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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추천 도서(21.3~22.2)/2021-9

9월의 추천도서 (3112) 토끼뿔 거북털 (송월주 회고록)

 

1. 책소개

 

송월주 스님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은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와 함께 ‘종교 지도자 삼총사’라고 불린 송월주 스님이 출가 이후 절차탁마하며 보낸 시간에 대한 기록이자 수십 년 시민사회운동에 발 딛고 사회봉사를 실천하며 느낀 소회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유했던 여러 인물 등에 대한 이야기이다. 워낙 광범위한 활동을 펼쳐왔던 저자이기에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때론 조계종의 근현대사이며 또 때론 질곡과 영광을 함께했던 한국사이기도 하다.

회고록에는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한 쓴소리들도 많이 담겨 있다. 때론 사회에 보내는 목소리도 따끔하다.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 이외에 남북 문제에 있어서 휘둘리지 말 것을 주장하기도 하고, 시민사회운동은 도덕성을 그 뿌리에 두어야 한다며 시민운동 활동가의 원칙 없는 정치 참여나 일부 도덕성 문제를 질타하기도 한다. 세상이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평소 스님이 보여준 진심이 담긴 행보 때문이다. 불교계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묵직하다.

 

 

출처:조계종출판사

 

2. 저자

 

저자 : 월주 스님 

저자 송월주 스님은 1935년 전북 정읍 출생.
1954년 법주사에서 금오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 1956년 화엄사에서 금오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정화운동이 한창이던 1961년 스물일곱의 나이에 파격적으로 130여 개 사찰을 관할하는 금산사 주지로 임명됐다.
이후 중앙종회 의원(1966년~1981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교무부장(1970년~1973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1973년),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의장(1978년)을 거쳐 1980년 4월 제17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에 당선됐다. 하지만 6개월 만에 신군부가 일으킨 10?27법난으로 강제 퇴임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1994년 11월 14년 만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재선출되어 개혁종단을 이끄는 선장이 되었다.
개혁종단의 수장이 된 이후 현재까지 불교계는 물론 시민사회운동까지 그 영역을 확장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민족서로돕기 상임공동대표 겸 이사장(1996년~2006년), 실업극복국민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1998~2003), 나눔의 집 이사장(1998년~현재), 지구촌공생회 이사장(2004년~현재) 등을 역임하거나 맡고 있다.
종교계 안팎에서 다양한 활동을 한 것을 인정받아 2000년 6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고, 201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출처:조계종출판사

 

3. 목차

 

걸어온 길
서문
축사
-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 대한불교조계종 호계원장 성타
- 전 국무총리 고건
- 시인 고은

1부 정화 그리고 개혁
조계종을 잘 지키라
1980년 광주와 함께한 불교
끝나지 않은 10·27 법난

2부 출가와 절차탁마
나의 삶에 나침반이 된 분들
그리운 부모님
전교생 앞에서 ‘만담’을 하다
기차 타고 처음 서울에 올라와
꿈 많은 중학교 시절 친구들은 어디에 …
김구 선생 서거 경교장에 가다
고교 시절과 대학 진학
새들도 때 되면 제 갈 길 떠나
숙여라, 깊이 숙여라, 더 숙여라
세월을 이기는 것은 없다
스물일곱에 금산사 주지
1,300년 고찰 금산사 중창 불사 원력 실현
“어려운 여건에도 최선 다해” 금산사 말사들의 불사

3부 한국불교의 미래를 꿈꾸다
부처님 법에 대처승 없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과 정화운동
정화는 도도한 시대적 흐름
베트남전 파병 국군 위문, 고혼 천도, 평화 기원
우리말 『불교성전』 간행, 신앙과 수행의 지침서
동국역경원 한글대장경 불사
고려대장경 현대화 불사
부처님오신날 공휴일로 지정되기까지
정화 불사 후 종단 변화와 발전

4부 종단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법난 뒤 미국으로 가다
종단 개혁 전야 ‘봉은사에 무슨 허물’
권력도 막지 못한 조계사의 봄
14년 만의 총무원장 복귀
종단 개혁을 이끈 사람들
개혁 정신의 계승 발전이 ‘화두’
종정은 법통의 상징으로 존재해야
후보 사퇴하고 백의종군하겠다
종헌종법은 ‘밥’이다
고산, 정대 스님의 총무원장 선출
승가 교육 기관 확대 및 체계화
개혁종단이 추진한 승가대학원
의료·복지 시설 확충 이타자비행의 실천
<불교신문> 종단의 눈, 귀, 입
절집에 컴퓨터가 왜 필요하냐
전법에 출가와 재가 따로 있지 않아
총무원장 중심제는 ‘나의 소신’
달라이 라마 한국 방한 어찌해야 하는가
비구승과 대처승
오도송과 임종게
거대한 선단을 이끌어야 하는 지도자

5부 깨달음의 사회화
더불어 함께하는 세상
시민운동의 생명은 도덕성
다종교의 아름다운 공존
이념보다 시민이 우선이다
이익을 고루 나눠야 ‘화합’
중국 동포 3,000명 초청
공명선거로 풀뿌리민주주의 정착
환경 사업은 친환경적으로 개발해야
김구 선생도, 김대중 대통령도 속았다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은 필요
불교는 남북 교류의 ‘초석’
신뢰 없으면 불가능한 통일
제주 4·3과 여순, 양민 희생은 불행 그러나 …
IMF 구제금융 사태 지켜볼 수만 없었다
일하는 즐거움은 행복의 첫걸음
두레 정신과 통하는 사회적 기업
수행과 자비는 둘이 아니다
“인성 회복은 어릴 때부터” 사랑의 일기 운동
다시는 없어야 할 ‘세월호 참사’
국민이 행동 나서야 사회 통합 가능
국민 위한 정치는 정치인의 의무
한국불교, 어디로 가야 하나

6부 지구촌공생회와 나눔의 집
세상은 더불어 한 뿌리
우물 하나가 수많은 생명 살린다
‘생명의 우물’로 구한 소중한 생명
중생은 나와 한몸, 먼 길도 멀지 않다
한 울타리에 있는 인류, 지구촌은 한 가족
미지의 땅 아프리카에도 자비의 온정을
지구촌 이웃과 함께하는 보현행원
이웃의 아픔을 나누면 ‘행복’
미래 주인공들에게 교육으로 희망 선물
자비는 인류가 걸어갈 길
대형 재난으로 낙담한 이웃에게 희망을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 나눔의 집
할머니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비극은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할머니들
세계 평화와 인권 보호에는 국경이 없다
성찰과 반성 없으면 미래는 없다
아픈 역사 없는 세상 염원하는 ‘소녀상’

7부 인연(불교계)
법정 스님 … 맑고 향기롭고, 그리도 꼿꼿했던
청담 스님 1 … 난 파계승이다. 정화 끝나면 처사로 살겠다
청담 스님 2 … 중 밥상 삼찬이면 족한 기다
청담 스님 3 … 육신은 유한하지만 법신은 영원하다
성철 스님 1 … 일일부작 일일불식
성철 스님 2 … 내 말 잘 들어. 중한테 속지 마라
성철 스님 3 … 돈오점수와 돈오돈수 ‘논쟁’
숭산 스님 … 대통령은 ‘나’를 아시오?
광덕 스님 … 법을 전하는 것이 구도다
석주 스님 … 절 돈은 어린이 포교에 써라
지관 스님 … 팔십 년 후 내가 바로 그이로다
석정 스님 … 신심으로 그린 불화가 상품이다
정련 스님 … 한 사람 키우는 데 30년 걸린다
오현 스님 … 선풍 진작, 만해 스님 선양에 최선
관조 스님 … 앵글에 담은 아름다운 불심
성타 스님 … 수십 년 마음 열고 지낸 ‘인연’
일면 스님 … “나눔과 실천에 앞장”
원산 스님 … 교육원장 지내며 승가 교육 구축
법타 스님 … 남북 교류 지속적으로 관심
법등 스님 … 소신과 강단으로 종단 혼란 막아
텝봉 스님 … 전 국민이 존경하는 캄보디아 승왕
조종현 … 소설로 보살행 실천
이종익 박사 … 불교학, 동양학 섭렵 큰 자취
서정주 시인 … 상처 있지만 뚜렷한 업적 남겨
서돈각 이사장 … 불교 중흥과 학술 발전 ‘헌신’
이기영 박사 … 시대를 풍미한 한국 불교학 거봉
이명우 화백 … 출가 경험 담은 달마도 ‘일품’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 미망을 되새기는 회한의 참회
김백호 회장 … 보시 행하는 독실한 불자
고은 시인 … 고얀 놈, 일초를 잡아라
박성배 교수 … 평생 ‘마음 살리는 일’에 진력
박완일 회장 … 특유의 달변으로 불법 홍포
김종명 회장 … 희사심으로 신행 활동 모범
이동호 이사장 … 중생 어루만지는 따뜻한 마음
오형근 동국대 명예교수 … 경학과 한학 겸비한 노력형 학자
송석구 이사장 … 뚝심과 추진력으로 난제 해결
안동일 변호사 … 내생에 출가 원력 세운 ‘신심’
강건기 교수 … 평생 ‘목우학인’의 길 걸어

8부 인연(일반)
김수환 추기경 … ‘바보 형님’의 삶은 보현행
강원용 목사 … 사랑과 자비가 다르지 않다
전두환 전 대통령 … 인과의 수레바퀴 기억해야
노태우 전 대통령 … 인과의 짐 내려놓아야
김영삼 전 대통령 … 인간미 있지만 말실수 많아
김대중 전 대통령 … 명분 앞세워 현실성 부족
노무현 전 대통령 … 삶도 한 조각 뜬구름
이명박 전 대통령 … 자기 종교 버려야 국민 마음 잡아
이철승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 … 우익 진영의 태두
김종필 전 총리 … 풍운과 풍류 사이에서
남덕우 전 총리 … 국리민복 경제 실현 ‘소망’
노재봉 전 총리 … 한국 사회의 균형 맞추는 저울
황인성 전 총리 … 성품 온화하지만 결단력 있어
이회창 전 총리 … 화려한 정계 입문 그러나 ‘불운’
이홍구 전 총리 … 통일 외교 학식 경험 풍부
고건 전 총리 … 흐름에 편승하지 않아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장 … 종교계 한축 담당한 지도자
김성수 성공회 대주교 …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진보주의자
최근덕 전 성균관장 … 유교의 선비 정신 ‘강조’
조정근 원불교 원로교무 …조화와 화합으로 문제 해결
강암 송성용 … 인품 훌륭한 대서예가
일중 김충현 … 대한민국 최고 명필 묵적 전승
서영훈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상임대표
… 합리적 대안 제시 대중 계몽
백선엽 장군 … 호국으로 자유민주주의 수호
김삼룡 전 원광대 총장 … ‘백제문화 연구’의 산증인
김상하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 선친 유지 계승 ‘기업보국’
강문규 전 새마을운동중앙회장 … 화해와 통합 위해 헌신
한승헌 전 감사원장 … 절개 지키는 대나무 같은 삶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 촌철살인의 ‘언제나 청춘’
이세중 환경재단 이사장 … 포용적이고 관용적인 성품
이종훈 전 중앙대 총장 … 한국 경제, 발상 전환 필요하다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 자유주의 기반한 사회 구현 노력
유종하 전 외무부 장관 … 실무 두루 경험한 ‘외교사령탑’
이인호 KBS 이사장 … 균형 있는 역사 의식 필요하다
이연택 새만금위원회 위원장 … 추진력과 성실함 돋보여
김동호 전 문화융성위원장 … 가장 중요한 가치는 ‘창의적 노력’
손봉호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 온건한 변화와 발전 ‘추구’
강현욱 조선대 이사장 … 중앙과 지방 균형이 국가 발전
김완주 전 전북지사 … 도민 행복 도정 발전 위해 노력
안숙선 국악인 … 과연 사람의 소리인가

회고록을 끝내며
부록 1 조계종조 변경 신중하게 검토해야
부록 2 불기 기산 재검토해야 한다

교유록

후기
ㆍ금산사 정화와 중창 불사 … 제17교구 본사 금산사 주지 성우
ㆍ정화에서 개혁, 그리고 통합과 화합 … 중앙승가대학교 총장 원행
ㆍ이웃과 함께한 ‘보현행원’의 길 … 대한불교조계종 총무부장 지현
ㆍ발문
ㆍ문도 명단
ㆍ1994년 종단 개혁 주요 일정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모든 것이 치밀한 시나리오였다. 신군부의 합동수사단은 10·27 법난法難 이전부터 불교계를 정화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종단 지도부를 와해하려 했다. 법난 다음날인 28일 합수단 실무대책반장인 전창열 중령과 몇몇 스님이 만났고, 11월 5일에는 정화중흥회의가 마비된 종단 업무를 대신한다고 나섰다.
강압에 의해 모든 권한을 넘겼지만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상부에서 아직 나가라는 말이 없다는 것이다. 은사께 받은 ‘이 뭣고是甚?’라는 화두가 유일한 위안이었다. 23일째인 11월 18일 조사 내용을 발설하지 않고, 향후 2년간 모든 공직을 맡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 나왔다.
신군부의 이른바 불교 정화 작전명은 ‘45계획’이었다. 조계사 주소인 서울 종로구 견지동 45번지를 딴 것이다. 이 시나리오에 따라 10월 27일 조계종 스님과 불교계 인사 153명이 연행됐고, 사흘 뒤인 10월 30일에는 군경 합동 병력 3만 2,000여 명이 전국 사찰 및 암자 등 5,700여 곳을 군홧발로 짓밟았다. 그해 4월 26일 총무원장에 취임한 뒤 자주 개혁을 앞세운 조계종의 봄은 6개월여 만에 어이없이 그렇게 끝났다.
43쪽 「조계종을 잘 지키라」 중

1994년 12월, 14년 만에 총무원장에 복귀했다. 감회가 새로웠다. 법난으로 한 차례 좌절했지만 나는 이미 종단 개혁을 위한 청사진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서의현 총무원장 체제를 무너뜨리고 사태를 수습한 개혁회의의 개혁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당시를 종단사에서는 ‘개혁종단’으로 부른다.
개혁회의는 정법종단의 구현, 불교 자주화 실현, 종단 운영 민주화, 청정 교단의 구현, 불교의 사회 역할 확대라는 5대 지표를 설정했다.
(중략)
개혁종단이 힘을 가장 집중한 사업은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이다. 불교가 산중에만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는 자각은 나의 오랜 신조였다. 이는 불교의 현대화와 사회화, 복지 지원 등과 맞물려 있다. 1995년부터 범종단 차원에서 ‘깨사(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을 펼쳤다. 여기에는 불교가 분규에 휩싸여 본연의 사명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해 국민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는 자기반성이 깔려 있다. 사찰의 사회 참여 일환인 ‘자비의 탁발 운동’, 의식계몽운동인 ‘초발심으로’ 등의 캠페인을 펼쳤다. 1995년 2월 사회복지재단과 1996년 4월 사회복지법인 승가원을 설립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복지 사업의 기본틀을 구축했다.
173~175쪽 「개혁 정신의 계승 발전이 ‘화두’」 중

“마음을 내어 신심을 갖고 자기 수행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동시에 중생을 위해 자비행을 실천하지 않으면 부처님 가르침을 온전히 이행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일체중생을 위해 널리 공덕을 회향하기를 발원한 보현보살의 실천행이 지금 우리 시대에 특히 요구된다고 했다. 자리이타自利利他와 회향廻向인 것이다. “자리自利란 부처님을 믿고 수행을 통해 진리를 깨닫는 것이며, 이타利他란 중생에게 이익을 주는 것, 즉 고통을 덜어 주거나 무명심을 제거해 주거나 불심佛心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향이란 자리이타행으로 쌓은 공덕을 자신의 공덕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일체중생 모두에게 돌려준다는 의미입니다.”
311쪽 「수행과 자비는 둘이 아니다」 중

내 나이 산수傘壽를 넘었다. 1954년 금오 스님 회상으로 출가해 부처님과 대중의 은혜로 사문沙門의 길을 걸어왔다. 어느덧 승복을 입고 산 지도 60여 년의 세월이 지났다. 돌아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은사 스님을 모시고 정화 불사에 동참한 일도, 종단의 크고 작은 소임을 보았던 일도 이제는 기억의 한 자락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일생을 부처님 제자가 되어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한 점, 반성할 점이 많다.
지금도 초발심을 잊지 않으며 항상 노력하고 있지만 세월을 돌아보면 아쉬움도 있다. 이상은 항상 현실 가운데 있다. 계속 노력하는 과정이 수행이고 보살도菩薩道의 실현이다. 지금도 나는 보현행자처럼 정진한다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1998년 총무원장에서 물러난 후 지구촌공생회를 만들어 빈곤 국가의 어린이와 주민들을 위한 국제 구호 활동에 전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총무원장 재직 시절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을 제창한 나로 서는 구호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활동을 구체적으로 실천했다는 점이 보람 아닐 수 없다. 또한 국가원로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발전에 힘을 보태고, 우리 사회가 바르게 변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 또한 불조佛祖와 국가의 은혜에 보답하는 작은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328~329쪽 「한국불교 어디로 가야하나」 중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 송월주 스님.
2000년대 초반 한 언론은 이 세 명을 가리켜 ‘종교 지도자 삼총사’라고 불렀다.
1990년대 말부터 본격화했던 이 세 명의 공동 행보는 사회와 호흡해야 하는 종교가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 잘 보여주었다. 국가의 큰 일이 생길 때마다 정치권은 이 세 명을 수시로 초청해 의견을 나누었고, 국민들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특히 그 빛을 발한 건 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았을 때였다. 양극화 해소와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세 명은 한발 앞서 나섰고 이후에 종교계의 전폭적인 동참을 이끄는 동인이 되었다. 급기야 세 명의 공동 발의로 ‘함께일하는재단’(구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이 만들어지면서 이 아름다운 행보는 정점을 찍었다.
세 명 중 두 명은 이미 선종(김수환 추기경)과 소천(강원용 목사)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송월주 스님은 여전히 나눔의 집, 지구촌공생회 등의 사회 활동으로 자비 실천의 길을 걷고 있다.
이 책은 송월주 스님이 출가 이후 절차탁마하며 보낸 시간에 대한 기록이자 수십 년 시민사회운동에 발 딛고 사회봉사를 실천하며 느낀 소회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유했던 여러 인물 등에 대한 이야기이다.
워낙 광범위한 활동을 펼쳐왔던 저자이기에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때론 조계종의 근현대사이며 또 때론 질곡과 영광을 함께했던 한국사이기도 하다.

“(불교) 종단사는 송월주 스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송월주 스님은 세간에서 시민사회 운동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불교계에서는 개혁종단을 이끌었던 수장으로서의 면모로 더 깊이 각인되어 있다.
혹자는 현대 (불교) 종단사를 살필 때 송월주 스님 이전과 이후로 나눠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분기점에 해당하는 사건이 1994년 종단 개혁이다. 이는 개혁 세력에 의해 추대되어 총무원장이 된 송월주 스님의 종단 혁신 그리고 사회적 실천이었다.
물론 이런 실천의 단초는 저 멀리 1980년으로 올라간다. 1980년 4월 제17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취임한 송월주 스님은 자주적인 종단, 개혁적인 종단을 꿈꾸며 큰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그해 10월 27일 신군부에 의해 그 꿈은 산산이 무너졌다. 10·27 법난이다.
스님과 불교계 인사 153명이 연행되고 3만 2천여 명의 병력이 전국 사찰 5,700여 곳을 군홧발로 짓밟았다. ‘정화’라는 명분이 있었으나 그것은 미명일 뿐, 사실상 정권 안정을 위한 불교계 길들이기였다.
이후 십수 년, 때론 정권의 눈치를 보기도 하고 때론 자율종단을 위해 애를 써 보기도 했지만 조계종은 거대한 태풍 앞의 나룻배 신세였다. 끝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총무원장이 속출했다.
이후 1994년 개혁종단이 들어서고 선거가 임박하자 개혁 세력이 선택한 카드는 송월주 스님이었다. 송월주 스님은 14년 만에 다시 ‘개혁’을 이끌어야 하는 선장이 되었다. 그리고 총무원장에 당선된 스님은 이제껏 누구도 실험하지 못한 교계 안팎의 개혁에 착수한다. 개혁회의가 정한 5대 지표, ‘정법종단의 구현, 불교 자주화 실현, 종단 운영 민주화, 청정 교단의 구현, 불교의 사회 역할 확대’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총무원과는 별도로 승가교육을 책임질 교육원, 신도 포교를 진두지휘할 포교원을 설립했다. 소위 ‘삼원 분립’을 통해 권력의 집중으로 인한 병폐를 없애고, 종무 행정을 체계적이고 전문화하여 이에 따른 책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종단 고위직의 겸직 금지, 50명의 선거인단 300명으로 확대 등도 추진하였다. 절대 권력의 탄생으로 인한 폐해를 막기 위한 시도였다. 한편 출가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스님이 되던 관행도 과감하게 바꿨다. 승가고시 제도를 통해 승려에게 법계를 부여하는 제도도 안착시켰다. 그 와중에 절에 적을 두고 있지 않은 3,000여 명의 승적을 절차를 밟아 정리했다.
안에서의 개혁뿐만 아니었다. 불교계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일은 어떤 사업보다도 빛났다. 대표적인 사업이 바로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이다. 불교가 산중에만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는 스님의 오랜 지론은 종단의 관심사를 밖으로 돌리는 데도 일조했다. 사찰의 사회 참여 일환인 ‘자비의 탁발운동’, 의식계몽운동인 ‘초발심으로’ 등의 캠페인이 잇따라 펼쳐졌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의 출범도 이맘때다. 1995년 118곳의 불교복지시설을 묶어냈고, 2016년 현재 1,000여 곳으로 늘어나는 계기가 됐다.
종단 안팎으로 이전까지 누구도 실천해 보지 못한,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거대한 변화들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 송월주 스님이 있었기에 불교계에서는 과감하게 송월주 스님 이전의 종단과 이후의 종단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더불어 한 뿌리, 나눔의 집과 지구촌공생회

송월주 스님의 총무원장 임기는 1998년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스님의 사회적 실천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울타리를 넘어섰다고 할 만큼 왕성하다. 나눔의 집 활동과 지구촌공생회 활동이 대표적이다.
2003년 10월 발족한 지구촌공생회는 빈곤 국가의 어린이와 주민들을 위한 국제 구호 활동에 전념하는 단체다. 캄보디아, 라오스, 몽골, 미얀마, 네팔, 케냐에 지부를 개설해 활동가를 파견하고, 식수 지원과 교육, 지역 개발을 돕고 있다. 그 결과 캄보디아를 비롯한 각국에 2,307곳의 우물을 만들어 생명의 식수를 공급하고 있으며, 58곳의 초중고를 건립해 교육을 통한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또한 후원 회원은 창립 3년 만에 1,000명이 넘었고, 지금은 15,000여 명이 회비를 내며 지구촌공생회 활동을 하고 있다.
팔순이 훨씬 넘은 세수에도 스님은 사찰에서 기도하고 참선하는 시간만큼 라오스의 초등학교를 짓는 현장에, 캄보디아에 우물을 파는 현장에, 케냐의 밭에 씨앗을 뿌리는 현장에 더 자주 모습을 보인다.
개원과 함께 한 번도 중단하지 않고 이끌어 가고 있는 나눔의 집 활동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미 20여 년을 훌쩍 넘겨 버린 할머니들과의 교감은 역사의 피해자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고 있다.

“때론 종단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겠다”

회고록에는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한 쓴소리들도 많이 담겨 있다.
오도송과 임종게에 대한 일갈이 대표적이다. 생전에 오도송을 전한 적도 없고, 임종게를 직접 남기지도 않았는데, 입적 후에 오도송과 임종게가 발표되는 현실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한다.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또 종정은 법통의 상징이어야 하며, 종단 운영의 실무 중심에 총무원장이 자리하는 것이 종단 안정을 위한 큰 틀이라는 오래된 소신에 대해서도 말한다.
때론 사회에 보내는 목소리도 따끔하다.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 이외에 남북 문제에 있어서 휘둘리지 말 것을 주장하기도 하고, 시민사회운동은 도덕성을 그 뿌리에 두어야 한다며 시민운동 활동가의 원칙 없는 정치 참여나 일부 도덕성 문제를 질타하기도 한다.
세상이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평소 스님이 보여준 진심이 담긴 행보 때문이다. 불교계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묵직하다.

 

출처: 조계종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