이 체험된다.


우주의 근본적인 전일성은 신비적 체험의 중심적 특성일 뿐만 아니라 현대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 중의 하나다. 그것은 원자의 단계에서도 나타나고 아원자적 소립자들의 영역에까지 물질을 더 깊이 투시해 들어감에 따라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물질의 구성요소들과 그에 관련된 근본적 현상들이 모두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 관계적이고 상호 의존적이며 고립된 실체들로서가 아니라 전체의 완전한 부분들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관찰의 과정을 주의 깊게 분석하여 원자적 현상에 관한 이론인 양자론에서 자연의 기본적 상호 연결성이라는 개념이 생겨나는 것을 서술하고 있다.


코펜하겐 해석의 출발점은 물리적 세계를 관찰되는 세계와 관찰하는 세계로 나누어 두 체계가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진다는 사실에서부터 커다란 어려움이 발생한다. 관찰하는 체계는 고전 물리학의 용어로 기술되지만 관찰되는 '대상'을 기술하는 데에도 같이 사용될 수는 없다. 실험 배치에 대한 고전적 용어와 관찰된 대상에 대한 확률 함수라는 두 기술 사이에 있는 대조는 아직 해결 않은 형이상학적 문제로 이어진다. 준비와 측정 장치들이 충분히 떨어져 배치되지 않은 경우에만 짧은 범위의 영향들이 지배하지만 그런 경우에 거시적인 정체계는 하나의 통일된 전체를 이루고 관찰되는 대상이란 개념은 사라진다. 이처럼 원자론은 우주의 본질적인 상호 연결성을 드러내 준다. 이는 세계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최소 단위로 분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보어에 의하면 독립된 물질적 입자들이란 추상물로서 그들의 속성은 다른 체계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서만 정의될 수 있고 관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자론은 우리로 하여금 우주를 물리적 대상들의 집합으로서가 아니라 통일된 전체의 여러 가지 부분들 사이에 있는 복잡한 관계망으로 보게 한다. 그런데 이는 동양의 사상가들이 세계를 체험했던 방법으로 그중 몇몇은 그 체험을 원자 물리학자들이 쓴 것과 거의 같은 말로 표현하였다. 우주적 망의 이미지는 불교에서는 한층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엄경》은 그 핵심 부문에서 이 세계를 완벽한 상호 관계의 망으로서 그리고 있는데 거기에서 모든 사물들과 사건들은 무한히 복잡한 방식으로 서로 작용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이다. 원자 물리학에서 우리는 대상 그 자체의 속성에 관해서는 말할 수 없고 대상과 관찰자의 상호 작용이라는 맥락에서만 의미가 있다. 관찰자가 어떻게 자기의 측정을 진행할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따라 관찰하는 대상의 속성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결정지어지지만 실험상의 배열이 변경되면 관찰되는 대상의 속성이 변할 것이다. 따라서 관찰자의 개입을 양자론의 중요한 특성으로 여기고 '관찰자'를 '참여자'로 대치할 것을 제의한 과학자도 있다. '관찰 대신에 참여'라는 생각은 현대 물리학에서는 최근에야 공식화되었지만 신비적 見識이란 자기 존재 전부를 쏟아 넣는 전적인 참여에 의해서만 얻어진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었다.


11. 대립의 세계를 넘어서


     모든 대립적인 것은 양극적이라는 개념으로 동일한 현상의 다른 면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이는 동양인의 생활 방식에 있어서 기본적인 원리 중 하나다. 일체의 대립적인 것은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에 그것들의 투쟁은 결코 어느 한 쪽의 완전한 승리로 끝날 수 없고 항상 양자 간의 상호 작용을 표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동적인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동양 사상에 있어서는 대립적인 것들의 통일이 경험되는 방법상의 요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정적인 동일성이 아니라 언제나 두 극단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 작용이다. 원형적 양극을 상징하는 음과 양이 있으며 음과 양의 배후에 놓여 있는 통일체를 '도'라고 부르고 그것을 음양의 상호 작용을 발생시키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보았다.


소립자들은 붕괴되기도 붕괴되지 않기도 하고, 물질 또한 연속적이기도 비연속적이기도 하고, 힘과 물질은 단지 같은 현상의 서로 다른 양상에 불과한 것처럼 현대 물리학에서 대립 개념의 통일에 관한 본보기는 아원자의 단계에서 찾을 수 있다. 모순 개념을 통합하는 가장 유명한 것은 원자 물리학에서 입자와 파동의 개념을 통일하는 경우이다. 원자 물리학에 있어서도 동양 철학과같이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존재와 비존재까지 초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립 개념 너머에 있는 실재에 직면해서 물리학자와 동양 사상가들은 특별한 사유 방법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12. 공간 - 시간


     현대 물리학은 동양 철학의 기본이 되는 사상의 하나인 자연을 기술하기 위한 개념들은 한계가 있으며 우리가 믿는 것과 같이 실재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든지 마음의 소산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증시켰다. 상대성 이론에 의해 제기된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들에 관한 일대 수정은 과학사에 있어서 위대한 혁명의 하나였다. 고전 물리학의 기초가 된 3차원의 절대적 공간과 이와는 별개의 차원으로서의 절대적 시간이란 개념을 확립한 그리스 철학과는 달리 동양 철학은 항상 공간과 시간이 마음의 구성물이라는 것을 주장해 왔다. 이는 다른 모든 지성적 개념들처럼 공간과 시간을 상대적 · 제한적 · 환상적인 것으로 취급하였다. 이처럼 고대 동양의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기하학적인 개념은 자연의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특성이 아니라 지성의 구성물이라는 상대성 이론의 기본 태도와 같은 태도를 이미 취하고 있었다. 이와 똑같은 것이 우리의 시간관념에도 적용되고 동양의 철학가들은 전통적인 공간과 시간의 개념이 궁극적인 진리가 아님을 이미 깨달았다. 동영 철학의 자연관이 그리스 철학의 견해보다 현대의 과학적인 견해에 훨씬 더 부합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시간 지향적인 직관이다. 그리스 자연 철학은 본질적으로 정적이고 대체로 기하학적인 사고방식에 기반을 두는 반면 동양 철학들은 '시공'의 철학으로 그들의 직관은 종종 현대적 상대성 이론에 함축되어 있는 자연관에 상당히 밀접하게 접근되어 있다.


동양의 정신적 전통은 그 추종자들에게 시간의 일상적 경험을 뛰어넘는 여러 가지 방법과 원인과 결과의 사슬로부터 그 자신을 해방시키는 길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동양 철학은 시간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일컬어져 왔으며 어느 면에서 상대성 물리학도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13. 역동적인 우주


     동양 사상의 중요한 목적은 이 세계의 모든 현상들을 동일한 궁극적인 실재가 현현하는 것으로서 경험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실재는 우리가 관찰하는 잡다한 사물들과 사건들의 근거가 되며 통일을 이루는 우주의 본질이라고 생각되며, 우리의 지적 개념들을 초월하고 있으며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동양 사상은 전통적으로 운동, 유동과 변화에 관해 강조하며, 우주를 분리시킬 수 없는 하나의 그물로 보고 그 상호 연관은 정적이 아니라 동적이라고 본다. 현대 물리학에서도 역시 우주를 그와 같은 관계의 망으로 생각하게 되었으며, 동양 사상처럼 이 망이 본질적으로 역동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물리학에서 원자와 핵의 세계와 같은 좁은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별과 은하계와 같은 넓은 영역의 우주에 있어서도 동적인 본성을 파악한다. 광대한 규모의 공간과 시간을 내포하고 있는 우주가 주기적으로 팽창했다가 다시 수축한다는 아이디어는 현대 우주론에서뿐만 아니라 고대 인도의 신화에도 나온다.


14. 공과 형상


     이 장에서는 소립자들의 속성과 상호 작용들을 이해하는 데 우리는 얼마만큼 와 있는가를 밝히고 아원자적 세계에 대한 완전한 양자-상대성 이론을 아직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 세계의 어떤 면들을 매우 성공적으로 기술해 줄 수 있는 몇몇 부수적인 이론과 모델들이 발견되어 왔다는 것을 설명한다. 양자장을 비롯한 이러한 모델들과 이론들의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서 논의하노라면 그것들 모두가 동양 사상의 공(空), 윤회, 기(氣), 도(道)와 같은 개념과 놀랄 만큼 일치하는 철학적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상적 소립자들과 진공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동적 관계다. 진공은 진실로 생성과 소멸의 끝없는 리듬으로 고동치는 '살아 있는 허(虛)'다. 진공의 동적인 성질에 대한 발견은 많은 물리학자들에 의하여 현대 물리학에서 최고로 중요한 발견 중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현대 물리학의 결과는 중국의 현인 장자의 다음 말을 더욱 확증해 준다. "태허(太虛)가 기(氣)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 때 무(無)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5. 우주적 무도


     아원자 세계의 탐구는 물질의 본래적인 역동적 본성을 밝혀 원자의 구성 요소들인 아원자적 입자들이 독립된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상호 작용들의 불가분 한 망(網)의 불가결한 부분들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상호 작용들은 입자들의 교환으로서의 그 자신을 나타내는 에너지의 그칠 줄 모르는 유동을 포함하고 있다. 에너지 모형의 연속적인 변화를 통해 입자들이 끝없이 생겨나고 소멸되는 역동적인 상호 작용이다. 물질계는 정적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율동적인 운동을 하며 진동하고 있어 전 우주는 끊임없이 운동과 활동인 에너지의 지속적인 우주적 무도(舞蹈)를 하고 있다.


우주적 무도라는 은유는 그것의 가장 심오하고 아름다운 표현을 힌두교의 무도 신 시바의 이미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힌두교의 신앙에 의하면 모든 생명은 생성과 소멸, 죽음과 재생의 거대한 율동적인 과정의 한 부분이며, 시바의 춤은 끊임없이 윤회를 계속하는 이 영원한 생사의 율동을 상징화한 것이다.힌두교의 신은 브라만의 인격화이므로 시바의 행위는 이 세계에 있어서의 수많은 브라만의 현현이다. 시바의 무도는 춤추는 우주, 즉 서로서로 용해되는 모형들의 무한한 다양성을 거쳐가는 에너지의 끊임없는 흐름이다.


현대 물리학자에 있어서 시바의 무도는 아원자적 물질의 무도가 된다. 그것은 전채 우주를 포함하는 생성과 소멸의 연속적인 무도, 즉 모든 존재와 자연 현상의 기본이다. 우주적 무도라는 은유는 신화, 종교적 예술, 현대 물리학을 합일케 한다.


16. 쿼크 대칭들 - 하나의 새로운 공안

     입자 세계에 있어서의 대칭적 모형들의 발견은 많은 물리학자들로 하여금 쿼크 공안들이 자연의 기본 법칙을 반영한 거이라고 믿게 하였다. 대칭에 대한 동야 철학의 태도는 고대 그리이스인들과는 대조적으로 대칭적 모델들을 상징이나 명상의 방편으로 활용하지만 그들 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지는 않다. 선(禪)의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의 회화는 '여백(餘白)'양식이라 부리는 방법으로 자주 그려졌다.


17. 변역(變易)의 모형

     아원자적 입자들의 여러 이론들은 과학적 관찰자와 관찰되는 현상을 분리시키는 일이 불가능함을 반영하며, 우리가 자연에서 관찰하는 구조들과 현상들이 측정하고 분류하는 우리 마음의 소산에 지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은 동양 철학에서 근본이 되는 주장들 중의 하나로 우리가 감지하는 모든 사물들과 사건들은 어떤 특별한 의식 상태가 지나가면 사라지는 마음의 소산물임을 우리들에게 말해 준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현상들과 구조들은 마음에서 생겨난 것으로 그것들에게 깊은 의미를 부여하려는 우리의 성향을 인간의 근본적인 망상(妄想)이라 여기며 불교에서는 그것을 무명(無明) 혹은 무지라 하고 부정한 마음의 상태로 본다. 입자 물리학에서 S 행렬의 일반적 원리들로부터 강입자 모형을 유도해내게 되어 전자기의 상호 작용이나 중력의 상호 작용 등의 이론들에도 나타날 일반적인 특색일지 모른다는 추론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현대 물리학은 동양의 성인들과 함께 물리적 구조들은 '유심(唯心)'이라는 것에 동의하기 위하여 머나먼 길을 온 셈이 될 것이다.


강입자 세계에 있어서의 변화는 반응 채널에 의하여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구조들과 대칭적 모형들을 일으켜 준다. 구조들이나 대칭성들은 모두 입자들의 동적인 본성, 즉 그것들의 경향성인 변화와 변형의 결과로 간주된다. 《역경》에서도 역시 변화가 구조를 낳는데 입자 반응 채널처럼 이것들은 변화 모형의 상징적 표상들이다. 에너지가 반응 채널을 통하여 흐르듯이 역이 중괘의 선을 따라서 유동한다.


현대 물리학에 있어서 움직임과 변형에 역점을 두고 입자를 진행 중인 우주적 작용에서의 순간적인 상태로 간주하여 아원자적인 세계의 '사물들'을 보게 된 것이다.


18. 상호 관통


     지금까지 현대 물리학에서 제시되어 온 세계관을 보면 물질의 '기본적 구성체'라는 생각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주의 모든 현상들이 상호 자체 조화에 의하여 독특하게 결정된다는, 자연에 대해 전적으로 부트스트랩적인 견해가 동양적인 세계관에 매우 가깝게 접근하는 것은 분명하다. 동양 철학의 세계관은 이뿐만 아니라 물질의 근본적인 구성 요소를 부인하는 것에서도 현대 물리학의 부트스트랩 철학과 공통점을 갖고 있다. 불가분의 전체며 그 안에서 모든 형상들이 유동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주 안에는 어떤 고정된 근본적 실체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동양 사상은 우주란 하나의 상호 연관된 전체이고, 그 안의 어느 부분도 다른 부분보다 결코 더 근본적인 것이 아니며, 따라서 어느 한 부분의 속성은 다른 모든 부분의 속성으로부터 결정된다는 부트스트랩 철학의 견해와 일치하게 된다.


《화엄경》은 상호 관통이 공간적으로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 일어나는 본질적으로 역동적인 상호 관계라는 것을 명백히 하였다. 깨달은 경지에서의 상호 관통 체험은 우주 안의 모든 현상들이 조화롭게 상호 관계하는 완전한 '부트스트랩' 상황에 대한 신비적 투시로 여겨질 수 있다.


[출처] 프리초프 카프라, 『현대 물리학과 동양 사상』, 작성자 자평거사

http://blog.naver.com/kijsoh/221089190190

출처 :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