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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추천 도서(19.3~20.2)

1월의 추천도서(2500)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하고 통쾌함에 대하여

1. 책소개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우리는 읽고 써야 한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20여 년간의 공부공동체 활동을 통해 경험해 온 고전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비전과 노하우를 담은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보통 글쓰기를 여행이나 운동 등 여러 취미 활동 중 하나이거나 조금 전문적인 취미처럼 생각하기가 쉽지만 글쓰기는 여러 취미 활동 중 하나가 결코 아니며, 다른 활동들과는 다르게 어떤 본질적 능력과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사람은 왜 글을 쓰며, 인간의 본성과 글쓰기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왜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읽고 써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실전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노하우를 들려준다.

이 책은 모두 2부로 구성되었다. 1부 ‘이론편’에서는 읽기와 쓰기의 관계에 대해서도 단순히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 한다는 정도를 넘어 쓰기는 읽기의 연장선이자 반전이며 도약이기에 읽으면 써야 한다면서, 삶과 세계에 대한 통찰로 가득 찬 고전들을 맹렬히 읽고 쓸 때 글쓰기는 양생술이자 구도이며 또 밥벌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부 ‘실전편’은 실제 진행했던 글쓰기 강의의 녹취록을 토대로 한 것으로, ‘칼럼 쓰기’, ‘리뷰 쓰기’, ‘에세이 쓰기’, ‘여행기 쓰기’ 등 네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글쓰기 각각의 핵심적인 특징을 이야기하고 구체적인 조언을 전한다.

출처 : 교보문고

 

2. 저자

 

저자 : 고미숙

고전평론가. 강원도 정선군 함백 출생. 가난한 광산촌에서 자랐지만, 공부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기신 부모님 덕분에 박사학위까지 무사히 마쳤다. 대학원에서 훌륭한 스승과 선배들을 만나 공부의 기본기를 익혔고, 지난 10여 년간 지식인공동체 ‘수유+너머’에서 좋은 벗들을 통해 ‘삶의 기예’를 배웠다. 2011년 10월부터 ‘수유+너머’를 떠나 ‘감이당’(gamidang.com)과 ‘남산강학원’(kungfus.net)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가의 말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보통 글쓰기 책은 글쓰기의 테크닉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주제와 소재의 적절한 배합, 유창한 수사학, 탄탄한 논리구조 등등.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글쓰기를 평생 동안, 또 생업으로 하려면 무엇보다 글쓰기의 원리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사람은 왜 쓰는가? 쓴다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 본성과 쓰기의 관계는 무엇인가? 등등. 그래서 존재론을 먼저 구축한 다음 실전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실전부터 했다가는 금방 밑천이 바닥나 버린다. 그렇게 되면 무엇보다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을 상실해 버린다. 뭐든 근본에 닿아 있어야 삶의 기술로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실용주의다.
해서, 이 책은 크게 ‘이론편’과 ‘실전편’으로 구성되었다. 전자가 바로 글쓰기의 존재론이고 후자는 그동안 〈감이당〉에서 수행했던 ‘글쓰기 특강’을 간략하게 압축한 녹취록이다. 존재론을 통해 비전을 탐구하고, 실전편을 통해 글쓰기의 각종 테크닉을 찬찬히, 치밀하게 터득하기를 바란다. 물론 둘은 분리되지 않는다. 비전탐구와 실전훈련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면 글쓰기와 일상이 하나가 된다. 그렇게 한 걸음씩 가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왜 글쓰기가 양생이고 구도이자 밥벌이인지를.
예전엔 미처 몰랐다. 내가 매년 한두 권의 책을 쓰게 될 줄은. 그리고 글쓰기로 먹고 살고 세상을 만나고 생사의 비전을 탐구하게 될 줄은.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 기적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처럼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도 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은’ 일이 글쓰기 말고 또 있을까? ‘이생에도 좋고 다음 생에도 좋은’ 일이 글쓰기 말고 또 있을까? 결정적으로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일이 글쓰기 말고 또 있을까?”(「머리말」 중에서)

출처 : 교보문고

 

3. 목차

 

책머리에 :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은!

프롤로그 :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나의 글쓰기 편력

1부 이론편―글쓰기의 존재론

1. 산다는 것 ― 안다는 것
‘산다’는 건 ‘선다’는 것
인간(人間), ‘사이’의 존재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 생각을 ‘생각’하라!
돌원숭이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 생각에서 탈주하라!
생명을 보존하려면? ― 간절히 궁금해하라!

2. 안다는 것 ― 읽고 쓴다는 것
하늘과 땅, 존재의 GPS
말이 곧 ‘디바’다!
문자, SNS의 시작
나무, 지혜의 전령사
테제1 ― 읽었으니 써라!
테제2 ― 쓰기 위해 읽어라!
읽기와 쓰기,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3. 읽는다는 것, 그 거룩함에 대하여
책이 곧 별이다!
신의 선물 ― 읽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혁명은 책의 해방이다 ― 모든 이에게 책을 허하라!
책이 곧 ‘나’다! ― 자의식에서 자존감으로
다이어트에도 영성이 필요하다?!
에로스는 로고스를 열망한다!
공자와 붓다의 지복을 누리고 싶다면? 읽어라!

4. 쓴다는 것, 그 통쾌함에 대하여
새로운 ‘계급’의 탄생 ― 읽는 자와 쓰는 자
수렴과 집중 ― 카오스에 차서를 부여하라!
‘뇌와 손과 혀’의 유쾌한 삼중주
생명은 창조다! ― 에로스와 글쓰기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은!
글쓰기엔 천재가 없다!
부의 새로운 척도 ― 책과 유머
글은 길을 낳고, 길은 밥을 부른다!
붓다와 공자가 전하는 글쓰기 비결
5. 감히 알려고 하라! 감히 쓰려고 하라!
빅뱅에서 블랙홀까지
이번 생은 처음이라 ― Trans Generation을 향하여!
성혁명이 가능하려면? ― 글쓰기와 성애의 기술
21세기 문명의 비전 ― 소유에서 증여로
디지털 노마드 ― 글쓰기는 미래다!

2부 실전편―대중지성의 향연

1. 칼럼 쓰기: 1,800자의 우주
초식1 ― 발원하라! 집중하라!
초식2 ― 사계절의 리듬을 타라
초식3 ― 일상의 모든 것을 활용하라
초식4 ― 절차탁마, 자의식과의 전투
칼럼 쓰기 예시문

2. 리뷰의 달인-되기: 텍스트와의 ‘활발발’한 케미
리뷰란 무엇인가? ― 마주침의 유물론
읽는다는 것 ― 무심하게 접속한다
다시, 읽는다는 것 ― 사심으로 접속한다
쓴다는 것 ― 새로운 텍스트를 토해 낸다!
리뷰 쓰기 예시문

3. 에세이-하라: 자기 삶의 철학자-되기
철학이란 무엇인가? : 존재, 인식, 윤리
나는 누구인가? : 인식과 사유
나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 욕망과 행동
어떻게 살 것인가? ― 윤리와 비전
차서를 부여하라! 차이를 생성하라!
에세이 쓰기 예시문

4. 여행기의 비결: 유랑에서 유목으로!
인간은 왜 끊임없이 길을 떠나는가?
우리 시대의 여행 ― 유랑과 유목 ‘사이’
여행기의 비결 1 : 말과 이야기의 향연
여행기의 비결 2 : 사건의 현장, 사유의 탄생
여행기 쓰기 예시문

에필로그 : 대중지성과 고전 ‘리-라이팅’(re-writing)

출처 : 본문 중에서

 

4. 책속으로

 

“읽기가 생명의 활동이 되려면 써야 한다. 아, 여기 또 지독한 오해가 있다. 쓰기를 읽기 다음에 두는 것이다. 읽은 다음, 아주 많이 읽은 다음에야 쓰기가 가능하다는 오해 말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읽기와 쓰기는 동시적이다. 읽은 다음에 쓰는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해 읽는 것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쓰기가 전제되지 않고 읽기만 한다면, 그것은 읽기조차 소외시키는 행위다. 그런 읽기는 반쪽이다. 책을 덮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저 몇 개의 구절만이 맴돌 뿐이다. 그래서 어차피 잊어버릴 거 뭣하러 읽지? 많이 읽어 봤자 다 헛거야, 라는 ‘북(book)-니힐리즘’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쓰기를 전제하고 읽으면 아주 달라진다. 부디 해보시라. 쓰기는 읽기의 방향과 강/밀도를 전면적으로 바꿔 준다. 결코 니힐리즘 따위에 걸려들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구경하는 것과 창조하는 것 사이의 차이라 할 수 있다. 구경꾼은 영원히 구경만 할 뿐이다. 창작자도 구경을 한다. 하지만 그 구경 역시 창조의 일환이다. 마찬가지로 쓰기를 염두에 두면 읽기의 과정이 절실해진다. 읽기 또한 쓰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1부 「2장 안다는 것 ― 읽고 쓴다는 것」 중에서)

“자존감을 회복하는 길도 어렵지 않다. 자신을 외부와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 계속 연결, 확충해 가면 된다. 성공과 경쟁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존재의 심층적 차원에서 ‘초연결’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앞에서 말한 독서법이다. 내가 읽는 책이 곧 ‘나’ 자신임을 아는 것.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내가 곧 세계가 되고 별이 되고 우주가 된다. 그 자체가 이미 힐링이다. 세상을 경쟁과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내 존재의 광대무변한 토대이자 배경으로 여기게 된다. 그 유동성 속에서 자존감이 충만해진다. 그것을 누리고 싶다면? 무엇이든 ‘읽을 수 있는’ 신체가 되는 것, 모든 책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1부 「3장 읽는다는 것, 그 거룩함에 대하여」 중에서)

“읽으면 써야 한다. 들으면 전해야 한다. 공부도, 학습도, 지성도 최종심급은 글쓰기다. 다른 무엇일 수 없다. 그런데 왜 이런 분할선을 방치하는가? 자본의 은밀한 전략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자본은 거의 모든 장벽을 다 철폐했다. 자본의 이동에는 국경도 인종도 지역도 없다. 대신 훨씬 더 근원적이고 심오한 분할선이 있다. 상품을 만드는 자와 소비하는 자. 영화를 만드는 자와 관람하는 자. 스포츠맨과 관객, 음식을 만드는 자와 맛보는 자 등등. 이런 인식에 사로잡혀서인가. 인문학 공간에서도 지식을 전파하는 이와 지식을 구경하는 이 사이의 장벽이 견고해진 것이다. 듣는 자와 전하는 자, 쓰는 자와 읽는 자, 말하는 자와 듣는 자???학연, 지연, 계층보다 더 선명한 구획! 그야말로 새로운 계급의 탄생을 목격한 것이다.”(1부 「4장 쓴다는 것, 그 통쾌함에 대하여」 중에서)

“아, 그때 알았다. 글쓰기는 나처럼 제도권에서 추방당한 이들의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수행해야 할 근원적 실천이라는 것을. 인식을 바꾸고 사유를 전환하는 활동을 매일, 매 순간 수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써야 한다. 쓰기를 향해 방향을 돌리면 그때 비로소 구경꾼이 아닌 생산자가 된다. 들으면 전하고, 말하면 듣고, 읽으면 쓴다! 이것은 한 사람에게 온전히 구비되어야 할 활동들이다. 신체는 그 모든 것을 원한다! 어느 하나에만 머무르면 기혈이 막혀 버린다. 막히면 아프다. 몸도 마음도. 통즉불통(‘통’하면 아프지 않다/아프면 ‘통’하지 않는다)????글쓰기가 양생술이 되는 이치다.”(1부 「4장 쓴다는 것, 그 통쾌함에 대하여」 중에서)

“실제로 글을 쓴다는 건 인생과 세계를 마주하는 거예요. 좀 거창해 보이지만 참 평범한 말이에요. 산다는 건 결국 누군가를 만나고 이 세상에 대해 알아 가는 과정이잖아요? 글쓰기는 그걸 언어와 문자로 하는 것뿐입니다. 해서, 글쓰기에서 제일 중요한 건 사람에 대한 관심이죠. 또 세상에 대한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게 안 되면 글이 제대로 나오기가 어려워요. 자신 안에서, 자의식의 굴레 안에서 맴돌기 십상입니다.”(2부 「1장 칼럼 쓰기: 1,800자의 우주」 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라고 하면 ‘공부를 생업으로 할 생각이 없는데 그걸 왜 읽어요?’ 이런 식으로 반문하는 분들이 더러 있어요. 이게 공부가 뭔지 모르는 겁니다. 내가 육체노동을 하든 공무원이 되든 혹은 택배를 하든 공부하지 않는 삶은 불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소외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자기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데 어떻게 자존감이 생깁니까? 자존감이 있어야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을 진실하게 대할 수 있어요. 진실한 태도를 만들어 내는 그 힘, 그게 바로 집중력이고 책을 읽어야 되는 이유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힘과 지혜는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책을 읽는다는 것, 글을 쓴다는 건 일생을 살아가면서 늘 꺼내 쓸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을 확보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이게 바로 밥벌이가 됩니다. 글을 써서 밥을 버는 것도 되고, 다른 노동을 하는 데도 그 노동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가지면 거기서 또 밥이 생기는 거죠. 이런 순환, 밥과 글과 책의 순환. 이거를 잘 염두에 두시고요. 그러면 지난주에 텍스트를 선택했잖아요. 선택을 했고, 왜 선택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해서 말로 전달해야 됩니다. 가능하면 자기가 메모한 거를 참조하되 술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돼요.”(2부 「2장 리뷰의 달인-되기: 텍스트와의 ‘활발발’한 케미」 중에서) 

출처 : 본문 중에서

 

5. 출판사서평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써야 한다!
― 글쓰기의 존재론과 실전팁이 담긴 ‘양생과 구도, 밥벌이로서의 글쓰기’ 책!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20여 년간의 공부공동체 활동을 통해 경험해 온 고전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비전과 노하우를 담은 책. 무엇보다 사람은 왜 글을 쓰며, 인간의 본성과 글쓰기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왜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읽고 써야 하는지를 다룬 1부 ‘이론편’의 ‘글쓰기의 존재론’이 압권이다. 자기를 성찰하면서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매개인 말과 글을 가지고 내가 창조하고 조율하며 소통할 수 있는 능력―바로 그것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읽고 써야 한다. 특히 저자는 읽기와 쓰기의 관계에 대해서도 단순히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 한다는 정도를 넘어 “쓰기는 읽기의 연장선이자 반전이며 도약”이기에 “읽으면 써야 한다”면서, 삶과 세계에 대한 통찰로 가득 찬 고전들을 맹렬히 읽고 쓸 때, 글쓰기는 “양생술이자 구도이며 또 밥벌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2부 ‘실전편’은 실제 진행했던 글쓰기 강의의 녹취록을 토대로 한 것으로, 실전 글쓰기에 도움이 될 노하우가 ‘칼럼 쓰기’, ‘리뷰 쓰기’, ‘에세이 쓰기’, ‘여행기 쓰기’ 등 네 개의 카테고리에 담겨 있다.

『고미숙의 글쓰기 특강 :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지은이 인터뷰
1. 많은 글쓰기 책이 있지만, 선생님의 이 책은 다른 글쓰기 책에서는 볼 수 없는 ‘글쓰기의 존재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글쓰기’야말로 우리의 생명과 존재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이야기하고 계신데요, 어떻게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거라고 여겨 왔던 글쓰기가 존재 일반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간략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간략하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보통 글쓰기를 여행이나 운동 등 여러 취미 활동 중 하나이거나 조금 전문적인 취미처럼 생각하기가 쉽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고요. 그런데 제가 한 20년 동안 백수지성으로, 매년 한 두 권의 글을 쓰고, 여러 가지 (공동체) 활동과 삶을 실험하면서 ‘글쓰기’ 자체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것들이 생겼습니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글쓰기’는 여러 취미 활동 중 하나가 결코 아닙니다. 간략히 요점 몇 가지만 말씀드려 볼게요.
지금은 ‘대중지성의 시대’입니다. ‘대중지성의 시대’란 대중이 (전통적인 의미의) 엘리트가 되는 시대라는 겁니다. 그럼 ‘엘리트’는 뭐냐,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입니다.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인식과 사유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엘리트’입니다. 그게 아니라 (엘리트들이) 생산한 글을 받아보고, 그 사유를 받아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 ‘대중’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글쓰기’란 다른 활동들과는 다르게 어떤 ‘본질적 능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 시대는 모든 사람이 글을 쓸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환경 속에 있습니다. 말인즉, ‘대중’과 ‘엘리트’의 구분이 과거와 같은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는 겁니다. 디지털 네트워크,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무한한 독서를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있는 것들을 잘 편집해서 ‘나의 사유’를 펼치면 되는 거죠. 그런데 글쓰기를 보통의 취미나, 아니면 특별히 전문적인 무언가로 생각하는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거기(인식과 사유의 방향 설정)까지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중에 글쓰기에 관한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이 자체가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조건이 되었으니까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책들이 ‘테크닉’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데요, 제가 공동체에서 ‘글쓰기’와 관련된 여러 활동을 해 본 결과 ‘테크닉’은 사실 그렇게까지 중요한 게 아닙니다. 1~2년 배우면 똑같습니다. 기술적인 건 배우면 되는 겁니다. 그럼에도 왜 어떤 사람은 책을 내는 데까지 가고, 어떤 사람은 그냥 포기하고 마는가 생각해 보니, (포기하는 경우는) 이 ‘글쓰기’가 우리의 생명, 삶에 깊게 관련되어 있다는 걸 모르고, 그저 거쳐 가는 한 과정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보통은 ‘테크닉’을 잘 익히면, 글을 잘 쓰게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글쓰기’를 욕망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걸 내 삶에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시키는지가 중요한 겁니다. 책에 쓴 것처럼 ‘글쓰기가 존재의 근원’이라는 것이죠. 글쓰기를 존재의 근거로 생각하면 중간에 멈추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걸(글쓰기)를 계속해갈 동력을 얻는 것이죠. 저는 글을 쓸 때 내 안에 차오르는 어떤, 충만감? 그런 것이 있는데 그건 정말 미세합니다. 나 말고는 아무도 눈치를 챌 수 없죠. 그건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겁니다. 테크닉이 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나 자신은 글을 쓰는 게 너무너무 성취감을 주는 거예요. 왜 그런 걸까? 그건 바로 내가 글쓰기를 내 존재와 직접 연결했기 때문입니다. 그걸 깨닫고, 책에서도 그 점을 특별히 강조했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그런 관점은 인생 전체의 비전과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어떤 화려한 직업, 성공한 직업도 ‘은퇴’라는 게 있어요. 그럼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은퇴를 하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러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화려하고 성공적인 일을 했더라도 그걸 써놓지 않으면 그건 그냥 흩어져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예도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들 하죠. 이건 말인즉 ‘노동’이 점점 사라져 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노동하느라 부족했던 시간들이 남는 시간으로 바뀌는 와중에 도대체 무얼 할 것인가. 인간은 결국 인식의 지도를 새로 그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해부해서 성찰해 봐야 하고요.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도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럼 그때 필요한 게 뭘까요? 바로 말과 글입니다. 저는 말과 글이 가장 보편적이면서 자기를 성찰하면서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는 그러한 매개라고 보기 때문에, 이건 모든 사람의 비전이 될 수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 중요한 일을 예전처럼 엘리트에게 맡겨놓고 그걸 따라가겠다? 이럴 필요가 없다는 거죠.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들이 막 이렇게 어우러져서 새로운 어떤 중중무진의 우주를 만들어 내는, 이런 게 아마 디지털 혁명이 가져다준 새로운 삶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말과 글을 창조하고 조율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글쓰기의 존재론’을 되새겨 볼 시기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북드라망